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의 승패를 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뭐, 전쟁은 러시아가 이겼다거나, 유럽이 오래 버틸 수 없다거나 하는 분들이 계시지요.
그러나 전략적으로 본다면, 러시아의 처절한 실패라고 봐야 합니다.
1> 러시아가 자원 대국이다. 고로 갑이다?
한가지 묻지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유가가 40달러를 밑돌던 2020년, 러시아보다 더더욱 큰 산출량을 가진 오일계의 대부 사우디 아라비아가 유가 안정을 위해 OPEC에 감산을 요구했습니다. 국제 유가를 조절해 왔던 것은 사우디 아바리바의 원유 증감임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실제 OPEC+의 회원국간 사이는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적과의 동침이란 뜻이죠.
이미 사우디 아라비아는 2020~21년 사이 OPEC내 각 회원국가 오일전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지금의 생산량은 전쟁의 결과물입니다.
러시아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감산, 그에 따른 유가 인상 노력에 늘 찬물을 뿌리며, 사우디가 감산한 이상의 원유를 시장에 공급하며, 고유가의 꿀을 실컷 빨았습니다. 그래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 동맹국들 눈에 러시아가 어떻게 보일까요?
그럼에도 사우디 아라비아가 증산에 나서지 않는 것은 고유가의 꿀도 달콤하거니와, 2차례 전쟁에 따른 확보한 지분을 깨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러시아의 자원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착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건 시장공급자간의 카르텔의 문제이지, 대체가부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특히 JTC보고서를 보면, 세계 원유공급량은 일일 수요를 120만 베럴 초과해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미 원유는 공급과 수요 불일치가 아니라, 러-우 전쟁이란 이벤트를 가림막으로 하여 자본가들이 선물시장에 투기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데, 가격이 튀고 있다면 그건 투기입니다. 사다가 쟁여놓고 있단 뜻입니다.
사우디 아라비아가 증산을 머뭇거리는 이유이며, 이 수요 공급의 불일치가 단기적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메이저 시장에서 퇴출된 러시아가 위상을 어떻게 회복하겠습니까?
중국에 공급하면 그만이라고요?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시장에선 늘 공급자가 을입니다.
러시아 자리를 대체할 희망자는 국제 사회에 여럿 있습니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러시아 등 뒤에 칼을 꽂을 나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국 셰일가스는 일 90만베럴까지 추가 증산될 예정이며, 이때까지 시장에서 꿀빨던 OPEC회원국 입장에선 그만큼 시장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들의 이익을 위해 유가는 안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란 대적이 생긴 미국은 묶어둔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만지작거리고 있지요.
이게 러시아에게 유리해 보입니까?
2> 식량문제에 러시아의 역할이 크므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식량 문제가 대두되고 있지요.
이게 문제니까, 러시아가 유리할까요?
잘 생각해 봅시다. 정말 문제입니까?
캐나다,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공히 휴경 면적이 경작 면적의 3할 이상을 차지한 나라입니다.
곡물가 인상으로 수지가 맞는다면, 경작면적을 확대해 경작할 것입니다. 남반구의 곡물이 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할 시점인 금년 하반기부턴 수요 공급 그래프가 어느 정도 균형점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부턴 북반구의 주요 농업대국들이 본격적으로 경작면적을 넓히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곡물가 인상을 견디지 못할 저개발국가들이 피를 보겠지만. 유럽이나 미국과 그들과 동맹만 선진개발국들에겐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유가와 식량을 가지고 유럽이 못 버틴다, 미국이 못 버틴다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란 뜻입니다.
세계 각국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이미 미국은 세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패권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미국 중심의 동맹국 블록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블록 바깥의 사정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러시아에게 무릎 꿇을 이유가 어딨나요?
3> 전선이 늘어난 러시아
이번 전쟁으로 스웨덴,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이제 러시아는 관심 껐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역시 방위해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그저 으르렁거리기만 하면 되었던. 나토와 EU가 철저히 외면하던 우크라이나도 전선이 되었습니다. 못먹는 감 먹으려고 덤볐다가 엿 먹었습니다.
자, 러시아는 그토록 꺼리던 일에 봉착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나토에 가입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스웨덴, 핀란드도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그럼 북쪽, 남쪽등 벨로루시를 제외한 모든 영역이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삼면 포위된 벨로루시가 언제까지 러시아 방패를 자처할까요?
러시아가 힘을 회복한다고요?
이 상황에서 힘을 회복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버티는 게 문제가 아닌가요?
지금 우크라이나에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건, 발트 3국은 존재감이 가볍고, 벨로루시가 폴란드를 막아주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핀란드가 독일과 손을 잡자마자 제 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포위되었던 것이 수십년 전 이야기입니다.
여유가 있겠습니까? 인구 4000만이 넘는 대국 우크라이나마저 적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뒤에 미국이 자리잡았습니다. 여유가 있겠습니까? 러시아가 유럽 대륙에 집적거리는 건 이제 끝났습니다. 영영. 이 불리하기 그지 없는 지정학이 러시아를 옥죌 것입니다.
유럽은 러시아를 두려워하며, 미국을 찾을 것입니다.
