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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09 14:29
[밀리역사] 아래 라인배틀 얘기 있길래 다시 올리는 머스킷에 대한 잡설(1)
 글쓴이 : 오리발톱
조회 :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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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이 사용하던 브라운베스 머스킷.

머스킷의 명중률은 밀집대형을 사용한다고 해도 거리가 조금만 벌어지면 형편없이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어떤 장교는 "머스킷으로 150야드 표적을 맞히느니 달을 조준해 쏘는 편이 낫다"고 했고, 러시아의

어떤 장교는 "총은 못 믿을 물건이지만 총검은 믿을만하다"고 말했죠. 미국 독립전쟁시 미군 장교들도

"적의 파란 눈동자가 보이면 쏴라!"라는 말로 병사들을 통제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1745년 Fontenoy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2,500여 명으로 구성된 영국군은 프랑스군의

포격에 100여명이 사상한 상태에서 프랑스군에게 30야드(약 27미터)에서 일제사격을 합니다. 그 결과 프

랑스군의 손실은 600여 명, 약 4분의 1의 총만이 제역할을 한 셈입니다.

만일 거리가 100야드(약91미터) 정도로 벌어질 경우의 명중률은 심각했습니다. 1759년 Minden 전투에서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공히 100~150야드에서 일제사격을 주고받았지만, 양쪽 모두 손실률은 2% 미만이었

습니다. 1811년의 Albuera 전투에서 돌격하는 프랑스군에게 영국군이 150야드에서 일제사격을 가했지만

역시 프랑스군의 손실률은 2% 미만. 이래서 최대한 가까이 붙어 일제사격을 주고받았던 것입니다.

총의 신뢰성도 많이 떨어졌는데, 당시 실험 결과 머스킷 소총의 불발율은 16~7퍼센트 가량이었습니다.

애초에 6정 중 1정은 불발탄이 난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개인이 각개전투를 하기 보다는 집단사격을 하는

것이 지금의 산탄총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전장에서의 병력통제를 위해서도 그게 나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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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코트'로 대표되는 당시 영국군은 최초 일제사격을 아끼는 군대로 유명했는데, 한 연구가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군이 머스킷으로 싸운 전투 19개 중 10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최초 사격을 가한 경우는 21

퍼센트에 불과했고, 무려 47퍼센트의 전투에서 불과 20야드의 거리에서 첫 번째 사격을 가했습니다. 

평균적으로는 약 75야드에서 첫 번째 사격을, 30야드에서 마지막 사격을 가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최대한 명중률을 높이려는 것도 있었지만, 선제사격을 얻어맞더라도 충분히 그 이상의 타격을

안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비용문제 때문에 타국군이 부싯돌 대신 나무조각을 끼워

놓고 사격절차 훈련만 하는게 보통이던 시절에 영국군은 실제 화약을 가지고 사격연습을 했고, 그 결과

발사속도가 타국군보다 훨씬 빨랐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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