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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04 11:42
[밀리역사] [자료끌어올리기] 일본의 전차 실패사
 글쓴이 : 오카포
조회 : 2,652  

 미군의 셔먼전차에 대해서 아실만한 분은 잘 아실겁니다.
동유럽 전선에서 셔먼전차는 독일군전차에 비해서 실질적인 공격력 및 방어력 부족으로
만일 타이거 전차를 만났을 경우 바로 후퇴해도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위력이 부족한
편이었죠.
 그런 셔먼전차를 타이거 급으로 만들어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2차대전 일본 전차들
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셔먼이 투입된 것은 일본군의 전차를 파괴시키기 위함이 아닌
일본의 굳건한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함이 첫째 이유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일본군의
전차는 숫자적으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보병이 휴대한 대전차병기의 원거리 사격으로도
충분히 격파가 가능한 수준이어서 크게 문제될 게 없었죠.


상당히 유명한 사진입니다. 보통 일본전차의 굴욕이라고 불리는 사진들중 하나인데요.
사진속의 일본전차는 94식 경전차입니다.

사진출처 : http://kr.blog.yahoo.com/sturmgechutz/1163

 일본군이 셔먼전차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전차전으로 볼때 47mm 전차포로 확실히
셔먼의 측면을 격파할 수 있는 근거리까지 셔먼을 끌어드린 후 여러대의 일제사격으로
무력화 시키는 전법을 택했습니다.
 이론적으로 700m 이내라면 셔먼의 측면을 파괴할 수 있지만, 사실 700미터거리에서
셔먼의 측면을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심할경우 100미터이내까지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그정도 되면 일본군전차대는 전멸하기 일수였고, 혹시 보병이라도 근처에 있다면 
바주카포 등에도 아주 쉽게 격파당해서 어려움은 가중되었죠.
 이에 따라 일본군은 보병이 맨손으로 전차를 격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주력전차였던 97식 치하와 치하(改) 전차.
약한 장갑과 약한 무장, 약한 기동력의 3박자를 고루 
갖추었던 문제작.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http://www.military.cz/panzer/tanks/japan/chiha_kai/index_en.htm

 차라리 독일군처럼 판져 파우스트와 같은 대전차 병기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런 무기도 없는 일본 보병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폭탄을 등에 메고 적 전차에
뛰어들거나, 막대기에 흡착식 대전차폭뢰를 달고 돌진하거나 대전차 지뢰를 등에
지고 케터필러 밑으로 뛰어드는 식의 공격이었죠.




대표적인 xx 공격 삼발이 대전차지뢰 와 대전차 수류탄
사진 출처
: http://kr.blog.yahoo.com/sturmgechutz/1575

 이걸 무시할 수 없었던 건 이오지마 전투시 미군의 투입전차의 60%가 파괴될 정도
로 피해가 커졌던 겁니다. 

 
 이런 미친식의 공격만을 일본이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무래도 그냥 죽으라고 할 수 만은 없었던 거겠죠. 
1943년부터 생산된 1식 포전차를 대전차용으로 투입한것입니다.
 원래 자주포용도였지만, 개발도중에 적 전차가 너무 강력해서 파괴할 마땅한 방법이
없자 이것을 대전차용도로 전용하고 포전차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구성은 97식 전차의 차체에 75mm 야포를 얹은 형태입니다.
간단하게 제작하기 위해서 선회포탑도 없고 지붕도 없는 단순한 벽을 둘러싼 형태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사용된 90식 75mm 야포는 1897년형 프랑스제 속사포를 일본에서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개량한 모델로 셔먼전차의 주포도 같은 원형을 사용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1식 포전차 호니-1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mirejet/110040235705

관통력은 450m 에서 100mm, 900mm 에서 75mm정도로 셔먼의 정면 장갑을 어떻게든
상대해볼 수준은 되었고, 실제 필리핀이나 미얀마에서 M3나 M4를 상대로 어느정도
효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주포는 전차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매복 공격 말고는 정면 승부는 불가능한데다, 결정적으로 숫자가 부족했습니다.
생산댓수도 많이 잡은 자료로는 138대, 적게 잡은 자료로는 55대 수준이어서
어느쪽을 생각해봐도 뭔가가 될수가 없는 숫자였죠.

