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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25 18:45
[잡담] 조선 말기.. 일본및 서구열강에 침략당한 이유가
 글쓴이 : drone
조회 : 2,783  


무기등의 과학 기술이 떨어져서 그런건가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신기전이나 대포같은 화약 무기도 있었고...

더구나 서구는 엄청난게 멀리서온.. 소수의 병력이 전부 였는데

설령 활과 칼밖에 없다고 해도 10배정도의 병력으로 상대하면
 충분히 물리칠수 있었을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조정이 완전개차반이되버려서 힘없이 무너진것 같습니다. 고구려 망하듯이 내분으로 사분오열
되서 말이죠.

무기수준이 좀 딸려도 숫적인 우세가 확실한데 너무 쉽게 무너진거 같아 아쉽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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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떡 13-10-25 18:48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깥세상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야겠죠.
엘라하드 13-10-25 18:50
   
남들 총알 분당 100발씩 쏘는 기관총하고  강철로 완전무장한 전함가지고있을때
그때 한국과 아시아는 단발식 화승총과 구식대포가 다였음
그나마 중국이 인해전술로 초반에 버티다 서양국가들한테 싸구려무기 수입받아서 덜 먹힌거지
     
굿잡스 13-10-25 23:12
   
??? 잽의 경기관총은 1차대전 이후 1922년에 11년식 경기관총이 최초 등장했음.(이것도

실전에서는 잦은 고장투성이였고요)
돌무더기 13-10-25 18:53
   
당시 집권층의 부패와
중화주의에 쩔어서 서양문물을 천시하고 정신승리만 하고 있어서 그럼
모래곰 13-10-25 19:00
   
광성보 전투를 읽어보니까 우리나라 대포와 미국 대포의 사정거리에서 차이가
있었다는데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되고
총도 아마 우리나라는 단발, 미국은 7발을 장전할 수 있었지 않나요?
그리고 일본은 가깝잖아요.
모래곰 13-10-25 19:03
   
제 생각에는 조선을 바꿀 새로운 이성계가 없어서 당한거죠.

명치유신 후의 일본은 그 전과 지배세력이 다르죠.
그래서 개혁이 가능했고
명치유신을 일으킨 세력이 일본에서 늘 의심받고
반란을 일으킬까 계속 의심받았던 제후였죠.

함경도에 세력을 가졌던 이성계가 개국하고
정도전같은 신진사대부가 고려말의 혼란함을
완전히 뒤집어 개혁으로 나라를 구한 것과 비슷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선은 이미 중앙집권의 나라여서
그런 세력이 있을 수는 없었겠죠.

한마디로 느슨한 일본(덜 성숙한)의 정치체계가
일본에게 유리했던거죠.
맨프레드 13-10-25 19:11
   
예전에 역사스페셜에서 본 내용으로는
조선은 임란 이후로 화포기술등의 국방과학이 발전이 않됬다고 봤습니다..
그 다큐에서 신미양요인가 병인양요때 왔던 외국함장이 쓴 수기 같은거에 조선군이 포탄을 쏘긴 쏘는대
사거리가 짧아서 배 근처까지 오는 포탄은 없었다 라고 쓴글이 있다고 하더군요;;
user386 13-10-25 19:29
   
B2 스텔스기, F-22, 이지스함을 수백척 가지고 있으면 뭐 합니까?... 그걸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데.

조선조 25대 왕 철종만 봐도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사람을 불러다 왕으로 앉혀놓고 집권층의 노리개로 만들어 백성들
수탈하여 지들만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구한말 전국적으로 벌어진 수 많은 농민 반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난리 통에 국방에 신경이나 쓰겠어요. 백성들이 모두 굶어 죽어가는데 늙어서 죽은
사람한테도 호구에 있다며 군포(세금)를 징수하던 썩어빠진 시대에 화포와 신기전 수천만발이 있으면 뭐 합니까?
숙달된 군인이 없는데...
대풍이 13-10-25 19:33
   
조선은 보기 드물게 정치체계가 잘 갖추어진 나라였어요. 그래서 임진왜란을 겪고도 국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죠. 유교를 근간으로 한 정치 체제 덕분에 안정적인 중앙집권체계를 구축했지만 그 공고한 정치체제가 도리어 국가의 자정능력과 발전능력을 저해한 것입니다.

