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6-09-15 15:06
[전략] 무너진 미국의 중국 포위망: 아웅산 수치와 중국
 글쓴이 : Shark
조회 : 5,381  



                            아웅산 수치와 중국


                             2016年9月14日   田中 宇         번역  오마니나



동남아의 미얀마에서 작년에 치뤘던 가을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을 잡은 아웅산 수치가 올 여름, 국가 운영을 시작함과 동시에,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산악지대가 많은 미얀마에는, 다수의 버마족(인구의 70%) 외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건국의 아버지"였던 수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이 1947년 2월에 소수민족을 모아 "빤론 회의"를 열어, 국가통합과 48년의 독립으로 연결시켰다. 하지만 아웅산은 독립 이전인 47년 7월에 암살되어, 미얀마는 독립했지만, 소수민족과의 내전이 70년간 계속되고있다. 수치 여사는 지난 3월에 정권을 잡은 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소수민족과 협상해, 아버지의 뒤를 이어 "21세기판 빤론 회의"를 8월 31일부터 개최했다. (Panglong Conference - Wikipedia) (Myanmar 's Foreign Policy Rebalance)


소수민족의 일부는 이웃 나라인 중국에서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수치여사는 8월 중순에 중국을 방문해 협력을 받아냈다(미국보다 먼저 중국을 방문했다). 일부 소수민족이 중국의 압력을 받아 빤론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는, 각 민족이 각각의 요구를 중앙정부에 표명한 것만으로 끝나, 앞으로 반년마다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을 뿐이지만, 정전과 적대의 완화에 도움이 되고있다. 회의가 끝난 뒤, 수치 여사는, 군사정권을 표적으로 한 경제제재의 완화 등을 촉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9월 14일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했다. (Panglong and the art of compromise) (China Rolls Out Red Carpet for Myanmar 's Suu Kyi in Beijing)


수치 여사는, 1988년에 미얀마 군사정권에 대해 민주화아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격렬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나, 장기 독재자였던 네윈이 인책사임해, 혼란에 박차가 걸렸던 시기에, 우연히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영국에서 돌아와 있다가, 사태를 방관하지 못하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는데, 50만 명의 청중이 모여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 지도자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88년 당시,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 중국에서도 중국의 봄으로 천안문 사건으로 이어진 민주화 요구운동이 계속되어, 미얀마의 운동도 그 영향을 받았다. 88년의 민주화 요구는 90년 총선으로 이어져, 수치가 이끈 NLD(민주국민연맹)가 선거에서 압승했지만, 군정은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하고, 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했다. (8888 Uprising From Wikipedia)


그 이후, 수치 여사는 간헐적으로 2010년까지 양곤의 자택에 연금되었다. 하지만, 2010년의 선거를 NLD가 보이콧해, 선거에서 승리한 군사정권 측은,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일전해 수치 여사에게 의견을 구하게 되었다. 2011년에는 NLD가 재결성을 인정받고, 정치범의 석방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의 결성도 인정 받게되었다. 2012년에는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해,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15년 가을 총선에서 NLD가 압승했지만, 헌법의 규정에 따라 의회의 상하원 의석 중의 25%는 군정 측이 쥐고있어, 올해 2월부터의 신정부는 NLD와 군정이 연립정권을 맺은 형태가 되어있다. (Aung San Suu Kyi From Wikipedia) (In Historic Burma Visit, President Obama Offers Praise and Criticism)


군정은, 선거에서 패할 것을 상정해, 2008년의 신헌법에서, 배우자 또는 자녀가 외국인인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없다는 규정을 신설해, 수치 여사의 대통령 취임을 저지했다. NLD는 하원 의석의 3분의 2이상을 취득했기 때문에, 헌법의 신규정이 없었다면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신규정때문에 수치 여사는 외상과 국가 고문으로서의 지위에 머물러 "사실상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Assembly of the Union - Wikipedia)


▼ 정권전복을 방지하기 위해 군정이 수치여사에 접근


이처럼 군사정권은, 각종 제한을 가하면서도, 수치 여사와 NLD가 정권으로 들어오는 것을 몇 년에 걸쳐 용인했다. 수치 여사와 NLD에게 권력을 완전히 넘어가게되면, 헌법 개정 등을 통해 군부가 정권에서 쫓겨나 버리게되므로, 그것을 막기 위해, 군부가 의석의 25%를 확보하고, 수치 여사가 아니라 카리스마가 없는 NLD의 수치여사의 측근이 대통령이 되게한 후 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이것은, 군정에게 상당한 리스크가 있는 움직임이다. 어째서 군정은 수치 여사를 정권내로 들여 올 필요가 있었는가.


