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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2-08 00:08
무서운 위력의 소총탄 - 덤덤탄의 개발 이후 소총탄의 발전 (스크롤 압박)
 글쓴이 : 오카포
조회 : 4,576  

1866년, 영국군은 후장식 소총이 필요해짐에 따라 기존의 577구경 전장식 소총(rifled
musket)이던 Pattern 1853 엔필드 라이플에 스나이더식 경첩 폐쇄기구(Snider hinged
breech block)를 조합하여 스나이더 엔필드 라이플(Snider - Enfield rifle)을
채용합니다. (당시 많은 군대들이 경제적으로 저혐한 이런 개조를 통해 새로운
후장총을 구비합니다.)
이 소총은 경첩처럼 총에 연결된 약실 부분을 옆으로 젖혀서 열고 총알과 화약이
들어있는 종이 탄포(paper cartridge)를 장전하고 뇌관(percussion cap)을 박아넣고
쏘는 식이었죠.


비록 경제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불편하고 가스가 셀 위험이 컸던 총기였습니다.

그래서 1871년에는 더욱 확실해졌으며 위력적이고 장전이 편해진 단발식 마티니 헨리
라이플(Martini-Henry rifle)을 도입합니다.


이 총은 방아쇠울 겸 장전 레버를 밑으로 당기면 폐쇄기(falling block)가 아래로
내려가며 약실이 열리고 여기에 종이와 황동 탄피가 사용된 577/450탄을 장전하고 다시
닫아준 후, 쏘는 방식입니다. (577/450은 영국식 탄약 명명법으로 평균지름 577구경의
탄피에 45구경 탄이 물려졌다는 의미입니다.)

1879년, 영국은 새로운 탄창 장전식 볼트액션 라이플을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경합을
벌입니다.
이 경합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미국인 리(James Paris Lee, 1831 ~ 1904)가 만든 탄창
및 노리쇠 시스템과 영국인 민간기사 멧트포드(William Ellis Metford, 1824 ~ 1899)가
만든 강선 총신과 탄약 시스템이 주목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시스템이 합쳐진 새로운 소총이 1888년 12월에 Magazine Rifle Mk.I으로
채택됩니다.
그저 Lee-Metford 라 불리거나 혹은 Magazine Lee-Metford나 이걸 줄여서 MLM이라
부르는 소총이 등장한 것이죠.


1st Lifeguards, 보어전쟁중 새로운 소총과 함께.
단, 저 하얀색 방서모와 띠는 보어인들에게 좋은 표식이 되어버려
얼마안가 흙이나 차로 염색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더 나중에 모든 것이 카키색으로 변하면서 이제 thin red line은
thin khaki line이 되버리죠.


이 MLM에 사용된 탄약은 303구경에 항동제 림드 카트리지를 사용하며 정식으로
Cartridge, Ball, Magazine Rifle Mk.I, Solid Case, .303inch라 표기됩니다.
탄약에는 215그래인에 둥그스름한 끝을 가졌으며, 즉 round nosed, 재킷은
백동(cupro-nickel, 구리-니켈 합금)으로 만들어진 총알이 사용됐고 발사약으로
71.5그래인의 흑색화약이 사용됩니다.

발사약은 단위시간당 최대한의 연소속도를 얻기위해 중간에 점화공이 뚫려있는
관상으로 성형됐고 1평방인치당 19톤 정도의 약실압력을 만들어 총알을 총구속도
1850/ft/sec정도로 날려보낼 수 있었답니다.
한편 탄피내부에는 발사약을 충격과 습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약칠이 된 막이
들어있는 식이었죠.
일견 그 당시까지 얻어진 모든 경험을 축척시킨 탄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Mk.I 303탄은 별로 오래 사용되지 못할 운명이었습니다.
1886년, 프랑스 화학자 Paul Vieille는 Poudre B(Poudre Blanche, 영어로 하면 white
powder)라 불릴 본격적인 무연화약을 개발합니다.
Poudre B는 콜로디온(collodion, 니트로셀룰로오스의 알코올-에테르 용액)에 순수한
면화약을 혼합해넣은 것으로 흑색화약(Poudre Noire, 영어로 하면 black powder)과
비교하면 흰색으로 보였기 때문에 Poudre B라 불렸습니다.
이 프랑스의 무연화약은 기존의 흑색화약보다 3배가량 강력했고 말그대로
무연(無煙)이라 할 만큼 훨씬 적은 연기와 훨씬 적은 찌꺼기를 남겼습니다.
곧 프랑스군은 이 Poudre B를 군용총포용 발사약으로 채택했으며 그 결과, 이 때까지
사용되던 흑색화약은 완벽한 구시대의 산물로 취급되게 됩니다.