사실 임진왜란 이후의 흔들린 국가기강은 조선이 망하게 되는 순간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도리어 악화되어만 갔는데 그럼에도 국가가 유지된 것이 결과론적이지만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다시말해, 조선은 꽤나 긴 시간동안 쇠퇴의 길을 걸었고,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개혁을 진행할 역량이 없었던 것입니다.
     
로엔그람 13-10-25 19:53
   
임란이후 말기 암환자처럼 시간 만 보내다 비참하게 죽었다고 보면 될듯
임란이후 내부의 다른세력이 안락사 시켰다면 좋은 기억을 갖고 추억할수 있는데 너무 추하게 갔죠
     
굿잡스 13-10-25 23:15
   
로엔 이양반은 울 나라 역사의 기초 상식도 모르면서 댓글 보면 뭔 아는척 어글로 헛소리나

쯧.(이전에도 무슨 고구려족들은 다 멸족해니 캐소리나 쳐하고. 한글 그만 써고 당신 나라

가서 놀라니깐 뭐하려 여기서 기웃거림)


무슨 왜국이 임란시기에도 퍽 조선보다 문명이 앞서 초기 그렇게 파죽지세였남? 단지

저 칼든 백정질 열심히 한 호전성이 강했던거지.

당신 논리면 이후 잽에서 고대 최초의 중앙집권제요 화려한 어쩌고 캐소리하는

에도시대에 조선 통신사를 통해 문물을 받기 위해 재정이 휘어진 건 뭐임??

이 양반은 조선 17세기 대동법 이후 18세기 영정조 전성기도 모르남?
          
대풍이 13-10-26 21:53
   
제 글에대한 반박인지 확실하지가 않아 조심스러운데 말씀을 드리자면 임란이후 건국 수준의 개혁이 필요했음에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임란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호란을 겪은것도 문제였지만 왕권을 유지함에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것이 결국 유교적 중앙집권 논리로 유지가 되게 되죠. (그 과정에서 많은 내흉을 겪었고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상대를 역적으로 몰고가는 극단적 붕당정치의 폐해가 이 시점에서 발아합니다.)

일본과 같은 경우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새시대를 열기위한 내란을 겪었지만 당시 조선에는 새시대를 연다거나 급진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나라가 왕을 중심으로 꾸역꾸역 굴러갔거든요.

다시말해 기득권은 권력을 유지할 충분한 사회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의 정치 시스템은 아무리 엉망이라도 기본빵은 하는 시스템이었다는 겁니다. 나쁘지 않게 굴러가니 국가가 전복될 이유가 없었죠. 다만 서서히 부작용들이 나타나게 되구요.

그리고 영정조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 일컫지만 기형적으로 변한 붕당정치의 폐해는 영조와 정조의 업적이 정치력을 유지하기 위한 소모적 도구로 휘발되는 것을 촉진하였습니다. 당대의 개혁이 확산되지 못한 지점은 저도 참 아쉽습니다.

정리하자면 조선의 중앙집권체제는 분명 매우 선진화된 훌륭한 제도였으며 조선을 기록덕후로 만들 정도로 엄청난 기록유산들을 많이 남기기도 했지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경우 왕의 잘잘못도 낱낱하게 기록하였는데 '왕권'을 생각한다면 매우 파격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극도로 발전된 유교적 중앙집권체제의 형태라고 할 수 있죠. 사관이 없으면 신하들을 따로 만날 수 도 없었으니까요. 도리를 다해야 왕으로 인정해주겠다는거죠.) 너무 공고하게 자리잡은 정치적 시스템과 이 과정에서 변태한 극단적 붕당정치가 도리어 환부를 감추고 개혁을 방해한 것이죠.

조선초의 붕당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와중에서 보다 나은 생각을 찾아가는 건전한 구조였다면 조선후기에는 힘을 얻은 쪽의 반대 세력은 모두 역적으로 몰리는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거의 모든 정치적 에너지가 생존과 권력을 위해 쓰였으니...참 아쉬운 일이지요.

아, 그리고 통신사의 경우 일본이 주변국으로부터 각각의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파견받고자 노력을 기울인 측면이 있는데요. 조선 후기로 갈수록 통신사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어집니다.
대풍이 13-10-25 19:35
   
덧붙여 사람이 10배가 있더라도 시스템이 없으면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무기의 노후화는 물론, 군대 운용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고 전술 역시 전근대적이었죠.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관리인데 그 관리를 위한 시스템이 너무 망가져있었어요.
로엔그람 13-10-25 19:50
   
고구려 멸망이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성과 사대주의 일변도의 단순한 외교전략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직면했기때문에 자연스럽게 멸망한거죠
     
굿잡스 13-10-25 23:26
   
고구려 멸망이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폐쇄성과 사대주의 일변도의 >???

