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1-09-06 14:13
서울 아현 고개의 6.25 전쟁 비사를 듣다 브금
 글쓴이 : skeinlove
조회 : 1,415  


BGM 정보 : http://heartbrea.kr/animation/32495

 

 

전사(戰史)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래 사진이 눈에 익을 듯하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충정로에서 사살 된 북한 저격병

 

나도 자주 접했지만 이 전쟁 사진에 큰 가치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영국 더 타임스 지 한국 주재원 앤드류 새먼 기자로부터 배경 설명을 듣고 나서였다.

영국군의 한국 참전 기록인‘마지막 한 발’[TO THE LAST ROUND]
의 저자이기도한 새먼 기자는 

이 사진이 해병대의 서울 탈환작전 때 AP 통신의 맥스 데스퍼 기자가 촬영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맥스 데스퍼 기자의 퓨리처 상 수상 사진

데스퍼 기자는

1950년 12월 4일 파괴 된 대동강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는 북한 피난민들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이 유명한 사진으로 세계적 명성의 보도 사진상인 퓨리처 상을 받았었다. 

우리나라의 여러 교과서에도 많이 수록된 만큼 많은 사람들도 낯이 익을 것이다.

새먼 기자는 위 사진(충정로에서 사살 된 북한 저격병 사진)

대동강 도하 사진에 미치지는 못해도 대단한 보도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진 역사상 위의 사진처럼  교전 중의 아군과 적군이 한 사진의 프레임 안에 잡힌 사진은

열 장이 채 되지 않는데, 사진에서 보듯 땅굴에 숨어있던 북한 병사가 해병대가 투입한

백린 연막탄에 온몸이 그을려 뛰쳐 나온 순간을 포착해 찍은 것이다.

북한 병사는 금방 사살되었다.
백린 연막탄은 연막을 만들기도 하지만

고열을 내기 때문에 소이(燒夷)목적으로 쓰기도 한다.

새먼 기자의 말로는 미 해병대가 이 참호 전방 아현 고개에서
계속 된 저격을 받아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저격수가 어디에 은신해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고전하다가

조금 더 전진해서 땅굴 같은 참호 속에 백린 연막탄을 던져 넣자

조금 뒤에 북한 저격수가 튀어 나왔다는 것이다.

데스퍼 기자는 사진 속 세 명의 해병 중 중앙의 해병이 북한
저격병을 사살하는 총소리에

반사적으로 돌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이 사진을 얻었다고한다.

그 동안 서울 시가지가 너무 변해서 미 해병들이 서울 탈환 작전을 벌인 
사진들의 장소가

현재 서울시의 어느 곳인지 알아 보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이 사진만은 먼 배경에 보이는 한 건물 때문에
촬영 장소를 알 수가 있다.

이 곳은 서대문구 아현동에서 충정로로 들어서는 지점으로

종근당 제약 건물 부근에서 서대문 쪽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1937년 도요다 빌딩으로 준공검사를 받은 한국 최초의 아파트 중 하나인데

나중에 미쿠니 아파트로서 개명했다는 증언도 있다.

해방 후 미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다가

60년대에 들어와 짧은 기간 코리아 호텔이라는 호텔로 변신하기도 했고

후에 소유자였던 서울 신탁은행에서 이 빌딩의 아파트를 분할하여 아파트로 분양하였다.

호텔 같은 로비도 있었고 외관상 제법 번듯했던 이 빌딩은

충정로에 대대적인 확장 공사가 있던 1979년 전면부가 잘려 나가서 볼품 없이 되었다.

아직도 47명의 입주자가 있는 아파트로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현 고개에서 서대문 쪽으로 본 풍경
도로는 대폭 확장되었다. 우측이 종근당 빌딩이다.

저격병 사진 먼 배경의 빌딩이 이렇게 변했다.(REIT 빌딩 아래 초록색 빌딩이다.)

촬영 지점에서 우측으로 20미터 가면 서소문 길이다.

 

 

이 사진을 촬영한 날은 한미 해병들이 중앙청을 점령했던 1950년 9월 28 수복 전날로 보인다.

부대는 서울 공격 정면의 중앙 부분인
서대문과 안산 사이 지역을 맡은

미 해병 1사단 5연대나 마포에서 전진했던 1연대 중의 한 연대로 생각된다.

데스퍼 기자는 마포 종점에서 공격을 개시하여

마포로와 마포 로타리를 거쳐 이 사진을 찍은 바로 윗 지점인

현 고개에서 서소문 쪽으로 진격했던 체스티 풀러 대령의 1연대에 종군했었는데

그가 찍었던 여러 사진들이 그 사실을 말해 준다.

해병 1연대는 이 사진을 촬영한 지점
에서 더 전진해서 서울역을 점령하고

남대문로를 따라 최종 공격 목표인 시청까지 점령했다.

나는 호기심으로 사진을 보고 있다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보다시피 참호가 네모 형이고 크기도 아주 작다.

삽으로 보도에 판 참호가 아니다.

그리고 해병이 저렇게 접근했는데도

북한 병이 참호 속에 멍청히 있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도 어색해 보였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사진의 촬영 장소를 아는만큼 찾아 가보기로 했다.

가서 보았더니 도로를 확장해서 옛 자취는 없었지만 
짐작가게 하는 것들이 있었다.

현재의 도로를 따라 50미터 정도 간격으로 맨홀들이 있었다.

