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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18 17:20
9월18일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 수기 하나(볼만함) 브금
 글쓴이 : skeinlove
조회 : 2,044  

자료가 길다보니 브금 깔아 드립니다



BGM 정보 : http://heartbrea.kr/bgmstorage/1127081 개드립용


 

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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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8일 아침 나는 전쟁을 겪었다. 8군단 68사단 섹터에서 북한 잠수함 한척이 발견되었다. 그 잠수함을 신고한 것이 택시운전사 였는지, 68사단 섹터의 소초장이 발견 했는지에 대해 갑론을박 하는 사이 나는 전쟁이란 것을 온 몸으로 겪게 되었다.

1. 전야


 

 

 

9월18일 새벽 대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화스트베이스가 선포되었다. 그때 나는 진돗개 하나 상황이란 걸 몰랐다. 평범한 군수계원이었던 일병...행정보급관이 흥분한 표정으로 닦달하는 모습 속에 나는 또 어떤 불시검열이 터졌고, 즉응태세 확인을 비해 비상을 건줄 알았다.

- 탄약카드랑, 화생방 카드 나눠 드리겠습니다....

(가가멜 주 - 훈련상황에서는 모든 물자를 일일히 개봉해서 나눠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탄약,화생방용구,식량 등이라고 적혀있는 카드를 나눠주고 수령하는 것으로 상황을 대신한다.)

사수가 휴가간 사이 걸린 비상... 나는 사수가 했던 그때 그 모습을 떠올리며 탄약카드를 나눠 주려고 했었다. 사수 없이 처음으로 겪게 된 비상, 나는 잘해야겠단 생각에 탄약카드와 화생방 카드를 담아놓은 박스를 챙겼었다. 그리고 날아온 것이 행정보급관이 들고 있던 K-2의개머리판이었다.

- 이 새끼가 너 미쳤어? 지금 장난해?

군장을 싸던 내무반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화이바를 썼지만 그 울림의 잔영이 아직까지 남아있던 나로서는 그저 행보관의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 전쟁 터졌는데, 종이 딱지로 싸울래? 이 새끼가... 일단 경계탄 돌리고 B/L탄 까!!

환청이었다. 아니 환청이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전쟁이라니...B/L탄을 까라는 소리로 봐선 이건 분명 전쟁이었다. 그제서야 내무반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2. 전쟁

이렇게 헬기로 탄을 수송하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탄약 수송에 꽤 힘이 들었다

5대기는 벌써 튀어나간 사이 대대의 전 병력이 경계태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수송대 애들은 60의 호로를 벗겨낸다고 부산을 떨고, 나는 군수서기병이란 직책...사수가 휴가간 사이 나는 군수병으로써 전장에 나갈 우리 대대의 물자를 확인하고 분배해줘야 하는 자리에 섰던 것이다. 행정반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먹지로 얼굴을 문대는 인사장교는 한손으로 TA-312 딸딸이 전화기를 들고는 현재 상황을 듣고 있었다. 행정반의 딸딸이 전화는 불이 나고 있었다. 대대장은 CP에서 상황을 듣다가 도무지 성에 안차는지 행정반으로 쳐들어 왔다.

- 지금 교탄이랑 경계용 탄약이 얼마나 되지?

행정보급관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행보관이 우물거리며 나를 쳐다 보았다. 사수가 만들어주었던 군수병 파일을 잽싸게 행보관에게 건넸다. 교탄현황과 경계탄 현황, B/L탄의 수량을 말하는 행보관, 계속 이어지는 질문들, 방탄조끼의 수량과 무전기, 유류와 물차의 용량, 이어지는 CP용텐트와 공병장비에 대한 질문들 - 사수의 위대함이 느껴졌었다.

행정반 TV속에선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파도에 일렁이는 잠수함의 모습만이 계속해서 보여지고 있었다. 전쟁은 아니었다.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할 수 만은 없었다. 우리 섹터는 아니지만, 분명 우리가 맡아야 할 땅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8군단 소속이었다...행정반의 간부들의 입에서 68사단에 대한 욕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3. 소강

이때만큼 내 총에 대한 애정이 갔던 적도 없었다...

