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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4 20:23
[밀리역사] 머스켓 소총으로 전투하는 유명한 장면과 그 이유
 글쓴이 : 은단
조회 : 5,769  

 
제가 자주 보는 영상인데(1분10초 부터)
용감하긴 하지만 매우 무서웠을 거 같습니다
이런식으로 싸우는 이유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당시 머스켓 소총이 명중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지휘관의 명령으로 총을 몇 발 쏘고 백병전으로 붙는 순서였으며 기마병의 역활도 매우 컸다고합니다
보통 먼저 쏘는 부대 보다 총을 맞더라도 그 다음에 쏘는 부대의 살상률이 더 높았다고하네요
거리를 더 좁혀서 쏘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명중률은 낮으나 파괴력은 지금의 ak47에 맞먹는 위력이었다고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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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 13-12-24 20:55
   
참 무식한 전투 같긴한데, 저 당시에는 저게 최선의 전투였다죠...
현대처럼 정보전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가 없으니 전 진군로에 맞춰 참호나 진지를 미리 구축할 여유도 없고,
전장식 총이다보니 엎드려쏘거나 앉아 쏠 수도 없고... 그저 일렬로 길게 써서 피해를 최소화 하면서, 화력을 집중시키는게 고작이었죠...

중세시대 전쟁양상에서, 전장식 총을 쥐어준 것이 고작인 형태...
신단수 13-12-24 20:58
   
근데 강철로 된 방패나 모래도 된 자루 같은거는 이동시킬 만 하지 않나... 그런걸로 방어하면서 싸우는 것은 저 당시 기사도 정신에 어긋난 걸까요?? 강철을 덧댄 방패를 가진 방패병을 앞에 세우고 총질했어도 피해를 줄이고 승리 가능성도 컸을 거 같은데요. 앞에서 방패로 소총수들 신체 반정도만 가려주어도, 피해는 반 이하로 줄겠는데...
     
Centurion 13-12-24 21:21
   
저 시대 바로 앞쪽이..
유럽에서 스페인이 테르시오로 무쌍찍던 시절인데요.
그 조금 뒤쪽이 구스타프 아돌프의 군제 개혁이니 하던 그 시절이구요.
그 뒤가 다시 루이14세니 말보로공작이니 이런 시대입니다.
그 후가 미국 독립전쟁이니 나폴레옹전쟁 시기가 되지요.

그 테르시오 전술이라는게..
갑옷을 입은 창병들과 아르퀘부스(=조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활약하던 시대지요.

우리나라 역사로 따지면..
임진왜란 이후 삼수병 체제(살수 사수, 포수=백병전담당, 궁수, 조총수)과 비슷한 시대입니다.

영화 알라트리스테에 나옵니다.
http://youtu.be/625iTKITRoA

근데.. 화약무기의 발달로 인해..
사실상 방탄이 잘안되던 시절이었구요.
그나마 칼이나 창 같은거 막기 위해선 갑옷이 통했지만..
방패 정도로는 방탄이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모래주머니는 딱히 몰라도..
이 시절에도 참호 같은 개념은 있었지요.

알라트리스테 영화 안에도 보면,
공성전을 위해 참호를 파고, 대포를 쏘고, 그런 장면은 나옵니다.

그리고, 강철방패 이런것을 잘안쓴 이유 중 하나가..
이 때 당시는 탁트인 벌판에 병력을 깔아두고, 기동 포위전술 같은걸 많이 썼거든요.

사실, 창병 같은 경우에도.. 왜 없어졌냐면...
머스켓 병들이 쓰러지면, 창병들이 창 버리고 머스켓을 주워써서 그럽니다.
거기다, 총검이 등장하고 난뒤론 아예 창병을 쓸 이유가 없어졌죠.

어차피 총 한방이면 말탄 기병이고, 기사고,
쌈잘하는 용맹한 워리어고 간에 다 죽일 수 있는데..
방패고 창이고 쓸 바에 총 한자루라도 더 동원해서 쏘는게 낫다는거죠.

그나마 기병이 총을 안쓴건.. 효율이 안좋아서입니다.

본래 초기 퀴러시어 기병들은 갑옷도 입고,
권총도 두자루씩이나 차고 다니며 쏘고 빠지고를 했는데...
명중률도 낮고, 보병들이 겨냥한 소총이 더 화력도 좋고, 명중률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아예 기병은 갑옷과 총을 포기하고,
보병하고 정면 충돌을 피하고, 날렵하게 측후방으로 공격한다거나,
이미 대열이 붕괴되고, 사기가 무너진 적보병들을 추격해 죽이는 위주로
발달하게 됩니다.

