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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4 15:26
[밀리역사] 조선의 칼 vs 일본도
 글쓴이 : 은단
조회 : 12,742  

유튜브에서 찾은 영상입니다
저도 많이 궁금한데 활은 당연히 우리나라 활이 당대 최강이었고
칼과 창은 어땠을까?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서 아주 좋은 철이 생산 되었다는 국사 내용은 어렴풋이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검술도 많이 있었다는데...
전승이 거의 안 된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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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 14-02-14 16:15
   
삼국시대만해도 수많은전쟁 멀게 볼 필요없이 고려시대만해도 많은 전쟁이 있었지요.이말은 그만큼 많은 무기 체계및 발전이 되었다는거지요 .검도 마찬가지이고 갑옷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이또한 전부 돈이고 외교적인 문제 그리고 정책의 문제등등으로 하나하나 퇴보가되고 자료로만남게되죠.

조선 초반까지만해도 병사들이 고려말갑옷화가 되어있었다고하죠. 고려전 즉 고구려시대를 보면 병사당 쇠뇌(소형석궁)를 가지고있었다고합니다.

하지만 나라가 안정적이거나 아니면 외세의 지배로 인한 제제로 하나하나 퇴보가되죠..현대 북한만 보면 알겠지만 30~40년만 막아두어도 상당히 퇴보되죠..언어조차도 많이 틀려진다고하더라고요


그런데 고려시대 말을 보면 원나로인해.무려 100년이상 지배당했죠.이말은 군사적으로도 상당히 제한받았다는얘기이고 참고로 고려시대는 무과가 없지요.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대주의로 많은것을 버리고 사대주의정책으로 나라를 500년간 버틴나라입니다.

우낀건 조선시대 무기들을 보면 전부 고려시대 무기들이 대부분이죠.이순신의 거북선또한 그 한부분입니다.물론 철갑판이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서를 참고로 만들었겠지요.참고로 고려시대 조선술은 상당했습니다.수천마리의 말을 태우고 수천척으로 송나라까지 갈정도의 기술을 가지고있을정도였으니.

참고로 조선이 자랑했던 애깃살 편전..이것도 고려시대 무기입니다.아마 삼국시대때 상당히 모든것들이 발전되어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고구려시대 쇠뇌가 있을정도면 말 다했죠.
돼지콜레라 14-02-14 16:17
   
몇개월 동안 장인이 두드리고 다듬고 잡쇠상태일때부터 상당히 공들여서 검을 완성했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금속성분과 완성도 확인하다고 댕강 잘라 버리다니
스머프 14-02-14 16:20
   
조선시대 칼도 실질적인 일본의 칼을 영향을 받은거라 합니다.?(한참 내전속에 발전하고있을떄 일본)조선은 정책으로 인해 검 자체가 많이 퇴보가 되고 기술자체가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조선중기때 조선뿐만아니라 중국내에서도 일본칼이 유행하고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발전한게 조선칼인데 딱보면 일본놈 칼 이기도하고 아닌것같기도하고 그렇다고하더군요.
     
스코티쉬 14-02-15 08:24
   
처음 영상을 보니, 칼의 길이는 임진왜란 이후 경험을 통해 왜도와 같이 길어지는 영향이 있었고,
일본 사신이 왜도를 왜의 특산품으로 조선에 조공한 기록도 나오긴 합니다.

대신 조선의 칼은 일면평조형이라는 특유의 칼날을 갖게 되면서
일본이나 중국과는 전혀 다른 칼을 갖게 되네요.
칼집이나, 칼 자체, 패용 방식도 역시 조선만의 독특한 칼로 발전해나간듯 하구요.

처음 영상 제대로 보고나시면 좀 도움이 되실듯 하네요
소목 14-02-14 16:48
   
칼은 전쟁에서 보조병기이니 크게 발달할 이유가 없습니다.
흑룡야구 14-02-14 16:49
   
이미 고려 시대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면서 전투는 화력전 양상을 띄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군 편제가 궁수와 포수 위주로 가게 됐죠.

하지만 왜구들의 전법은 잔혹무도하고 궁술이 부족하며 화승총 역시 사거리가 짧아 백병전을 굳이 하였으며 그 결과 훈련과 탄약이 부족했던 우리 군이 초반 열세를 면치 못 했음은 물론이고 대거 살육 당하면서 일본도의 공포는 커집니다.

