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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15 08:20
[영상] 임팔작전 무다구치렌야(여명의 눈동자)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6,878  

20150515_081635.jpg

여명의 눈동자 무다구치 렌야 등장..(5회)

 

무다구치렌야가 도죠히데키 자리에 앉았다면 전쟁은 더 일찍 끝났을터인데...



여명의 눈동자 E05 작성자 koreasharer

무다구치 렌야의 명언 감상.. 

3:40초부터 시작

21분02초 칭기스칸 전법 현지조달론

http://www.dailymotion.com/embed/video/xvs5in?start=1260


http://www.dailymotion.com/video/xvs5in_%EC%97%AC%EB%AA%85%EC%9D%98-%EB%88%88%EB%8F%99%EC%9E%90-e05_tv



임팔작전 다큐.

임팔작전

임팔 작전
날짜
1944년 3월 8일 ~ 1944년 5월 3일
장소
인도 임팔 전역
<:> 교전국 1 교전국 2
교전국 일본 제국 연합군
지휘관 카와베 마사카스 
무타구치 렌야 
찬드라 보세
무타구치 렌야
윌리엄 슬림 
제프리 스쿤스 
잭 볼드윈
병력 3개 보병사단 
1개 전차연대
4개 보병사단 
1개 기갑여단 
1개 공수여단
피해 규모 72000명 이상 사망 
(32000여명 전사 
40000명 이상 아사)
17500명 전사
결과
연합군의 결정적 승리
기타
일본군의 흑역사,일본판 칠천량해전

우리 일본은 이제 끝났다.

일본 해군 중장 다카기 소키치가 
스파이를 통해 임팔작전 내용을 들으면서.


Battle of Imphal.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3월 15일부터 7월 1일까지 버마(지금의 미얀마)와 인도 국경 지대에서 벌어진, 일본군 최악의 흑역사.

밑의 사람들이 반대했음에도 높으신 분이 밀어붙였다는 점과, 보급을 적에게 탈취해서 채우려 했다는 것과, 결국 패망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는 점에서 독일의 아르덴 대공세와 유사점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독일의 경우 있는 거 없는거 다 끌어모아서 도박을 한 것이라면, 임팔 작전의 경우 버마-벵갈 전선에서 호각을 이룰 정도로 나름 규모있던 일본군을 말아먹은 것이라는 것.

무타구치 렌야 장군의 대한독립운동만행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런 정신 나간 작전이 승인된 것은 자기 파벌과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일본군 높으신 분들의 책임도 크다.

보급을 적에게 탈취한 것으로 채우려고만 하면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작전 같지도 않은 정신나간 짓거리라 그런지 심지어 일본어 위키백과에서조차(그 일제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일본어 위키페디아에서조차!) 서문에다 '보급을 경시한 엉터리 작전', '무모한 작전의 대명사로 인용된다'라고 대놓고 까고 있다.

보통 일본군의 작전명칭 작명은 대부분 카타카나 글자만 하나 붙여서 ○호작전이라고 한다. 따라서 일본군에서 붙인 작전명은 우호작전(ウ号作戦)이고 Battle of Imphal의 번역상 임팔 전투로 기재하는 게 정상이지만 한국에서는 임팔 작전으로 부르는 경향[1]이 있다. 리그베다 위키 때문인가?[2] 간혹 임펄 작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참고로, 위키백과는 임팔 전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https://mirror.enha.kr/wiki/%EC%9E%84%ED%8C%94%20%EC%9E%91%EC%A0%8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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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개 15-05-15 09:21
   
솔직히 렌야가 아무리 삽질했다고 하더라도 독립군으로 지칭하는 건 상당히 불쾌한데요.
저 사람으로 인해 죽은 한국인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위안부보다 일본 여자를 더 많이 강간했으니 문제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Centurion 15-05-15 09:34
   
제 드립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이미 떠돌던 드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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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군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 중장'
牟田口廉也 1888. 10. 07~1966. 08. 02
 
대한광복군 비밀공작요원 제 1호 구 일본군 장성.
 
