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키스타도르'는 스페인어로 '정복자'라는 뜻입니다. 무슬림을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을 넓혀갔던 국토회복운동, 즉 '레콘키스타' 과정 중 스페인은 많은 수의 용병이 필요했으며 이슬람과의 끊임없는 충돌과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 병사들의 전투력은 유럽 최강이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굴복시키고 이베리아 반도를 다시 유럽인들이 차지하는 모습-
레콘키스타로 인해 이슬람 세력을 북아프리카로 완전히 축출시킨 후 싸움과 전투가 삶 그 자체였던 이 병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마침 이 시기 스페인은 신대륙 발견 후 그곳엔 금과 은이 풍부하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활발한 식민/정복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쟁 기계인 이 병사들은 배를 타고 너도나도 신대륙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주 놀랍고도 잔인한 여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당시 스페인 제국의 병사들과 남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전술/무장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우선 콩키스타도르는 구대륙에서 끌고 온 '말'을 타고 전장에 임했습니다. 기병의 위력은 아주 강력했는데, 원주민들은 난생처음 보는 말을 보고 위압감에 쉽게 빠졌으며 이는 원주민들의 사기를 꺾어 놓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은 말의 기동성을 이용하여 원주민 병사들의 대열이 느슨해진 틈을 타 늘 화려한 복장을 입고 다니는 지휘관에게 달려가 제거하여 대열을 한 순간에 무력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이 쓰던 무기의 질도 아주 좋았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이 휘두르던 강철 검과 강철 갑옷은 고품질로 아주 유명했고 그 명성은 로마시대 때부터 이어졌습니다. 톨레도 검이 매우 유명한데 스페인 병사들이 톨레도 검을 휘두를 때마다 원주민들의 사지가 사방으로 날아다녔습니다. 이러한 무섭고 잔인한 장면은 아즈텍인들이 그린 그림에 자주 묘사됩니다.
반면 원주민들의 무장 수준은 스페인 병사과 비교해서 매우 빈약하고 그 질이 떨어졌습니다. 스페인 병사들이 우수한 철기 기술을 바탕으로 무기를 만들어 무장했으나
원주민들은 나무나 석기 무기를 사용했으며 사실상 석기시대의 무장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나면, 전사 계급에게 지급된 최상의 무기는 흑요석 무기였습니다.
무기뿐만 아니라 갑옷의 차이도 매우 컸는데, 강철 갑옷을 입은 스페인 병사에게 무기를 휘두르면 원주민의 흑요석이 깨질 뿐이었습니다. 반면 원주민 병사들은 갑옷을 입었다 한들 콩키스타도르가 휘두르는 검을 전혀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배를 타고 와 신식 무기와 뛰어난 전술로 원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스페인 병사들은 매우 뛰어난 기량으로 원주민들을 수세에 몰아붙였지만
항상 그들을 압도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개개인의 스페인 병사들은 원주민들보다 전투능력에 있어 훨씬 뛰어났던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숫자가 터무니없이 적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수만 명의
병사들로 이루어져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콩키스타도르의 숫자는 매우 제한적이었고 소모적이었습니다.
콩키스타도르의 지휘관이었던 코르테스는 코르테스 원정군을 이끌고 오툼바 평원 위에 대규모 아즈텍 병력을 보고 기겁을 했는데 당시 엄청난 물량의 아즈텍 군대의
규모와 코르테스 군대의 열악한 전력은 코르테스가 카를로스 1세에게 보냈던 서신에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들판 전체를 뒤엎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디오들이 우리(코르테스의 원정군) 앞에 운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적의 공격은 너무나 거셌고 우리의 저항은 너무나 힘에 부쳤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지쳐 있었고 우리 일행은 전부가 부상당한 상태였으며 너무나 허기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그날이 우리의 제삿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툼바 전투 당시 아즈텍 병력은 최소 2만에서 4만 명 혹은 그 이상일 거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인 반면 코르테스의 군대는 부상당하고 지친 스페인 병사 400명과 23기의 기병
그리고 1000~2000명 남짓의 틀락스칼라인들을 포함한 원주민 동맹군이 전부였습니다.
전투 결과는?
코르테스의 군대의 사상자는 60~75명. 아즈텍 군대의 사상자는 정확하진 않지만 최소 1만에서 2만 명으로 추정.
고작 400명 남짓한 스페인 병사들과 1000~2000명의 원주민 동맹군으로 약 1만~2만 명의 아즈텍 군대를 고작 40~75명의 사상자만 남기고 이김으로써 사실상 학살에 가까운 결과를 나은 대승이었습니다.
-코르테스 최고의 업적으로 남은 오툼바 전투-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코르테스는 부관 디에고 데 오르다스에게 보병대 지휘권을 맡게 하였는데 오르다스가 지휘하는 보병대가 아즈텍 전사들의 공세를 막는 동안, 코르테스를 포함한 23기의 기병은 4만 명의 밀집된 전사들을 향해 맹렬히 돌격했습니다. 아즈텍 전사들은 기병대의 갑작스러운 돌격에 대처하지 못했고, 코르테스와 23기의 기병들은 아즈텍 전사들의 대규모 인파 속에서 화려한 장신구와 깃털로 치장된 고위 전사들을 노렸습니다. 코르테스를 포함한 23기의 기병들은 4만 명의 인파를 헤집고 들어가면서 그중 가장 화려한 깃 장식과 가마를 타고 있던 아스텍 사령관 시우아코아틀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종군신부 프란시스코 데 아귈라르는 이후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코르테스는 인디언들과 전투를 치루면서 길을 헤쳐나갈때 황금 방패로 치장한 적의 지휘관을 잡아 죽이는 놀라운 솜씨를 선보였다. 전사들은 눈여겨보지도 않고, 인디오들의 총 사령관(시우아코아틀)에게 창을 한번 휘둘러 살해했다.그무렵 디에고 데 오르다스가 지휘하는 우리의 보병대는 인디오들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그때 코르테스 사령관이 적의 사령관을 죽이자 적들은 퇴각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길을 터주었다. 우리를 추격하는 적도 거의없었다.'
오툼바 전투에서의 코르테스 원정군과 아즈텍 군대의 전력차는 원정군의 절대적 열세였으며 아즈텍 군이 단순히 어택땅을 찍고 물밀듯 밀고 들어가도 손쉽게 이길 수 있을 만큼의 전력차였습니다.
하지만 아스텍인들은 일명 '꽃의 전쟁'이라는 메소 아메리카식 관습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했으며 이들은 코르테스와 그의 기병들을 죽이지 않고 포로로 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매우 소극적인 공격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설령 그런 방식으로 싸운다 할지라도 오툼바 전투 같은 경우 머릿수에서 워낙에 차이 났으므로 아무 전략 없이 그냥 밀어붙이기만 해도 이겼을 텐데 총사령관이 전사했다고 관습대로 그냥 후퇴해버려서 코르테스를 잡을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습니다. 이는 아스텍 군대 스스로의 자멸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스페인에 관심이 많아서 스페인 역사를 좀 보던 중 흥미진진한 게 많더라구요 ㅇㅅㅇ 특히 신대륙 개척기 때가! 여러 전쟁과 사건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슬픔의 밤'과 ''오툼바 전투'가 있습니다. 근데 '슬픔의 밤'까지 쓰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오툼바 전투'까지만 써봤습니다. 근데 어차피 글의 상당수가 나무위키에서 참고하거나 퍼온 거라...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