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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1 09:53
[잡담] 북한이 60 70년대에는 남한보다 잘 살았었죠...그리고 아버지가 복무한 부대에
 글쓴이 : 하얀gd
조회 : 3,365  

우리 아버지는 육군 칠성부대에서 근무를 하셨습니다

GP 비무장지대에서 근무를 하셨었죠.

때는 박정희 정부때였다고 합니다.

군 복무중에 10.26이 터졌고 12.12 정변이 끝나고 계엄령이 선포되자 전역이 미뤄지기도 했었다고..

뭐 암튼 여러가지 일이 있었데요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군내에 사건이 엄청 많았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우리 아버지 투입하기 전에 사병들이 야간에 근무를 스다가

북한 공비들이 쳐들어와 GP 국군 초소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때 사병이 2명이 있었는데

1 사병은 싸우다가 전사 1명은 무서워서 초소뒤로 숨었다고 합니다

한분은 국립묘지에 묻히고 숨은 사병은 사형 당했다고...

경계를 똑바로 못섰다는 이유죠..


또 이런일도 있었데요..

GP초소에 투입하려고 아버지가 무장을 하고 가다가 먼저 출발한 조가 북한에 공비들에게 전멸을 했었다는 사건이 발생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한 장교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었는데... GP에 투입시키기 전에 여러가지 점검을 하는 그런게 있었나봐요..

암튼 이 장교는 헌병들에게 끌려갔는데 이 헌병이 사병이었는데 이 사병이 이 장교에 계급장을 떼고

온갖 욕을 다 하고 쪼인트까지 깠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한번은 이런일도 있었데요 국군도 복수를 해야겠죠?

아버님이 야간에 GP에 근무를 스는중에 이북에 산에서 불이났었다고 합니다..


이건 국군이 한 작전이었는데요..

점호가 끝나고 소대장이 오늘 야간 근무자들 이북에 무슨일이 생겨도 가만히 있으라고 보고도 모른척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얘기는 종편에 강적들에도 언급된 이야기에요

국군 특수부대가 북한 GP초소를 파괴한 사건..


암튼 좀 심각했데요 암암리에 북한과 남한에 소규모 전투가 간간이 진행된 시기였다고 합니다..


지금 GP에서 북한이 도발을 하곤 하는데 당시엔 차원이 달랐데요..


서해5도에 해병부대에 한개소대가 전원 목이 따인 사건...

발생한 원인은 경계근무를 똑바로 못서서...

이얘긴 제가 진해에 해군기초교에서 신병교육을 받을때 당직 교관이 얘기해준 이야기고


지금하곤 완전 다르죠? ㅎㄷㄷ 한 사건들..


그리고 아버지 소대에 한 소대원이 월북해서 부대가 발칵 뒤집힌 사건도 있었고..

당시엔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았다고 합니다..

70년대에 북한은 그야말로 황금기였으니까...


다른 부대에선 부대에 상관을 살해하고 월북도한 일도 있었고

하도 맞아서 월북도 하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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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키 14-10-21 10:18
   
아버지들 하시는 말씀들어보면 당시 북한이 잘 살았긴한가보더라구요.. 서울 물난리 났을 때 당시 남한에는 희귀하던 위로물품으로 컬러텔레비전을 보내줘서 놀랬다거나..
     
하얀gd 14-10-21 10:40
   
서울 물난리때는 우리나라가 더 잘살았었어요...
그땐 전두환 정부였는데 북한이 첨에 제의를 했었데요 우리가 도와줄까? 했는데
북한은 남한이 제의를 거부할줄 알았다고 합니다..
자존심때문에 거부할것이라고 생각한거죠
그런데 남한정부가 응 도와줘 하자
북한은 난감했데요...부랴부랴 급하게 물자를 준비했었다고...
이 일로 북한 주민들이 고생을 많이하죠...
북한에 물자가 왔는데 물자들의 질이 완전 안좋았데요...쌀도 이상하고 의약품도 별로고 다 별로였데요

나중에 우리 정부가 도와줘서 고맙다고 답례품을 줬는데 우리 정부는 최신 칼라티비와 전자제품들을 보내줬는데
이일로 김일성이 완전 열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제떨이가 날아가고 그랬다던데...

그 이유가 북한의 가전제품보다 성능이 더 우수했었거든요...

그리고 남한에 원조물자를 기획한 인물은 숙청당하죠
     
없습니다 14-10-21 10:40
   
반대로 알고 있네요. 서울 물난리나서 북에서 남으로 쌀이나 옷감등을 보내줬고 거기에 대한 답례로 남에서 칼라티비등 가전제품을 보내줬었습니다.
     