그런게 후사르 같은 경기병들이죠.
물론 승마 보병의 개념인 드라군 기병이나,
흉갑 정도는 입고 칼을 휘두르는 중기병인 퀴러시어 기병 같은게 존재하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이 시대에도 꾸준히 참호나 요새는 존재했습니다.

엠파이어 토탈워나 나폴레옹 토탈워란 게임을 구해서 플레이 해보시면 될겁니다.
          
신단수 13-12-24 21:27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허나 저런 무식한 싸움이 당시 전쟁의 일종의 관례가 섞여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거 같네요.
이후 전쟁양상이 달라진 후라면 모를까,
딱 저 시기만 보면,
조금만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모래포대를 쌓은 손수레만 백여대 동원해도 피해는 대폭 줄이겠는데요. 기병과 포대를 운영할 정도면, 수레를 말로 끌다가, 전투시에만 사람이 밀며 전진해도 될 테고... 그 수레 하나 당 못해도 십여명은 죽지 않고 한방씩 더 쏘겠는데요.

모래포대 수레가 아니더라도, 꽤 참신한 방어전략은 나올 법도 한데요....
구태어 그러지 않은 것은, 일종의 전쟁 '매너'가 아니어서가 아닐까요??
저 시기에는 지금과 또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시기니...
               
개떡 13-12-24 21:32
   
보병이나 기병만 있는게 아니죠. 포병도 있습니다. 모래포대를 쌓다가 포병에게 끔살당하면 그것보다 멍청한 죽음은 없죠.
                    
신단수 13-12-24 21:33
   
아니죠. 모래포대를 실은 수레를 직접 밀면서 전진한다는 거죠. 어차피 대열 맞춰서 걷는 속도면, 손으로 수레 밀면서 앞장 서 전진해도 별반 차이 없겠는데요.
지금처럼 수 킬로 밖에서 포격전하는 것도 아니고, 연사와 파괴력이 좋아서 쉽게 무너트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총은 끽해야 1분에 1~2발로 50~100보 내에서 쏘고, 대포는 끽해야 1분에 1발로 300~500보 싸움인데요.
수레로 전진이동하면서 총질하기 충분한 시대인거 같은데요.
                         
개떡 13-12-24 21:38
   
적이 쏘고 있는 와중에 모래포대를 쌓는게 가능했다면 정말로 그랬을 겁니다. 모래 포대를 쌓는 인원이 죽으면 그 모래포대를 누가 쌓아야 하는지도 문제고 말이죠. 방어를 한다면 미리 모래포대를 쌓아 요새화를 하는것은 가능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모래포대를 쌓으며 적을 공격한다는 발상은 좀...
                         
신단수 13-12-24 21:40
   
아, 갑갑하다;; 모래포대를 쌓는게 아니라, 쌓아둔 걸 이동시킨다니까요.
글 좀 제발 제대로 읽어 보세요;; 전 진지 쌓는다고 한 적이 없어요. 처음부터 '수레'를 그리 강조하는데...

일반 수레에다 쌓는 것은 좀 비효율적이겠고, 용도에 맞게 적당히 개조한, 옆으로 길고 위로 적당히 높지만, 앞뒤로는 짧은,
방호벽 같은 수레에다 모래포대를 쌓아두고 밀면서 전진한다고요;;
어차피 총은 가슴 높이에서 쏘니까, 가슴 밑까지만 오는 모래포대 방호벽을 이동전진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부대 생존률은 왕창 높아지겠지요. 이론상 총알 맞을 확률이 반 이하로 떨어지니까요.

그리고 모래포대 수레는 제 생각일 뿐이고, 이게 아니더라도 더 참신한 발상은 얼마든지 나올 법 하지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당사자들이 무슨 아이디어인들 못 내겠습니까.
그럼에도 하지 않는 것은, 역시 관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죠.
                         