9만 2천명의 병사를 제대로 전투도 하지 않고 1만 3천명으로 줄여버린 팀킬의 귀재.
그의 만행을 아는 한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ㅋㅋㅋ라고 조롱을 섞어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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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따지며 그냥 무능한 적장인데..

중일전쟁의 발발에 관여한 노구교 사건의 핵심인물이고,
임팔작전에서 일본군 1개 군단급 병력을 보급곤란으로 자멸시키는 등..

의도치 않은 무능과 오판으로 팀킬과 일본패망에 도움이 되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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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삼대오물

삼대오물

三大汚物

일본 육군의 3바보들.

일본군 최강의 잉여인간 3인방이자 코미디의 정점.사실 연합군이 보낸 스파이라 카더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구 일본군의 패망을 앞당긴 일본군 장성 3명을 묶어서 현대 일본에서 일컫는 말.대한민국 독립 유공자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극우들도 버릴 만큼 흑역사를 남겼고, 전원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추대받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이 밖에도 일본군을 패전으로 이끈 도조 히데키의 측근 7명이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이름으로 까이기도 하니 그 쪽도 참고.

일본 육군의 최대 파벌이던 육군사관학교 - 육군대학 출신이고, 도조 히데키가 내각을 뒤엎어 전시 수상에 취임한 뒤 능력과 관계없이 코드인사로 요직에 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높으신 분들이 무능하면 나라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

다만 사람을 포기하지는 않았고 그냥 무능이 죄라서 그래도 인간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최소한의 인간 대접은 받는다. 일본군에는 심지어 삼대오물보다 더한 인간말종들도 있었다! 졸장을 넘어서 혹장(酷將)이라 불리는 하나야 타다시[1], 그리고 버마에서 100만이 넘는 무고한 생명을 학살하며 현세에 강림한 악귀이자 삼간사우의 광장(狂將) 기무라 헤이타로, 치치시마의 식인귀 다치바나 요시오 등... 피가 무슨 색인지 짐작조차 못할 이 "쓰레기" 들에 비하면야, 이들은 그냥 다시 말하지만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무능한 잉여들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냐?"며 학살을 반대하거나, "미친 놈들! 민간인들은? 걔들은 사람도 아니야?"라며 세균전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거나, 마지막엔 책임감으로 xx하는 등 다들 사람 자체는 악인이 아녔다. 그저 바보였을 뿐이다.

-무타구치 렌야 - 임팔 작전 항목 참조.

-스기야마 하지메 - 도조 히데키와 함께 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주도했고, 모든 참모들이 현실성 없는 작전이라며 반대하던 무타구치의 임팔 작전을 제대로도 안 읽고 같은 라인이라는 까닭에 최종 승인했다.

-도미나가 교지 - 1944년 남방 전선에서 필리핀의 제4항공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뒤 62회 카미카제를 시도하여 별 소득 없이 400여 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그리고 1945년 1월 미군이 필리핀 공략을 시작하자마자 항공군 총사령관 주제에 적전도주했다.

https://mirror.enha.kr/wiki/%EC%82%BC%EB%8C%80%EC%98%A4%EB%AC%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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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짓 오래한 사람들은 다 아는 드립일거에요. 너무 진지하게 생각치 마세요. 그냥 조롱임.

그리고 독립군으로 지칭한게 아니라 독립유공자.. 독립에 공이 있다~는 뜻이죠.

일본군 패망에 기여를 했으니..

사실 중일전쟁 자체가
미국을 자극해, 일본에 대한 석유 등 자원공급을 중단케 했고,
여기서 전쟁을 멈추고 점령지를 다 돌려주고 빠져나오느냐,
쌩까고 전쟁하느냐는 문제로 진주만 공습이 결정되어 결국 일본이 패망하는 계기가 되지요.

