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자위권'을 향한 일본의 갈망이 점차 현실화하면서 동북아 안보지형이 요동칠 조짐이다. 재무장의 족쇄가 느슨해질 일본과 이를 적극 지원하는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에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며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이에 전통적인 한ㆍ미ㆍ일 안보협력과 한중간 밀월관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한국은 사뭇 곤혹스런 처지다.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의 몰염치와 중일간 영토분쟁, 미사일방어(MD) 체제, 미중간 힘겨루기로 가뜩이나 역내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까지 겹치면서 역내 안보구도가 한층 복잡해지는 양상이다.재무장 병뚜껑 열리나평화헌법과 미일동맹은 일본의 재무장을 억누르는 '병뚜껑' 역할을 해왔다. 보통국가를 지향하는 일본 내 여론이 부글부글 끓어도 두 개의 안전판 덕분에 일본의 군사적 확장을 통제할 수 있었다. 유엔헌장 51조는 무력공격 발생 시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의 고유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평화헌법에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9조)'고 명시해 타국에 대한 공격을 금지하고 자위대 역할을 일본 열도 방어에 한정했다. 이 같은 전수방위 원칙을 지키고자 부족한 군사력은 미국이 메웠다. 병력을 일본에 주둔시키고 일본이 공격 당할 경우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했다. 상호방위조약인 한미동맹과 달리 미일 동맹은 미국만 개입이 가능한 비가역적 형태의 군사동맹인 셈이다.집단적 자위권은 이와 반대로 유사시 일본이 미국을 도우려는 것이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2차 대전 이후 단단하게 닫혀있던 병뚜껑에 틈이 벌어지고 있다. 평화헌법은 일본 정부가 헌법해석 변경을 추진하면서 위기에 빠졌고, 미일동맹은 지난 3일 양국의 외교ㆍ국방(2+2)장관회의에서 보듯 미국이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한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환영하고 나서면서 상호적 관계로 성격이 바뀔 참이다.비록 미국이 '미일동맹의 범위 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재정부담을 줄이려는 미국과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주변국이 제동을 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호주 영국 등 우방국들도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있어 여론마저 일본에 호의적이다.한미일 안보협력의 딜레마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 갖는 이중성 때문이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반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확대되면 동북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한국의 입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정부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면 유사시 전력 운용의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가령, 주일미군기지에서 한반도에 투입하는 미군 함정을 자위대가 호위하면 그 만큼 미군 전력에 여유가 생긴다. 북한의 해상 위협에는 세계 최고수준인 일본의 기뢰제거 능력이 동원될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미군이 한반도에서 공격 당해도 우리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자위대는 우리 영토에 진입할 수 없다"고 밝혔다.하지만 자위대가 일본을 벗어나 적을 공격하는 자체로도 상당한 위협이다. 특히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고 과거사 문제로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에 따라 공격 무기를 사들이고 미국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중국과 맞붙을 수도 있다"며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시켜 한국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전망했다.한중ㆍ남북관계도 삐걱댈 듯집단적 자위권은 중일간 충돌을 격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개연성이 높다. 일본의 발언권과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면 중국이 감내하기 어렵다. 중국은 해ㆍ공군력에서 일본에 열세인데다 미국 주도의 MD 체제에 한국도 물밑에서 참여 움직임을 보이면서 갈수록 조바심이 커지는 분위기다. 자연히 한중관계에도 악재다. 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중 모두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불만이지만 그렇다고 양국이 군사협력을 강화해 일본에 맞대응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미일과 중국간 대립구도에 우리가 말려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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