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세계에서도 빠르게 여군에게 군대의 문을 연 나라입니다.
남녀 평등의 차원에서 금녀의 벽을 열게 된 것인데요, 다만 우리 나라의 여군 제도는 여성 운동의 결과가 아닌 수혜적, 호혜적 개방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여군 개방은 주로 사병 차원에서부터 개방해서 차곡차곡 올라가서 하사관이 되고 장교가 되는 개척과 투쟁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사병으로 복무하면서 다른 남성 장병과 동등하거나 충분한 작전 수행 및 전투에 실효성이 있는 대원임이 증명되면 점차로 여성 병사가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그 넓어진 폭만큼 고위직도 열리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동일한 시설과 범주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기존의 군 질서에 동화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하며 기존의 군 질서 개편 없이 여성들이 군대에 적응하고 군사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여성 군을 인정하였습니다.
미군도 장교에 대한 개방은 늦었는데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로 여성군의 역량이 증명되어야 여성에게 고위직을 맡길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얼마 전 미군 특수전 학교에 최초로 여군이 수료한 장면에서 미군이 여군에 대해 어떤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더하면 더 했지 절대로 차이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군에 대한 미군의 방침인 것입니다.
일부 영화에서는 전투병으로 같은 부대에 있는 남녀 병사가 같이 샤워를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것은 원래 미국은 개인 문화로 알몸은 개인적 차원에서 남에게 보이기 싫은 금기인데 같이 운동을 한다던가 삶의 고락을 함께 하는 전우는 형제나 나름 없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샤워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남자의 몸이다, 여자의 몸이다가 아니라 전우라는 매개로 남녀 평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여군 제도는 간호 사관 및 간호 부사관 제도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여군 영역을 개방하였다가 1997년 공군 사관학교가 최초로 여 생도를 입교시킨 이래로 98년에 육군, 99년에 해군 사관학교에서도 여 생도를 모집했습니다. 이후 부사관 학교에서도 여군을 뽑기 시작했으며, 아직 사병에 대한 여군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여군 제도는 여성 스스로 여성운동을 통해 쟁취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국가가 선심을 베푸는 듯한 호혜적 차원에서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위로부터의 개방을 한 것입니다.
위로 부터의 개방은 여성들에 대한 군 적응성을 검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군에 들어오면서 여군이 배치된 부대는 시설을 신설해야 하고 부대 규율도 개편해야 하는 처지에 이릅니다.
군은 계급이 있을 뿐 성 차이는 없는 것인데 사관과 부사관부터 개방한 여군은 각 군 교육 시설에서 여군 소대나 분대를 따로 만들게 해서 교육 때부터 암묵적이 차이를 두게 되어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군이 정착된지 20년 정도가 흐르면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여군 나름의 군 적응과 군인상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위로부터의 개방이 낳은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 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사관학교 복무 규정에도 남생도는 퇴교 조치시 일반 사병으로 제복무를 해야하지만 여생도는 퇴고될 시 어떤 군사 복무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어 원천적으로 차별되고 있음을 볼 때 뭔가 모순적인 제도지 않느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공군이 1997년에 여 생도에게 학교를 연 것은 우리 나라가 IMF를 겪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사람들에게 많은 활로를 제공하고 직업적 차원에서 남녀 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본다면, 여성들은 어부지리로 군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됩니다.
이제라도 여성 사병제도를 만들고 적어도 부사관은 사병을 겪은 여성들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해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운 지점도 크겠으나 사필귀정의 철학으로 멀리 내다 보는 입장에서 개선되거나 변화해야 할 지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