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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29 15:55
[밀리터리 역사] 2차 대전 사상 최대의 항공모함
 글쓴이 : 세라푸
조회 : 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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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진수된 사상 최대의 항공모함 시라노(信濃)
 
일본은 전황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항모의 필요성을 느끼고, 아마토급 전함으로 건조되던 시라노함을 변경하여 항공모함으로 건조하게 됩니다.
 
이렇게 건조된 항공모함 시라노는 길이 276미터, 배수량이 무려 7만2000톤급에 달하였습니다.
당시 미해군의 최대 항공모함인 에섹스급이 3만6380톤이었고, 일본의 신예 항모였던 히류와 소류가 2만165톤이었던을 보면 엄청난 크기의 항모였습니다.
 
시라노는 미국의 폭격에 치를 떨던 일본 해군의 요구에 의해 5인치 2연장포 16문, 25미리 기관포 125문, 28포신 다연장 대공 로켓포(총 336발의 대공로켓)의 엄청난 대공 무장과 139대의 항공기를 탑재할수 있었습니다.
 
1944년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공창)에서 건조되어 10월 4일 진수식을 가지고, 11월19일 취역하였습니다.
 
하지만 추가 의장 공사와 함내 격실의 방수 해치를 달아야 하는 추가 공사가 필요해서, 요코스카조선소보다 숙련된 기술자가 많은 구례해군조선소에 마무리 공사를 하기로 하고, 1944년 11월 28일 1시 30분 시라노는 로켓추진 xx 비행폭탄인 오카 50발과 xx용 쾌속 폭탄 보트인 신요 6척을 탑재한후 함장 아베 도시오 대좌와 수병, 300명의 조선기술자를 포함한 2148명을 태우고, 세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으며 처녀 항해에 나섰습니다..
 
요코스카 외해를 초계하던 미해군 잠수함 아처피쉬의 레이더에 시라노함대가 탐지되었습니다. 
 
아처피쉬의 함장은 조셉 포스터 엔라이트 소령이었는데, 그는 1943년 미해군 잠수함 데이스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첫출전한 작전에서 겁을 먹어 소심한 지휘로 아무런 공적도 얻지 못해 무능력자로 찍혀 잠수함장에서 해임, 좌천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무능력자로 찍히고도 잠수함장으로 복귀하는 희귀한 기회를 얻는 그는 1년 2개월만에 아처피시의 함장이 되자 명예 회복을 위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둠속에서 본 시라노의 크기때문에 항모가 아닌 초대형 유조선으로 착각하고 수상 항해로 시라노함대를 감시하면서 추적하였습니다.
 
시라노 함대의 속도가 더 빨랐지만 혹시 있을 모르는 미국 잠수함을 피해 지그재그로 기동하면서 주행하였고, 아처피쉬는 직선으로 추격하였기에 따라잡을수 있었습니다.
 
시라노 함대의 레이더도 아처피쉬를 탐지하였지만, 시라노 함대는 아처피쉬를 어선으로 오인하고 있었습니다.
 
22:00. 함대의 선두를 가던 하마카제는 전방 6,000 미터 지점 어두움 속에 마스트 2개를 가진 수상한 물체를 발견하였고 하마카제는 전속으로 달려갔습니다.
 
3,000미터의 거리에서 포격을 준비 하면서 더 접근 할 무렵, 시나노에서 발광(發光)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돌아 오라는 신호였습니다.
 
시나노의 아베 함장은 아처-피쉬 한 척이 아니라 서너 척의 미 잠수함 떼가 독일 유보트와 같이 울프 팩[이리떼]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추측했었습니다.
 
즉, 미 잠수함 한 척이 전방에서 호위함 한 척을 유인해 내면 그 틈에 다른 한 척이 침투해서 시나노에게 뇌격을 가할 가능성에 대비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물론 실제 상황을 너무 앞선 추리였었습니다.
 