개떡 13-12-24 21:48
   
점점 해명하실 수록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그 엄청난 무게의 모래포대들을 쌓아서 이동시키려면 사람만 가지고는 힘들 뿐더러 그것들을 실어서 옮길 수레를 어떻게 만드느냐도 문제입니다.
어찌어찌 만들어서 모래포대들을 쌓아 이동시킨다고 해도 느려 터져서 적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님이 말한 시도는 이미 해봤겠지만 제 생각으로도 너무 비효율적인 것은 어쩔 수가 없고 그래서 전장에 나오지 않았던것 같군요.
당시에는 그저 일렬로 마주보고 서서 쏘는게 최선이었고 그 이외에 아이디어는 없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Centurion 13-12-24 21:45
   
뭐 그런건 고려시대 검차라는 수레가 있었죠.
요나라(거란) 기병을 강조의 고려 30만 대군이 검차로 막았던 기록이 있습니다.
(일종의 방패와 창이 꽂혀있는 수레입니다. 검색요망)

몽골 같은 경우에도..
수레를 이용해, 이동식 진지를 꾸리는 경우가 있었고,

미국도 서부개척시절에 마차를 이용해 방어진을 꾸리는 경우가 많았죠.
거기서 유래된게 데프콘 등급 중 하나인 '라운드 하우스'입니다.

뭐, 로마군 같은 경우에도 행군하다 길을 멈추면 제일 먼저 하는게 캠핑 준비인데..
사실상 전투 대비를 한 요새 수준의 진지구축을 합니다.

근데.. 뭐.. 이 시절에도 분명 진지구축은 있었습니다.
다만, 넓은 벌판에서의 야전(=회전)이라는 상황에서는
꼭 진지에서만 싸우는게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포병들이 배치되면..
적이 배치된 곳을 아주 신나게 때려됩니다.

그래도 결국 적을 절단내려면..
보병들이 걸어가 적을 죽이고 깃발을 꽂아야 되겠죠.
이건 오늘날 현대전도 마찬가집니다.

공군이고, 포병이고 암만 때려도,
결국 보병이 가서 적군 섬멸하고 깃발 꽂아야 됩니다.

님이 말한 모래포대를 쌓은 손수레 같은 경우엔..무게도 엄청 나가기에..
닷지트럭이 아닌 이상 뭐 솔까 끌고 다니거나 배치하기도 솔까 용이하지 않고..

엄청난 규모의 기마를 동원해야 되는데..
사실 말 값도 엄청 비쌉니다. 금화 한 두닢에 구할 수 있는 보병보다 더 비싸죠.
(모병제의 경우) 징병제는 뭐 더 쌉니다.

그래서 기병은 주로 좀 돈 꽤나 있는 지체 높은 분들이 예로부터 많았구요.
그렇게 숫자도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포병도 뭐 수십만 대군이 몰려다닐 때, 겨우 수백문 수준이 동원되는 수준이었구요.

요즘이야 미군들은 미국 국민 여론때문에 비싼 방탄복에 비싼 장갑차 태우고 다니지만..
본래 전쟁에서 어지간한 나라들은 병사 생존률보다 병사 숫자를 더 많이 뽑고 맙니다.
그게 전쟁에 있어 경제논리거든요.
                    
신단수 13-12-24 21:46
   
흠, 하긴,
사람 목숨값이 수레나 모래운송값보다 싸다면,
구태어 수레이동시키는데 병력을 소비할 이유가 없긴 하지요.
                    
신단수 13-12-24 21:51
   
근데 그렇게 많은 모래는 필요없을거 같습니다.
모래 포대 하나당 무게를 6~7킬로로 잡아도, 허벅지부터 가슴높이까지 일렬로 채운다면 8포대면 됩니다(현 국군 포대 기준) 56킬로지요. 진지처럼 대량으로 쌓을 것이 아니라, 한겹으로 쌓아서 수레 앞뒤로 고정시킨다면...
장정이라면 2~3인이면 나눠 운반할 정도입니다. (대신 다른 군장은 다 버려야겠지만)

수레 모양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 짐수레가 아니라, 모래포대 전용 수레로, 일렬로 쌓은 후 앞뒤로 나무판으로 고정시키는 형태라면, 폭을 넓게 한다해도 8개씩 8줄로 세운다해도 64개면 옹기종기 모이면 10명은 숨을 만한 방호벽 하나가 나옵니다.

어차피 개인 참호처럼 지급할 것도 아니고, 대열 선두에만 배치할 거라면, 저 정도 병력을 운영할 정도면 시도해 볼 가치 정도는 있을거 같은데요...
                         
