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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14 08:31
[밀리역사] 이충무공의 의지와 기상!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글쓴이 : 로봇태껸V
조회 : 5,446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 척 서 천  산 하 동 색             일 휘 소 탕  혈 염 산 하         
삼척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천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로 산하가 물든다   
 
성웅 이충무공께서 무인의 기상을 가다듬기 위해 방에 걸어두고 보셨다는 장검에(보물 제326-1호) 황금색으로 새겨져 있는 친필 글귀입니다.

임진왜란 중에 당시 명장이라 이름난 태귀련과 이무생에 의해 만들어 위에 글귀를 새기셨다고 합니다.
 
당시 이충무공의 의지와 기상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길이 197.5cm, 무게 5.3kg 쌍수도(혹은 쌍수 환도. 쌍수 장검)에 속하며 조선식 환도와 일본식 카타나 양식이 조합되어 만들어진 명검이라고 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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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강 14-01-14 10:42
   
네이버에 치면 나오긴 나오겠지만..혹시 제목에 있는 저것들 뜻좀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ㅣㅏㅏ 14-01-14 10:44
   
내용에 써있잖아요.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삼 척 서 천  산 하 동 색            일 휘 소 탕  혈 염 산 하
삼척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천하가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로 산하가 물든다
          
얼음누늬 14-01-14 10:53
   
動色을 떤다고 해석하나요?

뒷구절의 염(染)이나 앞구절의 색(色)이나 모두 색깔과 관련이 있는 글자로 댓구를 이루고 있어서 동색은 뒤에 산하가 물든다와 같이 동색은 색이 변한다(두려움에 낯빛이 파랗게 변하듯이 색이 변한다는 의미)고 해야 뒤에 물든다(染)과 더 어울릴 듯
               
로봇태껸V 14-01-14 11:06
   
제가 직접 해석한 게 아니라서요.

여러 언론 매체에서 널리 쓰이는 것을 올린 겁니다.
               
ㅣㅏㅏ 15-10-01 15:42
   
산과 바다가 같은색이 된다는게 똑같이 사색이 된다는 말이니 떤다는 것도 틀린건 아니겠죠.
싱싱탱탱촉… 14-01-14 11:38
   
충무공 이순신 제독과 연관된다면 무조건 지지 합니다.
역시 충무공 이십니다.
     
로봇태껸V 14-01-14 11:44
   
이충무공 관련 역사 다큐 영상 몇 편 소장 중인데요.
볼 때마다 울컥해 눈물 훔친다는...ㅡ.ㅜ
하이안녕 14-01-14 15:19
   
Mbc 라디오 단막극  난중일기  재미있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이야기는  뭐든  울컥하죠
     
로봇태껸V 14-01-14 15:54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풍류공자 14-01-14 15:28
   
저만 그런줄 알았는데 저같은 분들 많으셨군요.

충무공 관련된 부분은 저도 항상 지지 하고, 관련된 이야기들 보고 들으면 울컥합니다. ^^

다른 주제 관련해선 안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서는 그리 되는 제자신이 좀 이상하네요.
     
로봇태껸V 14-01-14 15:56
   
사실 다큐 자료 정리하다가 이충무공 관련 역사 다큐 다시 보고 울컥해서 올린 게시물이거든요. ㅡ.ㅜ
구국의 장군이셨지만 사실 성군의 그릇과 덕목을 갖추신 분이었죠~
그 사랑과 헌신이 사람들을 눈물짓게 하는 것 같네요.
KingKong 14-01-14 16:49
   
오~ 이 장검 예전에 용산에서 본거 같은데
지금은 어디있나요?
     
로봇태껸V 14-01-14 17:07
   
아산 현충사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 처음 실물을 보았을 때가 기억나네요.
2미터에 달하니 지금 봐도 거대한 검이지만 어렸을 때는 어찌나 커 보이던지 이순신 장군의 형상을 최홍만 같은 거한으로 머릿속에 그리곤 했었죠.
          
KingKong 14-01-14 17:55
   
저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본거 같은데
그럼 제가 본거 하고 다른 검인가요?
저도 그 당시 장검 크기를 보고 어린맘에
이순신 장군은 거인이었구나 상상 했었지요 ㅎ
               
로봇태껸V 14-01-14 18:17
   
님도 그러 셨군요 ㅎㅎㅎ
아산 현충사에 있는 것은 진품이고 다른 곳에 있는 것은 그대로 재현한 가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bonobono 14-01-14 19:21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신장이 180cm 가 넘는다고 하던데 그당시에는 엄청 큰 키죠...

실전에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저정도 장검을 다루려면 180cm 키는 넘어야 할듯...

장검에 있는 빨간 줄 무늬는 우리나라 칼에만 있는 특징이라고 합니다.. 정말 멋있죠..
     
로봇태껸V 14-01-14 19:58
   
180cm는 지금도 큰 키 아닌가요? 저는 루저라 ㅡ.ㅜ
사실 위의 쌍수도는 실전에서 사용하시던 실전용 검이 아니라 충무공의 의전용 검이었죠.
충무공의 검은 총 여덟 자루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하며 상징성 있는 검이 바로 위의 쌍수도로 아산 현충사에 보관 중이고 나머지 네 자루는 귀도와 참도도 각각 두 자루가 통영 충렬사에서 보관 중이죠.
문제는 쌍룡검으로 알려진 나머지 두 자루인데요.
이 쌍용검이 바로 충무공께서 실전에서 사용하시던 검으로 알려져 있고 조선 말기까지 실존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 후 나라가 우환을 겪으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해외 반출 의심)
상당히 안타까운 사실이고 하루빨리 찾아서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onobono 14-01-15 08:32
   
180이면 지금도 큰키에 속하죠..^^ㅋ 그런데 조선시대때는 아마 체감이 지금의 2m 급으로 느껴졌을거 같아요..
               
