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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8-31 19:36
[잡담] 기마병 하시는데
 글쓴이 : 뭐꼬이떡밥
조회 : 1,918  

혐오 영상이나 이미지는 절대 올리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생각하시는 기마병을 잘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서양처럼 중무장 풀아머에 마갑도 씌우고 그 커다란 창을 들고 싸울것이다.
에서 반문이 생깁니다 
일본에서도 반문이 제기 되었었는데요 
저도 어느 부분 동의는 하는 사안이였습니다 
학자들의 결과는  저도 모릅니다

일단 일본에서의 전국시대 그 이전시대 기마병이 생각하는 것 만큼 위력적이냐 입니다 
기마병에 창을 들고 싸웠는데요 창으로 찌를 경우
반동에 의해 기마병의 팔에 엄청난 데미지가 간다는 겁니다 
전투에서 온힘을 다해 창을 쥐고 싸우겠죠.
그리고 말을 달리고 그 창으로 사람이나 물체에 찌르면 반동이 생깁니다 그 반동은 그대로 기마무사의 팔에 전달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중세시대 기사들의 마상시합 놀이를 보면 됩니다 
창을 겨드랑이에 꼭 품죠
물론 매번 그런 데미지를 계속 가하지는 않습니다만  전장터에서 그런 창질이 몇번되지 않을 것이다 에 
전도 동감을 했습니다 
아무리 단창이라도 전장을 달리면서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손으로 또는 삼국지처럼 두손으로 능숙하게 싸우는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여가서 마상에서 창이 아닌 검이나 도라면 수긍이 갑니다 
베고 지나가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또하나의 의문점은 동북아시아의 말은 폐르시안의 말처럼 크지 않다는 겁니다 
조랑말이죠.
더 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국기록에보면 말을 얻기위에 말무게만큼 금을 어쩌구 또 대완마인가 ...를 얻기위해 고선지장군이... 라는 설도 있으니까요

조랑말에 올라타서 중갑으로 무장을 하고 창을 들고 달리는 모습 
가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은 아니죠.

영화에서 처럼 기마무사의 멋진 차징이 과연 가능하겠냐? 인겁니다 
말은 아주 귀한 동물입니다 그동물로 창으로 무장된 적진을 돌파한다?
죽으러 가는 거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창길이에 대해 나왔었는데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병으로 소문난 우에쓰기 가문과 오다가문의 창길이가 달랐다고 합니다 
창은 길이가 짧을 수록 가벼워 다루기 용이합니다 
반대로 길면 길수록 유리하죠 팔랑크스 처럼요.
우에쓰기 가문의 창길이가 320mm 정도 인가 하고 오다가문의 창길이가 360mm 인가 (정확기 기억이 아나네요) 입니다 
양팔로 창을 1미터 간격으로 잡는다 치면 길이가 2미터를 넘습니다 팔을 뻗으면 더 길구요
그곳을 
기마병이 돌격하기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좀 과하게 나가는 사람은 기마무사는 단순 기동성 확보를 위해서다  산지가 많은 일본에서는 쓰임세가 기동성을 이용한 전술용이다  싸울때는 말에서 내린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기마병은 그냥 몽고기병이나 폐르시안 기병처럼 가벼운 창이나 활 검을 쓰는 정도까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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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맛치킨 16-08-31 19:42
   
로마기병도 그리스 원형방패에 칼이 주무기였죠 파르티아의
기병대는 궁수 경무장 기병이  주력이었고
Silli 16-08-31 20:02
   
일본의 예를 드시는데 일본은 동양에 포함해서 보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특수한 경우의 역사를 가진 나라죠.

애초에 일본이라는 고대전투라해봐야 섬안에서 자기들끼리 싸운 것이 다이고 기병자체에 그리큰 관심 없던 나라 아닌가요??지들병력끼리 싸우고 영토,백성 돌려먹기 놀이나 하던 일본아닌가요?