내 나름대로의 분석은, 미얀마 군정이, 미국이 2003년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내걸렀던 "독재정권의 전복책"의 희생이 되는 것을 막기위해, 미얀마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고있던 정치가인 수치 여사를 아군으로 끌어들여, 연립정권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미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 전에, 이라크 ·이란 · 북한을 "악의 축"을 정하고, 이라크의 정권을 전복한 후, 2005년에, 이란, 북한, 미얀마, 벨로루시, 쿠바, 짐바브웨 6개국을, 정권전복을 해야 할 "폭정국가"로 지정했다.


미국의 CIA와 국무부, 조지 소로스 계의 단체 등은, 88-90년에 미얀마에서 민주화 운동이 탄압당한 후, 이웃나라인 태국으로 도피한 학생운동가들을 위해 거점을 만들어, 군사정권의 전복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2005년 경부터 그것을 강화했다. 2007년에는 IMF가 미얀마 군정에 강제한 보조금 삭감으로 연료비가 급등해, 시민의 불만이 반정부 운동의 재연(사프란 혁명)으로 연결되었다. 98년에는, IMF에 의해 보조금 삭감을 강요당해,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이 시민혁명으로 전복되었었다. 수하르토와 같은 운명을 걷게될 것을 방지하기위해, 미얀마 군정은 그 후, 수치 여사를 용인하고 포섭할 것을 고려했다고 생각된다. 군정과 수치 여사와  NLD와의 화해는 5년에 걸쳐 진행되어, 그러는 동안 미국과 유럽이 미얀마의 적대를 풀어가고, 2015년의 NLD의 선거압승을 거쳐, 올해의 NLD 정권의 탄생, 내전종결 협상으로 연결되었다. (Saffron Revolution - Wikipedia)


미얀마 군정과 수치 여사의 화해에는, 또 다른 주역이 있다. 그것은 중국이다. 88 년의 민주화 운동으로 군정이 수치 여사 등 시민운동을 탄압해, 미국 유럽 일본이 군정을 경제제재한 후, 군정에게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 외국은 중국밖에 없게되었다. 중국은 88년 8월 8일에 반정부 운동이 궐기하기 3일 전에, 군정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맺었다. 중국은, 군정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구미에게 경제제재되어 군정이 고립될 것을 예측했던 것 같다. 그 후, 미얀마와 중국의 경제관계가 확대되었다. (China-Myanmar relations From Wikipedia)


중국은, 인도양에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자국으로 석유가스를 운송하는 파이프 라인과, 인도양의 섬을 조차해서 중국해군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미얀마를 중시하게되어, 2004년에 파이프 라인 부설 계획을 세웠다. 그 후, 미국이 미얀마에 대한 적대를 강화해 군사정권의 전복을 노리기 시작했기때문에, 중국은 미얀마 군정에게, 수치 여사와 화해해서 전복되는 것을 막을 것을 권하게 되었다. 파이프 라인 및 군항조차로, 중국에게 미얀마 군정은 전복되어서는 곤란한 존재가되었다. 2012년에 중국 정부가 후진타오에서 시진핑으로 바뀌어, 패권의 다극화를 의식해 "일대 일로(실크로드 개발)"등 미얀마를 통과하는 유라시아 루트 개발을 진행하게 되어, 중국이 미얀마를 지정학적으로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미국이 미얀마 군정을 적대시해 온 만큼, 군정은 중국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되어, 미얀마는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된 느낌이 있지만, 사실 미얀마는 민족자결 의식이 강해, 중국 지배를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미얀마 지도자에 민족자결의 의식이 강한 것은, 과거 아웅산이 2차대전 중, 한 번은 일본의 산하에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했는데도, 일본이 전쟁에 패배할 것으로 판단되자마자 영국 측에 돌아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는 대가로 항일운동을 시작했을 때부터의 일이다. 우누과 네윈 등, 후속 정권의 인물 몇명은 아웅산의 학우이자, 동지이며, 민족자결의 의식이 강하다.