로봇태껸V 14-01-15 08:45
   
어디선가 보니 당시 왜구의 키가 140-150cm 정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왜구들이 보고 오줌 지렸을 것 같습니다.
Centurion 14-01-15 01:19
   
사실, 일본도하면 카타나라고 다들 생각하시지만...

사실, 카타나는 좀 짧죠.
사무라이 영화에서 흔히 차고 나오는게 카타나인데...

실제로 왜구들이 악명을 떨칠 때 들고 다닌 칼은..
카타나보단 노다치(대태도)라 불리우는 거대한 칼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저 장검처럼...
무려 1미터 50센치 이상~2미터30센치 이상까지 육박하는 칼들인데요.

이만하면 어지간한 창보다 깁니다..
특히 한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인 사람 키보다 짧은 창에 비하면 훨씬 길죠.

http://www.youtube.com/watch?v=PFdaSwHcwWI

위 영상을 보면 수원화성에서 노다치를 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http://beststory.egloos.com/2618796

여기보면 노다치 사무라이들의 모습이 나오죠.
(일본 사무라이 키는 뭐 거의 130~140cm 정도인데.. 칼 길이는 180cm 이상이니 후덜덜하죠)

사실, 왜구의 명성을 만든게 저 긴 칼인데..
엄청난 길이와 리치를 활용해 뭔가 싹뚝 싹뚝 짤라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명나라를 약탈한 왜구들의 저 긴 노다치에 질려서 나온게..
바로 그 유명한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원앙진입니다.

노다치든 든 왜구를 상대로
다양한 병종의 병사들이 협동공격을 펼쳐 무찌르는 방식이죠.

이게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을 통해 조선에 전수됩니다.

사실, 조선은 기존 삼국시대나 고려 초중기의 백병전 맥락이 끊어지고..
거의 원거리 타격전에 특화된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한마디로 활과 기동성 위주로 발달했지요.
조선의 무과 시험을 보면, 검술이나 창술보다는 기마술과 궁술 위주로 시험을 보지요.

한마디로, 말 타고 활 잘쏘는 걸 중시했다는 소리입니다.
굳이 보병들도 창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았지요.

반면, 일본군은 창길이가 무려 4~6미터에 이를 정도로 장창이 발달했습니다.
대신 이 경우엔 방패를 거의 들지 못하기에 갑옷을 입어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 공격에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일본의 활은 사거리가 짧고, 덩치가 커서 조악한 편인데도..
일본 전국시대 사상자 중 70%가 투석과 화살에 맞아 죽은 인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조선군이 궁병, 기마궁병 위주로 발달한 건 알만하죠.
그렇게 상당히 백병전에 취약해 졌던 관계로,
일본의 신무기 조총과 장창병, 기타 근접, 중거리, 백병전에서
활을 통한 원거리타격전을 이용한 기존의 우세를 지키기가 어려워졌죠.

그래서, 임진왜란을 통해.. 명나라 무예를 상당히 수용하게 됩니다.

갠적으로 확실치는 않지만...
이순신 장군은 상당히 무기와 전술에 있어서 개방적이고 선구자적인 기질이 풍부한 분이시기에...
조총의 복제에도 상당히 관심을 나타내셨듯, 일본의 노다치에도 상당히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마 그래서 저 검을 만든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자기자신 14-01-15 02:39
   
그런데 일본군은 조선군화약무기앞에서 철저하게 발렸죠 행주대첩.진주대첩.경주성전투 그리고 해전에서요 이순신장군한테 말이죠 비격진천뢰 일명 귀신폭탄 대표적인예 그당시 일본의화약무기기술력은 조선을 따라가지못했다고했습니다
     
로봇태껸V 14-01-15 08:30
   
지식이 풍부하시네요 ^^
님의 말씀처럼 이충무공의 쌍수도는 정확히 분류하자면 일본의 카타나가 아닌 노타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나 쌍수도는 본래 왜란 이전까지 조선에서 사용하던 양식의 검이 아닌데, (사실 조선의 쌍수도는 왜의 노타치>명 나라 쌍수도>조선 쌍수도 순으로 영향을 받음, 무예도보통지의 쌍수도와 이충무공의 쌍수도는 양식이 다름, 조선에서 쌍수도는 임진왜란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입했음, 그러나 이충무공의 장검이 노타치의 영향을 받은 쌍수도 형태라 후에 쌍수도로 분류한 듯.) 쌍수도와 노타치의 양식이 조합되었다 표현하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조선식 칼과 일본식 칼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대표적이며 흔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는(통칭적 의미를 갖는) 환도(조선식 칼 혹은 도의 통칭 일반적 명칭)와 카타나(일본에서 칼 혹은 도를 뜻함)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바랑기안 14-01-16 01:06
   
캬.. 시적감각도 대단하시다
     
로봇태껸V 14-01-16 11:13
   
문무를 겸비한 지장이시고 덕장이시며
용장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