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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1 20:33
[공군] 우리 공군이 1979~80년에 F-X, A-X 사업을 하는 이야기
 글쓴이 : 넷우익증오
조회 : 2,600  

1979~80년 사이에 우리 정부가 진행한 사업들의 일환으로 A-7 콜세어와 F-16 전투기를 도입하려는 사업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원래 A-7 콜세어와 F-16 전투기들을 도입하려다가 당시 상황상 문제가 있어서 A-10 공격기로 선회했으나 박정희 대통령 사후 사업 자체가 나가리 되어서 F-5 제공호를 추가 도입하는 선에서 끝난 사업이었죠.

이러한 사업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기타 관련해서 조금 소개해볼까 합니다. 위에 걸린 링크는 원래 미 정부의 기밀문서였으나 현재는 기밀이 해제된 덕분에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인 F-X 60기와 차기 공격기 사업인 A-X 18기를 동시에 진행했으며, 부족한 자금은 중동의 친미 국가들에게서 빌리려고 했으나 실패합니다. 이유는 당시 중동 국가들이 이자율을 심각할 정도로 높이 제시해서 우리 정부가 판을 엎었다고 합니다.

공군은 이러한 사업 자체에 대해서 격렬히 반대했고, 공격기를 성급히 도입하는 것보다는 F-4 팬텀이랑 F-5 제공호를 추가도입하여 공대공 능력을 먼저 구비한 후에 사업을 진행해도 늦지 않는다, 는 입장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공군의 주장이 맞았으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사업은 그대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저 링크에 있는 자료에 의하면 79, 80년 예산안에 60대의 F-X와 18대의 A-X를 배당했는데, 연합사에 의하면 F-X의 기체는 F-16이, A-X의 기체는 A-10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첫 문단에 A-7 콜세어를 눈독들였었다고 했는데 갑자기 A-10이 뜬금없이 나와서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원래 74년도 4월 문서에 의하면 한국 공군이 57기의 F-4E 팬텀과 A-7 콜세어 8기를 구매하길 원한다고 적혀있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http://www.wikileaks.org/plusd/cables/1974SEOUL02670_b.html

그러나 갑자기 쌩뚱맞게 A-10으로 변환된 이유는 미 정부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A-7 콜세어 공격기를 사오라는 지시를 내렸고, 미국과 협의가 진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매 요구를 한 지라 미국 측이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고 합니다. 반면 팬텀의 경우 한국측이 계속 언질을 준지라 준비를 한 상태였었다고 하네요.

당시 국방부는 A-7 콜세어를 도입한다면 북한 해군의 경비정에 대응하면서 서해 5도를 사수하는 임무를 수행하게할 목적이었었다고 합니다. 이에 박통은 콜세어의 직도입을 원했으며 대금 지불은 전부 현찰로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공군은 이러한 처사에 반대하면서 앞서 밝혔듯이 공대공 능력부터 키워야한다고 주장했으며, 자금 확보 역시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정적으로 미국 측이 콜세어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한지라 더 이상 구매할 이유가 없었다고 판단되어 집니다.

78년 12월 15일 에어로 스페이스 기사에 따르면, 미 정부는 한국의 A-7 콜세어 공격기와 AIM-7E3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의 공동생산 제안을 거부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미 정부측은 차라리 한국에 F-4 팬텀이나 F-16 팰콘을 쥐어주고 말지 A-7 콜세어는 죽어도 못주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79~80년 사이의 예산안을 살펴보면 DSAA에는 A-7의 가격 데이터를 전혀 요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A-7 콜세어를 사겠다는 의사 자체를 접은 것입니다.

뭐 박통 자체는 계속해서 A-7 콜세어에 대해서 구매 의사를 접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79년 기사나 77년 기사에 따르면 계속 A-7 콜세어 공격기를 도입하려고 추진 중이라고 했으며, A-10과 A-7이 도입 경쟁이 벌어진다는 식의 글이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사업 자체는 계속해서 난항을 겪었고, 결정적으로 카터 대통령이 F-X의 유력 기종이었던 F-16의 판매에 난색을 표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박통이 암살 당하면서 사업 자체는 나가리가 되었다가 1983년이 되어서야 전두환 대통령이 F-5E/F로 기종을 변환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F-4E 팬텀도 합동조립 계획을 제작사가 철회해서 나가리됩니다.)

