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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14 07:04
[밀리터리 역사] 청룡 제2여단 7중대장 "김 기 태"
 글쓴이 : shonny
조회 : 1,937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0/005000000200004182208077.html
[베트남인학살] 베트남전 참전 중대장의 '고백'

[베트남인학살]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

[베트남인학살] 김기태씨, '정부 차원 보상 필요'

진실은??



 

<사진: 2000년4월19일 수요일 한겨레신문 기사내용> 


 증언내용 ▣


질문1 : 베트남에 파월 되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답변1 


본인은 1955년 서울 한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군사관학교 제14기생으로

입교하였다. 1960년 해병소위로 임관한 후, 1966년 9월 월남전 참전명령을 받고,

1967년 11월까지 월남전쟁에서 전투 중대장 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귀국하였다.

이후 1982년까지 약 27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하였다.

전역 후에는 금속비소 생산공장 및 대기공해방지시설 설비공장 등을 운영하다가

IMF 등으로 경제여건이 여의치 않아 1999년 사업체를 정리하고 집에서 소일하고 있다.



질문2 : 한겨레21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 경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답변2


금년 2000년 2월 중순경 한겨레21(주간지) 황기자라고 하면서 

월남전에 대하여 듣고 싶은 게 있다고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응했다. 

그런데 질문의 내용이 '양민학살'에 초점을 맞추어 질문을 하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는 설명으로 월남전의 특수성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내용은 VC(베트콩)은 양민복장으로 게릴라전을 수행해 

베트콩과 양민을 완벽하게 식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과,

특수상황인 게릴라전에 대하여 일반적인 상황을 설명하여 주었다.


본인의 설명에 이어서 황기자가 본인 중대가 작전한 과정을 질문하기에 

일반적인 상황 외에 부분적으로 부연하여 설명한 것은 있었다.

그러나 한겨레21(2000. 4 27) 제305호와 한겨레신문 2000년 4월 19일자 1면 톱과

3면에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 [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라는 제하의 제목으로 게재된 보도 내용은

본인의 진술과는 터무니없이 다르게 왜곡된 내용이다.

이 같은 왜곡된 보도는 당시에 참전하였던 해병청룡부대 2대대 7중대 장병이

월남에 파병되어 양민만을 학살하는 살인극을 벌인 부대로 매도된 것은

너무나 허망하고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본인은 언론 중재위원회에 "시정 반론 보도"를 요구하는 중재를 신청하였다.


질문3 : 귀하의 요구에 대한 언론 중재위원회의 조치는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또한 한겨레의 보도에 따라 귀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답변3


언론 중재위원회는 본인의 요청을 받아 한겨레신문에 정정 보도를 내도록 하였다.



<사진: 한겨레신문의 정정보도 5월24일>
그러나 보도내용이 너무 작아 효과는 별로 없었다.

한겨레의 보도로 인해 본인이 받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본인의 정신적 충격 피해는 물론이고,

본인의 명예와 가문의 명예가 멸실 되었다.

또한 당시 국위선양을 위해 참전하였던

30만 전우들의 명예와, 

월남전에서 산화한 5,000여명의 유족과,

불구의 몸이 되어 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전상이 용사들의 명예,

그리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신체의 부자유한 몸이 된 전우들과 그 가족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아울러 불굴불멸의 해병대의 명예가 훼손되었다.


뿐만 아니라 본인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파문이 되어 엄청난 저항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해외 여행의 신변위협까지 받을 정도의 파문이 이루어진

피해를 받고 있는 현실이다.


질문4 : 왜곡 보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4


한겨레신문 및 한겨레21은 지난 4월 19일자 1면과 3면 그리고 한겨레21 제305호

(2000. 4 27)에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

"66년 11월 작전때 무차별 사살... 상부엔 보고 안해"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베트남 참전 중대장의 '고백' 작전중

세 차례 민간인 학살, 마을 주민 40∼50명 사살도... 닥치는 데로 총 쏘고, 불태우고...

밥 먹던 노인, 젖먹이도 피범벅" 등의 제하의 기사에서 양민학살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한 바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본인 김기태와 해병청룡부대 제2대대 7중대 장병은 양민을 학살한 사실이 없다.