한편 다이너마이트왕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1887년에 발리스타이트(ballistite)라
불리는 새로운 발사약을 개발합니다.
노벨의 발리스타이트는 45%의 니트로글리세린과 45%의 콜로디온, 10% 장뇌(camphor)가
혼합된 것이었죠.
성능은 더욱 향상됐습니다만 가소제로 사용된 장뇌가 화약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외에서 새로운 무연화약의 개발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은 Explosives
Committee라 불리는 정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를 만들고 새로운 무연화약을 개발하게
됩니다.
1889년, 위원회의 의장이던 프레드릭 아벨경(Sir Frederick Abel)과 제임스 듀월경(Sir
James Dewar)은 58%의 니트로글리세린과 37%의 면화약, 5%의 석유젤리(mineral jelly,
상표명으로 하자면 바셀린 vaseline)를 아세톤을 용제(solvent)로 혼합하여 만든
무연화약을 선보이게 됩니다.
이 무연화약은 마치 스파게티 가닥처럼 뽑아서 만들어졌고 그래서 처음에는 cord
powder라 불리다 곧 코르다이트(cordite)란 더 그럴듯한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코르다이트가 완성되어 발표되자 노벨이 황당해집니다.
자신이 만든 발리스타이트와 유사한 놈을 새로 개발했다고 하니... (곧 특허권 분쟁이
벌어졌고 법정공방끝에 1895년, 노벨이 패소하게 됩니다.)

1891년, 마침내 영국은 코르다이트(Cordite)를 발사약으로 채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연화약 발사약이 들어간 Cartridge. Ball, Magazine Rifle Cordite
Mk.I 혹은 그저 줄여서 Mk.1C 라 불리는 탄약이 개발되어져 1894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됩니다.
Mk.IC의 총알은 흑색화약이 사용된 Mk.I과 같은 215그래인 짜리가 사용됐고 총구속도는
초당 1970피트정도, 약실 압력은 1평방 인치당 17.5톤 정도였다고 하죠.

다만 이 새로운 탄약이 만족스러웠던건 아니었습니다.
열대 기후에서 발사약이 변질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이보다 더 심각한건 발사약의
연소온도가 높아 총포를 손상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흑색화약이 사용된 Mk.I과 Mk.II(Mk.I을 약간 개량)가 여전히 생산되는
기현상이 벌어집니다.

한편 문제있던 Mk.IC는 2차 보어전쟁(the Second Boer War) 이후, 65%의 면화약에
30%의 니트로글리세인 5%의 석유 젤리가 혼합된 개선된 코르다이트(cordite MD, MD는
MoDified)를 사용하는 Mk.IIC로 진화합니다.

1895년 11월, 새로운 무연화약 탄약에 맞춰 강선과 조준장치등이 개량된 새로운 소총이
지급됩니다.
바로 Lee-Enfield Magazine Rifle Mark I 혹은 그저 Magazine Lee-Enfield (줄여서
MLE)이라 불리는 물건이죠.
여기서 엔필드(Enfield)는 영국 런던 외곽에 있는 소읍의 이름으로 1804년에 브라운
베스(Brown Bess) 머스킷을 조립하는 공장이 창설되며 그 이름을 역사에 남기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여기에는 영국정부의 조병창이 있고 총포 연구센터가 위치하는 곳이기도
하죠.

