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최강 한나라보다 로마가 상시 굴리던 야전상비군 규모가 더 큽니다. 주둔군과 보조군 외에 상비로 굴리던 군단병의 수효가 전성기 시절엔 25~30만 수준이었어요. 상비 야전기동군의 수는 한나라보다 항상 수적 우위를 보이는데다, 한나라가 약점을 보이던 기병중심 군대를 맞아서도 대등하게 싸우다 못해 승률이 오히려 더 높은 군대가 한나라보다 쳐진다는 계산이 어떻게 성립되나요.
로마가 상시 투닥거리던 파르티아, 사산조는 한탕 전투에 기병 15~20만을 껌으로 뽑아내던 국가들입니다. 그것도 카스피해와 스텝초원의 유목기병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그랬으니. 사실 흉노한테 심심하면 탈탈 털리던 한나라와 비교하면 로마군이 직면한 환경이 더 열악했는데도 승률은 더 높습니다.
훈족의 정확한 기원은 오리무중이지만 중원에서 서진한 흉노족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로마는 거의 유린 했구요. 상비군을 얼마나 동원할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 군사력의 발전 정도가 유럽보다는 동방쪽에 월등히 앞선다고 봅니다. 로마는 유럽에서만 최강국이였다고 봅니다.
글라디우스가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해서 로마 무기가 뛰어나다고는 할수 없다고 봅니다. 글라디우스는 기원전에서 15세기 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 사용된 무기니까요.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유럽 무기 체계는 상당기간 발전이 없었다는 겁니다. 핵폭탄 보다 글리디우스가 무서운 무기는 아니지요.
훈족이 서진한 흉노족이란 설도 문제가 많은 학설이라 정답은 아닙니다. 애초에 당시 유목민족을 민족으로 나누는 것이 매우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워낙 섞여있으니...ㅋㅋㅋ 그리고 당시 최강국은 한나라라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고대 전투력을 대략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전투병과의 세분화와 분업화, 진형유지와 움직임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 부분에서 당시 한나라가 압도적으로 월등했죠. 애초에 유목민족과 싸우는 한나라와 수렵위주의 농경사회를 이루던 갈리아족, 게르만족과 싸우던 로마와 비교가...
막장 서로마나 그렇게 털린 거고, 서로마가 맘먹고 덤벼서 한탕 크게 붙은 카탈라우눔 싸움에선 아틸라가 이끌던 훈족도 사실상 패배합니다.(유목국가와 정주국가가 비슷한 비율로 똑같이 소모하면 누가 불리한지는 자명하죠.)
그리고 항상 훈족에게 조공을 바쳤다고 까이는 동로마의 경우 훈족보다 더 위험한 상대라고 판단한 사산조에게 더 큰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동로마 야전군 7할이 사산조와의 국경에 배치되고 있었고, 2할은 아프리카와 이집트에 배치되어 있었으니. 동로마는 사실상 1할 남짓한 야전군으로 훈족을 상대해왔던 셈입니다. 그마저도 콘스탄티노플까지 위협하기 시작하자, 사산조와 외교적 협상을 통해 동부 야전군을 예비로 돌려 훈족을 타격할 준비를 갖춰나갑니다.
사실 훈족따위는 동로마의 고려에선 그냥 돈주고 달래는 입장에 불과했습니다. 병력 소집해 한판 붙는 것보다 그냥 돈주는게 싸니까요. 물론 아틸라가 침공예봉을 동로마로 돌릴 무렵엔 생각보다 너무 큰 훈족을 상대하려 야전군 상당부분을 예비로 돌린 후였죠. (결국 아틸라가 죽고 나서 그 아들 하나는 박살나고, 하나는 바로 항복합니다.)
아틸라가 살았건 죽었건, 결국 끝은 몰락뿐이었습니다. 서로마와의 전쟁에서 너무나 큰 소모를 겪었기 때문에 이미 전성기의 그 국력이 아니었고, 정작 상대할 동로마 야전군은 사산조와의 전투에 잔뼈가 굵은 정예에 훈족과 같은 유목기병과의 싸움에도 능숙한 베테랑들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여전히 상당한 전력을 자랑하던 훈족군대는 동로마와의 야전에서 아주 간단하게 깨졌습니다.
이미 몰락기에 접어들던 서로마를 깬 것 가지고 개털리네 마네는 적절한 소리가 아닙니다.