검의 중요성은 그 후에도 그리 크게 중요시 되지 않았고, 다만 상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더불어 전후 개인 경호나 장교들의 호위 무기로 검이 사용되었습니다.
흑룡야구 14-02-14 16:54
   
참고로 기마병의 주 무기는 월도였는데 관우가 들고 다니는 검이 아니라 짧고 휜 검이었습니다.

그 외에 병과들은 대 기마용으로 장창을 쓰고 대응 무기가 있었으나 주력은 마궁, 원궁, 화포 등이었습니다.

평양성 탈환을 보면 포격 후 기병대와 궁수를 주력으로 얻었음을 알 수 있죠.

우리가 임란 당시 진 것은 무기는 좋으나 훈련과 탄약 부족으로 인해 손 쓸 수 없었음이었죠.

이는 마치 월남전 당시 F-4가 기습으로 덤비던 미그 21 등에 당한 것과 같죠. 설마 하드킬로 싸울까 했던 뭐 그런 느낌이죠.
     
스마트MS 14-02-14 23:49
   
조선초기. 조선군의 군사교리라 할수 있는 진법은 고려시대의 진법을 계승 발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조선이라는 국가가 탄생한 국초. 군사분야의 발전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어졌기에.

정도전의 <진법陣法> 하경복의<계축진설癸丑陣說>등 발전과정을 통해 등장한 여러진법을 흡수 집대성하여 만들어낸  문종의 <오위진법>이 향후.
임란이후. 조전중기에 변화한 군사교리  진법의 변화하여. 척계광의 기효신서나 이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병학지남 등장이전까지 조선군의 기본이였습니다.
이 오위진법속.  조선군 기병부대의 운용은.  기사騎射가 자그만치 60% 이며 창을 주력으로 하는 기창騎槍이 40%이였습니다.
월도를 운용하였다 할지라도 그것은 무예가 능한  소수자에 한정된것일뿐. 조선시대 기병의 주력병기는 활과 창이지 결코 월도는 아닙니다.
<만기요람>속 내용중.  어영청과 금위영에는 250/209 자루의 협도  긴외날의 장병기(세종실록에는 장검이라 표현되고 있으며 무예보통지에는 협도)를 비축하고 있는것으로 사료가 존재하나. 월도는.오군영 전체에서도 적은양으로만 기록되었던 사실이 기억나네요.
기병이란 고급병과의 무장을 날 폭이 좁은 창에서 면적이 몇배. 무게가 몇배 늘어나는 금속소비량이 증가하는 월도로 재무장 시키는것은 당시 정부입장. 조선왕실로서도 기병주력병기로 대체할수 없었을 상황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월도는 결코 짧지 않습니다.
자루길이만 6척이면 130cm이고 날붙이. 칼날길이만 하더라도 2척8촌 근 3척이면 60cm에가까운 장병기입니다.
조선시대. 대체적으로 칼날길이가 짧은 환도중. 특히 더 짧은 마상용 환도. 그중 쌍검용 환도와 착각하신듯 하네요.
sdhflishfl 14-02-14 17:35
   
조선시대때는 검보다 더 유용한 창이 있었죠.
그리고 흑룡님이 말씀하신것처럼,,활,화포가 발전하고 있었으니까요..
임진이후에도,,조선은 검보다는 조총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보면,,
무기로 검의 필요성이 없었겠죠..
없습니다 14-02-14 17:39
   
조선시대에서도 일본도(왜검)은 고급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병자호란 후에는 청나라의 요구로 일본에서 왜검을 수입해서 조공하기도 했었죠.
     
흑룡야구 14-02-14 17:39
   
무기가 아니라 장식품이죠.
          
없습니다 14-02-15 04:11
   
뭔 장식품은..
명나라의 경우 일본도 수십만 자루를 수입했는데 그게 다 장식용이겠습니까?
조선시대에 북방으로 발령받은 장수가 부산가서 왜검구입해서 올라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도검에 대해서만은 왜검을 인정해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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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降倭人과 倭劍術 受容



조선은 선초이래 왜검의 우수성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었다. 특히 세종대에는 왜의 도검술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였다. 1430년 (세종12년) 6월 일본에 건너가서 제도술을 익히고 돌아와서 일본도와 다름이 없는 칼을 만들어 바친 船軍 沈乙에게 군역을 면제해 주고 또 상을 내리기도 하였다. 또한 三浦에 내왕하는 왜인 가운데 제도술에 밝은 자가 있으면 이들로부터도 기술을 전습하려고 노력하였다.     