네윈은 62년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88년의 민주화 운동으로 인책사임할 때까지 독재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중국인인데도, 독자의 사회주의를 내걸고, 경제를 국유화해 중국인 화교 재벌로부터 가차없이 자산을 몰수했다. 미얀마 인이 중국화교를 싫어하는 것을 이용해, 자신의 인기를 모으기 위해, 화교가 세운 중국어 학교를 부수거나, 국적 관련조​​항을 강화했다. 문화혁명 때 중국이 미얀마를 적대시 한 보복으로 화교 탄압의 폭동을 선동해, 많은 화교들이 미얀마에서 나가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화교들을 추방한 결과, 미얀마 경제는 정체가 심각해져, 시민생활이 힘들게 되어 88년의 반정부 운동을 초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88년 이후, 군정은 국제제재당해, 중국 이외에는 의존할 국가가 없어졌다. (Ne Win - Wikipedia)


군정은 중국의 권유(압력)에 따라, 2007년 이후, 수치 여사와의 화해로 움직였지만, 국민이 군정을 중국의 괴뢰라고 비판하는 것을 우려해, 국민에 대한 선심성 대책으로서, 11년에, 중국이 미얀마에서 건설하고 있던 이라와디 강의 밋손 댐 공사를 갑자기 중지시키고 계획을 보류해버렸다. 중국은 이라와디 강에 7개의 댐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강의 흐름을 바꾸어, 미얀마 농업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져 국민들에게 불만이 있었다. 야당으로 다시 결성해 활동을 강화한 NLD와 수치 여사는, 중국의 댐 건설에 반대하고 있었다. 중국 측은, 댐에서 발전한 전력의 10%를 미얀마에 무상공여한다고 했지만, 댐의 발전소는 미얀마의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계획이 없고, 전량이 중국의 운남으로 보내지는 형태로 되어있었다. (Myitsone Dam From Wikipedia)


속국이라고 생각했던 미얀마에게, 협의도 없이 댐공사를 중단당한 중국은 "위약금을 지불"등으로 협박했지만, 공사중단이 미얀마 군정에게 이득이 되어 군정이 연명할 수 있다면 어쩔 수없으며, 지연되더라도 결국 댐이 완성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중국에게 이득이 되고, 인도양에서 중국으로의 파이프 라인 등 다른 사업들도 생각하면 미얀마 측과 지나치게 대립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미얀마와 중국은 별 마찰이 없이 넘어가게 되었다. 올 여름에 이루어진 수치 여사의 방중에서, 중국 측은 밋손 댐의 공사재개를 요구했다. 수치 여사는, 자신 혼자의 생각으로 댐 공사재개를 결정하면 "수치는 집권하자 중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고 중국을 싫어하는 미얀마 국민에게 오해를 살 수도 있으므로, 국내 각계의 유력인사를 모아 20인 위원회를 만들어, 그들에게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China 's Dam Problem With Myanmar) (Myanmar Leader to Discuss Contested Dam Project on China Visit)


밋손 댐을 둘러싸고 미얀마와 중국이 갑자기 대립했기 때문에, 중국을 적대시하는 미국 군산계 언론 등은 기꺼이 "중국 비판"적인 견해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전체적인 국민의 정서는 "군정이 중국의 권유에 따라, 정권을 연명해 중국의 영향권에 계속 있기위해, 수치 여사와 화해하거나,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중국의) 규모 공사를 중지하는 것"이며, 밋손 댐 건설보류에 대해서는 "미얀마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이탈하고있다"며, 기뻐한 것은, 국민들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못한 것이 되었다.