만일 박통 당시 이 사업에 따른 기체들을 도입 했다면 86년 PB사업 때 들여온 F-16C/D 형 32블록 40기가 아닌, 60기의 F-16A형 전투기가 상공을 날았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A-7이나 A-10이 들어왔다면...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또 발생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공군 내부의 주요 주장이었던 '공격기를 성급히 도입하는 것보다는 F-4 팬텀이랑 F-5 제공호를 추가 도입하여 공대공 능력을 먼저 구비한 후에 사업을 진행해도 늦지 않는다.' 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아시다시피 7~80년대에는 한국군과 북한군의 전력차가 현재와 같이 어느 한 쪽이 압도적인 수준이 아닌지라 우리 공군은 북한 공군의 제공기들을 제압하는 제공확보에 주력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공기가 아닌 공격기 물량이 들어오게 된다면 공군의 주요 전술/전략 교리가 흔들릴 수도 있었던 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http://m.blog.naver.com/kkumi17cs1013/220725241565
 
역시앞날은 모르는 거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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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바람 16-06-01 20:55
   
그러고 보면 실패라고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성공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성공적으로 생각했던 일이 나중엔 실패로 평가받기도 하는 경우를 적잖이 목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글 잘 봤습니다 ^^
ibluesky 16-06-01 21:33
   
포방덕후 정희가 전략을 육군 중심으로 짜다보니 해공군은 안중에도 없었지...
     
나무와바람 16-06-01 21:48
   
박정희 정권이 아니었을 땐 육방부가 아니었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육방부, 포방부가 된 것과
박정희 정권과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요..
     
푼수지왕 16-06-01 22:39
   
방위성금까지 모아서 당시 세계최고 기체였던 F4팬텀을 도입했던 건 전혀 모르시나 봄.
보라돌이 16-06-02 00:59
   
중동국가들은 돈 빌려줄때 이자 안 받지 않나요?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중동국가들은 이자 대신 배당금을 받을텐데... 걔네들은 문화가 달라서 이자가 없을텐데...
태강즉절 16-06-02 02:28
   
뭐 한가한 뒷 얘기들이겠죠.
70년대 중후반..미국에게 한국은 거의 계륵취급당했다고 해도 별 무리없을듯..
세계 독재자 몇인방중 하나로 거론되었고..인권 문제로 조짐 당하던 중이었고.
핵개발하겠다 tv에 나와 꼬장도 피고.. 청와대 도청 사건으로 난리나고..
미국회를 돈으로 매수한..박동선 로비니...통일교게이트니..미 의회엔 한국관련 청문회가 꼬리를 이었고..
거기 설치며 한국 씹던 상임위장은 스타 의원들이 되었고..
그 와중에 프랑스에서 재처리 들여올려다  나가리..한쪽에선 공야꽁야..몰래 핵을 조물딱거렸고..
아마 찾아보면 그외에도 갈등 많았던.....당시처럼 한미 관계가 개판으로 치달은 적도 드물다고 봐야겠죠.
방한한 카터는 박에게 열받아 보좌관들에게 화를냈다 하고..미군기지에서 잤고...
그런 혼란속에서 ..뭔 한국이 원한다고 다 주겠습니까?...미국도 골 썩었겠지여..문서상에만 그렇단거겠죠..
오죽하면...(너무 정치적일까봐서리...생략)..ㅎ
전 취임후...레이건에게 충성 다짐하고(? 군 동원해 백악관에 편지 보내기등)..그나마 이쁨(?) 받은거죠..
(너무 받다보니...뭔 국 침공시..울나라 특수부대 3백명인가 달라고 씨아이에이국장이 방한해 요청하고
한국 정부는 통사정해 겨우 뿌리치고 했다는 썰!)..느미!..ㅋㅋ

목적세...방위세.... 방위성금..광화문,명동 사채업자들마저 달고가  협박해 삥 뜯고..
애들 먹는 아이스케키에도 붙었던 ..그 시절이니 가능했을 무소불위 통치..ㅋㅋ
슬로건.."자주국방"..방송 시작시..나의조국,유신의국군등..군가나 흘러나오던 시절이니..ㅎ

포방"덕후"가 아닌.....포방신 그자체..박이 포병장교이었기에..
그걸 보며 육사 새싹들이(그것도 우수한 자원들이) 우르르 포병 병과 선호..
포방부가 된것엔..박의 영향이 다대했다 봐야겠지요...아님 말고여..ㅎ
주절주절...양해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