 예전 여몽 연합군이 일본에 상륙하였을떄 일본 지휘관이 자기들 전쟁 풍습에 따라 전선 앞까지나와 자기소개를 하다 여몽연합군의 활에 맞아 죽었다는 글도 본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실제 가야의 철갑기마병의 갑주가 발굴 되기도 했고 복원까지 된적도 있죠
또한 각종 실제 사료,기록들

또한 동북아시아의 말이 서양의 말보다 덩치가 작았다는 말에는 동의하나
지구력과 기타 능력에선 서양마와 크게 뒤쳐질게 없었다고 알고있고요

그리고 기병의 기본적술이 돌파라는건 누가 내세운 주장이죠??
병력이란 쓰기 나름입니다. 님 말따마다 적군에 장창병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어느 지휘관이 기병돌격을 시킵니까?

전쟁은 병과 하나만이 하는게 아닙니다 적재적소에 맞는 병력이 대치하고 전술이 존재하는이유죠
떄에 따라서는 분명 진영돌파도 가능합니다.

다른 나라를 예로 들었으면 이해라도 해보겠으나 애초에 그다지 기병을 운영한적도 없는 일본을 예로 드셔서 그다지 신빙성은 안드네요

일본 이외의 기병을 실제로 많이 다루던 나라들의 역사적 사료와 자료들은 모두 잘못된것인가보군요

주장하시는 말중 한손으로 말 고삐를 잡고 한손으로 무기를 어떻게 휘둘렀냔 글만봐도 알법합니다.

등자가 뭔지부터 검색을 해보시는게 좋을거같네요
고구려4세기무렵 만들어진 석총에서도 등자는 나옵니다...
서양에서도 7세기무렵에 등자가 등장합니다.

님이 주장하는 일본 전국시대는 15세기에서 17세기 까집니다
그떄까지 등자도 없어 고삐쥐고 무기 휘두르던 일본에서 기병운영에 대한 사료를 찾아봐서 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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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정합니다 일본에도 삼국시대에 우리나라를 통해 등자가 알려지긴 했네요. 발제자분도 아셔야 하겠네요 일본에 대해 잘아시는듯하신데 스스로의 글로 전국시대까지 일본애들이 등자도없이 한손으로 말고삐잡고 무기휘드르던 애들로 만드셨으니....
     
뭐꼬이떡밥 16-08-31 20:19
   
기마병은 적 진형을 무너뜨리는 용도라는 주장에 대부분 동의 합니다

등자가 있냐 없냐 의 문제가 아닙니다

등자 이야기는 빼죠. 등자없는 기병의 용도를 말하는게 아니니까요.

기병이 과연  창진으로 문장된 진형을 향해 진을 무너뜨리는 돌격용이 아니라면 기병의 용도가 무엇이냐?
인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런 탱크같은 용도는 아니지 않냐 라고 말하는겁니다
그리고 전국시대에 등자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Silli 16-08-31 20:22
   
뭘뻅니까 님이 주장한 글에 대한 반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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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단창이라도 전장을 달리면서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손으로 또는 삼국지처럼 두손으로 능숙하게 싸우는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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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쓴글입니다 이게 님이 등자에 대해 무지하다는 말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제가 괜한 말을 했다고 생각하세요? 등자가 별거 아닌거 같으세요???

등자가 없으면 님이 아는 기마 궁술도 불가능하고 기마 위에서 님이 쓴글처럼 무기를 휘드르는것 조차도 힘듭니다 등자를 모르고선 기마에 대해 말하는거자체가 힘들다구요

기병에 대해 말씀하시기 전에 기병을 운용했던 나라들의 기록이라도 보고 어떻게 다루었는지 스스로부터 알아보고 글을 쓰시는게 어떨까합니다

기병자체에 관심이 없던 일본을 예로 드시는것부터 기가 찬겁니다 전
               
뭐꼬이떡밥 16-08-31 20:38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등자 이야기 안하면 등자에 대해 무지한 겁니까 ?
ㅎㅎㅎㅎ
                    
Silli 16-08-31 20:40
   
이야기를 안한게 아니라 등자에 대해 몰랐잖습니까??? 아는사람이 저런말을 할수있어요?참..
                         