이제 미국은 유럽과 힘을 합쳐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으니, 중국만 상대하면 됩니다.
똘똘 뭉친 유럽의 힘이 러시아를 견제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4> 미국의 고민거리를 러시아가 해결해주다.
미국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뭐라 생각합니까?
국력 소진이 심해서 혼자 패권을 지키기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믿을만한 파트너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그걸 파토내고 다닌 게 트럼프였고.
취임한 바이든의 고민거리는 예전과 같은 관계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우연찮게 러시아가 해결해줬습니다.
통상정책과 경제정책에서 유럽과 미국은 사사건건 이견을 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입장에서 EU는 동맹이 아니라 적이었습니다.
그게 지난 10여년 사정입니다. EU의 왕노릇을 하던 독일, 그 독일의 수장이던 메르켈은 친러정책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경제이익을 구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삐진 영국이 나간게 브렉시트고요. 핑계야 이민정책 이견이지만, 과연 그거 하나 가지고 영국이 나갔을까요? 브렉시트 전에 베를린이 EU의 금융중심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독일이 그걸 중점 추진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죠. 제조업 중심 독일에 유리한 이민정책에 이어 각종 통상, 경제 법률도 독일에 유리하게 변경해갔습니다.
즉, 유럽(독일)은 미국과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의 정신 나간 선택으로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판이 엎어졌습니다.
이제 유럽은 미국의 군사력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자, 한국이 안보를 매개로 통상정책, 경제정책, 금융정책을 미국 입맛에 맞게 맞춰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고려해보길 바랍니다. 이제 유럽은 미국과 안보는 물론 경제정책도 동조화할 것입니다. 작은 이견, 다툼이야 있겠지만, 예전처럼 미국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긴 힘들 것입니다.
이젠 유럽의 리더쉽이 러시아 안보 위협을 무시하고, 독자적 움직임을 보일 순 없습니다.
이건 미국에게 유리한 것이지, 러시아에게 유리하지 않습니다.
5> 빈국들의 종속화
스리랑카나 파키스탄을 생각해 봅시다.
미국이 빅스텝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자본은 미국으로 도로 환류할 것입니다.
이건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고. 세계 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세계 금융위기 당시 빈국들의 천사가 되어준 건 중국이었습니다. 중국도 재정을 풀며 경제난을 이겨냈고, 그 시기 돈이 다급한 빈국들에게 일대일로를 핑계로 외환을 공급한 것이 바로 중국이었습니다.
이로서 중국이 빈국들의 대부가 되며 국제적 영향력을 획득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중국 돈을 받아쓴 스리랑카가 무너지고, 파키스탄이 무너집니다.
이들의 대부 노릇을 하던 중국이 구원자로 나서야 하는데, 어떻죠? 나서던가요?
못 나서죠. 중국은 제 코가 석자입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위안화 환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외환 보유량도 가파르게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3조 달러가 넘는다, 어쩌구저쩌구해도 중국 GDP규모를 생각하고, 유입된 외국자본을 생각하면 저게 절대 많은 편이 아닙니다.
미국이 빅스텝으로 금리를 올릴 경우, 미국으로 환류할 자본이 최소 조단위입니다.
중국증시와 중국회사채등에 몰린 외국인 달러 자금만 얼추 2조 달러입니다. 그 돈들이 환율 뚝뚝 떨어지는 중국에 남아서 기회 노릴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수년 동안은 고금리 시기일텐데?
중국이 피같은 외환보유고를 덜어 빈국들을 도울 이유는 없습니다.
외려 고금리로 빌려준 돈들을 회수하면 회수했지.
지금 이 상황에서 별다른 산업기반도 없이, 선진국 국민들의 관광객, 혹은 ODA만을 기다리는 빈국입장에서 중국이 도움이 될까요?
당장 파키스탄부터가 총리를 경질했습니다. 이게 단순히 경제위기 때문일까요?
아니죠. 이번 경질은 군부가 주도한 거고, 파키스탄 군부는 전통적으로 미국과의 커넥션이 깊은 세력이며, IMF와 국제은행은 중국돈 갚으려는 대환대출은 안해주겠단 입장을 피력하며, 협상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이게 바로 서방권의 힘입니다.
이제 빈국들 목줄은 서방이 쥐었습니다. 고금리로 달러가 본국으로 환류하면,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수출할 것입니다. 여기저기 무너지는 국가들 사이에서 중국은 버티기 위해 몸을 웅크릴 것이고, 그 사이 빈국들 목줄은 도로 미국과 유럽을 위시한 서방권이 회수할 겁니다.
에너지와 식량이 많은 러시아가 어쩌구저쩌구? 아무 의미 없습니다.
이 자체가 미국과 유럽에겐 수지 맞는 장사인데, 당분간 출혈이 무슨의미겠습니까?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건데? 무슨 대전략은 러시아나 중국만 하는 걸로 착각하는 건데. 잘 생각해보세요. 서방권이 대전략 없이 동구권을 어떻게 말려죽였겠습니까?
서방권을 얼마나 졸로 보는 걸까요?
본인들은 서방 프로파간다 어쩌구저쩌구하는데, 정작 본인들이 가장 심하게 그 프로파간다에 오락가락 하는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