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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30 01:20
[밀리역사] 중부 유럽 최고의 군사강국 프로이센
 글쓴이 : 전쟁망치
조회 : 6,566  

[프로이센의 전신이라 할수 있는 튜튼기사단]

1406튜튼.JPG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의 튜튼기사단영토>

AD1233년 부터 1283년 까지 약 50년여간 계속된 정복활동
기존의 토착민들을 전부 살육하고 성채를 쌓고 독일 농민을 불려들여 대거 이주시켜 자신들의 기반으로 삼기 시작.

교황청으로부터 기사들의 이윤추구 허락을 받고 북유럽의 중계 무역을 독점하여 부를 축적 하며 잘살다가

AD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에게 결정적 패배를 당하면서 대부분의 영지를 영원히 잃어 버림


1525Preussen.JPG
<대부분의 영지를 잃고난후의 영지>

AD 1466년 포메른 지방과 단치히의 영지를 잃고 폴란드 왕의 봉신으로 전락

AD 1525년 결국 튜튼 기사단 마지막 단장인 알브레히트가 루터교(신교)로 개종하면서 로마카톨릭과 단절 기사단은 해체되면서 프로이센 공국이 성립됨

이후 폴란드 - 스웨덴 전쟁에서 박쥐처럼 저기 붙었다가 여기 붙었다하는 엄청난
외교력(?)을 보여줌(독립을 하기 위하여)

1688Branden-Preussen.JPG

AD 1618년 프로이센의 군주가 후사없이 별세하자 프로이센 공작령은 사위인 브란덴부르크 후작이 겸하게 되었다. 이때 브란데부르크 - 프로이센 이 탄생

이후 베스트 팔렌(1648) 조약 - 올리바(1660)조약 으로 각각 브란덴부르크, 프로이센 주의 주권을 획득 그리고 
스페인왕위계승 전쟁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1세에게 군대를 지원한다는 조건 아래 비밀리에  제후에서 왕의 타이틀을 획득 프로이센 왕국이 탄생

초대왕 프리드리히 1세 - 정치적, 군사적 수완이 부족 별다른 업적은 남기지 못함
오히려 프랑스 궁전을 흉내내어 재정 낭비만 심화 하지만 그나마 문화와 예술을 장려하여  대학교/ 미술 아카데미 / 과학 아카데미를 설립 베를린을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어감


Wilhelm1.JPG

(빌헬름 1세때 프로이센 왕국 영토)

빌헬름 1세 - 군인왕이라는 별칭 
프리드리히왕 사후, 국가의 번영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토확장으로만 이루어 질수 있다는 신념, 우선 전대왕에게 물려받은 허약하기 짝이 없는 
38,000명의 군대를 개혁
- 장비 최신화
- 목재탄약 꽂을대를 철제로 교체
- 근대식 총검 도입
- 전장에서의 행군방식을 통일
- 포병이나 기병보다는 보병을 우선순위로 둠
- 이때 군사 강국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비해서 숫적으로는 떨어지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월등함을 과시 여러 전투에서 숫적인 열세에도 승리
- 1715년 스웨덴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그토록 원하던 포메른 지방을 획득
- 초기 38,000명의 군대를 83,000명으로 늘림



프리드리히 2세 - 대왕
- 문화 부흥 정책
- 군국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였으나 
   쓸데없이 많은 비용을 소모하는 거인연대를 해체시킨후 
   물려받은 83,000명의 군대를 약 200,000명으로 늘림


중부유럽의 막강 보병대 - 프로이센 보병대

군인왕 이라불리던 빌헬름 1세때 군국주의 정책에 힘입어
안할트데사우 공작 레오폴드 1세에 의해서 프로이센 보병대의 엄격한 훈련 시작
머스킷 소총들의 조금식 성능이 개선되면서 잘훈련된 보병은 분당 5발 사격까지
도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러 변수가 작용되는 전장상황에서

개별 사격은 적사살에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는데 그때까지도 최대 살상력을 발휘하는 전술은 일제사격으로의 화력의 집중이였다. 하지만 보병대의 전열이 흐트러지면 그 전술도 그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1730년 안할트데사우 공작은 최초로 열병 훈련을 도입하였는데 이전부터 이미 비인간적일 정도로 가혹한 체벌과 엄격한 규율을 자랑하던 프로이센 군에게 날개를 달아준셈 

그로인해서 프로이센군은 타유럽군대에 비해서 전장으로의 행군 속도 와 
기동력 전장내에서의 적의 전략 / 전술에 대항하는 보병대의 신속한 대형 변경
가능하여 적의 군대 보다 신속히 공격을 먼저 할수 있게 되었다.

