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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09 14:33
[밀리역사] 다시 올리는 머스킷에 대한 잡설(2)
 글쓴이 : 오리발톱
조회 : 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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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병사들을 지치게 해야 한다. 겁쟁이들에게 휴식시간을 주면 딴 생각을 하게되고 공황으로 이어진다."
 - 프리드리히 대왕 -

머스킷 시대의 뛰어난 전장 지휘관이자 계몽군주였던 프리드리히 대왕도 자신의 친위부대 외에는 병사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당시 유럽 국가들의 병력수급방식과 관련이 있는데, 거의 모든 국가들이 국민

개병제가 아닌 용병이나(미국 독립전쟁 때도 투입된 영국군의 상당수가 용병) 심지어 납치, 인신매매(프러

시아에서 성행한 방식, 또는 영국 해군의 징집방식인 press gang) 등으로 병력을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관들도 병사들을 신뢰하지 못했고(평시에 군기확립 수단으로 채찍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때였습

다), 전장에서 조금이라도 통제가 약해지면 탈영이나 전장이탈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경직

된 전술을 쓰도록 강요당한 면이 있죠.

그런데 이 시대의 밀집대형은 그 이전의 밀집대형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17세기 30년 전쟁 당시 군대의

대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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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병 주변을 총병들이 에워싸는 형태로 아주 촘촘하고 두꺼운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총의 화력에

의존하고 일제사격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하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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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대형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18~19세기에는 창병이 사라지고 온전히 총병의 화력에 의존하게 되면

서 대형 자체가 얇고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대형이 얇아진 다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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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의 성능과 운용전술의 발달 때문입니다. 함부로 두꺼운 밀집대형을 이룰 경우 상대 포병장교가 똘똘한

놈이라면 그야말로 볼링핀들 처럼 우수수 박살이 나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아예

소부대 단위로 산개한다면 포병에 의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텐데 왜 끝까지 밀집대형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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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말 탄 친구들이 침을 흘리며 달려들기 때문입니다. 소부대 단위의 화력으로는 기병의 속력과 충격력을

받아낼 수 없었고, 특히 횡대 대형의 측면을 들이칠 경우 전열보병들은 사냥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

다. 기병 지휘관이 요아킴 뮈라 같은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재앙이죠. 그러면 이 때 보병들의 대응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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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하게 사각 방진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앞열이 총검을 끼워 앞으로 내밀고 뒷열이 사격하는 식이었는데,

말은 꽤 영리한 동물이라 총검이 툭 튀어나와 있으면 그대로 돌격하지 않고 방진 주변을 빙빙 돌게 되죠. 그

래서 대형이 무너지지만 않으면 보병 방진과 기병대의 대결은 대부분 보병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는 워털

루 전투에서 극명히 드러나죠. 이런 일련의 원인들 때문에 머스킷 소총이 주력이던 시절에는 밀집대형을 포

기할 수 없었고, 이후 소총이 본격적으로 뇌관식 격발장치와 강선이 들어간 총열을 쓰는 물건으로 교체되

고, 결정적으로 기관총이 등장하면서 각개전투가 전장 보병전술의 주를 이루게 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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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두비두 14-07-09 15:14
   
스페인의 테르시오 진형과 네델란드 선형진, 그 다음의 라인배틀로의 발전양상을 사진으로 잘 설명하셨네요. 기-보-포 로 이어지는 묵찌빠같은 관계도 알기 쉽게 설명하셨구요. 프리드리히 대왕... 위대한 계몽군주긴 했으나 별로 존경스럽진 않은 인물이죠. 국력에 맞지 않는 육군을 기르기 위해 강간과 근친상간, 형사취수를 아예 법조항에서 빼버리고 도리어 장려까지 하면서까지 인구를 늘리려 했으니까요. 거기다 군대식 행정을 사회 전반에 퍼뜨리니 온 나라가 군국화가 진행되서...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는 얘기 안해도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