다만 작전수행 중 양민과 베트콩이 혼재된 상태에서 

양민 사이에 낀 베트콩들의 저격과 저항, 그리고 도주가 반복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그들 베트콩을 추격 섬멸하기 위한 작전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다소의 민간인의 피해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고의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은 없었다.

한겨레 측에서 양민학살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에 불과한

사실과 다른왜곡된 보도이다. 한겨레신문(2000년 4월 19일) 1면 톱기사 제목의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사실"이라고 보도하였다.


질문5 :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부분도 언급이 있었습니까?


답변5


민간인 학살이란 있을 수 없는 사실로써, 본인이 시인하거나 언급한 사실이 없었음에도

있었던 사실인양 허위왜곡으로 보도되었다.

뿐만 아니라 동지면 제목에 "참전 중대장 최초 증언" 이라고 보도하였다.

이 같은 보도내용은 본인이 한겨레신문에 위와 같이 추상적인 진술을 한바 없었음에도

보도의 내용이 진실인 양 호도 하는 제목으로 일관한 사실과 다른 허위 왜곡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동지면 소제목에

"66년 11월 작전때 무차별 사살...상부엔 보고 안해"라고 보도하였다.

위와 같이 무차별 사살한 사실도 없었거니와 상부에 보고 안한 사실도 없었는데,

한겨레신문은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고 무슨 근거로 위와 같이

사실과 다르게 허위 왜곡 보도하였는가? 오히려 본인이 반문하고 싶다.


질문6 : 베트남 비무장 청년 29명을 학살하였다는 내용의 보도는 어떻습니까?


답변6


한겨레신문 동지면 10열에 "지난 66년 11월 14일 베트남 중부지역 쿠아옹아이

선틴현 지역에서 베트콩 탐색 및 소탕 작전을 수행하던 중 20∼35살 정도의

비무장 청년 29명을 후송과정에서 폭탄 구덩이에 넣고 모두 사살했다"고 증언했다는

보도를 했다. 본인이 본 지면을 통하여 한겨레신문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시에 본인이 지휘하는 7중대는 아군에게 산 위의 바위틈이나 나무 꼭대기에서

집중사격으로 저격을 가해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산악 동굴에 은신하고 있던 자들을 동굴 수색에서 색출 검거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월맹군 통치지역으로부터 안전지역으로 후송하고 있었다.

이때 인접 4∼5km 떨어진 곳에서 이동 중인 아군 6중대가 월맹정규군 매복대에게

기습을 받아 중대장을 비롯한 많은 전우가 전사 내지 전상을 받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6중대를 구출하라는 긴급 작전지시를 받았다.

이때 귀하라면 어떻게 상황처리를 할 수 있었겠는가 반문하고 싶다.


헬리콥터 지원은 최소 30분에서 1시간이다. 또한 그 지역은 월맹군 통치하의

중요지역(호지민의 고향)이며, 월맹군 또는 베트콩과 계속접전을 하는 교전지역으로서

감시병 몇 명만을 남겨두고는 6중대 구출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귀하라면 어떻게 상황을 처리할 수 있었겠는가?

귀하의 현명한 해답이 있어야 될 것으로 본다.


질문7 : 한겨레신문은 "용안 작전"중에 이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보도했는데...


답변7


한겨레신문 동지면 16열에 "김씨는 '이 사건으로 66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선틴현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진 베트콩 소탕작전(일명 용안작전) 과정에서 일어났다'며

'같은 달 10일 민간인 촌락에 진입하던 중 경미한 사격이 날아오자 그곳에 살던

'부녀자와 노인들 수십 명을 사살하고 가옥을 모두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하였다.위 보도에서 부녀자와 노인들을 사살하였다고 하는데,

부녀자나 노인들을 사살한 사실은 없고, 다만 민간인 피해가 다소 있었음을

한겨레21에 언급한 바 있었던 것을 한겨레신문은 이를 인용하여

사실과 다르게 허위 날조 보도하였다.

또한 가옥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하였는데, 이 또한 허위 날조된 조작 보도이다.