내무반을 향한 나에게 고참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B/L탄을 뜯냐 안뜯냐, 그 하나에 모든게 걸려있었다. 뜯는다는건 곧 우리 대대의 투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교탄하고 경계탄 분출을 마쳤습니다.

안도하는 고참들의 시선, 제대 두달남은 갈참은 그제서야 내게 넌지시 물어본다.

- 주둔지 경계병력 남겨둔다냐?
- 모르겠습니다.
- 이 새끼가...빠져가지고!!

뒤이어 그 고참은 실수 했다는 듯이 내 등을 두드리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 야, 남는 방탄조끼 있지?? 그치??

방탄조끼...그 말 한마디에 내무반의 전 인원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정찰병용으로 몇벌 받아둔 방탄조끼가 생각났다. 5대기에 분출하고 남은 것...소대별로 2벌씩인가가 돌아가는 그 방탄조끼 농협 마대자루 같은 허접한 천 수십장을 겹춰 놓고, 가슴 부위에만 알루미늄 같은 판 두개로 가려져 있는 그 허접한 방탄조끼에 내무반 요원들이 동해 있었다.

3. 출전

군수병의 영원한 친구 60트럭...

결국 B/L탄을 뜯었다. 삼중으로 닫혀있던 육중한 탄약고 문을 여는 순간 확 밀려오는 나무 합판의 고루한 냄새들 밴딩 절단기를 손에 든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B/L탄을 뜯는다...사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B/L탄 뜯기 전에 부모님 한테 전화나 한통 드려라... 하긴 부모님한테 전화할 새가 있겠냐? 일단 B/L탄 뜯는다는 건 전쟁이라고 생각해라. 제대하기 전까지는 그 탄 뜯지 말게 해달라고 빌고...알았어?

사수가 농짓거리로 했던 말이 뇌리를 파고 들었다. 제대할 때 까지 절대 뜯지 말아야 할 탄, 탄 교체를 위해서 몇박스 빼온 다음에 교탄으로 대체하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 였다. 그랬다 나는 탄을 뜯어야 했다.

탄을 뜯고, 2,4종 창고에 가서 물자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창고 앞에 60과 닷지가 대기하고 있었다. 보급받고는 비닐도 뜯지 않았던 A급 위장막이 실려나왔다. 아까웠다. A급 건전지들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99K P/L들과 총기류 P/L들도 나왔다. 공병삽부터 시작해서 2.4종 창고에 있던 모든 물자가 깔끔하게 실려나왔다. 텅빈 창고를 보며 뭔가 불안감이 날 엄습하였다.

1.3종도 들고 나오게 되었다. 자바라와 드럼통이 60에 실렸다. 쌀과 부식류...취사병 왕고가 날 찾았다.

- 전투식량도 챙기는 거냐?

그랬다. 전투식량도 챙기게 되었다. 1형...맛없는 흑미와 백미 밥부터 몰래 짱박혀서 먹던 2형 비빔밥까지 모든 전투식량도 들고 나오게 되었다. 불안감이 더해왔다.

영화에서는 전투를 하기 전 무기를 챙기고, 군장을 점검 하는 장면이 멋있게만 보였지만, 실제로는 불안과 초조에 의해 손이 떨리는 시간이란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행정반에서 행보관이 날 찾았다. 군수병 전체가 다 모였다. 다들 저마다 맡은 종에 대해 보급과 현재 재고상황 탑재여부등을 보고 한다. 행보관이 날 쳐다보더니 화이바를 툭툭 쳤다.

- 머리 괜찮아?
- 괜찮습니다!!
- 새끼..이럴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거야. 알았지?
- 예 알겠습니다!!
- 그래 가서는 내 옆에 꼭 붙어 있어라 알았지?
- ............네? 네

가서는...이라는 말이 내 심장을 옥죄여 왔다.

4. 출사표

출사표처럼 명문은 아니었지만...나름대로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대대장 훈시가 있었다. 연병장에 모여있는 완전군장의 병력들...저마다 얼굴은 먹지나 위장크림으로 멋들어지게 위장을 한 모습이지만, 불안한 눈빛이 역력했다....68사단이 멍청해서 우리가 대신 나가 멋지게 소탕하자는 대대장의 훈시...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올린 출사표와 같은 명문까지는 아니어도 그래도 대대원들의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훈시문이었다. 대대장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기합을 넣어 소리를 질러 댔다. 마치 우리의 불안감을 날려버리려는 듯이 말이다....