22;45. 시나노는 우현 전방에 부상해 있는 미 잠수함을 발견하고 적색 발광(發光) 신호를 보냈습니다..
10초-20초-10초의 간격으로 점멸하는 이 신호를 후에 아처-피쉬의 엔라이트 함장도 보았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는 일본 호위 구축함들의 맹공격이 곧 있을 것을 예상해서 불안한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하마카제와 유키카제는 포격을 결심하고 행동에 들어갔었는데 아베 함장은 호위함들의 위치가 발각 된다고 우려해서 포격을 금지하였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아직도 서 너 척의 미 해군 잠수함이 자기 함대 주변을 맴돌면서 기회를 노린다는 우려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직 미완성인 시나노는 프로펠라 샤프트의 베어링이 불량으로 과열되면서 낮은 속도를 더 낮추어야 했고, 그 항진 속도가 추격하는 아처피쉬와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아처피쉬의 엔라이트 함장은 태평양 사령부에 긴급 타전하여 추가 잠수함을 파견해서 이 함대를 공격하자고 했지만 본부는 신속한 파견이 불가능 하다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엔라이트 함장은 이 괴물같이 큰 거함을 단독으로 해치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처피쉬가 본부에 날리는 무선은 시나노에서도 감청을 하고 있어서 촉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쫓고 쫓는 오전 03;08분, 뒤쫓던 아처 피시는 잠항했습니다. 시나노를 사거리에 잡은 것이었습니다.
 
03:30분, 아처피쉬는 어뢰 6발을 발사했습니다. 아처-피쉬의 함장 엔라이트는 거함 시나노를 침몰이 아니라 전복시키기 위해서 어뢰가 함체 상부에 명중 하는 3 미터로 항진하게 세팅했다고 말했습니다.
 
발사된 6발 중 4발이 시나노 우현 함체에 명중하였고, 대폭발이 일어나자 호위하던 구축함 한 척이 아처피쉬에게 전속력으로 돌격해왔습니다.
 
아처피쉬는 15분간 14발의 폭뢰공격을 받았습니다. 아처-피쉬는 깊숙이 잠항해서 가까스로 폭뢰 공격을 피했습니다.
 
거함 시나노는 어뢰 4발을 맞았지만 함교는 피해를 콘트롤 하면서 항해를 계속 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시나노 생존자가 어뢰 파공으로 몰려오는 물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고 말했는데, 많은 방수 해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이 이후 시나노 침몰의 가장 큰 이유였다고...)
 
시나노는 옆으로 기운 절름발이 항해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뢰에 맞아 크게 뚫린 파공으로 계속 물이 들어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시나노는 점점 우현으로 기울어져 갔습니다.
 
어뢰에 피격을 당하고도 60킬로를 간 시나노 함장 아베 대좌는 우현 반대편 기관실에 균형을 잡기 위한 해수 주입을 명령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침몰 방지를 위한 시나노 승조원들의 노력이 실패했던 것은 이들이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훈련이 거의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침 07:40. 시나노는 모든 동력을 잃고 해상에 정지하였습니다.
 
08:50. 두 척의 시나노 호위 구축함은 시나노를 견인하여 우시오 곶의 해변에 좌초 시키는 작업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척의 구축함이 합쳐 봐야 5,000톤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시나노의 거체를 견인하는 것은 무리였었고 시나노가 옆으로 기우는 것 조차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의 시도 끝에 견인은 포기되었습니다.
 
10:18. 함장 아베 대좌는 총원 퇴함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 시나노는 우현으로 30도나 기울어져 침몰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11월 29일 10:57. 시나노는 1,435명의 장병들과 함께 해저로 사라졌습니다. 일본 혼슈 최남단 와카야마 신규시 앞 해상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어뢰 4발의 피격으로 시나노 같은 거대함이 격침 된다는 것은 있기가 힘든 일입니다.
 
동급의 자매함인 전함 무사시가 17발의 폭탄과 9발의 어뢰를 맞고서야 해저로 사라졌고 야마토가 11발의 폭탄과 8발의 어뢰를 받고 격침된 것과 대조가 됩니다.
 
구조 작업이 행해졌지만 55명의 장교와 993명의 부사관, 그리고 수병과 민간인 32명을 포함해서 구조 된 인원은 총 1,080명으로 전체 승조원의 절반도 되지 않아 1,435명이 함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함장 아베 도시오 대좌는 일왕 히로히토의 어진(사진)을 하마카제로 대피시키고 자신은 몇 몇의 사관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습니다.
일본 군부는 구조자들을 몇 달간 격리 시켜 시나노의 침몰 사실을 국민들에게 숨겼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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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푸 12-09-29 16:02
   
간단하게 일본의 72000톤급 사상 최대 항공모함 취역후 개장 공사하러 첫 출항 하루도 못가서 미국 잠수함 꼴랑 한척에게 격침 끝..
qndrnrqn 12-10-01 15:55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