뭐꼬이떡밥 16-08-31 20:48
   
뭐가 무지했다는거죠?
무리가 있지 싶다는게요?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등자가 있다 하더라도 적을 찌를시 창의 충격과 창과 창끼리 부딧치는 충격을 쉽게 이겨낼수 없다는 이야기에요
그리고 마상에서 무거운 창을 전력으로 휘두루기가 쉽지 않다는 거에요

특히 달리는 말에서 휘두루기가 그렇게 쉬울까요?
                         
Silli 16-08-31 20:53
   
그럼 글이나 제대로 쓰시길바랍니다 괜히 말꼬리 물리니 트집이니 뭐니 물타기,회피일관하면서 말씀하지마시구요

변명으로 밖엔 안보입니다만 창피할테니 그만해드릴게요
          
후안무치 16-08-31 20:27
   
등자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바로 서양과 동양의 기병의 위력 천지차이에였어요.
기병의 역사는 등자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뉘거든요
발을 지지해 주는 등자가 있었기 때문에 등자가 없는 서양은 동양과 아랍 기병에 줘 터졌죠
등자가 있었기 때문에 마상에서 활을 쏘고 창을 휘두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서양에서는 척후나 뒷치기에만 이용했지 동북아에서는 기병이 지금의 탱크
역활을 했어요. 보병들 한테 중기병이 밀고 들어가면 다 팅겨나가기 때문이였죠.
자동차에 사람이 치이면 멀리 나가떨어지죠. 그거랑 똑같아요
               
뭐꼬이떡밥 16-08-31 20:40
   
제 글에 보면 창으로 적을 찌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중세 마상 시합 이야기도 나오고요..
등자 가 빠졌다고요?
마상시합때 등자 빼고 나오는 기사 있나요?
창으로 적을 찌를때 등자 없이 찌르기가 얼마나 가능 할까요?
등자도 없이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요?

등자는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 한겁니다
님말대로 등자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큰데
등자 없는 기병 이야기 해서 뭐합니까?

등자는 기본입니다
                    
Silli 16-08-31 20:46
   
저기요 님 글을 보고 등자이야기가 나왔다니까 뭘 자꾸 등자 안다고 하세요 마상전투 이야기하면서 등자 아신다는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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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단창이라도 전장을 달리면서 한손으로 고삐를 잡고 한손으로 또는 삼국지처럼 두손으로 능숙하게 싸우는건 무리가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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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은 왜쓰십니까 스스로 이중성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변명이라고 생각안하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작 삼국지의 배경이되는 위촉오 시대는 3세기로 등자가 보급됬을수도 안됬을수도 있는 애매한 시기입니다. 등자 자체는 선비족과 같은 북방계 이민족에서 중국쪽으로 보급된거라서요
                         
뭐꼬이떡밥 16-08-31 20:49
   
참 답답하네요.
뭔가 좀 생각해보 쓰세요.
이상 논쟁은 삼가합니다
그냥 트집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이상
                         
Silli 16-08-31 20:51
   
답답해하지말고 말씀을 해보시라구요 회피하시는걸로 밖에 안보입니다만 더군다나 님이 변명하는 마상전투글 바로 아래에 쓴 글입니다만 아시는분이 왜 이런글을 쓰셨냐고 묻는게 단순한 트집인가요?? 본글엔 없는 추가변명이 자꾸 늘어나지만 이해할게요 그냥 ㅎㅎ
후안무치 16-08-31 20:12
   
일본도 기병 운영은 잼병이지만 서양 또한 잼병이였죠. 그리스 로마 모두 기병은 그냥 척후나 후미 기습에만
쓰였으니까요. 기병 운영에 있어서 노하우는 동북아와 아랍쪽인데 서양은 명함도 못내밀어요. 미국 드라마 봐도 로마나 그리스병사들 기병들은 등자도 없이 나오죠.
제철기술 또한 동북아에 한참 뒤지는 서양에서는 당연히 마갑도 못만들었구요.
     