여튼 채용된 303탄(흑색화약 및 무연화약 버젼)과 MLM 혹은 MLE 소총의 성능은 일견
기존의 45구경에 비해 만족스러웠다고 합니다.
빠른 총구속도와 평탄한 탄도로 인해 명중률 좋고 위력도 그럭저럭 괜찮았던거 같고
반동적지 탄창과 소총 특유의 노리쇠 덕분에 발사속도면에서 괜찮았으니.

그러나 다좋을 수는 없는 법.
1890년대, 영국군은 인도와 아프간에서 작전중이었고 여기서 신형탄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게 됩니다.
'광신적 야만인'들을 한방에 쓰러트리는데 새로운 303탄은 부적당했다는 것이죠.
심지어 303탄이 채용되기 전에 사용됐던 마티니 헨리(Martini-Henry) 라이플이 오히려
좋다는 식의 반응까지 나오게 되니.
아닌게 아니라 45구경 480그래인짜리 납탄을 85그래인의 흑색화약으로 발사하던 마티니
헨리 라이플은 그 위력을 충분히 입증한 물건이었죠. (참고로 마티니 헨리의
카빈모델은 410그래인짜리 총알과 70그래인의 발사약을 씁니다.)
덕분에 신형 라이플대신 구식 라이플을 찾는 병사들이 생길 지경이었답니다.

여기서 초기의 303탄(Mk.I/Mk.II/ Mk.IC/Mk.IIC)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들 수 있습니다.

1. 너무 느린 속도.
   초당 1970피트정도의 총구속도는 120그래인정도의 총알에 유리한건 아닙니다.

2. 안정된 관통상태.
   앞이 둥글고 긴 총알은 인체내에서 불규칙한 운동을 하기에는 안정적인 형태였고
   거기다 초기의 303탄은 너무 단단하여 잘 팽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약 속도라도 빨랐다면 탄착시 더많이 팽창하려 할 것이고 유체정역학적인
   쇼크(hydrostatic shock)와 일시적 손상(temporary cavitation)에서 얻어지는 효과를
   볼 수라도 있었을 겁니다만 초기의 303탄은 이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하죠. (단.
   생각보다 관통성능은 좋아서 코끼리 두개골도 관통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불쾌하기 짝이 없는 현상에 대해 영국군은 일찌기 사냥꾼들이 알고있던 경험을
적용한 해결책을 찾아내게 됩니다.
바로 총알 앞부분의 재킷을 까내고 납으로된 탄심 부분을 노출시키거나 여기에
구멍이나 흠집을 더 내주는 것이었죠.
바로 덤덤탄의 탄생입니다.
오늘날의 소프트 포인트(Soft Point, SP)나 홀로우 포인트(Hollow Point, HP)와 유사한
그런 놈을 만들어낸 겁니다.
궂이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JHP나 SJHP(Semi-Jacketed Hollow Point)에 가까우려나요?


이미 이 때쯤에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던 별난 모양의 총알이 물린 탄들이 나왔었죠.

이런게 이미 1870년대부터 만들어졌다는게 심난... 실상은 머스킷 볼 시절에도 비슷한 짓을 했지만

요런 십자내기도 사냥꾼들에겐 꽤나 알려진 방법이었죠.
 (요즘 탄을 가지고 누군가 장난쳐본.)



이렇게 개량된(?) 총알이 물린 303탄은 인도의 덤덤 조병창에서 생산되어져 아프간과
인도 주둔 영군군에게 보내집니다.
성능은 기존의 불만을 잠재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죠.
455구경 마티니 헨리보다 쏘기 쉬우며 명중률에서 앞서고 탄창에 연발로 쏘기
그만인데다 위력도 비슷해졌는데 불만이 더 생길리 만무할테니.
재고량과 공급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존의 Mk.I이나 Mk.II를 쓸 수 밖에 없던
병사들은 총알의 앞부분을 줄질해서 갈아버리거나 흠집을 내는 식으로 덤덤탄을
자작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등장한 덤덤탄을 모든 영국군에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인도-아프간에서 사용된 덤덤탄은 Mk.II 탄약의 지역적 변형정도로
취급됐으니까요.
그 대신 영국군은 홀로우 포인트 총알을 물린 탄약을 제식으로 채용하고 Mk.III이라
부르게 됩니다.
Mk.III는 좀 더 개량되어져 1897년에 Mk.IV로, 1899년에는 좀 더 개량된 Mk.V로
발전합니다.