ㅋㅋ 뭐도 모르면서 한글만 적으면 뭐 다인줄 아시남?

고구려가 당에 평양성만 함락 되었다 뿐이지 요동부터 애초에 당나라는 동만주와

한반도 동북부의 수많은 고구려 성들은 아예 발도 밟아 보지 못하고 3여년 뒤에

고구려 세력에 당나라 군사들은 평양에서 도륙당해서 요동 요서로 밀려 났군만. 뭔 캐소리임.

그기에 남북국 시대 스스로 고려 국왕이라고 말하며 요동에서부터 연해주 저기 아무르

일대 남시베리아와 맞닿은 곳까지 직접 지배한 대발해는 어디 두고 오셨남?(하긴

대한민국 역사를 모르는 조선족인지 화교 양반?이니 ㅋ)

동북아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저기 중동까지 교류한 신라는 뭐임??(폐쇄 한반도 안??ㅋ)

그외 요나라에 멸망했어도 이름만 동란국으로 수백만의 발해인들이 여전히 만주 일대

대도시에 살고 있었고 이후 발해나 고구려 계승국을 자처하며 후발해, 정안국, 흥요국,

대원국등 고씨나 대씨들이 나라를 거듭해서 세웠구만. 이후 금나라 역시도 신라계 황제와

이런 반요사상의 반독립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발해인 연합 국가였고.

또한 중세 고려 역시 요나라에 쳐발린 찌질이 송나라도 못한 대군을 연패시키고 3강체재를

스스로 만들면서 동만주는 고려의 영향력 아래 두었구만.

하긴 윤관이 두만강 넘어 20만 대군을 앞세워

동북 구성을 세운건 배웠을리 없을 것이고 ㅋ

그외 고려 말까지 고려왕은 만주 일대의 자치 관할권을 가지고 있던 건 아남?

조선 조차 실제 북간도와 서간도가 존재해서 이성계가 고려말에 요동 출정 이후

병참기지로 조선 내지로 다스렸던 만주일대 땅들이 엄연히 존재했는데 뭔 헛소리 하시남.
          
로엔그람 13-10-26 22:15
   
님 글에는 묵언수행 중...
drone 13-10-25 20:01
   
음 무기수준뿐 아니라 폐쇄성 및 외교전략상의 문제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했군요..

고인물은 썩는 법이라고 해야될려나요...  나라가 너무 오래동안 유지되다보니 자정능력이 떨어졌다는 말이 많이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굿잡스 13-10-25 23:36
   
대한제국군은 중앙군 6000명에 지방군 2만명을 보유하며

당시 러시아의 신식총인 베르당나 마우저등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고종의 광무개혁등을 보면 이미 이때 대한제국은

근대화의 거의 모든 기틀과 제도들을 빠르게 진행시키고 도입하고 있었음.(이후 이런 양분을

제대로 따 먹기도 전에 잽이

조선을 강점하면서 35년간 후진적 식량 수탈 농업경제구조로 고착화시켜 버림으로써 잽 본토는

안정되고 싼 식량과 자원을 바탕으로 근대화를 빠르게 이룩한 것이고 조선은 고종의 근대화 노력들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허송세월속에 인적 물적 수탈과 유린의 세월이 된 것임.)

그리고 잽의 메이지 유신이란  한마디로 반대파를 칼로 다 베어버리고

오직 한목소리 기형적 관치 군수산업을

육성시킴으로서 구한말 잽의 경제 상황은 한계에 봉착하면서 파탄의 조짐을 보이자 이 총칼을 앞세워

조선을 강점했던 것임(당시 잽은 상비군을 10만명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형적 군수쪽을

육성했는지 알 수 있는)
굿잡스 13-10-25 23:39
   
그기에 비해 우리의 구한말 상황은 위로는 지식층의 갑오개혁부터 아래로는 동학 혁명까지 다양한

사회적 계층적 근대화로의 운동과 분출등 내부적으로 기존의 지켜야할 전통적 여러 가치관과

근대화속에서 충돌과 갈등을 반복 연쇄반응을 이르키면서 이후 고종의 광무개혁같은 근대적

자체 흐름으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었다는 말이죠.(잽은 당시 별 지킬 전통도 없다보니

