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000 기자] 국방부와 해군이 적극 검토 중인 핵추진 잠수함 독자 건조는 실현될 경우 한국 무기개발사에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의 핵개발 이후 최대의 ‘사건’으로 꼽힐 만한 중대 사안이다. 순수 군사적인 측면에서 핵잠수함 자체의 위력도 위력이거니와 핵잠수함이 갖고 있는 국제정치적인 파장도 항공모함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핵잠수함은 핵무기 탑재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지만 원자력에 의해 추진,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물속에서 훨씬 오랫동안 작전할 수 있어 은밀성과 타격 능력이 뛰어나다. 벌써 이같은 정보를 입수한 미국 군 및 정보 관계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개발 계획의 실상 및 배경 파악 등에 나선 정황들이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는 26일 핵잠수함 건조 추진에 대한 본지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원장환 국방부 획득정책관은 “3500t 안팎 규모의 잠수함 개발을 목표로 2004∼2005년 2년 동안 17억원의 예산을 들여 개념 연구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추진 방식에 대해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원 정책관은 “독자적인 핵추진 잠수함 개발은 미국 등의 사례에 비춰 설득력이 부족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일각에는 원자력발전소처럼 저농축 핵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비핵화 선언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미국·러시아는 수십 척의 핵잠수함을, 중국은 5척의 ‘한(漢)’급 공격용 핵잠수함(4500t급)과 1척의 ‘하(夏)’급 탄도미사일 탑재 핵잠수함(8000t급)을 각각 보유 중이며, 일본은 핵잠수함 건조 능력은 갖고 있으나 실제로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우리 해군의 잠수함(1200t)은 일본 잠수함(2000~3000t) 및 북한 잠수함(1700t)보다 작아 4000t급 잠수함의 건조는 해군의 잠수함 전력을 대폭 강화하는 반면, 주변국을 자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군 당국이 이처럼 정치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핵잠수함 건조를 적극 검토 중인 것은 현 군 수뇌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당초 해군은 3000t급 재래식 중(重)잠수함을 미래 한국군의 ‘전략무기’로 상정하고 이 잠수함에 국산 대지(對地) 크루즈 미사일을 탑재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핵잠수함도 고려 요소는 돼왔지만 먼 미래의 무기로 간주돼왔다. 그러나 현 군 수뇌는 단계를 밟아 3000t급 재래식 중잠수함을 건조하는 것보다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무기 확보책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군 내의 이런 움직임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와 철학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 수뇌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핵잠수함 건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들이 적지 않다. 우선 정권 차원의 의지 문제다. 핵잠수함 건조는 한반도 주변 4강의 민감한 반응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통수권자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및 군 일각에선 이 사업이 국민적 자존심과 전략적 억지력을 높이는 ‘득(得)’보다는 국제역학 관계상의 ‘실(失)’이 많다며 추진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군 내에선 1800t 3000t(이상 재래식) 4000t급 핵잠수함 건조라는 단계적인 과정을 밟지 않고 곧바로 고도의 안전성을 요구하는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은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무리이고 위험부담이 크며 한반도 인근 해역의 특성상 핵잠수함보다 재래식 잠수함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아 비용대 효과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또 척당 1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건조 비용 확보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