이렇게 되자 덤덤조병창이 만든 탄약은 다시 한번 더 유명해져버립니다.
언론에서는 새로운 탄약이 굉장한 위력을 가진 것으로 떠들어댔고 아프리카등에서
총질을 일삼던 사냥꾼들도 이 유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죠.
물론 탄약 제조사들도 이 새로운 유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되자 팽창이 잘되는 소프트 포인트나 홀로우 포인트에 가까운 총알들은 그저
덤덤탄이라 통칭되기 시작하며 덤덤이란 지명은 거의 일반명사화 되버립니다.

한편 이 시기, 이 덤덤탄들은 곧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잔인한 탄이란 비난을 듣게된 것이죠.
곧 1899년의 헤이그 협약(Hague Convention)과 상 페테스부르크 선언(St.Petersburg
Declaration)에서 덤덤탄이라 통칭되는 잘 팽창하는 탄약을 문명화된 전쟁을 위해 쓰지
말자라고 주장하게 되죠.
여기서 잘 팽창하는 총알에 대한 금지가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에서 시작된게
아니란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pand or flatten easily in the human body...'
--- 관련 구절, 해석하자면 인체내에서 팽창 혹은 납작해지는게 쉬운...

협약당시 이 문제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은 독일이었다고 하죠.
더더욱 뭐한 사실은 독일측이 증거라고 제시한 것은 군용탄약이 아닌 민간의 사냥용
탄약에 의한 결과였다 합니다.
당시 민간의 사냥용 탄약들은 새로운 유행보다 한술 더 떠 팽창정도가 더욱 심한
총알을 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일단 비교 대상부터 뭔가가 잘못 꼬인 것이죠.
당연히 미국과 영국은 독일의 분석에 대해 딴지를 겁니다만 상황은 쓰지말자는
방향으로 돌아갔고 마침내 협약에 의해 덤덤탄은 사용이 금지됩니다.
뭐 따지고보면 눈감고 아웅하자는데 동의한 것이지만.

한편 이런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영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해질 수 있는 덤덤탄의 사용을
포기해버립니다.
그 당시에 일어난 보어전쟁(3차)에서 덤덤탄이 물린 303탄 대신 기존의 탄을
사용해버렸으니 말이죠. (반면 영국군은 잔인한 방식으로 작전을 펼쳤고 덕분에 국제
사회에서 욕을 상당히 듣게 되죠.)
그리고 1903년, 덤덤탄이 물린 303탄들을 전량 연습용으로 소모한다는 계획을 잡고
사실상 폐기에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보면 협약은 성공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군사강국 영국이 포기해버렸으니 말이오.
그러나 안되면 되게하고 꽁수가 묘수다란 생각하에 협약을 물먹이면서 덤덤탄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대응책들이 강구된다는게 심난한 일이었습니다.

영국은 1904년에 Mk.VI탄을 등장시킵니다.
이 물건의 총알은 215그래인에 Mk.II에 사용되던 것과 유사하지만 재킷이 더
얇아집니다.
이전보다 얇고 부드러워진 총알은 외형상 협약을 존중하면서 실제로는 덤덤탄처럼 잘
팽창하리라 계산한 것이죠.
그러나 이 Mk.VI탄은 덤덤탄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합니다.