5. 진격

이렇게 보면 꽤 볼 만한 7번국도이다. 거기서 군생활 한 사람들에게는 한이 서린 도로였지만...

60 뒤에서 우리는 7번국도가 그렇게나 짧게 느껴지는지 처음 알았다. 고참들...제대가 얼마 안남은 고참들 중 몇 명은 주둔지 경계병력으로 빠졌다. 그러나 그 운좋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끌려나왔다. 그들은 밥순으로 방탄조끼를 입겠다고 티격태격이었다. 농협포대로 만든 그 허접한 방탄조끼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그들이 측은하게 보였다.

방탄조끼..확실히 허접했다 패트레이버가 입은 리액티브 아머 정도까진 바라지는 않았지만...휴

완전무장한 400여명의 병력들이 강릉시내를 가로질러갔다. 강릉시민들이 우리를 보는 그 기기묘묘한 눈빛들 불안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그 눈빛들 나는 애써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였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군지단인데...

6. 투입

그렇게 총을 꽉 쥐어 본적도 없었다...그나마 나를 안도시킨 유일한 물건이었다

건봉산, 칠성산...낯선 산 이름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산을 타고 올라갔다. 수색이라고 하여 1개 소대씩 길게 횡대로 서서 산을 쑤시며 올라갔다. 그렇게 정상으로 올라가면 다시 역순으로 내려오길 몇 번...그렇게 하루해가 지나간다. 그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밤이 된다. 낯에 파둔 호에 들어가 경계를 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게 된다.

탐칭봉을 K-2 앞에 달고는 덤불을 쑤시며 올라가는 수색...탐칭봉을 땅에 한번씩 쑤셔넣을때 마다 나는 내 심장을 쑤시는 느낌이었다. 만약 이 안에 비트가 있다면...나는 1분뒤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7. 기자들





이걸로 멋을 부렸다...그나마 우리가 멋낼 수 있었던 유일한 소품...



대한민국 국방부의 정보력이 대한민국 기자들보다 느리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긴급명령을 받고 출동하면 여지없이 기자들이 먼저와 있었다. 황당했다. 기자들은 우리에게 포즈를 요구하였고, 우리에게 뭔가를 알아내겠다고 꼬치꼬치 물어왔다. 고참들은 이제 기자가 보이는 징후(?)를 느끼면 M-60 부사수가 메고 있는 60탄띠를 뺏어갔다. 멋진 포즈를 위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M-60...일상의 반복은 우리에게 약간의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사병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특유의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목소리로 인터뷰를 자청하였다.

북괴...공비...격멸...멸공...사살...이제는 귀에 익숙한 용어가 되어버린 그 단어들의 의미는 ‘살인’이었다.



8. 먹거리들...





이런거도 싸주셨다...고마웠다 내 평생 가장 맛있게 먹어본 김밥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먹는게 달라졌다. 맛없는 똥국에, 전투식량에 모래 들어간 밥이 나오던 밥상이 달라졌다. 닭다리가 나왔다. PX에서 나오던 닭다리들과 듣도보도 못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고생하는 병사들 잘 먹이자는 취지였던가? 군생활 26개월 동안 대간첩기간 때만큼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기억은 그때말고는 없었다.

민간인들도 나섰다...OO부녀회, XX청년회 등등의 명의로 아줌마들이 싼 김밥과 햄버거 등등이 공수되어 왔다.

- 먹고 힘내서 공비들 때려잡아요!!

참호를 팔 때 어르신들이 집에 쓰는 공병삽을 들고와 건네주었다. 군대 있으면서 대한민국 군대는 국민의 군대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그때만큼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의 군대임을 실감한 적은 없었다.



9. 소문들





새삼 제갈공명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었다.

꼭 살아 돌아가 코에이 삼국지를 다시 하겠다고 맹세했던 기억이 난다



전쟁사를 공부할 때 장수들이 진중의 병사들의 사기함양 차원에서 소문을 퍼뜨리고,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그 당시 그걸 읽고 나서 내가 느낀 감정은 한가지였다.

