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디자이너, 위안부 소녀상 비하 만행
임진왜란때도 조선의 국력이나 무기 수준(도리어 해상에서는 근대적 함포로
무장한 판옥선, 거북선부터 세계최초의 시한폭탄격인 비격진천뢰 및 2단 로
켓형인 신기전, 중대형 화포등 화약무기들이 더 발달해 있었음) 문화력이고 조
선이 제대로 전쟁 준비만 했어도 초기 잽의 대규모 기습전에 허둥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빠르게 근대화를 추진하던 대한제국시기에도 1903년 이전에
이미 연대급 근대 군편제가 완료되고 대규모의 병력 증강을 위한 징병제가
본격 논의되는 시점이였지만 잽은 메이지 유신 이후 농민들의 농업잉여생산
물을 쥐어 짜내어 서양의 근대무기 수입에 열을 올리면서 관치주도의 군수쪽에
몰빵을 하면서 이미 1873년에 징병령을 실시하면서 10여년이 지나서는
1889년에는 어느 정도 안정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왜구들은 매번 새로운 무기가 주어지면 정한론을 내세웠고 이것은
단지 입으로 그친게 아니라 실제 쳐해왔다는 사실임.
(이런 기형적 군사력만을 증강시킨 힘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이후 대한제국의
주도권과 조세권을 장악하면서 이미 1905년부터 당시
러일전쟁을 치루기 위한 천문학적 거금인 20억엔(영미로부터 12억엔 빌림)
의 전비에 허덕이든 상황에서 대한제국을 통해 막대한 조세 수탈(잽강점기
동안 당시 돈으로 310억엔이나 수탈 쳐함. 해방 이후 미군정의 공백기에
다시 무더기 위조화폐와 회사채를 남발 먹튀를 통해 대한민국 건국시기에
다시금 막대한 타격을 주고 떠남)과 막대한 인적,식량, 자원 수탈을 쳐하면
서 근대공업화에 박차를 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시기도 우리의 군 주력은 기본적으로 후방보다는 저 북방
의 여진족등에 항해 있었고 근대화시기에도 잽의 뒤에 있던 미영등의 막대
한 군수재정지원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발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게
큽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이미 징병제로 일시에 최대 천만대군까지 뽑아낼 여력
과 체계를 완비하고 있고 60여년간 38선을 대치하면서 전쟁준비를 해오고
있다지만 여전히 후방에 위치한 잽에 대해서는 그 경각심이나
맞춤형 실질적 군사대응책은 미비한 상태임.
그기에 이제는 전범잽극우들은 자신의 파렴치한 과오를 사죄하고 역사적 반
성보다는 왜곡과 험한등을 내세워 여론몰이까지 쳐하고 있습니다. 그기에
전범국이 실질적 보통국가처럼 무력 사용을 해체시켜 놓은 단계까지 이르렀
고.
과연 잽이 1차로 정면에서 짱국을 상대로 분탕질 칠 여력이나 배짱이 될까
요?
전술적으로 앞선 잽강점기처럼 잽의 1차적 수순은 북한이라는 아직 미확정
적 분쟁 지역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야욕을 실현한 첫 타켓으로 잡을 것은 생
각만 해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 두번을 쳐맞다 보니 마치 이런 잽의 파렴치한 폭력성과 전
투양상에 우리의 사고가 마비되어 있는 측면이 강합니다. 실질적으로 잽도
잠재적 적국임을 직시하고 정왜론(征倭論)을 확산시켜 전범극우들의 캐소리
에 당연히 맞서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사전에 전범 잽의 공세를 철저히 분쇄
하고 꼼수를 차단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책과 맞춤형 힘을
키워두어 주변의 잽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자주통일과 국토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수호해 나가야 할 것이며 수세적 자세보다 좀더 공세적 적극
적 사고와 행동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여차하면 우리가
역으로 잽 열도에 치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 준비를 갖출 정도의
전쟁억지력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