1905년, 독일은 그들이 연구하던 새로운 형태의 탄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가히 군용 소총탄약의 혁명이자 혁신에 속하는 사건이었죠.
바로 새로운 7.92x57mm탄(그저 8mm Mauser라고도 불리는)을 제식 채용한 겁니다.
이 탄은 진보한 형태의 앞이 뾰족하고 오자이브(ogive, 총알 앞부분의 곡선부)가 긴
154그래인짜리 총알이 사용됩니다.
독일어로 뾰족한 총알이란 의미에서 Spitzgeshoss라 불린 이 총알은 곧 영어에서는
pointed bullet이라 불리게 됐고 독일어 표현을 존중해 그저 Spitzer라고도 불리게
되죠.
새로운 7.92x57mm탄은 총알을 초당 2900피트정도의 속도로 날려보낼 수 있었고 빠른
속도와 공기역학적인 총알의 형상으로 인해 우수한 탄도학적 성능을 보여줍니다.
긴 사거리와 평탄한 탄도에서 얻어지는 명중률이 압권이었죠.

그와 더불어 살상능력에서도 7.92x57mm탄은 인상적인 성과를 보여줍니다.
외형적으로 덤덤탄도 아니고 협약에 문제될 것은 없지만 실제로 이 탄에서 발사된
총알은 인체내에서 불안정해지기 쉬워서 상하좌우로 요동치는 현상(yawing &
pitching)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총알의 뒷부분이 앞부분으로 가려는
전도현상(tumbling)까지 보여줍니다.
이런 이유로 덤덤탄은 아니지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게 됩니다.
한편 빠른 속도로 인해 착탄시 발생하는 유체정역학적 충격과 그로 인한 일시적인
손상이 크게 벌어진다는 부수적 효과를 거둘 수 있었으며 착탄 직후 총알 자체가
팽창하는 경향도 꽤 컸습니다.
한마디로 외형상 안그렇지만 잠재적인 덤덤탄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독일의 성과는 각국 군대에 인상적인 결과를 낳게되며 곧 자신들의 탄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착수하게 됩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죠.
영국은 자신들의 303탄을 개선하기 위한 평가작업에 들어가며 이 때, 2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1. 기존의 200그래인급 총알을 이미 사용중이던 소총의 약실 압력 범위내에서 초당
   2000피트 이상의 속도로 날려보내려니 약실에 무리를 준다.

2. 그렇다고 탄약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려니 신형 소총을 새로 만들어야할 판이다.

새로운 탄약과 소총을 만드는 것대신 영국은 경제적으로 적절하다 판단된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총알은 174그래인짜리를 사용하고 약실 압력은 평방인치당 19.5톤정도로 해서 초당
2440피트정도의 속도로 날려보내려 했으니.
1910년, 이렇게 개선된 새로운 Mk.VII탄이 영국군에 채용됩니다.

Mk.VII의 174그래인 총알은 외형적으로는 보통 FMJ들과 다를바 없지만 총알 내부의
1/3정도는 알루미늄이 사용됐고 그 뒤에는 일반적인 총알들처럼 납으로 구성됩니다.
이런 알루미늄과 납의 층상 배치는 다음과 같은 잇점을 얻게 합니다.

1. 알루미늄의 사용으로 총알 전체의 무게가 가벼짐.
   가벼운 총알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날려보낼 수 있죠.

2. 앞은 가볍고 뒤는 무거워져 총알 전체의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
   이렇게되면 총알이 인체에 명중할 때, 더욱 불안정해져버립니다.
   무게 중심이 뒤에 있다보니 총알의 뒤가 앞쪽으로 가버릴려는 전도현상이 벌어질
   확률이 증가하죠.


사실상 Mk.VII은 이전 시대의 덤덤탄 수준의 상처를 낼 수 있게 됩니다.
이 역시 협약을 지키는듯 하면서 엿먹여버린 것이죠.


어이, 친구들. 책상앞의 머저리들 엿먹여볼까?


이렇게 덤덤탄을 대채하는 새로운 총알과 그걸 물린 탄약들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덤덤탄의 살상능력에 대한 미련같은게 남았나 봅니다.
덕분에 1차대전까지도 몇몇 병사들은 자신들의 총알을 스스로 개조하여 덤덤탄처럼
만들어서 쓰기도 했다고 하죠.
오늘날 몇몇 영화등에서도 이런 일이 묘사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체적 개조는 좋은 결과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특히 장거리 사격을 해야하는 소총탄에서라면.