현시창 16-08-31 22:02
   
세계최초의 충격기병은 그리스의 헤타이로이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망치와 모루전술에서 망치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이 헤타이로이입니다. 3~4미터의 긴 기병창을 가지고 적진형에 직접 충격을 가하는 전술을 주로 사용하는 기병대였습니다.

이것이 중장화된 것이 카타프락트라는 우리가 흔히 하는 그 개마기병이고요. 이 카타프락트란 병종을 개발한 주체는 그리스인입니다. 페르시아인이 아니라-_-

외려 척후나 후미기습에나 쓰이던 기병을 충격기병으로 만들어낸 게 서양인데, 뭔 명함도 못 내밉니까? 그리스 헬레니즘 왕조가 문화적으론 석굴암 불상같은 영향을 주었다면, 군사적으론 중장화된 카타프락트란 개념을 전달했습니다.

그전까지 그 잘난 동북아나 중근동이나 활과 투창으로 무장한체 척후나 후미기습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흉노의 주전술이 한나라군이 활기 있고, 진형이 무너지지 않았을땐 덤비지 못하다가 지치고 진형에 틈이 있으면 그때 후미나 측면을 기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병으로 직접 충격을 가해 진형을 깨트린다는 발상은 4~5세기 이후에나 활발해지는데, 그 개념자체가 바로 그리스 헬레니즘 왕조에서 나온 겁니다.

P.S

게다가 제철기술이 한참 뒤진다는 소린 또 무슨 신박한 소립니까?
https://en.wikipedia.org/wiki/Noric_steel
이미 노릭스틸이란 강철을 대량 양산하고 있었고, 그 수준 역시 현대의 탄소강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것도 동시기 한나라 강철생산량의 17~18배에 달했고요.
          
후안무치 16-09-01 09:33
   
헤타이로면 내 기억에 안장도 없고 등자도 없던 기병으로 알고 있어요.
애네들도 측면이나 후미 기습후 빠지는 전술을 사용했어요.
팔랑크스로 적정면을 밀고 헤타이로가 측면 후면 치는거죠.
안장도 없고 등자도 없는데 보병들에게 정면으로 충격을 주는건 xx행위라 많이 무리에요
등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동서양 모두 이런 전술을 사용했어요. 물론 알렉산더 있을때도
동양도 기병운용을 했구요.그냥 팔랑크스보병이 주력이였고 진형이 너무 강력했죠.
알렉산더도 기병은 보조로 이용했어요.

근데 핵심은 안장과 등자의 빠른 도입으로 동북아와 아랍쪽이 서양 보다 더 강력하고
다양한 기병전력을 꾸렸다는게 핵심이에에요.
로마도 카탁프락토이를 운용했어요 부정하는건 아니에요.
근데 아르메니아,사산,파르티아 같은 아랍의 카탁프락토이와의 전투후에 도입했어요.
로마 또한 그전에는 경기병만 있었어요.
마케도니아나 그리스나 로마 모두 보병이 주력이였고요. 로마때에 더 기병 전력이
후퇴했었거든요. 팔랑크스대형을 로마의 기동력 좋은 짧은검으로 박살을 낸 뒤부터요
경기병들 또한 견제와 시선을 뺏어오던 보병을 의지해서 전투를 했는데
보병이 빠르게 박살이 나다 보니 기습에 특화된 기병들이 팔랑크스와는 달리 기동력도
좋고 중보병인 로마보병을 이길 능력이 안되었어요.
오히려 로마때 기병이 많이 쇠퇘했어요. 게다가 유럽 주변국 모두 기병을 주력으로
운영하는 민족이 없었어서 경기병 정도로만 운영해서 많이 필요도 없었구요.
그냥 방패랑 글라디우스로 찍어버리면 되었거든요. 그래서 기병이 발전이 없었어요.
물론 등자도 계속 없었구요

그러다가 로마가 아랍애들과 전쟁하면서 중기병인 카탁프락토이를 도입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숫자도 늘어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긴 하는데 오랬동안 시간적 금전적으로
어마어마하게 투자를 해야만 했어요. 노하우가 없었으니까요
이것만 봐도 등자도 없던 서양의 기병이 동양보다 뛰어났다고 하는건 많은 무리가 있어요.