- 옛날 사람들은 순진했었구나

그리고 1996년 9월 강릉에서의 나는 그 소문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다. 부대 안에서 누가 퍼뜨렸는지도 모르는 이야기, 지휘관들이 CP에서 두런두런 나누는 전황관련 이야기들을 전해들은 전령들이 퍼뜨린 이야기...결정적으로 부대들이 만나거나 지나칠때 건네지는 이야기,





이걸로 위협사격했다는데...우리는 구라라고 믿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공비들은 완전군장으로 산을 탈 때 100미터를 12초대로 끊는 이야기고, 원샷원킬이 아니라 원샷 투킬을 목적으로 병사들이 겹춰졌을때 쏜다는 이야기...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M-16은 스나이퍼용으로 개조된 것으로 우리가 쐈던 논산훈련소의 M-16과는 차원부터가 다르단 이야기들...그들은 실제로 홍길동과 같아서 산을 날라다닌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주치면, 쫓아갈 생각을 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들어야 했다.

잘못 쫓아가다간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특전사 중사 한명이 헬기 레팰을 하다가 총격을 받으면서 구체화되었고, 그 뒤로 우리의 불안감은 공포로 바뀌어야 했다.

소문중 우리를 가장 무섭게 했던 소문은 공비 3명을 죽였던 때 퍼졌던 소문이었다. 작전조가 아닌 기관원 3명이 아군의 추격을 받다가, K201유탄발사기로 응전하는 우리측 사격에 3명다 사살당했다는 전과와 함께 들려온 이야기...

- 5번 시나리오 였던가?

원래는 그 3명은 아군에 투항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미 탈진 상태라 기진맥진해서 바위 바닥에 엎드려 있던 그 3명을 발견한 3군단 작전장교와 3군단 애들이 체포하려 했는데, 만약 이때 이3명을 살려놓고, 이야기를 하면 그 동안 10만명이나 동원해서 이잡듯이 산을 쑤시고 돌아다닌 우리와 국방부는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작전의 허실이 다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맡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3군단 작전장교는 투항하겠다는 그들의 머리에 K-5권총탄을 먹여주었다는 것이다. 유탄발사기와 K-2소총으로 쐈다면 걸레가 되어야 할 그들의 시체에는 머리에 박힌 총알 자국만이 남아있다며, 3군단 애들이 죽인게 맞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걸로 쏴 죽였다는 소문을 믿었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사람은 소문에 더 의지하게 된다



우리의 경계선을 빠져나간 그들...작전조도 아닌 그들이 뚫을 정도로 허술한 우리의 경계선을 이야기 하며, 점점 우리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이 그 정도였다면 작전조는 어느정도일까?

진중이 흔들린다...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우리는 그때 흔들렸다.



10. 군목...





사람은 극단에 몰리면 신을 찾게 된다...



- 저 앞에 있는 간악한 북괴 괴뢰집단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여러분들을 부정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60만 대한민국 장병들은 4천만 형제자매들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고 있습니다. 또, 전세계 우방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하사, 저 간악한 공비 무리들로부터 여러분을 보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여 가서 싸우십시요, 가서 공비들이 아무리 무섭다 하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러분들을 죽일순 없습니다.

그들의 마수로부터 우리 형제자매 부모님들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병사로 특별히 가려뽑힌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이 늘 여러분 곁에 함께 함을 잊지 마시고, 나아가 그들의 심장에 최후의 한발까지 총탄을 쏴 주십시요, 여러분의 용기와 희생이 여러분의 형제자매 부모님들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마귀같은 공비들을 물리칠 용기와 힘이 늘 함께 하길 빌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출동전에 우리 군목이 늘상 우리를 불러놓고 하던 기도였다. 최후의 한발까지 그들의 심장에 총탄을 쏴 주어야 한다는 말에 우리는 어떤 섬뜩함을 느껴야 했었다.



11. 첫교전...