1. 명중률 저하.

2. 고속도로 추진되는 와중에 잘못 노출시킨 납부분이 기계적 마찰등에 의해 깍여져
   나가고 이게 총강면을 더럽힐 수 있다. (이른바 leading의 증가)

3. 탄창에서 약실까지 급탄되는 와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4. 만약 사용하다 걸리면 협약 위반으로 시비걸릴 수가 있다.

현재, 위와 같은 협약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면서 사실상 협약을 물먹여버리는 총알이
군용으로 다량 사용중입니다.
각군의 군용 표준 소총탄약들치고 안그런게 없으니.


p.s:
흑색화약에 활강에 전장식 머스킷이 사용되던 시절,
이미 사람들은 그저 단순무식한 둥근 공모양의 총알에다가 장난치는 방법을 알고 있었
습니다.
머스킷 볼에다 못을 박고 장전하거나 머스킷 볼을 마치 팩맨처럼 칼금내고 장전하는
것이었죠.
혹은 머스킷 시절은 아닙니다만 저기 미국의 버펄로 사냥꾼들처럼 납에 주석 따위를 더
혼합해서 총알이 어느정도 충격에 조각조각 갈라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 잡는 측면에서는 참 머리가 잘돌아간다고 해야할까요.

p.s:
이건 일본군이 쓴 6.5mm탄의 단면입니다.

마치 영국의 Mk.VII처럼 되게 총알속 탄심에다가 장난을 쳐놨죠.

p.s:
덤덤탄은 한 때 전장에서 사용하는거 들켰다면 그 자리에서 포로라도 쏴버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1차대전때, 덤덤탄을 휴대했다가 잡혔다면 살아남기 힘들었다죠.
보통은 그 자리에서 쏴버리거나 착검하고 죽여버렸으니.
그리고 이건 2차대전때도 그렇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적인 비난으로 번져갈 수도 있긴 합니다.

p.s:
1950년대, 미군은 소구경 고속탄과 그걸 쓰는 자동화기를 개발하죠.
바로 5.56x45mm M193과 M16입니다.
이 탄과 소총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적어도 명중률과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화력면에서 꽤 괜찮더라고 평가됐고 이걸 노획한 소련도 비슷한 평을 내렸다고 하죠.
(작동이 제대로 된다면 이란 단서를 붙인건 M16은 1970년 거의 최종적인 개량이
가해지기까지 작동 불량이 많았고 청문회까지 가본 총이기 때문입니다.)

여튼 명중률만 본다면 1960년대초에 미공군은 이렇게 평가했고 미육군과 해병대도
수긍을 했다하죠. (AR-15/M16의 발전에는 미공군의 역활이 큽니다. 초기 채용부터
제식화까지. 심지어 총검에도 미공군의 노력이 들어있죠.)

'AR-15는 M1 개런드와 M14보다 쏘기 쉽고 명중률이 높게 나온다. 심지어 카빈보다도
명줄률이 좋은 총기이다.'

그런데 소련군이 사용하던 성공적인 돌격소총탄 7.62x39mm탄(바로 AK소총의 탄)은 저
미국제 탄약에 대해 200미터 넘어서면 탄도가 좀 아니다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7.62x39mm탄은 400미터 부근까지를 유효사거리로 잡았는데 저 5.56mm탄이나 풀 스케일
30구경탄(7.62x54mm R같은)같은 물건과 비교해보니 200 에서 400 사이에서 탄도가 꽤
쳐지더라는게 나왔죠.

소련, 새로운 탄에서는 1과 같은 문제가 없었으면 하고 바랬겠죠.
절라 빠져서 절라 말안듣는 얘들 대리고 전쟁하는 것도 골때리는데 얘들 사격실력까지
답이 안나오면 전쟁 때려치우는게 좋을 겁니다.
그래서 개나 소나 잡고 쏴도 적어도 어느정도 괜찮은 명중률이 나오는 탄약과 총이
필요하며 - 물론 그와 비례해서 개나 소나 사람만들자고 입에 단내날 때까지
굴려야겠죠 - 이걸 위해 탄도 평탄하게 잘나오고 다루기 좋은 탄약을 설계하게 됩니다.
바로 5.45x39mm탄이죠.
단, 총의 경우는 쉽고 손대보기 좋고 이미 환하게 아는데다 성능은 만족스러운
칼라쉬니코프 설계를 채택합니다. (더 명중률이 잘나오게 고려된 설계나 불펍까지
제출되나 모두 물먹습니다.)