열병훈련을 통한 한몸과 같은 집단행동의 가능으로 개별 사격은 엄격히 통제하고
사격을 집중시켜 화력을 증대시킬수 있었다.
PreussenInfantry.JPG
(적 보병대에게 일제사격을 가하기 위하여 진군중인 프로이센군
상대방 적군들은 이미 엉망진창 사격으로 프로이센군 1명을 사살하였지만
고도로 훈련된 프로이센군은 집중사격의 유효거리에 닿기 까지 묵묵히 전열을 맞추어 행진
유효사거리에 닿게 되면 프로이센군은 무시무시한 집단사격을 가차없이 적군에게 뿌려대기 시작)


이렇게 프로이센군은 철저한 무장, 통일된 집단사격, 신속한 기동능력, 그야말로
전투 병기로 탈바꿈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일반화된 3열 4열 방식이 아닌 2열 방식을 채택 이는 프로이센군의 우세한 화력의 자신감으로 나오는 전열 방식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을 통해서 프로이센군의 우수성을 입증하여 이후 프로이센군 보병대의 전술은 19세기까지 이어지는 전열 보병의 주요 전술이 됨.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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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리치 13-12-30 02:06
   
즐감했습니다.
이런 글 많이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__) 꾸벅^^
식쿤 13-12-30 10:34
   
저 머스켓 시절 라인배틀 볼때마다 궁금한건데 전열에 방패병을 세우면 근접하는동안 발생하는 피해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병사들도 맨몸으로 나섰을때보다 훨씬 심리적 안정감이 생겨서 통제도 더 잘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쿠르웰 13-12-30 14:41
   
방패병이라...

아무리 위력 떨어진 머스킷이라도 플레이트를 관통할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는데
머스킷 탄을 막기 위해서 당시 철제로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를 만들려고 하면...
무게가 장난이 아니겠죠
(기사들이 보호하기 위해 입었던 풀 플레이트의 경우 30Kg 근처였습니다.
그리고 이 풀 플레이트도 머스킷, 정확히 화승총에 관통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두꺼워야 되겠죠...)

그럼 방패를 운용하기 위해서 1~2명이 붙어야할 것이고 그럼 그만큼 전력은 줄어들겠죠
거기다가 방패를 보병 속도에 맞추어서 움직인다는 것은 포기해야겠죠.
(일반적으로 속보로 움직인다고 할 때 약 75~80cm를 한 발자국으로 움직이는데
30Kg 물건을 들고 움직인다는 건 힘들죠.
그만큼 기동성이 저하되고 우회로 공격해오는 기병의 밥이 되겠죠.
그럴바에 차라리 방패를 버리고 방진으로 방어하는게 더 빠를 듯...)

그리고 만약에 진짜로 방패병이 나타난다면







전 대포로 그냥 아작내겠습니다 ㅠㅠ
     
Centurion 13-12-30 14:57
   
첫번째 이유, 어지간한 방패가 뻥 뚫리기 때문입니다. 머스켓의 위력을 얕보시면 안되구요.
 
두번째 이유, 머스켓은 거의 명중률이 안습합니다.
활강총이라 고작 50미터 전방을 맞추는 수준이니, 굳이 방패를 들고 무겁게 걸어다닐 이유가 없죠.

세번째 이유, 오히려 원거리에서 위험한건 대포입니다. 보병들을 볼링핀처럼 쓰러뜨리죠.
 대포의 피해를 줄이는건 산개대형을 취하거나, 우회하거나,  빨리 걷는 것 정도 밖에 답없죠. 방패로는 어차피 못막습니다

그런 이유로, 적의 머스켓 사정거리 밖에선 설렁설렁 걸어가도 됩니다.
대신 대포가 떨어지는거나 조심하면서...
적의 명중률이 떨어지는 곳에선 보통 속도로 걷기, 적에게 좀 가까워지면 속보,
거의 다오면 일제 사격 후 빈총에 대검꽂고 돌격 뜀박질 이런 방법을 쓸때가 많았죠.
(사실 기병대조차도 걷기-속보-뛰기-돌격 단계로 이동합니다. 스티븐스필버그의 War horse라는 영화 보면 나오죠)

제가 아래 올려둔 남북전쟁 영상 게티스버그 전투 피켓대돌격 장면을 보시면 그런 전술을 알 수 있습니다.(전투에서 쓸 체력 안배를 하는거죠)

그나마.. 이 당시에도 일부 갑옷을 입은 부대가 있긴 있는데..
나폴레옹 밑에서 활약한 흉갑기병 퀴러시어 기병들이었죠.

이들의 흉갑은 권총탄, 도검 정도는 막아낼 방탄, 방검능력은 갖고 있었고,
중기병으로 분류되었는데.. 병사들이 흉갑에서 비롯된 자신감이 분명 있었고..
지휘관들도 그런 점을 고려해 아주 험난한 임무를 맡기곤 했다합니다.

그러나 칼을 막는데는 영국근위병들이 쓰는 곰털 모자가 오히려 쇳투구보다 유용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