로마의 반쪽이던 동로마가 야전군 전력의 3~4할을 돌린 것만으로도 훈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현제 시기 전성기 인구가 7500만에 달해 동시기 전한/후한과 비교해도 오히려 인구가 더 많은데. 국력이 한나라나 흉노에 비교 강하다 말하기 어렵다니... -_-(한나라가 수시로 박살나던 흉노세력과 조우해서도 전혀 꿀리지 않던 파르티아/사산조랑 맨날 투닥거려 거의 항상 상대적 우위를 쥐고 있었고, 6세기 무렵엔 반토막난 동로마로 아주 멸망을 시켜버리는데, 국력이 딸린다라...)
전성기 로마는 유럽깡패였지만 미국은 국제깡패입니다.
전세계 vs 미국 해도 초반에 살짝 밀리지만 그후 발라버린다더군요 (디시해전겔?에서 들은말임)
미 국방력의 핵심 니,미츠급 항모 격침시키려면 200발 이상의 대함미사일을 동시에 날려야한다고
러시아가 인정할 정도였으니까요(이건 러시아 워게임)
<그러나 또 다른 연구는,
전쟁 당일 밤 로마군의 지휘 계통이 붕괴되어 아에티우스 자신이 훈 진영에 고립되었다가 겨우 탈출한 사실을 밝혀 내었고, 로마군에 소속되었던 프랑크군과 테오도리크 왕이 전사한 서고트군도 극심한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아틸라의 서로마 침공으로 로마 제국의 병참 기지 역할을 했던 갈리아가 폐허화되어 로마의 후방 보급로가 차단되었다.
이 전쟁 후 명장 아에티우스의 입지가 약화되는 것도 전쟁의 승패와 관련해서 매우 시사적이다. 아틸라의 훈 본대는 갈리아를 떠나 20여 일의 행군 끝에 수도로 귀환했다. 그리고 채 1년도 못 되어 아틸라가 또다시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교황 레오 1세의 시종관(侍從官)이었던 프로스페르티로(Prosper tiro)의 기록에 의하면, 무저항의 진격을 계속한 아틸라의 공세에 방어력을 상실한 아에티우스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에게 이탈리아를 떠나 피신할 것을 권고하였다.
452년 봄, 아틸라는 100,000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줄리아 알프스를 넘어 오늘날의 베네치아 평야에 도착했다. 유명한 아퀼레이아(Aquileia) 성을 차지한 후, 또 평원으로 진입했다. 다시 아에밀리아(Aemilia) 지역을 정복하여 당시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Ravenna)를 압박하였다.>
저는 로마가 2개로 나누어진 시기를 로마의 전성기로 보지 않습니다.
로마군의 구성은 순수 로마인으로만 되어 있지 않고... (이말이 조금 애매하긴 합니다만..)
이런 저런 병종으로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훈족 스타일의 대규모 기병을 상대하는 경험이 로마군에게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마군의 중심이 중장보병이기는 하지만, 기병을 포함한 다양한 군종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있고,
로마가 전성기에 진행했던 많은 전투에는 기마민족을 상대로 한 전투도 상당수 있습니다.
특히 로마가 성공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렇게 전투에서 패배한 상대 민족도 조건만 맞으면 로마인으로 차별받지 않고 인정을 받을 수가 있었고, 그런 무차별적인 융합으로 다양한 병종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죠.
훈족이나 몽골족이 행했던 저항시의 무조건적인 학살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제가 로마를 미국보다 높게 보는 것은 지금이야 항해술이나 첨단 통신 장비로 미국정도의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저 시대의 항해술과 통신수단을 가지고 저렇게 견고하게 이민족 땅에서 로마의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것을 높게 보는 것 입니다.
저는 전성기의 로마를 미국 보다 더 많은 다문화와 해외 주둔군을 가진 국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시대 차이를 고려해서요 ^^)
1> 세계최초의 중장기병은 페르시아 지역에서 나타납니다.
특히 세계최초의 등자는 스키타이인들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네들 주 활동무대는 카스피해와 아랄해, 흑해연안의 스텝지역입니다. 동북아에선 5세기 무렵에서나 등장하는 중장기병이 파르티아 제국에선 기원전부터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말과 사람 모두 갑주를 갖춰입고, 등자 없이도 사람 둘을 창으로 관통시킬 정도의 충격력을 보유했습니다.(당연히 이네들의 승마술은 흉노족들과 비교해도 뒤 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구려의 전매특허쯤으로 여겨지는 개마기병은 지중해세계에서 700년 먼저 등장합니다. 보병중심 군대로 알려진 로마조차도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이들 기병국과 상대하다보니. 3세기 무렵엔 로마군도 말과 사람 모두 갑주를 갖춰입고, 기병창으로 사람을 관통하는 중장갑 충격기병을 수천단위로 운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로마군의 수준을 고구려와 비교해 열등하다 여기면 곤란합니다.