여튼 이렇게 등장한 새 탄약과 총기는 소련군에서 꽤 만족스러웠다고 하며 1970년대
넘어서 1974년에 붉은 광장의 혁명기념 퍼레이드에서 서방측(일본인) 기자에 의해
사진이 촬영되어져 서방에 확실하게 알려지게 되며 곧 이어 벌어진 아프간 침공에서
새로운 탄약과 총에 대한 소문이 들려오게 되며 1980년쯤에 노획된 물건에 대한
평가등이 공개됐다 하죠.
이 탄에 대한 서방측의 평가도 호의적입니다.
상당히 잘 설계된 탄으로 보며 탄도학적으로 우수하고 좋다라고 평가되니까요.
(400미터정도까지라면 5.56mm보다 더 좋다는 평까지 하기도 합니다.)

이 5.45x39mm탄에 대해서 혹자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평을 하기도 합니다.
303 Mk.VII탄과 홉사한 생각.

왜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가는 이 탄의 총알을 때내 본다면 명확해 집니다.
총알의 전체 길이는 25.5mm이며 이중 재킷 두께는 1.2mm입니다.
재킷은 연철로 만들어지며 구리로 도금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재킷 아랫 부분의 가장 앞부분은 5mm정도 비어있고 그 다음에 3mm의 납이, 그
뒤 15mm정도의 철제 탄심이 박혀있고 마지막 1mm정도는 움푹 들어온 꼴입니다.

전체적으로 철의 사용이 많은 편인데 이는 소련군에서 1920년대부터 해온 나름
전통이라면 전통적인 면입니다.
철은 소련에서 구하기 쉽고 저렴한 금속이었고 부차적으로 관통성능을 높여주기도
하죠.
덕분에 7.62x54mm R이나 7.62x39mm탄에서도 철을 총알외에 탄피에까지 쓴 경우가 꽤
흔합니다.

여튼 요 5.45mm탄이 장전된 총이 발사되고 총알이 날아가 사람몸에 박히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1. 총알 앞부분이 착탄과 동시에 빈공간 덕분에 찌그러듭니다.

2. 1에 의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 총알은 충격에 의해 총알이 계속 찌그러들며 납층에
    도달하면 납은 철로된 탄심 부분의 경계면을 타고 뒤로 가게 됩니다.

3. 2에서 납의 이동은 총알의 무게 균형을 더욱 깨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는 저 303구경 Mk.VII의 알루미늄+납 구조에서 보여지던 그 모양 그 꼴이
   되버리는거죠.

4. 부차적으로 철제 탄심은 꽤 단단해서 총알을 꽤 깊은 곳으로까지 들어가게
    해줍니다.
    목표가 차동차 문짝등이라면 면 적절한 관통성능을 보여줄 것이고 인체라면 깊숙한
    곳에 위치한 급소를 건드릴 확률을 높여주죠.

착탄 충격에 따른 5.45mm 내부에서 납층의 변화, 가장 오른쪽과 왼쪽이 충돌전



단, 총알이 작고 거기 걸린 에너지가 어느정도냐에 따라 좋은 결과가 안나올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소련군 및 러시아 특수부대등에서는 이 탄의 살상력에 대해서 별로
좋은건 아니더라는 평을 내리기도 합니다.
되려 낡았지만 묵직하고 관통성능도 좋은 7.62x39mm탄을 더 선호하기도 하죠.