좀비스타일 14-10-23 16:21
   
그때 북에서 보내준 쌀 먹어본 세대인데...

맛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나먼저가 14-10-21 10:36
   
지금하곤 정말다르네요 그래도 최근 비무장지대에서 일어난 도발로 제가 기억하기에 2000년대 중순 수색대대가 수색하는 길목에 부비트랩설치해서 군견이죽고 병사가 다친일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1년정도뒤에 같은자리에 또 해놨는데 다행히 그땐 인계철선을 발견해서 다치는일이없었구요. 근래들어서는 북한 gp 에서 무력도발을 심하게는 못합니다 분명히. 그건 gp끼리 화력차이가 심해서그렇죠. 80년대인가 90년대쯤부터 간첩을 보내다가 걸렸을때 아군gp에서 간첩잡으려고 화력을 부으면 북한gp서도 간첩보호해줄려고 gp끼리 무력을 사용하는데, 아군gp하나가 북한gp 2~3개 화력을 감당해내더라구요. 물론 북한gp가 우리gp보다 많으니 그게 그거겠지만요.
없습니다 14-10-21 10:39
   
남북한간의 경제력이 역전된게 71~72년입니다. 70년대라도 후반기에는 남한이 훨씬 잘살았죠. 80년대 남북한 GP끼리 교전한적은 없었고, 90년대 백골에서 북한정찰병이 넘어오는 바람에 잠깐 교전한 적은 있었죠.
     
하얀gd 14-10-21 10:47
   
89년도 평양에서열린 세계청년축전이후로 북한이 망가지기 시작함...
88년 서울 올림픽에 자극을 받아서 오히려 돈을 주고 오라고 했었다고...
88년 서울 올림픽 방해공작도 엄청났었다던데...
외교관들이 공산주의 나라들 찾아가서 참여하지 말라고 로비도하고...그러나 1나라 빼곤 다 참가해서
북한 망연자실....
그리고 89년도에 저런 대회를 하고 그 이후 북한이 완전히...

참 이상합니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것 같아요 북한은...

북한에 젊은 세대들이 기성 세대보다 더 못 사는 현실
오스틴 14-10-21 11:30
   
서울 물난리때 북에서 보내준 쌀 한되 하고 뽀프링(광목천),아스피린 받아 와서  사용했습니다.
쌀은 우리나라 통일벼랑 비슷했고, 광목천 뽀프링은 작년까지 사용한 프로젝터 영사막으로 썼고,
얻어온 아스피린은 가지고 있다가 버렸습니다..왜냐하면 포장지를 보니 이거 먹어서 엿되는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고, 우리나라에 더 질좋고 값싼 아스피린이 널렸는데... 정말 50년대 포장지 기술이여서
이거 먹었다가 더아플것 같아서  아스피린은 안먹었음...
오리발톱 14-10-21 12:03
   
특히 1968년에는 181회의 무력충돌이 벌어져 유엔 정전위원회에서 확인한 인명피해만 북측 무장요원 321명 사망에 국군 145명, 미군 18명이 전사했습니다. 당시 휴전선 일대는 사실상 전시상황이나 다름 없었죠.
진짜사나이 14-10-21 17:19
   
한강하구인  김포지역  초소에 가보면  군제대한지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무장공비  침투지역이라  쓰여있고  피해상황이 나와있는데  후방 이라고 생각팼다가  그거 보고는  오줌 찌릴뻔했다는
지해 14-10-22 18:35
   
78년도 10월쯤 7사단에 공비 세명이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이상  돌아다녔습니다.
한명도 못잡고 다시 철조망 너머로 도망갔습니다.
아군의 소득은 이놈들이 쓰고온  빨간모자 딱 하나 였습니다.
그때 아군끼리 오인사격으로 많이 죽었습니다

사단장을 비롯하여 줄줄이 옷벗었습니다
군법에 회부되여 사형당한 장교도 여럿 있었습니다.
검은마음 14-10-22 19:54
   
Irene 14-10-22 21:25
   
북파공작원이 90년대까지 있었죠
물밑에서는 비공식전인 전투가 계속 되었던거죠.
맘마밈아 14-10-24 08:10
   
북한은 한국보다 잘 살았던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근소하게 나마 남한이 지속적으로 우위였고 70년대부터는 격차가 압도적이 되었죠. 일단 인구가 두배 경작지도 3배 북한은 대규모 농경이 힘든 구조적 결함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