1. 1식 중전차

1식 중전차 치헤. 얼핏 97식 중전차(改)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차체가
용접구조로 바뀌었다. 엔진도 강화되는 등 큰 발전을 보였지만, 양산된 시점인
1944년엔 이런식의 전차들은 모두 구식이 되었다는 점.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태평양 전쟁 중 주력전차는 사실상 97식에 47mm 포를 엊은 97식(改) 전차였는데
이 뒤를 이을 전차가 개발되어 있었다. 바로 1식 중전차 였다. 
 엔진은 240마력, 장갑판은 최대 50mm, 차체도 리벳 접합 (흠.. 이건 인터넷에서
확인해 보세요. 리벳 접합이란 쇄기를 박아서 철판과 철판을 연결하는 방식입니다.
이방식의 절대적인 단점은 이 리벳이 포탄을 맞거나 충격으로 떨어져 나가면 
내부에 튀어서 사람이 다칩니다. 또한 리벳이나 리벳이 박힌 부분의 철판이 겹쳐지는
부분 때문에 무게가 많이 늘어납니다. ) 에서 일부 탈피, 용접 공법을 도입하는 등
나름 일본전차 치고는 애써서 만들었다. 단 주포가 47mm 속사포였다. 
 종합적인 내용으로 보면 독일의 3호 전차에 장포신 50mm 주포가 달리기 전의 버젼과
동등한 전투력이었지만, 문제는 이것이 이미 3호 전차가 구식화가 된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1941년 전쟁 발발시점에 등장했다면 나름 어느정도 위력을 보였겠지만, 
생산이 시작된 시점이 1944년 봄이어서 이때쯤 되면 미군은 셔먼이 수만대 생산된
시점이고, 독일이나 소련의 경우는 티이거2 나 스탈린 전차 와 같은 괴물전차가 
등장하던 시점이었다. 47mm 주포에 50mm 장갑판은 아주 완벽한 '낙오자'일 뿐이었다.
 그나마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서 생산을 시작했지만, 170대를 완성하는데서 그쳤다.
게다가 '함부로 소모하기 아까운 전력' 이라고 판단, 태평양 전선에는 거의 보내지지 
않았다. 혹 보내졌다고 해도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2. 3식 중전차


3식 중전차 치누. 차체는 1식과 같다. 차체에 비해서
포탑이 큰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포탑에 야포의
포가(야포 밑 지지대)를 그대로 실어야 했는데다 차체가
워낙작어서이다. ( 일본의 전차포의 소형화 능력이 부족
했다. 즉 야포에서 밑받침을 빼야 하는데 뺄 기술이 부족
해서 그대로 실었다는 이야기)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일본도 바보가 아닌 이상 47mm 주포의 1식 중전차가 셔먼에 대해서는 능력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워낙 없으니 그거라도 쓰자고 만들기는 했지만서두 ...
 그래서 제작된게 3식 중전차로 1식 중전차에다 75mm 주포를 얹고 포탑을 개량한게 
전부였다.


셔먼 킬러로 기대되었던 3식 중전차였지만, 무게가 20톤이 안된다. 여기서 중은 
무겁다의 重전차인데, 다른나라에서는 가운데를 뜻하는 中전차도 20톤이 넘어갔다.
티이거 重전차는 50톤이 넘는다. 
 사진출처
: http://cafe.naver.com/nojungmi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clubid=11447943%26page=11%26menuid=314%26boardtype=L%26articleid=103016

 75mm 주포 탑재로 셔먼에 대항할 화력을 겨우 확보했지만, 포탑 돌아간다는 것과 
지붕이라도 있다는 거 말고는 자주포와 다를게 없었다. 즉, 매복해서 한발쏘고 도망가지
않으면 그자리서 죽는다는 건 별다를게 없었다. 
 이런점 때문에 차기 주력전차로 4식 전차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워낙 없는 전력이다보니
이것도 대량생산에 들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포탑과 주포 빼면 1식과 같았기 때문에
생산이 비교적 쉬워 1944년 12월 부터 다음해 봄까지 166대가 완성된다.
 그나마 이것도 실전에 배치되지는 않았다. 
 이미 이때쯤이면 오키나와도 이오지마도 이미 미군손에 넘어간 이후였기 때문에
본토 방어전을 빼고서는 활동할 방법도 없었고, 이전차의 승무원들에게는 다행이지만
본토결전 이전에 전쟁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3. 4식과 5식 중전차
 원래 일본은 전차등의 장갑 방어력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일본의 전차 개발이 시작될 무렵에는 10~25mm 사이의 장갑판도 세계 평균으로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고, 2차대전 무렵에는 능력부족 등으로 인해 개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을 "장갑판이  너무 강하면 뒤에 숨기만 하고 
돌진하려 들지 않는다" 라거나 " 천황폐하가 하사한 전차에 감히 무슨 불평이냐"
라는 어처구니 없는 핑계로 깔아뭉겐 것이다. 
 이 때문에 전장 현지에서 일부 전차부대가 97식 전차의 장갑판을 강화하려하자
"명령 불복종","불경죄" 등으로 지휘관이 처벌될 뻔한 사례마저 있었지만, 
어쨋든 전차의 장갑판을 강화해야 된다는 인식이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 첫번째 사례가 바로 4식 중전차이다.


