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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2 16:13
[잡담] 작전권이 언제 넘겨젔는지도 모름서
 글쓴이 : 바토
조회 : 1,452  

토론을 하고 있네요
그리고 누구한테 넘겨젔는지도 모름서 ㅋㅋ
아놔!

3군단?  ㅋㅋ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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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케스트 17-05-02 16:40
   
이승만이 떠넘긴거 아닌가?
     
보보스 17-05-02 16:53
   
시초는 이승만의 편지한장으로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한국군 지휘권을 넘겨줬어요...
     
DakkaDakka 17-05-02 17:12
   
아니 당시를 생각해야죠
이승만을 욕하기전에 독립한지 5년 된국가가 뭘할수 있겠음??
북한하고 중국에는 적어도 2차대전 국공내전에 참여한 배테랑들이라도 많았지
우리나라는 기껏해야 일본의 답없는 전술을 배운 일본 사관 군인 출신 하고
인제 새롭게 봅은 신병 사관들로 이루어 져있는 상태에서 뭘더 우리나라에서 뭘 하겠음??
          
진격 17-05-02 17:50
   
그 5년밖에 안된나라가 툭하면 북침 노래를 불러
미국이 전쟁물자 뺀거 유명한데요 진짜 북침할까봐
없습니다 17-05-02 16:56
   
3군단은 형식상이나마 발휘하던 작전권을 박탈당한시기를 말하는 거죠.
0천0 17-05-02 17:01
   
한국전쟁때 모사단인지 군단인지 삽질하는 바람에 한국군+연합군이 전멸수준까지  가는 바람에
미군이 빡쳐서 전시통제권 가져간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RoadRunner 17-05-02 17:22
   
님 말이 맞는걸로 알고 있어요 , 전작권 있음 단독으로 못한다고 하는데 그때 상황에서도 단독으로
북진했었죠 .
     
4leaf 17-05-02 17:29
   
제가 알기로는 한국전쟁시인 50년 7월에 한국군의 작전권이 유엔군 사령부로 이전 되었고 74년 설치된 한미연합사가 유엔군의 작전권을 이양받았습니다. 이후 작전권이 평시와 전시로 나뉘어지면서 평시 작전권을 한국군이 단독으로 행사중이죠.

3군단이야기는 그 이후 한국군이 미군의 예하제대로 소속되는 계기로 알고 있습니다.

3군단 이야기는 워낙 개소리들도 많아서 저도 잘못알고 있을수 있어요.
          
RoadRunner 17-05-02 17:37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507882.html

3군단 이야기가 기사로 있어 링크 남깁니다. 전투중 부하들 버리고 연락기 타고 도망간 장군이야기.
               
4leaf 17-05-02 17:57
   
저도 이 이야기 저도 봐서 압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요. 이때는 이미 작전권이 한국군에 없는 상황인데 무슨 작전권이 없어지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그래서 뒤 결과가 이상하단 말입니다.

한국군 작전권은 유엔군 사령부에 50년 7월에 넘어갔고 3군단의 현리전투는 51년 5월의 일입니다.
                    
RoadRunner 17-05-02 18:21
   
그러네요 확인해보니 날자가 안맞네요 .
                    
RoadRunner 17-05-02 18:33
   
더 찻아보니 패한후 한국 장군들에게 지휘를 못하게 하고 미국 장성들에게 일임한 모양입니다. 아마 이부분이 와전이 되어버린거 같네요. 지휘권이 한국장성에서 미국장성으로 바뀐것을 작전권을 뺏겼다고 표현해서 전시작전통제권과 혼돈이 온거 같네요.
               
관심병자 17-05-02 18:13
   
현리 전투 참패는
 
미 10군단장의 무능과
국군 육본의 안일한 일처리
연합군 지휘권의 분리
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재흥은 군단장으로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순없지만,
오마치 고개지역에 대해 작전권을 가진 미10군단장에게 방어해 줄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육군본부에 지속적으로 보고하며 문제 삼았습니다.

고립된 현리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사단장들과 회의를 거친후 반격을 해서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는 작전지시를 내린후 다시 비행기를 타고 후방 군단 사령부로 돌아온겁니다.
하지만 반격 작전에 투입되기로 했던 대대가 작전을 수행하지 않고 그냥 후퇴했으며 이에 전체적으로 포위된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산되서 후퇴하며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 국군 3군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해체됐으며,
UN군 전체가 적의 돌출부를 방어하기 위해 전선전체가 후퇴하게 됩니다.
연합군 사령관은 국군의 지휘권을 뺐고,
국군 사단들은 모두 미군 군단에 배속되게 됩니다.
전쟁 도중이었지만 국군사단들은 순차적으로 후방으로 빼서 미군에게 다시 훈련을 받고, 재무장 되게 됩니다.
                    
RoadRunner 17-05-02 18:39
   
다른 기록에는 회의에 참석 안한걸로 나오네요.
                         
관심병자 17-05-02 18:45
   
군단 사령부는 최전방에 위치하지 않습니다.
즉, 원래 대로라면 군단장은 포위된 전선에 없었어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군단장이 위험을 무릅쓰고 포위된 전선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않고 다시 돌아왔다는게 말이 안되는 일이죠.
                         
RoadRunner 17-05-02 18:52
   
https://ko.wikipedia.org/wiki/%ED%98%84%EB%A6%AC_%EC%A0%84%ED%88%AC

여기 기록상 보면  백선엽 장군의 저서 《밴 플리트 장군과 한국군》 136쪽에는 "이 때 유재흥은 작전회의에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라도 나옵니다. 물론 책이 없어서 확인은 불가능 하네요 .
                         
바람노래방 17-05-02 19:04
   
유재홍 장군은 국군의 3대 패전에 모두 관련되어 있죠.
임란시절 원균보다 더 한 장군이라 보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장군을 문서상에 적당히 마사지 해줬다고 보입니다.
                         
관심병자 17-05-02 19:23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07/2015090703266.html

마찬가지로 백선엽 장군이 현리 전투를 평가한 분석입니다.

6.25 전쟁당시 한국군에는 일반병의 훈련도 최악수준 이었지만,
대규모 병력을 지휘해본 지휘관 역시 극소수 였습니다.
명장이라는 백선엽도 전쟁을 겪으며 빨리 배워서 성장한 인물입니다.
김석원 같이 일제 전쟁영웅 출신 장성도 있었지만, 이 분은 기본적으로 미군과 사이가 나빠서 전세가 회복된 이후에는 지휘를 할수 없게 되었죠.

당시 국군 지휘관중
독립군 출신 지휘관들은 대규모 전투를 지휘해본 경험이 부족했고,
일본군 출신 지휘관들은 미군 군사고문과의 관계 정립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만주군 출신 지휘관들은 만주군에서 일본군 군사고문과 지낸 경험으로 미군 군사고문과의 관계도 잘정리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주군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거죠.
                         
RoadRunner 17-05-02 19:37
   
잘 읽었습니다. 현리전투를 보는 시각이 다양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