즉, 중일전쟁 자체를 시작하게 만든 노구교 사건의 책임자(당시 연대장) 무다구치 렌야은
일본의 무리수에 방아쇠를 당긴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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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야간훈련중이던 일본군 중대에서 총소리가 들렸고 병사 한 명이 실종되었다.[1] 일본군은 발칵 뒤집혔지만 실종된 병사는 20분 뒤에 돌아와서 "똥 싸느라 늦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사실은 감쪽같이 숨긴 채 중국군에게 실종 병사를 찾기 위해 중국군 주둔지역을 수색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군이 이를 거절하자 연대장인 무타구치 렌야는 독단으로 전투태세를 명령하여 과연 독립군. 이것은 조선독립운동의 일환! 다음날 8일 새벽에 중국군 진지를 포격하고 불시에 공격을 퍼부어 루거우차오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지휘부는 중국군의 루거우차오 철수, 사태 책임자의 처벌, 중국측의 사죄를 요구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전협상에 응하지 않겠다며 되레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양측의 공방끝에 일단 열린 정전 협상에서 일본은 북경내의 반일운동 세력의 소탕, 루거우차오 사건에 대한 중국측 책임을 인정할 것, 그리고 쑹저위안과 29군 고위장교들의 사과를 요구했고 7월 11일에 일본군 특무기관장인 마쓰이와 중국측의 친더춘 간에 가까스로 3개항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 내용은 쌍방은 즉시 사격을 중지한다, 중국군은 영정하의 우안으로 일본군은 풍대로 철수한다, 원평현성의 수비는 반일성향이 강한 부대 대신 다른 부대를 배치한다 등이었다(마쓰이-친더춘 협정).

그러나 애당초 일본은 협상을 타결시켜서 전투를 멈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7월 10일에 일본군 참모본부는 중국 내 주둔군의 방어와 거류민의 보호를 위해서는 북지(중국을 가리키는 당시 일본의 용어)파병이 불가피하다는 보고를 육군성에 올렸기 때문이었다. 마쓰이-친더춘 협정이 체결된 그날 일본 국내에서는 이미 5개 관련부처 장관들이 중국에 일본의 위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3개 사단의 파병이 합의되었고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이를 밀어붙임으로써 중일전쟁이 본격화된다.

결국 사태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은 장제스는 7월 12일 노산에서 "만일 현재의 사태가 최후의 관두에 다다르면 민족의 역량을 걸고 항전할 결심이다" 라는 담화를 발표해 중국과 일본은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https://mirror.enha.kr/wiki/%EB%A3%A8%EA%B1%B0%EC%9A%B0%EC%B0%A8%EC%98%A4%20%EC%82%AC%EA%B1%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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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개 15-05-15 11:14
   
그 떠돌던 글 볼때마다 불쾌했는데 다시보니 또 불쾌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짜피 그래봐야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떠돌던 글이 바뀌지는 않겠죠.
               
보통이 15-05-15 11:50
   
하긴 보시는 관점에 따라 좀 껄끄러운 표현들이 많은 게 사실이긴 합니다.
엔하위키의 자료들은 거개가 서브 컬춰를 일단 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설명이니까요. 좀 직선적이고 너무 단순화/일반화했다고 생각되지만 깊이보다 자료가 추구하는 학제적 연결폭을 감안하자면 대체로 자료의 출처가 명시된 객관성을 지향하고 있어요.

사실 저도 사견으로만 보자면 어휘들이 내키는 타입은 아닌 듯 하네요.
다만 센츄리온?//이라는 분이 댓글 올려주신 성의에 비해 너무 각박한 대응으로 보이실까봐 몇 자 보탭니다.
                    