신단수 13-12-24 21:55
   
물론, 기동성 저하 등의 원인으로 소모비용 및 노동력 대비 실용가치가 없어서 운용하지 않을 수는 있겠네요... 흠...
                    
Centurion 13-12-24 21:55
   
그리고 그 정도 수레가 있다한들..
이 당시 포병들을 무시 못합니다.

당시 보병들이 전진할 때..
포병을 피하기 위해.. 스커미쉬 대형이라고 해서..
서로 간격을 벌이고 산개대형으로 흩어진 대형이 있었습니다.

보통 공격시엔 2열~3열 횡대로 걸어 가는 일이 많습니다만..
(나폴레옹 군대의 경우 빠른 이동을 위해 간 크게 4열종대를 쓰기도 했다죠)

종대의 경우엔.. 뭐 볼링핀처럼 우수수 썰릴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만큼 당시 포병들의 정확도도 무시 못했던거죠.

어지간한 수레 같은건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차라리 땅을 파고 들어가는게 훨씬 안전했죠. 그게 참호전이었구요..

훗날, 1차대전 때 서로 방어할 때는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나,
공격할 때 거의 전멸하기 일쑤여서 나온게 탱크(전차)입니다.

이후 이 탱크를 앞세우고 보병이 따라가는 보전협동전술 같은게 발전했죠.
요즘은 뭐, APC라고 병력수송장갑차니 IFV라고 보병전투장갑차니 이런게 나와서..
병사들 몸빵도 해주고 수송도 해주고 그럽니다만..

그리고 이미 이 시대에도 고지전 같은게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나 워털루 전투 같은 경우도..
평지가 아니라 언덕을 끼고 싸운 전투였고요.

아무래도 그런 수레를 밀며 올라가긴 겁나 힘들었겠죠.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이 장갑차가 없어서..
고지위로 올라갈 때 콘크리트 바른 드럼통을 굴리며 올라갔다는 전설은 있습니다만..
               
오리발톱 13-12-24 21:51
   
관례라기 보다는 당시 유럽의 병력수급방식과 관련이 좀 있습니다. 아래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만...당시 유럽 군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모으는 게 아니었거든요. 지휘관들이 횡대와 집단전술 외에 다른 전술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군은 예외가 될 수 있었지만요. 예전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벌였을 때 세력은 물론 영국해군이 압도적이었지만 승조원의 질은 미국 쪽이 나았는데, 이것도 수병 모집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리발톱 13-12-24 21:55
   
그리고 수레를 이용한 전술이라면 보헤미아의 얀 지슈카 장군이 즐겨 쓰면서 유명해진 '수레방진'이 있는데요. 이미 15세기경 부터 전장에서 써먹던 것이었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방어 한정이었고, 야전에서는 써먹을 전술이 못 되었습니다. 일단 무게 상관없이 수레를 밀면서 간다는 것 자체가 기동성의 제약을 가져왔고, 단단히 수레방진을 짠 상태에서도 한 귀퉁이라도 무너지는 날에는 진영 전체가 붕괴되는 일이 많았죠.
                         
오리발톱 13-12-24 21:57
   
현대에 와서는 한국군이 베트남 전쟁 당시 안케-패스 전투에서 드럼통을 엄폐물로 삼아 밀면서 진격하는 전술을 썼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그냥 포병으로 조지고 장갑차를 엄폐물로 삼아 진격하는 쪽이 훨씬 나았죠. 손으로 수레를 밀다가 총을 쥐고 쏘는 것과, 애초에 총을 손에 쥐고 전진하다 사격하는 건 확실히 차이가 큽니다.
                         
신단수 13-12-24 22:00
   
현대전이야 워낙 화력이 좋아서 그런 게 터무니 없다는거야 누구나 생각하지만,
저 당시는 연사력이 떨어진까,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분당 1~2회 사격인 시대하고,
분당 수백발의사격이 가능한 시대하고는 많이 다르잖아요.

뭐 대신,
부대가 운송 가능한 물자량의 차이도 크니까,
저 시기에는 저 시기대로의 어려움은 있겠군요.
                         
