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전차수송차량의 규모였음.
당시 이라크군은 서독에서 도입한 HZ 40/56 전차 수송차량 3,000여 대를 보유했으나 미 육군은 예비차량과 훈련용을 모두 합해봐야 750대에 불과했고, 500km가 넘는 사막 지대를 미 육군 기갑부대가 주파하라는 건 미친 행위였음.
중량이 60톤이 넘는 M1A1 전차들이 주 도로로 달려버리면 집결지로 이동할 귀중한 이동로가 파손되어 버리고, 그렇다고 사막지대를 가로질러 500km 이상 달리면 전차들이 얼마나 고장을 낼 지 알 수가 없었음.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이 전차수송차량을 충분히 보유하여 전차와 승무원들이 쌩쌩한 상태에서 전투를 준비한 반면, 아랍 주요 국가들의 전차들은 그대로 사막을 가로지른 덕에 전체 보유 전차의 절반 정도만 전장에 제대로 도착했고 그나마도 모래먼지에 엔진 고장을 일으키는 차량이 많았고, 무한궤도 마모도 심각했다고.
무엇보다도 사막의 열기에 전차병들이 지칠 대로 지쳐서 제 역량을 다하지 못했는데 미 육군도 자칫하다가는 3차 중동전쟁 당시 아랍군 마냥 전차와 승무원들이 전투를 하기도 전에 퍼져버리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었음.
미 제7군단이 사우디에 도착할 무렵, 가용 전차 수송차는 육군에 112대, 해병대에 34대 뿐이었으며 이들이 감당해야 할 7군단 소속 기갑 장비는 M1A1 이외에도 M60 패튼, M728 공병전차, M88A1 구난전차 등 총 2,068대에 달함.
급하게 미 중부군은 이들을 수송하기 위해 전 세계의 모든 군과 기업체들에게서 수송차량을 긁어모았으며 얘네도 참 대단한게, 미 육군이 페르시아만으로 보낼 수 있었던 전차수송차는 497대에 불과했으나 최종적으로 1,310대의 전차수송차량과 2,200대의 플랫배드 트레일러를 확보함.
플랫배드 트레일러는 중량 10톤급의 차량들, 즉 M113 APC나 험비 같은 것들을 수송할 차량이었고, 이들을 운용할 운전수 2,000명을 한국, 인도, 터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이집트 등에서 데려와서 급한 불은 끔.
근데 또 문제가 있었는데, 미 육군 제식 M911 전차수송차량이 전혀 M1 계열 전차 수송에 적합하지 못했음. M1A1 전차를 실어버리면 총 중량이 100톤을 넘어서 적재 중량 초과로 차량이 달리질 못했고, 결국 장비 일부를 제거해 무게를 줄여야했다고.
그나마도 전차를 적재한 상태에서 시속 23km의 속력 밖에 내지 못했고, 다른 차량들을 알아봤으나 민간회사의 전차수송차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M1 계열 전차를 실으면 민간 수송차량들은 달리기는 커녕 타이어가 터져버림.
결국 집결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고 사막의 폭풍 작전이 1991년 1월 17일에 시작되었으나 제1기갑사단과 제1보병사단은 1월 28일이 되어서야 수송이 끝났고 영국군 제1기갑사단은 1월 31일에, 그나마도 3기갑사단은 2월 첫 주가 지나도록 집결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킴.
보급/수송 문제는 정말로 큰 문제인데 미군이 전차수송차량 문제로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모양임. 미군이 걸프전을 쉽게 이긴 줄 알겠지만 실제로는 진짜 준비도 엄청하고 실수나 이러한 문제도 많았다고 함. 신속하게 끝난 전쟁이지만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고.
출처
걸프전 대전차전, 카와츠 유키히데 142p~145p
[출처] 작성자 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