게다가 노릭스틸이라면 그냥 철광석이 나오는 지역이름인데 노릭스틸 자체가 현대의
탄소강에 버금가는 상태의 철광석을 채굴 했다는건 많은 무리가 있어요.
탄소함량은 제련과정에서 인위적으로 장인이 추가 했어요.
물론 채굴지역에 따라서 질의 차가 있을 수는 있긴한데요. 채굴부터 탄소강에 버금가는
철광석이라면 파르티아 궁기병에게 학살당하는 로마군은 없었을거에요.

그리고  아랍애들은 기원전 부터  푸른벽돌을 구워내던 기술을 가지고 있었어요.
세라믹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최고였어요.
이부분에 있어서는 동북아도 한수 접어줘야 하거든요.
제철기술은 불을 다루는 기술이라 몇천도까지 자유자재로 다루는 아랍애들이 제철기술이
 떨어진다는건 말이 안되요.
세라믹기술이 뭔지도 몰랐던 유럽이 제철기술이 엄청 떨어졌다는건
당연한 부분이구요.천년 이상 제철기술이 차이가 난다고 해요
혹시 다마스쿠스 말하시는거 같은데 그것도 아랍애들 꺼에요
               
현시창 16-09-01 18:33
   
로마가 아랍하고 전쟁하다 중기병인 카타프락트를 도입한 게 아니라, 이미 셀레우시드 왕조와 붙으면서 도입하였다는게 정설입니다. 카타프락트를 만든 주체가 바로 헤타이로이를 중장화시킨 계승자 왕조니까.
G스마트SM 16-08-31 20:26
   
음..

본문내용 요약은.

기병창으로 무장한 기병의 돌격은.
상대. 기병이건 보병이건  관통시 충격의 반동이 상당하기에. 기병교전시..기창교전에는 적합한 전투법이 아니다?
라로 정리.혹은 이해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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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asengi.com/data/cheditor4/1608/d5e9abcf931c95f5ef4af9f96e452416_6B4Rb6hozt4C.jpg]
이런식의 보조장치를 적용시킨다면. 무기의 분실이나. 충격량 감소에 도움이 될듯 싶기도 한데..;;

한. 십년전 어느 인터넷 커뮤니트 사이트에서 다룬적이 있던 주제이기도 해서. 새록새록 옛추억 같아. 재미있네요.

당시에도.  기병의 중량( 기수+군마+갑옷 등 무장) 돌격시. 말의 속력.충격에너지 등등 뭔가 다양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논했던..
     
Silli 16-08-31 20:29
   
판타지가 아닌 각종 역사사료에서도 있는 전술이 없던 사실은 아니겠지요
애초에 기병용 무기가 필요조차 업었다면 무장을 쥐어줄 의미도 없지요 xx용으로 창이나 삭을 쥐어주었을까요
진실게임 16-08-31 20:28
   
그래서 결국 나온게 한 쪽이 길죽한 삼절곤 같은 편곤이죠. 조선 기병이 결국 사용하게 된...

있는 힘껏 두들겨 패면 말의 돌진력에 더해서 상대는 박살나지만 기병의 팔은 별 반동을 안받는 엄청난 신무기...
     
Silli 16-08-31 20:32
   
하지만 임진왜란후 후기에 등장해 그 위력에도 많은 실적은 못냈던..
Silli 16-08-31 20:40
   
http://blog.naver.com/kyk70000/70022638000
청나라 팔기군에 대한 짧은 블로그글입니다.

윗글에 나오는 팔기군의 갑주가 멀리서 활만쏘고 꺠작꺠작 기습만 하던 기마의 갑주같은가요??
아니면 일본 요로이 마냥 화려하지도 않고 푹신해보여서 방어도가 약해보세요??