Centurion 15-05-15 13:43
   
허허~ 대신 그렇게까지 챙겨주실 필요는 없는데 고맙네요 ㅎㅎ

다만, 갠적으로.. 저도 소시적부터 밀리터리쪽에 취미를 둬서..
20년 정도 밀리사이트를 띄엄띄엄 다니긴 했는데...
엔하위키 같은 분위기가 옛날 밀덕들 분위기에 딱 잘맞아떨어지는 감이 있죠.
(나름 디테일한 정보, 후일담, 유머코드, 직설적이고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용어 사용 등)
밀덕용 유머코드랄까..

2대갤 유저들 분위기랄까.. 갠적으로 하이텔 군사동호회 시절은...
밀덕 초창기 시절이라, 그렇게까지 좀 삭막한 풍경은 아니긴 했는데..
요즘은 뭔가.. 좀 밀리터리 분야도 현학적인 사람들이 꽤 많고,
그런 사람들간의 충돌양상이 많더군요..
물론 덕후 수준을 넘어 현역 과 관계자급 전문가들도 많이 보이지만요.

갠적으론 현대전은 좀 사람냄새가 안나고,
무기 스펙, 무기 모양새만 빠는게 거북해서 잘안좋아하는 편인데..
가생이 밀게가 디씨 항전갤이나 해전갤 느낌처럼... 공군, 해군 주제가 많고..
주로 육군도 총기덕후나 스펙에 집중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아마 FPS나 비행시뮬 좋아하는 분들도 꽤 있을거 같네요.
전 턴제게임이나 역사RTS, 전략시뮬, HOI 2 스타일 좋아하는데.

그래선지, 요기 게시판 흐름도 대부분 그런 쪽으로 가고..
이 글도 거의 호응도 없네요.. 하기사 저도 2차대전은 좀 질린 부분이 있긴 한데..
확실히 게시판 분위기에 안맞긴 안맞나봅니다 ㅎㅎ
피노누아 15-05-15 14:46
   
구일본군의 진정한 엑스맨.
연합군의 스파이.
그러면서도 이시이같은 악랄한 전쟁범죄는 딱히 하지 않아서

전범재판에서도 참작할 정도였다니...(진정 스파이? ㅡㅡ^)

암튼...
보급을 경시하면 어찌되는지 처절하게 보여준 케이스.

근데 웃기는게
여기에서 주기적으로 터지는 독도분쟁>대마도를털자>본토상륙하자 식의
일본 정벌론? ㅡ,.ㅡ 에서 항상 나오는게 (그냥 상륙했다치고 보급은?이란 테클에) 일본은 풍족해서 거기서 보급하면 된다는 주장 하는(그것도 열렬하게...) 사람이 누구누구 있었던거 같은데...
그사람이 지휘관이 된다면 제2의 렌야. ㅋ 전군을 아주 씨를 말려버릴듯.
     
Centurion 15-05-15 15:17
   
갠적으로 저도 대마도 상륙은 그렇게 현명한 전략같지 않습니다..
사실상 재수없으면 포클랜드 꼴이 날 수도 있죠. 사실상 원정온 영국해군한테 쫄아서..
포클랜드에 상륙해서 점거한 아르헨티나군들처럼 그냥 오히려 역관광 혹은
폭격 타겟이 되버리면 곤란하지요..

게다가 본토까지 상륙해서 만약 해자대에 배후가 차단되고,
대한해협을 30노트로 건너가도 대략 3시간은 걸릴텐데.. 그 와중에 상륙선단이 공습을 당하면..
역시.. 제해, 제공권이 중요한 상황이라..
상륙하더라도 육군이 적에게 항복을 받으려면.. 도쿄까진 진격해야 될텐데..
육자대 규모를 생각해도 충분한 병력과 빠른 기동력이 필요하니, 이 역시 쉽지 않겠죠..

데프콘 1부 한일전쟁에서도 한 군단급 정도만 상륙한거 같은데...
해자대는 고속정러쉬로 겨우 털었지만, 오히려 자신만만해하던 육전에서
결국 육자대에 막히는걸로 끝난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