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양병설자체가 이이의후손들이 말을해서 실록에 들어갓네 뭐네 말이많은데
그 당시 조선은 16만명의 군인들을 예비군 처럼돌리고잇엇슴다 문제는 이게집결지가 다정해져잇는데
수군은 도망가고 부산은 너무 빨리털려서;; 이게 만약 몇일만 끌엇어도 조선의 병력이 일본군을 충분히
막을수잇엇는데 이 작전의 단점이 상대가 전격전식으로 밀고쳐들어오는거에약한데 일본이 작정하고
한양 ㄱㄱ를 시전햇으니 약점을 그대로잡힌것 집결지에 모엿지만 장군이도망쳐서 해산된 병력만해도
수만이라고하니;; 당시 율곡이이는 10만 양병설보단 10만 상비군 양병설을 햇다고하는게 명칭상 맞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