적어도 중장기병 운용에 있어선 고구려보다 최소 300년 이상 앞서 먼저 운용했고, 고구려보다 물경 700년을 앞서 중장기병을 운용하고, 그걸 수천단위로 일거에 집중해 운용하던 국가(파르티아, 사산)와 투닥거리며 몇차례고 그 수도를 불태운 국가가 로마입니다.
애시당초 개마기병이란 개념자체를 세계최초로 개발한 나라가 파르티아이고, 그걸 세계최초로 감당하고 가장 많이 싸운 게 로마군입니다. 능수능란한 보급차단이나 다양한 전술적 병볍의 경우에도 로마가 남긴 탁티카나 스트라테기콘등의 내용을 보면 뒤떨어지는 면이 하나도 없습니다.(오히려 14세기나 가서야 로마의 전술론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유산을 고대로 보존한 동로마군의 경우 야전에선 그 강력한 사산조와 붙어 시종일관 우세를 보였습니다. 마케돈 왕조 초창기 사산조와의 전투를 보면 양 야전군이 보여주는 전략적 기동과 전술기동을 보면 현대전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도화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등장까지 갖춘 완전한 의미의 중장기병조차도 사산조가 가장 먼저 운용했습니다.
고로 고구려 개마기병을 얘기하면서 지중해기병이 열등하단 식의 논조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계최초로 중장기병을 운용하고, 세계최초로 등자까지 갖춘 중장충격기병을 운용한 문화권이 오리엔트 문화권과 지중해 문화권입니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게 동북아 중장기병들입니다.
2> 4세기 무렵 로마군, 사실상 멀쩡한 야전기동군을 보존한 유일한 반쪽인 동로마군의 경우 주력야전군의 대부분이 기병화되어 있었습니다. 훈족을 상대하던 로마군이 보병중심의 군대는 아니란 뜻입니다.(동로마 기동야전군의 경우 대략 1200Km를 8일만에 주파할 정도의 기동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150Km수준으로 왕년 고구려가 보여주던 전략기동능력과 비교해도 우수하면 우수하지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구름위하늘님은 로마를 너무 미화해버렸네요. 대규모 정벌을 하는 나라중에 복속민을 이용안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몽골을 포함해서 한나라등의 국가들도 모두 복속민을 군사적으로 이용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장 흥한것이 노예제도이고 해외의 경우 그냥 식민지라고 불러도 틀린말이 아닙니다. 속주니 뭐니 혹은 자유민이니 그런 이름으로 포용한 피지배민들이 모두 평등하게 대접받은 것도 아니었고 사실 서세동점 시기의 유럽열강들의 식민지운영은 로마군의 것을 따온것이라고 해도 틀린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패배한 민족도 조건만 맞으면~~~ 이런식으로 말하시는데 일단 약간이라도 반란이나 저항이 있는 부족은 그냥 다 학살해버렸습니다. 미리 미리 밟아둬야 조용하게 시킨대로 따른다는 것이죠. 이게 몽골이나 훈족의 무조건적 학살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아니고 그냥 동일했습니다.
솔직히 그 많은 로마의 노예들이 다 어디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로마를 문화적이고 훌륭하게 묘사하고 싶은 애들은 보통 유럽애들이고요. 사실은 로마나 훈족이나 몽골이나 별 차이 없었습니다. 정복자들을 보면 보통 큰 차이가 안납니다.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려면 기필코 처절한 보복이나 본보기로 본을 보이고 반항할 만한 족속들은 쓸어버리면서 노예를 늘리는게 광대한 지역을 다스리던 나라들의 공통된 모습이죠.
다문화 없고 그냥 로마문화와 하등한 야만 문화로 구분되었고, 해외주둔군이라고 하면 요즘의 해외주둔군이 떠오르니까 그냥 식민지군대라고 하는게 적합하다고 봅니다.
