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어떤 식견있는 분의 글을 올립니다.
1.국제문제 처리와 관련한 미국의 역사적 경험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과는 상이한 역사적 경험을 했는데... 물론 나라와 환경이 다르니 당연한 얘기지만... 그 중에 하나가 강대국 미국의 탄생과정에서 또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국제사회 형성과정에서 자국문제 때문에 국제사회의 결정적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미국의 외교행태를 이해하는데, 지극히 중대한 시사점이 됩니다.
예컨대, 유럽은 히틀러와 뭇솔리니의 광기를 경험한 이래, 국가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국제사회의 여론이나 국제법에 의해 주권국가의 국가의사를 제약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과 그 정당성에 관해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걸 받아들입니다.
아시아 국가는 근세 이후 서방 주도의 세계체제 아래에서 국제규범이나 국제기준을 수용하기에 바빳으니까, 또 일본의 패망과 관련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의 요구를 수용하는걸 어떤면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관성이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죠). 지금은 좀 다르지만... 하여간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을 거스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미국을 보세요. 미국은 그런 역사적 경험도 없고, 또 그런 것들에 관한 역사적 인식도 부족합니다(역사적 인식의 결핍문제는 미국의 단점이자, 미국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고려해야 될 점이고, 미국의 오만함은 이런 곳에서 연유하는 바가 크죠). 왜냐면 세계 제1차 대전 이후, 세계사의 중대 고비때마다 미국은 그 해결사였기 때문에 그런 필요를 느낄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군국주의 일본이 아시아에서 깡패짓을 하고 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유명한 '저지연설(쿼런타인 스피치)'을 통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무법사태를 (미국이) "저지"(quarantine)시켜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에서 세계의 운명을 결정한 두개의 전쟁을 수행하게 되죠. 그리고 냉전이 종식될때까지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의 지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전후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소련과 세계를 분할했습니다(얄타회담). 뿐만 아니라 세계문제 협의체로서 유엔의 창설을 주도했죠. 모두 미국의 필요/국익을 위해서 였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각종 협상이나, 국제협약이나 국제기구, 국제법 등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활용되는 것이지,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의사의 상위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그것들 때문에 자율적인 국가의사 결정에 제약받지 않겠다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그럴 이유/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미국은 옳았고, 미국은 세계를 위해서 유익한 행동을 해왔고, 따라서 미국적 가치의 확산이 세계를 위해 좋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겁니다. 또 미국은 그만한 힘(경제력/군사력/과학기술력 등등)을 가졌다는 겁니다. "우리가 뭐 아쉬운게 있나?" 베트남/이란 등에서 약간의 시련은 있었으되 좌절은 없었다... 뭐 이런...식이죠.
툭하면 국제협약을 무시하고(ABM조약의 일방적 탈퇴, 기후협약 인준거부 등), 국제문제에 미국 국내법을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자유무역을 주창하면서도 도깨비 망방이처럼 돌리는 수퍼301조 발동, 과거 GATT에 대한 보수파의 공격, 현재 WTO에 대한 보수파의 불만, 심지어 국제연합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파 국회의원들도 있습니다. 사사건건 미국의 발목이나 잡고 늘어지는 이상한 국제기구라는 거죠. 이른바 고립주의입니다. 다시말해 우리 미국말 안들을꺼면 니네끼리 잘해보라는 식에 다름 아니죠. 대신 미국한테도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 "다른 나라의 문제에 개입하지 마라"는 조지 워싱턴의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의 국가의사가 침해되지 않고, 또 미국의 국익이 보장될 때 개입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경우에만 다자주의나 국제협약 등이 활용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런 미국이 자신이 설정해본 적도 없는 기준에 구애되어, 불량국가/테러국가/21세기 앵벌이국가(미국 외교관의 말)인 북한과 1:1로 마주앉아서, 그것도 핵을 비롯한 대량파괴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협박하는 북한에게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해주는 조약체결에 관한 협상을 하고, 나아가 경제지원까지 보장해준다는 외교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리고 이성을 가진 국가가 존엄을 유지하면서 국제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군사력 동원을 생각하는 것은 국제정치에서 지극히 상식에 속합니다(물론 요즘 세상은 전쟁이 옛날만큼 흔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그것도 포기하라... 이걸 미국이 왜 받아들입니까? 미국은 이걸 협박으로 받아들일텐데... 미국의 외교 전통상/역사적 경험상 이런 협박에 굴복하겠습니까?
김정일 체제보다 더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정신병자들인 히틀러 나치집단과 일본 군군주의자들을 싸그리 소탕했던게 미국입니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지만 미국은 끄떡도 하지 않았죠. 자기말 안듣는 경우(즉,미국의 국익에 충돌하는 경우), 또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형제국가도 버리는게 미국입니다. 영국이 제국으로서 몰락을 공인받게 된 역사적 사건이 수에즈운하 위기인데, 그때 미국이 영국한테 어떻게 했는가요? 솔직히 영국과 미국간이 아니었다면 전쟁났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