조명탄에...사격에...정신이 없었던 밤이었다



야간 매복을 했다. 숨막히는 야간 매복 숨막히는 침묵의 순간...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익숙하지 않은 자동소총의 연발사격 소리, M-60이 링크를 토해내는 소리...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나, 옆에 있던 고참...곤한 잠을 자던 고참 역시 순식간에 K-2를 움켜쥐고 몸을 숙였다. 순식간에 총격은 옆 참호로 이어졌다. 다들 자신의 앞을 향해 계속 총을 쏘았다. 나역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숙인체로 총만 빼꼼히 올리고 K-2를 쐈다. 단발도, 3점사도 아닌...자동으로 말이다. 어지럽게 튀어나오는 노란 탄피가 참호안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걸 챙길 겨를이 없었다. 순식간에 탄창 하나가 비었다. 틱틱- 거리는 노리쇠 걸린 소리가 들렸다. 공포에 질린 나는 그대로 빈 탄창을 빼고는 다시 탄창 하나를 끼워 넣고는 다시 긁었다.

탄창 2개를 다 긁을 무렵이 되서야 참호 훨씬 뒤편에서 퐁퐁- 하는 81미리 박격포 발사음이 들렸다. 이어서 하늘 가득 밝아져 내려오는 섬광...조명탄이었다. 불빛이 점점 내려오면서 사그라 들었다. 다시 몇 번 퐁퐁- 하는 발사음과 불빛이 타오르는 소리...내 앞에는 총탄에 찢기워져 허연 속살을 드러낸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조명탄 불빛을 받은 소나무는 번들거리는 송진을 피를 흘리듯 토해내고 있었다.

무서웠다. 그때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하얗게 변해버린 내 머릿속은 그렇게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P.S 이날 교전은 3중대에서 시작되었다. 야간에 움직이는 물체가 보여서 긁었는데, 그게 옆으로 옆으로 퍼진 것이었다. 다들 머리 박은체로 총만 올려놓고 긁은 것이었다. 다음날 최초의 사격지점 근방을 이 잡듯이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12. 나태





우리는 특전사가 모든걸 해결해 줄줄 알았다...



일상이 되었다. 수색과 매복이 점점 지겨워졌고, 몸은 물먹은 솜이불처럼 축 늘어져 갔다. 이등병들의 눈빛에 살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고참들은 쫄따구들에게 풀수 있었지만, 이등병들은 그렇게 쌓이고, 또 쌓여갔다. 수색을 나갔다가 오발사고가 났다. 노리쇠 후퇴전진을 하고 어깨위에 총...격발...그리고 탕!!!

지쳐갔다. 매복호 안에서 초코파이를 씹고, 잠을 자고, 편지를 쓰는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02여단의 병사 한명이 야간매복중에 공비한명을 쏴 죽였다며, 우리도 공비 죽이고 헬기 타고 집에 가자란 중대장의 허황된 훈시가 이어졌다.

당시엔 공비를 죽이면 헬기타고 집에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마음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몸이 따르지를 않았다. 씻고 싶었고, 딱딱하지만 그래도 침상에서 자고 싶었다. 따뜻한 온수가 생각이 났다.

국방부에서 미군의 헬기...열영상 탐색장치가 달려있는 헬기로 작전지역을 순찰했는데, 그 결과가 참담해서 언론에 공개를 안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들 담배피고, 퍼질러 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랬다...우리는 이미 한계에 다달았다



13. 서운함...





사람 목숨보다 송이가 더 중요하다고 그랬다...



강원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돌을 던졌다. 60을 타고 경계지역으로 향하던 우리를 향해 조막만한 돌 하나가 날아왔다. 누가 던진지는 모르겠다. 장난이었을까? 우리를 바라보는 강릉사람들, 강원도 사람들의 눈빛에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느껴졌다.

- 송이가 다 죽어가는데, 그걸 왜 못 따게 하는데??

우리 경계지역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하소연을 하였다. 송이를 따야 한다고 말한다. 중대장이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의 멱살을 잡고 욕짓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송이를 따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우리 때문에 가을 단풍놀이 관광객들이 못온다며 욕하는 그들...작전 초기에 김밥과 햄버거를 싸주던 그들은 간데없고, 온갖 저주와 욕을 하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송이가 그렇게 비싼 버섯인지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무섭고, 힘들고, 짜증나고, 추웠다...그런 우리에게 그들은 송이를 못따게 한다며 욕을 했다. 그들 잘못도, 우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들도 답답한 심정으로 우리에게 하소연 하는 것일게다. 내 아버지 뻘 되는 분들...우리 할머니 뻘 되는 어르신들...그들에게 우리는 천하의 못쓸놈들이었다.