공격작전 중 가열된 실탄이 초가에 박혀 불이 난 경우는 있어도,

고의로 불을 지른 적은 단 한 건도 없었음을 밝혀 두는 바이다.


질문8 : 한 마을의 주민 40∼50명을 모아 놓고 집단학살 하였다는 기사는?


답변8

한겨레신문 동지면 28열에 

"김씨는 또 한마을에서 40∼50명 정도의 주민을 모아 놓아다가 모두 집단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며 '당시 나는 중대원들에게 살려 주라'고 명령했으나

뒤에 남아 있던 부대원들이 이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밝혔다"는 보도를 하였다.

위 보도에서 40∼50명 정도의 주민을 모아 놓았다가 집단 사살한 사건도 있었다고

보도하였다. 위의 보도와 같이 집단 사살하였다는 보도는 터무니없는 날조된 보도다.

또한 중대원 들에게 살려주라고 명령했으나 뒤에 남아 있던 부대원들이

이 지시를 듣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위와 같이 언급한 사실이 없다.

지나치게 왜곡된 허위 보도다.

중대장은 베트콩을 추격하는 전방 소대를 무전으로 지휘하고, 상부에 상황보고하고,

인접 중대와 밀접한 협조 교신하기도 바쁘다.

만일 뒤에서 불시에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산발적으로 일정한 도주로가 없이

도주하는 베트콩 또는 그 용의자를 일차 부르고,

그래도 도주하면은 갈겨버리는 경우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한겨레신문은

"김씨는 이런 살상 내용을 상부에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너무도 터무니없는 상식에도 없는 보도다. 어떻게 접전중인 전투상황에서 중대장이

시시각각으로 발생하는 상황보고를 하지 않는단 말인가?

오히려 반문하고 싶은 허황된 보도가 아닐 수 없다.


질문9 : "질문6"의 베트남 청년 29명을 사살한 일은 있었습니까?


답변9


한겨레심문 동지면 3면 제목기사에 "청년 29명 모아놓고 수류탄 세례" 라고 보도하였다.

위 보도와 같이 29명을 사살하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전날 전투에서

우리에게 많은 피해를 준 베트콩이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설명을 수 차례 강조하였다.

그러나 한겨레신문은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설명하여 준 전제사항은

일말의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마치 29명의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것인 양

단편적인 보도로 일관한 것은 지나치게 왜곡된 보도였다.


마치 한겨레신문은 당시의 적이었던 베트콩을 옹호, 미화하는 보도로 일관하고 있음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의 언론인지 심히 의심치 않을 수 없는

사실로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질문10 : 베트남 참전중대장이 고백하였다는데...


답변10


한겨레신문 동지면 소제목으로 베트남 참전 중대장의 '고백' 이라고 보도하였다.

본인은 위 보도와 같이 고백한 사실이 전혀 없다. 다만 한겨레21이 월남전 당시

한국군이 주둔하여 작전하였던 지역의 민간인 피해 상황을 모두 사전 조사한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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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12-10-14 07:57
   
김기태 증언이 과장일수 있지만..베트남 현지에 가면 반 한국비가 서있는곳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고 적대시하는 지역도 상당수입니다.
베트남 전쟁때 양민이 심하게 당한곳이지요...

전쟁중에 불가피한 선택이라 한다면 무책임한 행동일겁니다.
베트남 한번 여행삼아서 다녀와보세요..
의외로 반한 감정 상당히 높습니다.

우리가 일본에 느꼈던 감정들..그런 느낌들이란거죠..
사과할건 사과하고 보상할건 보상하여야만 한베트남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뒈질래 12-10-14 09:15
   
그곳이 어딘가요?? 나도 베트남 몇번 놀러 갔지만 적대시하는 상당한 지역이 어디인지??

가보셨으니 지명 정도는 아시겠죠??

상당수라 함은 100 에서 6-70은 되야 쓰는말이죠?? 그럼 베트남 국민에 6-70 %는 반한 지역이라는건데

어디죠 거기가?? 왜 난 한번 도 못봤을까??
     