그렇다고 한다면 더이상 말 나눌 의미도 없을거같구요....조선 두정갑과 맥락을 같이하는 갑주를 몰라보는거니까요

http://blog.naver.com/stan93/220348072911

그렇게 기마의 유용성이 의심갈정도인데 조선은 미쳐서 보기 비율이 1대1이였군요
4leaf 16-08-31 21:26
   
아무리 기마병도 보병이 대놓고 방진을 펼치고 있는 곳으로 돌파 못합니다. 그게 가능했으면 보병과 기병을 함께 쓰지 않고 기병만 잔뜩 양성했겠죠.
일경 16-08-31 22:52
   
기병은 활용이 매우 다양한 병종입니다.

돌진도 가능하고 원거리에서 화살을 쏠 수도 있고 적의 배후를 빠르게 돌아 찌를 수도 있죠. 그리고 근거리에선 속도를 이용해 보병을 묵사발 만들죠.

기병의 주 무기를 창으로만 생각하시는데, 조선 중후기 이후 청때부터 동아시에 기병의 주력 무기는 도리깨 입니다. 창이 아니죠.

거기에 조선시대 기병 1기의 무장을 검색만 해봐도 얼마나 많은 무기를 몸에 지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거의 모든 상황에 따라 무기를 사용 할 수 있게 다양하게 들고 다니죠.

즉, 그만큼 기병은 다양한 목적으로 쓰였다는겁니다.

그리고 후퇴하는 적을 추격하여 다시 재 정비를 못 할 정도의 피해를 주는것도 기병의 몫입니다.
     
Silli 16-08-31 22:59
   
동아시아 기병의 주력무기가 도리꺠라고 누가 그랬어요?? 참고자료가 있나요??

왜란이후 조선 후기에 유독 조선만 도리깨를 주력기병 병기로 사용했다고 알고있는데요 청이나 기타 동아시아 기병들의 주력병기가 도리꺠였다는 자료가 있나요??

시비는 아니고 주장에 의문이 들어여쭙니다
맨프레드 16-08-31 23:28
   
아주 오래전에 역사스페셜에서 다룬 고구려편에서 고구려 병종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병들이야기 하던게

살짝떠오르는대..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적의 진영에 그대로 가져다 꼴아 박아서 유유히 빠져나오는 그런방식이

아니라 경기병.. 즉 기마궁수 들이 상대보병대열을 빙빙 돌면 공격해서 1차로 대열을 무너뜨리고

그 균열이 생긴곳에 중기병들이 긴창을 들고 돌격을 해서 균열을 벌려놓고

바로 짧은 검이나 도끼로 무장한 보병이 그 틈사이로 스며들어가는

전술이 고구려군이 회전에서 주로 사용하던 전술 이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저 역시도 차징은 처음 외엔 못햇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뒷바침 해줄것 같은 유물이 고구려 찰갑기병갑옷 이 발굴된것을 보면

신발부분이 축구화 스파이크 박혀있듯이 뾰족한 못들이 박혀있는 것으로 봐서는

차징후 난전 상황에서 부무장인 검을 휘두르거나 가까이 붙은 적은

발로 내려 찍었을것 같네요..
마왕등극 16-09-01 00:30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건 북방 기마민족을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총이 나오기 전까진 기마병이 가장 무서운 병과죠.

그런 북방 기마 민족이 말에다 마갑 입혀서 쳐들어왔냐? 하면 그도 아니죠. 그냥 말 타고 쳐들어온 것 뿐.

중국을 통일할 정도면 진시황도 나름 전략가고 당시 궁병, 창병, 보병 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방에 장성을 쌓은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진시황 사후에 북방 기마 민족의 왕이 진시황의 황후에게 '나도 외롭고 그대도 외로우니 우리 함께 사는게 어떤가.' 라는 문서를 보내고 이에 황후는 '제가 늙어서 먼 길을 가지 못하니 공물과 젊은 공녀들을 대신 바칩니다.'라며 답신과 공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중국이 1월 한달을 놀았던데도 북방 기마 민족의 침입이 이유였습니다. 그 때가 한겨울 식량 사정이 난감한 때라 북방 기마 민족이 침입이 잦았기 때문.

그리고 어느 병과도 기마병의 기동력을 감당하지 못하죠. 평원에서라면 질질 끌고만 다녀도 진을 다 뺀 상태로 기습할 수 있죠.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