바로 서소문으로 들어가는 아현 고개 언덕에 수도의 가압장이 있어서

이곳은 밸브를 조절하는 긴 수도관 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옛 사진의 그 수도관 터널들은 다 없어졌지만

그것은 도로 확장 공사 뒤에도 이전해서 전과 같이 설치했던 것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 저격병이 지하 수도관 터널에 숨어 있다가 사살 된 사실을 현재의 맨홀 뚜껑들이 보여준다.

즉 북한 저격수는 맨홀을 가마니로 쌓은 곳에서

미군들에게 저격을 해대다가 본대가 미처 철수 명령도 없이 패주해버리고 미군이 전진해오자

할 수없이 터널, 즉 땅굴에 은신하려고 했지만

미군이 수색삼아 던진 백린 연막탄의 열기를 참지 못하고 기어 나왔다가 사살 된 것으로 추정 된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저격병 사진 현장의 오늘 날 모습

 

나는 현장에 온 김에 구(舊) 미쿠니 아파트도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그 빌딩 일층에서 오랫동안 사진관과 부동산을 하는 부부를 만났다.

79년이래 같은 장소에서 영업을 해온 00스튜디오의
대표 장안호 씨와 부인이었다.

지식이 풍부해 보이는 분이었는데 그 분과 미쿠니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역의 한 6.25 비사를 듣게 되었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안호 씨 부부

 

6.25 서울 시가전 때 바로 위,

즉 서소문 길과 서대문 길이 갈라지는 아현 고개에서 주민들이 무척 많이 사망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주민들이 아니라 북한군들이 많이 죽었겠지요.”하고 무심코 말했지만

그 분은 나의 말에 수긍하는 빛이 아니었다.

나는 후에 국방부‘아! 6.25’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에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을 발견하였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현고개. 필사적인 표정의 피난민 모습들

 

바로 위의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보고 1연대 진격로 어디쯤 일까하는 궁금증이 들어

여러 번 들여다보며 궁리해봤다.

마포에서 시청까지 지형은 너무 변해서 비슷하게나마
알 길이 없었지만

이 사진은 추정의 몇 가지 단서를 제공했다.

해병대 진격로에서 공중에 설치한 전선(電線)뭉치가 땅에 떨어져 있다.

즉 전차(電車)가 지나가는 주도로에서 옆으로 빠져 나간 길이다.

크게 확대한 사진을 잘 들여다보니 길 끝이 내리막이다.

해병로의 진격로에는 이런 곳이 딱 한 곳 밖에 없다.

바로 내가 만난 장안호 씨가 주민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한 아현 고개다.

지금은 아현 고개 오르막에서 시작해서
경의선과 서소문을 지나

중앙일보 앞 시청 광장 직전에서 끝나는 고가 도로가 뒤 덮고 있어

어디가 어딘지 알기 힘든 곳이다.

서소문 방향과 
북한 저격병이 사살당한 서대문 방향의 갈림길이다.

오르막 고갯길이고 길 좌우가 더 높은 언덕인 방어의 요지라서

북한군이 방어선을 설치했다가 미군의 포 사격과 전차 공격으로 패퇴 당한 곳이다.

위 저격병의 사진과 아래 피난민 탈출 사진에 보면

도로에 엄청난 포격의 파편들이  보인다.

아래 서소문쪽 파편이 위의 서대문 쪽 파편들 보다 훨씬 더 많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에 북한군이 가마니로 쌓은 보루도 보인다.

완강한 북한군의 저항때문에 이 아현 고개가 더 심한 집중 포화를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미군의 집중 포화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진은 요란한 포탄 낙하에 사색이 되어 있다가 조용해지자

죽을 각오로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치열한 전투 중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는 것이 불가피할 수 도 있지만

미리 주민 대피령을 발령하지 않은 북한군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머리에 짐을 얹은 아주머니나 오른쪽에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의
표정들이

공포와 절박감이 뒤범벅인 필사적인 모습이다.

막상 미군 쪽으로 도망을 나왔지만 어떻게 대할 것인지 두려웠던
해병들이 반겨주자

정신없이 도망치는 중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병의 손을 잡아 주는 아주머니의 예절과

머리에 인 짐이 쌀과 취사 도구 등으로 보이는 것도 재미가 있다.

며칠간 피해 있어도 밥을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오른 쪽 아기를 엎은 젊은 여자는 경황이 없는 중에도 
쌀쌀한 가을 밤에 아기와 덮고

잘 이불을 포대기 삼아 챙겨 나오는 모정을 발휘하는 것 같아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촬영자는 앞 사진과 같이 맥스 데스퍼 기자가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같은 장소에서 촬영했기 때문이다.

앞의 저격병 사진과 같이 서울 피난민들의 탈출 사진도

보도적 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된다.

비교를 위해서 사진 한 장을 소개한다.

월남전 때 일본인 사진 기자 사와다 교이치가 촬영한 사진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65년 사와다 교이치 기자의 사진

 

미군 폭격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난하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1965년 올해의 보도 사진 상을 받은 유명한 사진이다.

[그는 1970년 캄보디아에서 순직했다.]

내 느낌은 전투의 치열한 배경과 탈출의 절박한 순간을 절묘하게 캐치한

한국전 때의 데스퍼 기자의 사진이 오히려 더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재흙먹어 11-09-06 18:10
   
브금 약간 에러같은데요 -_-;;  일본애니 브금을 ....
절박하고 긴박한 브금이 적절한데  좋은 곡인데  기사하고 매치 안되는 ㅜ.ㅜ
저번 특전사브금은 완벽매치였는데 실망입니다
     
skeinlove 11-09-07 01:17
   
ㅠㅠ

죄송해요~~
팬더롤링어… 11-09-07 00:16
   
체스티 풀러 대령이라면 퍼시픽에 나왔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