오리발톱 13-12-24 22:06
   
저 시절에는 이미 적과 마주쳤을 때의 싸움 뿐만 아니라 기동전을 통한 우위를 잡으려는 시도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먼저 움직여 유리한 위치를 잡고 싸우려는 거였죠. 특히 프랑스군은 군장 무게를 줄이고 보급 마저도 현지조달(나쁘게 말하면 약탈)의 비중을 높이며 부대 전체의 무게를 줄여 평균 분당 70보이던 군대의 행군속도를 분당 120보까지 끌어올려 기동성을 확보했습니다. 조금이라도 가볍게 움직이려 애쓰던 시절에 수레는 끼어들 틈이 없죠. 전장 자체에서의 유리함을 꾀하기 보다는 유리한 전장을 확보해 놓고 싸우려 했던 시절입니다.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지만요.
씹덕후후후 13-12-24 21:00
   
그냥 1~2방 쏘고 칼로 돌격하지
     
개떡 13-12-24 21:09
   
쏘다가 총알이 떨어지면 그때 돌격했죠.
     
Centurion 13-12-24 21:30
   
보통 병사 1인당 8발 정도 들고 다녔는데..
나폴레옹 전쟁 때.. 8발 정도를 전투 내내 다 쏜 병사가 별루 없었습니다..

거의 1~3발정도만 썼다고들 하죠.

보통 적군 대열하고 부딪히기 전에 한발 정도 쏘고,
바로 총검 꽂고 돌격해서 백병전이었죠.

그러다 대열이 붕괴되고, 사기가 떨어진 쪽 병사들은 도망치고,
그 뒤를 적 기병들이 추격해서 칼질로 죽여버리곤 했죠.
오리발톱 13-12-24 21:31
   
사실 저 시절의 영국군은 선제사격을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최초사격은 보통 30야드(약 18미터) 정도에서 이루어졌고, 기록에 따르면 불과 20야드에서 최초사격을 한 일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군이 유럽에서 가장 빠른 발사속도를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리발톱 13-12-24 21:33
   
저 시대의 사격은 철저히 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몇몇의 발사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결국 통제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행해졌죠.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화약이 아까워 부싯돌 끼울 자리에 나무조각을 끼우고 쏘는 흉내만 내던 시절에 재정이 넉넉했던 영국군은 실제 화약과 탄환으로 사격훈련을 했고, 훈련한 만큼 부대원의 평균적인 장전속도가 타국군에 비해 빨랐습니다. 그래서 선제사격을 맞더라도 확실히 맞힐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한 다음 빠른 속도의 사격으로 적에게 더 큰 타격을 주고, 적 대열이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돌격을 감행했던 거죠.
오리발톱 13-12-24 21:40
   
또 하나, 당시 유럽의 지휘관들이 전통적인 횡대와 집단전술 외에 다른 전술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이, 당시 유럽에서는 돈 받고 싸우는 용병 아니면 프로이센 처럼 납치나 인신매매(정말 그랬습니다)로 군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탈영의 위험성이 높았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항상 병사들을 지치게 해야 한다. 휴식시간을 주면 딴생각을 하게 되고 공황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었죠. 병력관리를 위해서도 집단전술과 횡대대형이 최선이었던 셈입니다.
     
오리발톱 13-12-24 21:44
   
이런 전통에서 벗어난 것이 나폴레옹 시절의 프랑스군이었는데, 타국과 달리 국민개병제(현재 처럼 모든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부담)를 통해 구성되었고, 프랑스 혁명을 거친 뒤인지라 병사 개개인의 국가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탈영의 위험이 줄어들자 척후중대를 통한 교란작전이라던지 종대대형 돌격을 통한 제파식 돌파작전, 횡대 대형을 갖춘 대대의 지원사격과 포병의 화력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구사하는 한차원 높은 제병협동전술이 가능해졌죠.
먹구름9 13-12-24 23:13
   
솔직히 너무 단순 무식해서 한심한건 사실이죠.
이렇게 단순무식한 유럽식 평지에서의 미친짓거리밖에 할줄 모르는 전술적으로 열등한 영국군이 숲에서 비정규 게릴라전으로 장교 저격하는 미국독립군들을 이긴다는건 전술적으로 매우 어려웠죠.
     
