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감시하는 경찰의 초소. 단단히 요새화 되어있다.
주변 산은 그때 한반도의 다른 산들과 같이 완전 민둥산이다.
세겹의 울타리에 사각지대가 없는 공용화기의 진지 등, 구조에서 풍부한 전투 경험이 나타나 보인다.
경찰기지는 전남 영암에 있는 것이고 공비 토벌의 전방 지휘소의 역할까지 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공비들이 식량 탈취를 위해서 자주 나타나던 지역은
이런 전형적인 한국 농촌 지역이었다.
경찰들의 경비속에 부인들이 추수한 벼를 볏단으로 묶고 있다.
언덕 위에 경비초소가 보인다. 지붕이 있는 곳은 성의 망루처럼 쌓은 것으로 보루라고 불렀다.
도로를 경비하는 경찰이 산고개 아래에서 대기하는 차량들에게 통과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공비들의 특기는 도로 매복과 기습이었다.
전성기에는 호남선 열차를 기습해서 승객들을 죽이고 재물을 털었었다.
호남 지방의 전투 경찰을 취재한 마가렛 버크 기자.
카빈과 권총까지 찬 완벽한 무장 모습이다.
언제 기습 당할지 모를만큼 치안이 불안했던 지역을 취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도경 경찰 한균록 국장의 토벌 작전 전 부처님 참배.
전남 도경의 국장같다.
지방 유지들이 열어준 마가렛 기자 환영 파티.
한 국장이 한 곡조 뽑는다. 여성들은 기생들.
단독 군장에 신까지 신은 상태다.
북한군 차림으로 적지에 들어가 공비들을 소탕했다.
상태로 보아 며칠 된 듯하고 가을이 아니라 여름에 찍은 사진인 것 같다.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해서 지리산으로 도주했다가
다시 붙들려 남원의 공비 포로 수용소에 구금 되었다.
이들은 경비 경관을 해치고 탈출하다가 체포된 골수 공비들로, 이미 전원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 때의 당국 방침은 살인 혐의가 없는 공비들은 관대히 처벌해서 방면하는 온정주의였지만
이들에게는 엄격했다.
순박한 얼굴들이지만 이중에는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를 받은
진짜 골수 여성 공산주의자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중상을 입고 공비들의 포로가 된 국군을 친절하게 돌보아 준 사실이 인정되어 석방 되었다.
전 공비 임철진의 귀향.
전사한 전투 경찰 박원기의 말없는 귀가.
공비들의 매복으로 전사해서 사체로 귀가했다. 집앞에 안치된 시신을 보고 서럽게 우는 어머니.
그 무렵 어느 농촌에서도 볼 수 있었던 흔하고 슬픈 모습이었다.
철모의 흰띠로 보아 여순 사건 때의 사진이고
주 전투 후, 탈환지 회복 단계에서 투입된 헌병이 검문차 붙잡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