로마가 한나라보다 쎘다구요? 글세요 지금 미국은 마음만 먹으면 못쳐바를 나라가 없지만 로마는 많은데요.방패는 그냥 뚫어버리는 연노병과 훈족도 서방으로 밀어버린 흉노를 기마전력으로 처바른 한나라 철기군을 로마가 무슨수로 막아요 진이라곤 방진밖에 없는데 더군다나 로마는 전성기때 다민족을 얼기설기 엮어서 조금만 틈이라도 보이면 다 쪼개지는 모래알이지만 한나라는 단일민족 국가였는데 만일 로마처럼 속주나 속방의 군사력을 다 한나라로 치면 한나라도 그리 밀리는 전력도 아님
군사적으로 보자면 성채에 처박혀 나오지 못한 군대는 죽은 군대입니다.
(이건 종류불문 모든 군사학 책에서 거의 공통으로 꼽는 포인트입니다.)
강력한 방공망을 가진 게 양자간 군사력 비교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지요? 모스크바와 몇몇 핵심지역에서의 우수한 방공망을 가진다해서 전쟁에서 지지 않는게 아니라 봅니다만.
애시당초 방공망을 언급하는 자체가 방공망 바깥의 자산들은 모두 포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거죠. 이걸 확장하면 방공망 바깥으로의 군사행동은 삼가한다는 뜻이고요. 보통 이런 수세적 군사행동을 두고 열세를 인정하는 표징으로 봅니다.
사실도 그렇고요.
본토의 밀집된 방공망을 벗어난 곳에서 군사적 행동을 할 경우 러시아지상군이 미지상군을 당해낼 수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러시아 지상군은 2015년 지금에 봐도 심각할 정도로 한심할 지경입니다. 예산의 우선배분을 받지 못하는 러시아 지상군에게 너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미군과의 군사경쟁에서 밀린 탓이겠지만,
소련은 70년대 이후에는 외부로의 군사력 투사(핵전, 재래전)를 포기했습니다. ^^
물론 평화를 외치면서.... ㅋㅋㅋ 잘 포장하는 것이겠지요.
소련의 군사력에 대하여 과장된 면이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사실로 알고 있고,
그걸 감안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3가지 시사점 있습니다.
- 경제력의 열세를 인정하고 소련은 무기생산보다는 연구개발로 예산 집중 배정
-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 전략로켓트군과 대공미사일은 충실하게 갖춤
- 러시아의 방공체계의 핵심은 모두 차량화되어 있음
미군 vs 러시아군의 싸움에서 승자는 미군이겠지만,
그 승리가 영광의 상처이냐 상처뿐인 영광이냐는 의견이 갈리겠지요.
2> 따라서 핵을 사용한다는 것이 상대보다 전력적 열세에 처함을 뜻하는 논거는 될 수 없습니다.(그런 식의 시선은 WTO가 선제적 기습핵투발을 핵심교리로 삼고 있었다는 걸 전혀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고로 보는 시선에 따라 이 논거 하나만 가지고, NATO와 WTO의 우열을 가리는 의미없는 병림픽 밖에 열리지 않을테니 성립이 안됩니다.)
3> 공지전 교리의 태동과 70년대 이래 소련측의 교리적 발전과정 양태를 살펴보면, 이미 서로간의 전략, 전술핵의 전력균형에 도달했기에 비핵 재래전에 더 큰 무게를 두고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따라서 NATO가 핵이 아니면 WTO를 막을 수 없다는 건 다분히 결과론적인 발상에 불과합니다. WTO는 NATO군에 대한 완전한 전력적 우위를 자신하지 못했고, 그 결과 핵의 선제적 기습투발을 핵심으로 하는 교리를 70년대 중반까지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기 위해 NATO가 핵을 사용한다 해서 NATO가 WTO에 비해 전력적 열위에 처했다고 보는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생각하시는지요?
5> 말씀하신 논지를 반대로 풀이하면 WTO군은 선제적 핵투발이 없으면 NATO를 당해내지 못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사실도 성립이 됩니다. 따라서 NATO지상군이 WRTO보다 약해서 핵없으면 막을 수가 없다란 주장은 제 입장에선 별로 납득이 안가는 주장입니다. 어차피 60년대 말까진 어느쪽이든 전쟁에 대놓고 핵부터 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Simply stated, the OMG has a primary role of speeding the advance of the main forces.
Donnelly further states that an army-sized OMG, in support of a front, would have the mission of attempting to bring about a very rapid strategic conclusion before NATO forces could obtain nuclear release."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정말
OMG 가 비핵재래전을 상정한 것이라고요? 이전 말도 바꾸시나요?
