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을 보고 문득 드는 생각인데.
국가와 군의 존재 가치와 목적을 모르고 있거나 혼동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이고 군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바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겁니다.
국가의 자존심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보다 더 중요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의 자존심이나 명분이 국민의 재산과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나치 독일과 같은 국가주의 독재국가입니다.
정상적인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가장 우선 순위에 둡니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게 독립 국가로서의 주권을 훼손 받는 것 같고 체면이 깎이는 것 같고 쫀심이 상한다구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아래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1. 싸워서 이기는 것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어느 것이 더 좋은 전략일까요?
질문을 바꿔볼까요?
싸워서 이기는 것과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어느 쪽이 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잘 보호할 수 있는 선택일까요?
2. 님이 김정은이라고 가정할 때, 현재보다 30% 정도 더 증강된 전력을 갖춘 한국군이 단독으로 지키는 한국과 현재 수준의 전력을 유지한 한미 연합사가 지키는 한국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만만해 보일까요? 어느 쪽이 더 오판의 가능성이 높을까요? 어느 쪽이 더 전쟁 위험이 클까요?
3. 한국군의 전력이 지금보다 어느 정도로 증강되면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역할을 대체할 수 있고 나아가 북한의 도발의지를 꺾을 수 있을까요?
30%? 50%? 100%? 200%?
여기에 소모되는 천문학적인 예산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조달하면 되는 걸까요?
4. FX-3 사업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오늘날의 한국은 코흘리개 국민학생들까지 앞다투어 방위성금을 내서 당시 최첨단 전투기를 사오던 1970년대의 애국심 쩔고 반공정신 투철하던 한국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한국은 기령이 40년에 육박하는 노후 전투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도입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조차도 단돈 10원의 증액도 허락하지 않는 국방불감증 말기 국가입니다.
그런 한국이 주한 미군을 내보내고 때깔 좋은 자주국방을 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느 정도의 국방비가 투입되어야 할까요?
그 재원은 어디서 끌어와야 될까요?
북한의 전쟁 의도 자체를 억제 내지 포기시키려면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보다 적당히 높은 수준 정도로는 불가능합니다. 북한은 언제든 선제기습공격이라는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에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북의 오판과 남침의 가능성은 낮아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북한이 남침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군과 주한 미군의 전력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유사시 미 본토에서 증원될 미군 수십 만의 압박 때문에 못하는 겁니다. 이걸 우리 단독으로 해결한다? 미국의 국방예산이 얼마인지는 아시나요?
자주 국방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위해 국방예산을 천문학적으로 증액하려면 결국 그 돈은 복지 예산을 칼질하고 경제 살리기에 투자되어야 될 예산이 삭감되고 국민들의 조세 부담을 늘려서 확보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미군 없이 한국군의 단독 전력만으로 북한군의 남침 의도를 완벽히 무력화 시키려면 일부에서 주장하듯 속 편하고 간단하게 부자들에게만 덤탱이 씌워서 해결될 수준의 예산 규모를 아득히 초과합니다.
자주국방을 위해 복지혜택이 줄어들고 세금 부담이 늘어나면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까요?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 동의해줄까요? 박근혜 정부에서 중산층에게 한 달 몇천 원의 세금을 늘렸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었죠?
한국 국민들은 주한미군의 주둔과 그것이 주는 경제적, 군사적 이익을 자주국방과 그것이 주는 경제적, 군사적 리스크와 비교하여 전자를 선택한 겁니다. 허명 뿐인 자주국방보다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한 실리를 취한 겁니다.
간단히 생각해서, 과거에 주한미군이 없었고, 우리가 더 많은 국가예산을 경제 개발이 아닌 국방비로 소모했더라면 경제개발 속도는 우리가 아는 역사의 그것보다 훨씬 더 느렸을 것이고, 국민들은 더 오랜 기간을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고,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겁니다. 그 대신 M-47. 48 땅크 수천 대와 M-1 탄약 수십 억 발 등 구식무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다가 고철 처분 했겠고, 일부 무기체계는 쌓아둔 예비탄이 아까와서 신형 무기로 교체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구형 무기를 운용하면서 교탄 소모나 하고 있겠죠.
지금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70년대 80년대와는 다른 경제대국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현실은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국방예산보다 터무니 없이 부족한 달랑 3%선의 국방예산 확보조차도 불가능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입으로만 그럴싸한 소리 떠들고 뒤에서 ㅅㅂㅅㅂ 거리는 건 누가 못합니까?
이 세상은 입이 아니라 예산이 지배하는 겁니다.
그게 현실감각이라는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