왜도에 대한 평가는 沈會의 보고에 의해 軍器寺에 소장된 왜도 가운데 下品이라 할지라도 매우 예리하여 군국의 중요 무기가 되었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군기시 소장의 왜환도를 북변 경비의 병사들에게 분급하여 실전에 사용토록 하였다. 당시의 貶下된 對倭觀 가운데 왜도의 효용성만은 인정한 처사로 여겨진다.

왜검에 대한 선호는 임진란시 크게 활약했던 黃進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가 일본에 체류시에 주머니의 돈을 전부 털어 보검 한 자루를 사고는 '오래지 않아 왜적이 침입하면 이 칼이 쓰이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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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 刀劍의 軍事的 運用=- 姜 性 文

논문 전문은 아래링크에.
http://cafe.naver.com/asturiastal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90
신단수 14-02-14 18:09
   
일본도는 지금도 많이 수입해갑니다. 도검법에 따라 날이 없애고 수입하죠.
장식품으로서 가치가 있으니까요.

청나라 얘들도 무기로는 일본도 안 썼어요.
그리드 14-02-14 18:23
   
조선은 활이 있었으니 굳이 칼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죠. 더구나 조선 중후기 기병들은 편곤을 사용하는데 칼이 뭐 대수라고..
흐아앙 14-02-14 18:44
   
동아시아쪽 전투에서 기병이 칼을 주무기로 사용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궁금해서 여쭙니다
맨프레드 14-02-14 20:41
   
환도는 보조무기 성격이 강했고...

임란 이후로 일본도의 영향때문에 환도의 길이가 조금 늘어나긴 하지만

주력으로 사용되는 무기가 아닌 보조무기로 취급되엇죠...

예전에 조선군 장비에 대해서 글을 본적이 있는대요..

사극에서보던 칼 한자루 덜렁 들고 삼지창 들고

포졸복 입고 뛰댕기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더군요...

병과에 맞게 쇄자갑과 경번갑을 입고 궁수와 창병은 보조무기로서 환도를 패용하고... 등등...

그 글내용 중 압권이.. 수통으로 도자기^^;;;;
딸기색문어 14-02-14 21:10
   
뭐.. 솔직히 전국 시대 때 칼에 죽은건 꼴지고 창이 주력이었음
ultrakoo 14-02-15 00:49
   
맞습니다.
조선은 고려의 군체계나 복색등을 이어받았죠.

그리고 일본도같은 형태는 이미 고려시대때도 있던 칼의 형태입니다.
일본도가 유행 했다고 하는데...성능이 좋아서, 사용하려고 유행했다는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게임이나 만화 영화등에서 주인공들이 쓰는 '칼' 이란 무기는...
사실은 극히 제한적이고 비싼무기였습니다. 상징적인 무기라고할까...

활용도나 성능에서는 주력무기가 아니였죠.
자기자신 14-02-15 02:41
   
임진왜란때 일본군주력무기는 일본도가 아니라 아주 긴창이였다고합니다 길이가 약5미터에서 6미터나 되는 긴창으로 적군을 인간꼬치로 만들었다고합니다 이것때문에 조선군이 많이 고전했다고 조총과 더불어서
Deadpool 14-02-15 04:06
   
전장에서의 검은 검병이  아닌 이상 보조무기 이지만 거의 모든병과가 휴대하고 있는
무기입니다 그말인즉슨 범용성과 휴대성 근거리살상력이 높다는거죠
전장의 근거리전용 무기라보시면 될거같고 원거리무기보단  뭐 쓸일이 적겠지만
평상시에는 검이 그 범용성과 휴대성  상징적인멋? 때문에 아주중요한 호신용 무기로 동서양  모두필수로
휴대하고 다니는 무기가되죠

그리고 환도가 제식권총
     
Deadpool 14-02-15 04:16
   
환도가 보급형 군 제식용 무기라면 칼날이 손잡이에 고정됨
일본도는 커스텀 가능한 고급형 무기라는것 칼날이 손잡이와 분리가늠
둘다강도는 별차이 없고 일본도가 절삭력이 좋고 길이가 좀  더 김
Misu 14-02-16 00:46
   
미야모토 무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