 미로서 세계적 평균의 중(中)전차에 근접함을 보여주는 4식 중전차 치토.
전면장갑이라도 간신히 75mm 를 확보했고, 주포도 그제야 대공포에서
개량된 장포신 75mm로 발전했다. 이래봐야 겨우 셔먼전차 수준이고,
신뢰성, 편의성, 거주성 등은 매우 열악했다. 
사진출처
: http://blog.naver.com/mirejet/110039866147

일단 장갑부터가 기존의 일본 전차보다 훨씬 우수했다. 최대 75mm !!
정면 장갑이 셔먼급 (포탑의 정면장갑은 셔먼과 비슷하고 차체는 셔먼이 조금 얇지만
셔먼쪽이 경사장갑을 가지고 있어 방어력에 큰차이가 없음) 까지 올라간 것이
일본 전차치고는 꽤나 분발한 셈이다. 
 공법상으로도 차체는 용접가공에다가 포탑은 무려 주조! ( 틀에다가 녹인쇠를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방식,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포탑은 용접형이나 리벳형보다 훨씬 강한
방어력을 보인다. 현대전차에서도 T-80,90 시리즈나 메르카바시리즈의 포탑내장갑도
주조포탑으로 만든다. ) 
 주조방식은 기술 부족으로 좌우로 분할해 주조한 뒤에 용접하는 방식이었지만 어쨋든
대단한 진보였다. 
 기동성 역시 400마력 엔진을 개발, 최대 45km/h 까지 속도를 올렸다.
 주포 또한 강화되어 4식 75mm 전차포를 만들었는데, 이 포는 뜻밖에도 대공포에서
개조된 물건으로 중국에서 노획된 스웨덴제 75mm 대공포를 개량한 것으로 , 
대공포는 원래 높은 고도까지 빠른 속도로 탄을 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철갑탄을 
넣고 쏘면 상당한 관통력을 발휘할수 있어, 티이거 전차의 경우도 자국의 88mm 대공포
를 전차포로 개량한 적이 있다. 
 이 포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일본은 1000미터 거리에서 셔먼을 격파할 수 있는 수단을 
손에 넣었지만, 4식 중전차는 그래도 문제가 있었다.
 측면 장갑이 가장 두꺼운 곳도 35mm 정도에 불과했고, 엔진이나 조향장치의 신뢰성도
높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물건이 5식 중전차이다.


구 일본군 최후의 5식 중전차 치리. 88mm 포를 장착하기
위한 덩치이지만 그래도 무게는 37톤. 포탑만 만들고
포도 달지 못한 시제품이다. 차체에 37mm 대전차포가 
있는데 어디에 쓸 생각이었을까? 
사진 출처 : 위키디피아
 5식중전차는 전면장갑은 4식과 같은 75mm 지만  측면장갑이 50mm 수준까지 강화되었고,
주포는 무려 88mm 였다. 일단 계획상으로는 초기분에는 75mm 포를 달 예정이었지만,
당시 개발중이던 88mm 주포가 완료되면 바꿔 달 예정이었다.
 이 포는 독일제 88mm대공포를 기초로 개조한 것인데, 이것도 역시 중국에서 노획된 물건
이었다. 독일이 1930년대에 중국에 수출한 Flak 18 대공포를 중일전쟁당시 노획한 것이다. 

 이렇게 분발했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일본에선 한계까지 무게를 늘린 중전차라지만, 실제 무게는 4식이 30톤, 5식이 37톤으로
비슷한 시기에 나온 M4A3E8 셔먼이 34톤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겨우겨우 비슷한
전투력을 보였을 확률이 높다. (숫적인 차이를 생각한다면 비슷비슷한 전투력은 문제가 
크다.)
 게다가 '셔먼 킬러'로 기대된 5식 중전차 조차도 본토방어전에 들어갈 경우 문제가 아주 
컸다. 예정된 시기 쯤 되면 미국의 '티이거 킬러'로 제작된 M26 퍼싱 전차가 1000단위
대량생산이 끝난 후였다. 42톤에다가 전면 방어력 110mm 경사장갑을 지닌 퍼싱을 상대로
하기엔 88mm포로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 같은 88mm 포라도 일본의 포탄제조력을 
생각해보면  위력이 훨신 떨어졌을 것이다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수량적인 측면은 더 심각했다.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4식 중전차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5~6대 정도가 생산되었고,
5식 중전차는 주포조차 탑재되지 않은 시제품 단계였던 것이다. 아무리 일본이 노력을
했다고 한들, 만일 전쟁이 끝나지 않고 본토결전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때시점에서
겨우 몇십대에 불과한 전차들로써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본토결전이 없었던 덕분에 이물건들에 탈 예정이었던 승무원들의 관이 되는 신세는
면하고 모두 폐기되었다.

자료 출처 :  플래툰 2006년 07월호 중 일부 발췌.
                 ( 어느정도 생략되었고, 사진자료는 첨부되지 않았으므로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과월호 구해서~~~ 보세요. 혹은 인터넷으로 잡지를 볼수
                    있는 사이트가 있으니 그곳을 통해서 보시길. 참고로 유료입니다.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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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15-01-04 19:24
   
아무리 쓰레기 전차라도 저 시대의 쪽바리들 기술력은 쪽팔리지만 인정해 줘야 합니다. 강대국한테는 쓰레기 전차로
보이지만 동북아 동남아 지역에서는 저 쓰레기 전차를 대적할만한 아무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돌파 당했으니깐요.
2차세계대전  비행기 , 항공모함 , 잠수함등을 자력으로 만들어서 미쿡의 본토를 폭격했지 않습니까.
핵을 2발이나 쳐 맞았지만 ..
     
배신자 15-01-04 21:39
   
본토?... 본토라고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진주만이라고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