그냥 반대파는 도륙쳐하고 군수쪽 역량에 집중해서 빠르게 전환. 이런 성향은

이후 2차대전에서 인명경시의 반자이 무대포 돌격이나 가미가제등으로 이어지죠)

당시 우리 내부적으로 혼란스럽지만 발전적 진화의 상황에서 이런 대한제국의 내부 상황과

약점을 교묘히 파고 들어 기형적 군수쪽에만 치우진 무력을 앞세워 강점을 노골화 한 것임.
ultrakoo 13-10-25 23:57
   
조선이 무슨 병자 처럼 이야기 하시는 분들 계신데...

식민 사관이 불러온 잘못된 인식입니다.


조선은 마냥 쇄국만 하며 바라보고있었다는것은 큰 착각입니다.

일본 보다 어느 부분은 선진문물과 선진 시스템을 들여오기도 했고

흔히 잘못알려진바 처럼 무기력하게 삼키고 있는데 가만히 앉아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굿잡스 13-10-26 01:18
   
만약 경제 대국 어쩌고 쳐하는 잽이 몇년전 쓰나미에 후쿠시마 사태로 몸살 앓으면서 내우 겪고 있을 때

뒷통수 확실히 쳐보삼? 제대로 대응 될 것 같습니까? 프랑스 시민혁명 당시 그 혼란한 사회상을

비집고 외세가 약점 노려 해보삼. 아무리 강대국이나 기존 문명 체계를 곤고히 하던 나라도

제대로 버티기 힘들지.
김삿갓삿갓 13-10-26 02:25
   
문관들이 장기간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무관이나 병사들의 대우가 거지수준이었는데다 관리들이 워낙 부패했던터라  국력이 바닥을 기고 있었죠. 근데 그때 일본이 최신 서양기술로 무장하고 들어오는데 답이 없죠. 그나마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건 무관들이 워낙 앨리트집단이었는데다 병사들도 대우에 비해서는 상당히 강군이었고 우리나라의 지형덕도 좀 봤고 그래서 버틸 수 있었죠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름 바꾸고 좀 고종황제께서 좀 해보려고 했는데 그때는 이미 일본이 너무 깊이 침략해있어서 실패한 경우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정치인들이 문제였어요 어휴
자기자신 13-10-26 02:33
   
조선이 19세기때 일본이나 서구열강한테 당한것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펴기때문이예요 또 조선이 쇄국정책을 강화한것 중국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대패하고 계속된 이양선 출몰 미국제너럴셔먼호가 대포를 마구 쏘아서 공포감을 조성하고 한술더떠서 선원들이 육지에 상륙했어 약탈과노략질같은 행패를 부려서 서양열강에 대한 반감이 더욱더 거세져고 또 오베르트도굴사건 즉 흥선대원군아버지묘소를 마구잡이로 훼손시킨일이 있고 난다음에 조선이 서구한테 더욱더 반감을 가질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생겨난것이 척화비임 근데 참 아이러니한게 미국과프랑스의침략은 잘 막아냈는데 정작 일본한테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죠 근대화된일본앞에서 무력한게 무너지고말았음 조선이요 참 희한한 일이죠 미국과프랑스가 일본보다 훨씬더 강한데말이죠 미국의신미양요와프랑스의병인양요에서 조선이 간신히 잘 막아냈고 버텨는데 일본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말았습니다 ㅡㅡ;;
     
굿잡스 13-10-26 03:50
   
근대화된일본앞에서 >??? 이것도 착각이죠.

잽에 그나마 제대로 근대화한건 군수쪽임 사회전반적 부분이 아니라. (지금도 무슨 간판

에 버젓이 에타,히닌 어쩌고 부락민 부락마을 하류계층 멸시하는 호칭 사용하고 정치도 귀족

세습제마냥 어쩌고 전근대적 사회상이 여전히 남아 있고 에도시대의 잔재들 여전하구만.)

앞서도 말했던 이런 관치 군수쪽만 열심히 키우다 보니 지금 북칸니스트 같은 경제 한계에

봉착하니 결국 다른 외치를 식민 약탈경제로 외부에서 뭔가를 빼앗고 들어와야 지탱이

된 것임. 즉 조선을 강점하면서 1차 농업 즉 먹거리의 싼 식량부터 자원 그리고 인적

수탈을 통해 본토를 살찌우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한 것이고.
     