한편 5.45mm탄에서 보여진 효과중 일부를 좀 더 독특하게 살린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가장 독특한게 바로 서독이 1970년대에 연구했던 스푼 팁(spoon-tip)일겁니다.
독일어로 Loeffelspitzung 일겁니다. (영어로 하자면 spoon-point, point는 총알의
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건 당시 같이 연구중이던 4.7mm 탄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H&K의 몇몇 총기에서
4.7mm 구경이 보일 겁니다. 그 시대의 유산인거죠.)

이 총알의 특징은 총알의 앞부분중 일부가 비대칭적으로 움푹 파여진 형태란 걸겁니다.
이 때문에 스푼 팁이란 별칭을 얻게된 것이죠.


총알 자체는 텅스텐으로 만들어지며 팽창(expand)이나 파쇄(fragment)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오직 저 스푼 모양으로 움푹 파여진 부분가지고 총알을 불규칙적으로 움직여 관통
부위를 헤집어 놓겠다라고 생각한거죠.

그런데 이 총알은 실전에 투입되거나 하지는 못합니다.
반대가 많았거든요.


요기까지 보시면 뭔가 뒷맛이 좀 씁쓸하다는걸 느끼실 겁니다.
소련은 되고 서독은 안되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만약 지금 미국등에서 이른바 사람 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탄약이 사람 잡는데
사용된다면 과연 그 때는 어떤 소리가 나올까요?


가령 폭약이 들어간데다 소이제까지 들어간 탄이 장전되어져 발사된다면?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차량등을 쑈다보니 그랬더라는 것으로 넘어간다면?

생각해볼 사례:
현재 미군이 지급중인 50구경 탄중에는 Mk.211이란 놈이 있습니다.
총알 끝이 회색 바탕에 녹색으로 표시되는 탄인데

이건 비교적 최근에 나온 복합효과탄(Multi-Purpose ammunition)입니다.
맞으면 깊숙하게 들어가서 뜨거우면서도 살짝 터지는 것까지 3가지 효과가 나오니.

이 물건의 구조는 총알속 제일 앞단에 지르코늄과 마그네슘으로 구성된
12그래인정도의 소이제가 들어간 층이 있고 그 뒤에 12그래인정도의 폭약(RDX나
RDX-PETN조합)이 들어간 층이 있으며 그 바로 뒤에 강철제 컵(sabot과 비슷한
모양의)속에 지르코늄을 끼고 있는 215그래인의 탄화 텅스텐 관통자가 들어가죠.
그리고 이 관통자를 물고 있는 강철제 컵뒤에 마감을 위해 납이 약간 깔여 있으며
이 전체를 재킷이 감싼 형태입니다.

명중하면 소이제와 폭약이 뒤로 밀려나와 반응을 시작하게되고 관통자는 강철제 컵에
싸여져 들어가다 강철제 컵에서 뛰어나와 깊숙히 들어가고 이 때 관통자 겉을 감싸고
있던 고리모양의 지르코늄 층이 본격적으로 연소되며 속을 태우게 되는거죠.

폭발, 소이, 관통의 3가지 복합효과. (니가 감기약이더라냐)

20mm 기관포탄 이상에서는 그렇게 드물다고 하긴 그런 구조지만 50구경에까지 내려와서
대물저격총(이라고 물체만 쏘란 법은 없는)에 장전되는거 보면 뭐하죠.
허기야 그 이전에도 항공기등에 사용되던 별난 탄약들을 저격총등에 장전한 경우가 있는걸
보면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전쟁 규칙에 대한 협약이나 뭐니 따지는 쪽에서는 입맛이 쓸겁
니다.
그렇다고 쓰지마! 라 하기에는 씨알이나 먹히면 다행이겠지만.

교훈: 규약이니 조약이니 약자 들어간건 깨라고 있는거다. 

 출처 : 문제중년의 잡설 블로그 http://glob.egloos.com/222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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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니르 10-12-08 11:43
   
덤덤탄 ㄷㄷ
ㅇㄷㄷ 10-12-09 13:41
   
글 감사하빈다 ㄳ
싸대기 10-12-09 17:59
   
살상력이 점점 강해지는....
이젠 적의 전투력 저하나 포로는 필요없다인가....
wnter06 11-05-09 22:01
   
사진을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