오리발톱 13-12-25 00:07
   
미국 독립군이 게릴라전으로 나간 건 애초에 정규전에서 영국군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죠. 프랑스가 참전해서 영국 해군을 견제하고 지상군 파견을 해주지 않았으면 이기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유럽에서 영국에 비벼볼 만한 상대가 프랑스였으니까요. 패트리어트에서는 영국군의 숙련도가 오히려 잘 드러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먹구름9 13-12-25 10:23
   
저는 정규전으로 이길수가 없었다는 거라기 보단 정규전의 열세를 극복하려고 비정규전을 했다는게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참치 13-12-24 23:28
   
아무리 사거리가 짧다고 해도 적절한 전술은 아니죠. 분명 저당시 기족과 기족의 싸움에 병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관례가 적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 영화에서도 멜깁슨이 그걸 교묘히 이용하죠. 고증을 통한 당시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이 보입니다.
Misu 13-12-25 02:03
   
이 영화 오랜만에 보네요. 당시에 볼 땐 왜 저렇게 싸우지 했는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네요
integ 13-12-25 03:40
   
저시대 총은 드륵드륵 갈기며 전진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한번 장전하는데 수분이 걸리는 물건인지라 필살기로 총알이 나가는 창검인거죠
실제 총쏴서 맞춘 적보다 총검으로 찔러죽인 적이 더 많을겁니다.
모래수레 같은걸 끌고 다니면 적 보병이 총맞으며 뛰어와서 총으로 한방쏘고 총검으로 마구 쑤셔줄 겁니다
어차피 저당시 유효사거리가 개판인지라 한발만 피하면 장전시간동안 뛰어와서 쏴줄 수 있거든요.
모래수레가 있으면 은엄폐에 따라 한번에 쏟아내는 탄환수 제약도 있고..
뭐.. 여튼 모래수레 쓸거 같으면 굳이 돈들여서 총쓸 필요없이 그냥 창에 갑옷이나 방패주는게 이득인 시대인지라..

저 시대에 총을 쓰는 것도 물자수송이나 훈련시간, 기타등등으로 싸게먹히는 부차적 이유가 커서입니다.
부자나라들은 포병을 증강시켰죠.

참고로 황제가 된 나폴레옹도 기병이나 총병이 아니라 포병출신입니다.
sdhflishfl 13-12-25 07:11
   
전술이 무기발전에 따라가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죠,,

물론 강선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명중률이 형편없었지만...반대로 타겟의 움직임과 밀집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제 구실을 발휘할수 있었습니다.

화기는 수백미터의 살상반경을 가지는데 전술은 과거의 백병전+궁수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럽니다..

이후에 토종사냥꾼출신 반란군들이 영군군을 상대로 저격전+ 사거리를 이용한 치고빠지기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하죠

우리가 보기엔  너무나 비효울적이고 괴상한 전술이지만..저시대에서는 그 이상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것은 사실 당연합니다..

스타크래프트만 해도 임요환이 드랍쉽을 사용하기 전까지만 해도 드랍쉽에 마린와 메딕을 소수실어서 적의 멀티를 견제하거나 게릴라전용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과 같죠,,
한번 헤보면..왜 이당연한것을 안했지? 하지만,,처음 시도자체를 생각해내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니까요..


현재의 너무나 당연해보이고 뻔해 보이는 개념들도 처음나올 당시애는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한국에도 조금은 다르지만.. 전술과 무기체계가 맞지 않었던 사례가 잇죠,
북한해군정을 상대로 밀어내기 해상작전을 쓰는 것과 비슷한거죠.,,
푸른노을 13-12-26 08:03
   
제목만 보고 딱 패트리어트 나올줄 알았네요.

총기가 나오고 보병전술이 변천해나간 과도기적인 시기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전술에서는 말도 안되어 보이는 저런 전열보병간의 전투가 나오는거죠

저 시기에는 총의 성능도 떨어졌고, 기관총도 없었고, 대포의 성능도 약했기 때문에 저런 전술이 횡횡했던 겁니다.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때는 기병도 여전히 활약하던 시기입니다. 카라콜이라는 전술도 있었구요.

총이 나오면서 창병+총병의 방진이 발달하면서 기병은 차차 쇠퇴해가고, 기병이 주력에서 보조적으로 사용되게 되죠.(기병->기갑으로 바뀌게 될 때 까지)
그리고 기병이 사라지면서 보병부대에서 창병은 점점 비율이 사라지고, 저런 전열보병들이 늘어나게 되는거죠
추가로 기관총-대포가 발달하면서 저런 전열보병들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의 지옥같은 참호전을 거치고 나서,
탱크가 1차 세계대전 후반에 등장하면서 탱크를 이용한 방어선 돌파-후방전개를 위한 기계화보병 개념이 나오는거죠


무기가 바뀌면 전술도 병사도 바뀌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