님이 바로 윗에 쓰신 댓글에서는 상호핵전에 더하여 선재기습핵투발까지 주장하시더니...
그럼 OMG가 Wasaw Pact. 의 전략이 아니고 소련연방 해체후에 성립된 전략이라고 이야기 하시는 건가요?
님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요.
OMG는 적이 핵공격을 하는 경우에도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으로 구사된 것입니다.
돌파구를 만드는 방법으로 핵을 쓸 경우와 쓰지 않을 경우가 모두 포함되고요. 하지만 돌파구 생성시의 핵 사용이 필수는 아니였습니다.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재래식 전력만으로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았고, 그 후에 NATO의 핵공격을 받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습니다.
돌파구 생성 후에 전과를 확대하기 보다는 종심 깊숙이 들어가는 것도 핵공격에 효과적인 대응 때문에 그런 것이고요.
이전까지 있었던 돌파구 생성 후에 역포위 전과확대가 목적이 아니라,
기동군은 적공격보다는 종심기동을 우선한다... 이게 OMG의 차별적인 내용 아닌가요.
뭐가 뭔지 모르겠네요. 어휴 머리 아파.
한번 더 서로 핀트가 안맞는 것이 확인 되면 그만두기로 하죠.
상호 엉뚱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요.
소련군에서 "적의 핵 투사 상황에서 부대의 생존과 행동의 자유를 얻어 적에게 공세를 하기 위한 핵공격 회피나 생존에 초점을 맞춘 조직적 이동이다. 그리하여 대핵 기동은 기동의 한 형태다." 이렇게 얘기했다는 것이 제가 잘못안 정보인가 봅니다.
그리고 한나라 전성기는 전한시대인데 이시절 로마랑 비교하면 로마는 그냥 발려요 한나라한테 로마의 전성기인 100~200년은 한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한나라가 밀리는 감이 있지만 조금 더 지나서 북위가 등장하고 난뒤 북위한테도 발리고 그리고 북위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수에게는 그야말로 처침하게 발릴만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로마의 생산력이 한나라보단 높을지몰라도 수나 북위와 비교하면 그보단 훨씬 아래일겁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로마가 한나라보다 생산력이 두배높았다는 말도 신용이 안가요 그시대 생산이래봐야 농사 방직기술 제철 제강 기술인데 그건 한나라가 더 기술력이 좋았어요. 농업기술이야 밀과 쌀의 토지면적당 생산력을 생각하면 한나라 압승이고 제철 제강기술 방직기술 역시 한나라의 압승입니다. 실크로드가 왜 생겼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다만 상업은 로마쪽이 앞서있다고 말할수 있는데 고대의 전쟁에서 상업이 미치는 영향력이 1,2차 산업보다 더 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죠.
한나라 전성기인 시절에도 로마의 국력은 별로 뒤쳐질게 없었는데요...
삼두정의 일두였던 가 소아시아 및 시리아 일대의 정복활동으로 얻은 인구만 1200만명이라는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무렵 로마가 지배하던 인구는 대략 5000만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전한 전성기의 인구가 3500~4500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구 = 생산력 등식이 성립하는 고대경제구조로 따진다면 생산성 이전에 생산의 규모에서 로마가 밀리는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기병 비율이 반이 넘는 10~20만 내외의 군사력으로 거의 매년 그것도 수백년 동안 투닥대던 로마-파르티아-사산의 관계를 보면 그 동원능력 역시도 결코 뒤지지 않을뿐더러.
이 파르티아-사산의 군사력은 전성기 북위와 비교해도 더 강력하면 강력하지 뒤지는 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밀과 쌀의 토지 면적당 생산량은 당시 기록을 보면 시칠리아-이집트와 비교하면 중국의 그것이 우세하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당장 기원전 소아시아의 평균토지면적당 생산량이 중국황하 중류 평균보다 높은 마당에....-_-)
그리고 제철 제강기술에 있어 중국이 서양을 능가하는 시점은 송나라무렵입니다.
(그 이전엔 제철-제강 기술에 있어선 오히려 시리아 일대와 메소포타미아 일대 지역이 더 앞서 잇었습니다. 한나라의 주철 생산기술이 특기할 만한 건 사실인데 그것이 양자간 병기의 질을 가늠짓는 척도는 될수 없습니다.)