이크 12-10-14 09:36
   
진짜 베트남에 가보셨는지?????
베트남에서 2년간 살아본사람이 말하는데 일부 반한감정이 있기는 하지만 반한감정보다는
승전국이라는 자부심이 더강함 또 베트남 내부사정을 알면 반한감정 이런말못함 오히려 국민들은 친미쪽에 더가까워지는게 현제 베트남임 왜냐?? 미군이 철수하고 공산당에 탄압받고
죽은사람들이 더많거든요!! 또 사과할건 사과해야한다는데?? 우리나라가 정부차원에서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2번했음 그런데 베트남은 패전국이 승전국에게 사과할일은 없다고 거절했음
     
소를하라 12-10-14 14:06
   
무작정...어디서 약을팔어 니 주장이 그렇다면 증거자료라도 내보이시던가

베트남여자들이 한국으로 시집많이가서 남편한테 매맞고 그런거 때문에 안좋은 감정은 있다고 들었는데 베트남전쟁때문에 국민대다수가 증오한다는 말은 못들어 봤는데
뒈질래 12-10-14 09:20
   
하여간 한겨레 이쓰레기들 일성이 겨레 야 ㅋㅋㅋㅋ

그저 대한 민국이란 나라를 부정 하고 만 싶으니 저렇게 사기 기사를 쓰지

조중동 조중동 하지만 사실 조중동 폐해는 사회비리 정도인데

전 딴겨레 놈들이랑 경향 이란 것들에 폐해는

국가의 존망 이 걸릴정도로 심각 한거지

이거만 읽어 봐도 알수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지..

한겨레?? 아니죠 ㅋㅋ딴겨레 맞습니다 ㅋㅋㅋ
라온 12-10-14 10:39
   
무작정 / 나도 베트남에 두번 다녀왔고 현지인들과도 접촉했었지만, 반한감정 가진 사람 못봤다..
오히려 베트남은 뿌리깊은 반중감정을 가진 나라야.,,어디 선무당질을...
이넘들 군가는 대부분 짱깨 때려 잡는 노래야..

그리고 근거도 없이 한두가지 찌라시 보고는 한국군이 다른나라군보다 특별하게 잔인하거나 양민학살 한거마냥 침소봉대 하는종자들이 있는데 아주 덜떨어진 어린넘이거나 그냥 관심종자일 뿐이다.

오히려 1948년 부터 빨지산 토벌과정 중에 우리 군경에의해 발생한 양민피해가 그 규모나잔인성 면에서 훨씬 심각하다. 물론 오점없는 깔끔한 일처리가 좋겠지만, 천조국 미국도 베트남 양민학살 한국전 양민학살 깔끔하게 규명및 보상 못하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완벽히 한다는건 쉽지 않다고 본다.

비록 전쟁의 명분이야 위정자의 잘잘못에 대한 시비가 있겠지만  위 기사마냥 엉터리 소설가지고 장난치는건 애국심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던졌던 우리 아버님들에 대한 엄청난 모욕이자 커다란 죄를 짓는 점이라는 것 알았으면 한다.
헤밀 12-10-14 12:49
   
밀게에 쓰레기 2마리가 들어온모양인데...

저 위에 이지스 무용론 쓴것도 그렇고 ...

우리나라에서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사과한거 알고 있을라나 모르겠다 ㅉㅉ
나무꼭두 12-10-14 14:14
   
우리가 왜 반일 감정 가지고 있어. 아픈놈이 아픈녀석 잘 아는법이야. 학살했다고, 치부하기엔 아직 상처난곳엔 피도 멈추지 않고 있었던 시대야. 저기사는 우리가 반일감정을 가지는 이유가 그저 상처로 인해 무분별하고,
이유도 없는 화풀이로서 한국의 인간성이 이따위니까 반일 감정 가지는거지, 일본이 하등 당할이유가 없다고
기사 쓰는거와 다를바 없어.  내가 오바 떠는거 같지? 저건 지금 침략하는 한국의 인간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쩔수 없이 공격은 했으나, 시작한것은 잘못된것이기에 사과한거지.  한겨레 잘 몰랐었는데, 이놈들 이렇게 놀고 있었네.
귀환자 12-10-16 07:47
   
베트남 학살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