14. 철수...



부대 정비를 한다고 철수를 하게 되었다. 이틀간의 시간...행복했다. 일병 주제에 온탕에 들어갈수 있는 행운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매트리스에 내 몸을 뉘일때의 그 행복감...0.75평...그 좁은 공간이 이 세상에서 내가 뉘일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지만, 그 나마도 얻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알고 지금 내 몸을 뉘일수 있게 해준 내무반 침상에 감사하였다.



15. 향로봉...





평화로운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었다...



11월이었다. 상병을 달게 되었다. 이미 공비는 없는 걸로 알게 되었다. 10월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투입되었을때 우리는 그냥 그렇게 멀뚱히 산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단 사령부에서 내려온 첩보보고를 듣게 된다.

작전조 애들이 조만간 위로 넘어갈 태세란 것이다. 그네들이 오기 때문에 전방지역에선 사격 금지명령과 함께 그네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절망했다. 또 투입인가? 우리의 절망이 낙담으로 변해 갈 때쯤 3군단 쪽에서 사고가 터졌다고 한다.

두명의 작전조애들이 3군단 전방애들과 마주쳤다는 것이다. 우리는 환호했다. 우리가 갈 일은 없다고...다음날 대령 한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2명도 사살 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전쟁은 끝이 났다.



16. ....군수병의 비애





탄피를 맞춰야 했다...젠장...



작전이 모두 종료되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군수병들의 일이었다. 삐삐선을 재생해야 했고, 텐트를 정비해야 했으며, 소모된 물자들을 파악해야 했다. 손망실된 물건들이 의외로 많았다. 부러진 야삽 목대가리를 보며 한숨 쥐어야 했다. 기쁜 소식도 있었다. 어떤 얼빵한 부대에서 방한장비들을 다 들고 나와 정렬해 놨던 것이었다. 족히 1개 중대분은 되어보이는 수량이었다. 그걸 수색하던 내가 봤었다. 경계병도 없었다. 나는 99K로 행보관에게 연락했었고, 바로 닷지 두대가 달려왔다. 그렇게 나는 포상휴가증을 챙겨 들었다.

슬픈 소식도 하나 있었다...작전중 소모된 탄환을 회수해야 했다...탄피로 말이다. 문제는 상부에서 내려보낸 지침이 황당했던 것이다. 로트 번호대로 맞춰서 가져오란 것이다. B/L탄의 재밴딩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로트 번호를 맞춰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탄피의 뒷대가리를다 일일이 확인 해야 했다.

육규447 탄약관리 규정에 나와있는 작전중 소모탄에 대한 규정에는 최대한 회수 하라는 내용이었다. 작전중에 그 탄피를 다 수거해야 한다니...군단 섹터 안의 모든 군수병들이 들썩였다. 탄을 맞춰놓고, 같은 로트별로 탄피를 교환 하기 시작했다. 탄도 그렇게 교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생산적이었다.

미친짓이었다. 하지만 군대이기 때문에 해야 했다. 나의 전쟁은 그렇게 탄피 뒷대가리를 확인 하면서 끝이 났었다....



P.S 병역비리 연루 연예인들과 프로야구 선수들...그들이 누리고 있는 인기와 부의 뒷편에는 묵묵히 국가의 부름에 끌려가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던 나와 내 전우들의 피와 땀이 녹아든 시간들을 담보로 해서 만들어 졌다고 난 믿는다. 내가 여기서 징병제를 주창하고, 그들을 다 때려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징병제의 모순점에 분노하고 모병제로의 변환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국가의 부름'에 따르겠다 혹은 '그때는 어려서 판단을 잘못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며 허탈했었다. 그들이 잘못 판단내리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왜 나는 그 잘못된 판단을 내릴 생각조차도 못했는지 말이다....9월18일 강릉무장공비 침투 사건때 전사한 대한민국 육군장병들의 영령을 위해 잠시잠깐의 묵념이라도 하며 그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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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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