굿잡스 13-10-26 03:56
   
요즘 무슨 국내 매국 친일파들 식근론 어쩌고 캐소리하지만 애초에 잽은 근대화 자체를

아직도 달성 못한 사회임. 근대화라 여러 정의가 있지만 미국식 자본주의에 정신 사회적으로

민주화된 참여 시민 의식인데 잽은 이런 막부 일부 칼부림과 강제적 주도하에

 부를 살찌우고

이후 2차대전에서 미국에 원폭 쳐맞으면서 군정하에 강제 현대적 제도가 도입.

결국 애들은 물질적 자본주의는 이루었지만 사회전반적이나 시민의식 즉 참여적 민주주의

에서는 우리나 프랑스등 아래로부터의 국민 요구와 희생을 통한 정치 개혁을 해본 역사가

없는 사회와 국민 의식임.(그러니 지금도 전범 후예 꼴통 아베가 뭐하니 그냥 맥없이

목소리 못내고 주루룩~~ 후쿠시마사태도 울 나라 같았으면 벌써 난리 백번 천번 날

일을 그냥 자포자기 조용~ㅋ주변에 민폐질이나 쳐하죠)
     
shonny 13-10-26 14:07
   
대원군이 있을땐 -_-.. 미국 프랑스 상대로 두 양요 치뤘슴돠.. 이기진 못했어도 맞서 싸울수있을정도 군대 기강이 잡혀있을때였죠..
대원군이 집권하고나서 계속한게 개혁이었슴.. 당시 쇄국정책은 당근 필요할땝니다.

간단히 생각해보길.. 만약 한국이 시장을 60년대부터 지금처럼 개방했다면 한국이 발전했을지를 -_-.. 어느정도 자립할정도로 보호무역해줘야하는겁니다.
당시 양반은 세금도 안내던 그딴 나라가 조선인데 개방해서 뭘 어쩌겠단건지..

대원군은 부정부패 척결, 탐관오리 처벌, 군부강화, 왕권강화 그외 신분에 따른 차별 완화하려던 개혁추진한잡니다. 이거 반대한 세력이 누굴까여? 유림+과거 세도가(안동김씨) 이런자들이 민비밀어줘서 대원군 몰아내고 개혁모조리 뒤집어 엎은채로 개방시도했는게 무슨꼴 났는지 보길..
점빵알바 13-10-26 15:37
   
기득권 세력의 자만과 안주로 인한 내정갈등이 기본적에 군방력 약화등
원전이 13-10-27 02:03
   
한마디로... 조선의 개혁속도보다.. 일본의 조선을 집어 삼킬려는 의도 속도가 더 빨라서 임... 제 생각에 마지막 기회는 동학농민운동이 아니었나 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기회.. 이때 조선 정부가 동학농민군과 같은 편이되서.. 일본에 대항했다면?  이때 거의 일본군에 도륙당하죠.. 동학농민군..그냥 인해전술로 붙었는데.. 대부분이 무기도 제대로 없는 상태였다는데.. 낫 , 호미.. 이런수준 .. 조선정부는 동학농민군을 토벌할 능력이 안되니.. 일본군을 불러서 토벌합니다.. 여기서 말 다했죠... 오히려 승냥이를 불러들였으니.. 이 시점에서 조선정부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야죠
아쿠리닥 13-10-28 05:37
   
임진왜란이후나 적어도 정감록 그시기에 왕조가 교체만 되었더라면 아마도 저열한 왜넘 따위들에게 국권침탈과같은 치욕적 굴욕적 사태는 결코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네요.더군다나 청말시기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한 전략를 잘만 구사하였다면 블라디보스톡을 비롯한 만주지역은 충분히 현재 우리의 영토의 일부이었을테고 신생왕조의 욱일승천의 역량으로 들불같이 치닫던 그 당시 공산주의 기세를 충분히 억제.차단 가능하며 당연히 분단국가가되지도 않을 것이고 말이죠.우리 한반도의 지나온 오랜 역사상 파노라마를 볼 것같으면 국운의 흥만성쇄 중대한기로에 설 때마다 염색부족 내지 하얀치아에 꼬추가루 낀 역사의 연속이어서 참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네요.제 사견에 불과하지만 태극기 문양이 왠지 현 분단국가상태와 주변 4대강국(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존속 고착화을 의미하는 것 같아 께름직한 마음 예전이나 지금도 좀처럼 사라지지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