로마 동시대에...페르시아, 인도, 한 다 한칼하던 나라였고
로마는 전성기때조차 독일을 점령 못했고...이집트도 완전히 지배한게 아니고 이란하고는 투닥거리는 상대였음
한은 유목민족을 쫓아가서.....영혼까지 털어버렸고...중국 왕조중 유일하게 조선을 털어먹은 나라임..(그래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틸라는 한에 쫓긴 흉노중에서 제일 멀리 도망간 종족임......흉노중에선 약체일 수도 있음.
그리고 지금은 미국의 리즈시절이 아니며 몰락하는 중임
경제는 70년대에 정점을 찍었고 오일쇼크, 금 본위제 폐지 이후 80년대 미국이 신자유주의 채택하고...점점 몰락하는 중이고
정치는 90년대 페레스트로이카가 그 꼭지점을 찍고 추락하는 중임
한때 세계 경제에 절반을 차지했던 미국이 지금은 국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놓고보면 200년전 청은 고사하고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 만큼도 안됌
그리고 영국 리즈 시절의 경제 군사력은 상상 이상임.....현재의 미국과 견주어도 별로 꿀리지 않음...
일단 세계에 지표면에 1/3을 차지햇던 나라임 바다는 더 심하게 지배했고...- -a
유럽애들이야 거의 대부분의 주요국들이 로마 문화가 정신적 고향이다보니 빨아대는건 이해가지만...
엄청난건 맞지만 동시대 다른 잘나가던 국가들 보다 더~~라 할정도는 못됌
1> 로마는 전성기가 아닌 시절부터도 라인강과 도나우강 유역일대를 지배했었습니다.
독일의 대도시인 쾰른과 아우크스부르크등의 기원이 로마식민시입니다. 오스트리아의 빈 역시 마찬가지죠. 현대독일연방공화국 영역의 대략 3할 가량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2> 또한 로마는 이슬람 제국에게 빼앗기는 순간까지 이집트를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심지어 오늘날의 에티오피아까지 찝적댄바 있습니다.) 게다가 이란하곤 투닥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로마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파르티아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국력을 소모하다 1세기만에 그 수도인 크테시폰을 3차례나 약탈당한 바 있습니다.
로마와의 전쟁으로 국력소모가 심해 망해버린 파르티아 대신 들어선 사산조도 팔미라 사건외엔 대개는 저자세로 일관합니다.(메소포타미아 서부지역을 할양한다든지하는) 오히려 로마가 유리한 고지에 서서 후두려 패다가 가끔 얻어터지는 형국에 가까웠습니다. 사산조의 전성기조차도 로마를 원래 영토로 밀어넣는 이상의 성과는 보이지 못했습니다.
3> 최근 러시아 역사학자들의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훈족과 흉노족은 동일한 민족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발굴결과 이들의 생활양식과 유물양식이 흉노와는 상당히 틀려, 스텝초원 일대에서 자생하던 일단의 유목민이란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경제규모는 로마제국이 한제국보다 1.9배 컷습니다. 당대 최대 도시인 로마,시리아.알렉산드리아. 소아시아와, 발전된 문화와 인구밀집지역인 오리엔트을 차지했고 생산력이 좋은 북아프리카 프로빙키아(스페인) 갈리아(프랑스)이런 옥토들을 차지해 발전했죠.
한나라와 로마의 다른차이는, 한나라는 자체역량을 통해 자가발전적으로 제국이 되었다면 로마는 삼니움족을 정복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피로스의 침공을 이겨내고,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무너뜨린뒤 제국화의 길에 들어선뒤 오리엔트 최강의 시리아의 대군을 폼페이우스가 격파해 시리아를 밟아버린뒤 사실상 제국이 됬습니다. 그야말로 정복을 일궜고 정복의 대상들은 대부분 자신들보다 강하고 발전된 나라들이였기 때문에 사실상 그리스물이 살짝 든 야만인들인 로마인들이 정복을 통해 각지역은 문화들이 융화해 로마만의 라틴문화가 완성되었고 이는 유럽문명의 요람이 된 셈이죠.
한나라는 유방이 건국할때부터 이미 어느정도 완성에 가까운 제국이였고 로마는 약소한 도시국가에서 전쟁을통해 모든걸 얻은 제국이 되어갔단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결코 한나라보다 뒤떨어진 나라가 아니였고 이는 역사적 사실과 자료로도 증명됩니다.오히려 통계에 따르면 로마가 앞서는 수치들이 더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