▼ 중국은 밀무역보다 지정학적 이득이 중요


이번에, 수치 여사가 정권을 잡은 뒤, 미국보다 먼저 8월 중순에 중국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치 여사가 8월 말에 개최한 "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소수민족과 화해하고 70년 만에 내전을 종식시키는 "21세기 빤론회의"에, 중국의 영향 하에 있는 워크(佤)족, 코칸족, 타안(徳昂)족 등과 같은 소수민족의 무장세력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 각 민족은, 중국과 미얀마의 사이에 살고 있으며, 중국군에서 공여받은 고성능 무기를 가지고있다. 지난해 가을, 군정과 소수민족 간의 휴전합의가 맺어졌지만, 이들 민족은 정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수치 여사의 방중 이후, 중국 정부의 특사가 국경을 따라 존재하고 있는 소수민족 지역을 돌며 압력을 가한 결과,이들 민족은 빤론 회의에 참석했다. (Chinese Envoy Encourages UWSA, Mongla Group to Participate in Peace Conference)


중국정부의 미얀마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은, 역사적인 우여곡절이 있다. 독립의 아버지인 아웅산은, 미얀마 공산당의 설립회의에 참석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웅산가 암살된 후, 미얀마 정부는 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해, 버마 공산당은 중국 공산당을 의지해, 중국 국경지대의 소수 민족지역으로 이동해, 와족과 코칸 족등의 소수 민족군대와 일체화했다. (China 's key role in helping Aung San Suu Kyi reconcile Myanmar 's decades-long ethnic conflicts)


모택동 시대의 중국은 친소련이 된 네윈정권을 적대시해, 소수 민족군대를 적극 지원했지만, 70년대 말부터 경제우선의 덩 샤오핑의시대가 되자, 중국은 군사지원을 줄이는 대신, 미얀마의 보석류와 광물자원, 목재 등을 중국으로 밀수출하는 루트로서 국경의 소수 민족 지역을 사용하게 되어, 소수 민족 측은 밀수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중국군의 무기를 사게되었다. 중국국내에서는 불법 도박과 매춘의 거점을 "국외"인 미얀마 측에 만들어, 중국에서 단체손님을 불러들여 돈을 버는 장사도 확대했다. 마약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국경의 소수민족은 자금력도 무력도 보유하고 있기때문에, 밀무역이 어렵게되고 무장해제도 재촉당하게 될 미얀마 군정과의 화해를 기피한 것이다. (China Helps Aung San Suu Kyi With Peace Talks in M​​yanmar)


그러나 2000년대가 되어, 중국정부가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루트 등 미얀마의 지정학적 이점을 중시하게 되자, 미얀마 내정의 안정이 중국에게 있어서도 중요해져, 중국 측이 미얀마의 소수 민족에게 이득을 주어 무장하도록 해 군정과의 내전을 유지선동해, 미얀마를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던 기존의 구도가 좋지않은 형국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중국정부는 미얀마 군정과 수치와의 화해를 강화하게 되어, 군정보다 소수민족에게 신뢰될 수있는 수치가 군정과 연립정권을 만들어 소수민족과 화해하는 빤론 회의를 열어,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에게 압력을 가해 빤론회의에 참석하게 만드는 흐름이 나왔다. (Panglong talks carry significance beyond Myanmar) (After Suu Kyi 's visit, Chinese state media focuses on Myanmar-India ties)


8월 말의 빤론 회의는,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평가받고있다. 하지만, 소수민족 측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 지정학적인 이유에서, 수치의 편을 들어주었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빤론 회의는 성공해, 미얀마 내정은 안정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The Problem With the 21st Century Panglong Conference)


미국에서는 "중국 포위망"을 강화해야 할 오바마 정권이, 수치 여사와 화해한 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어, 군정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 가고있다. 오바마의 미얀마에 대한 호의는, 중국을 포위 · 약화시키기는 커녕, 반대로 중국의 지정 학적 야망을 돕게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진정으로 중국을 적대시하려는 군산계 세력은, 제재해제에 반대하고 있지만 "중국을 적대시하는 척해서 강화하는"오바마 방식에 밀리고 있다.



                                              http://tanakanews.com/160914myanmar.php









  오바마, 아웅산 수치와 백악관 면담…"미얀마 제재 곧 해제"
 
 2016/09/15 03:58
   
미얀마 일반특혜관세 재지정…공동성명에 '버마' 대신 '미얀마'
수치 "미얀마, 예상하지 못한 수준까지 도달"
 
(워싱턴=연합뉴스) 김세진 특파원 =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사실상 최고 실권자가 된 아웅산 수치(71)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았다.


백악관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낮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수치 국가자문역과 만나 미얀마가 "두드러진 변화"를 이뤘다고 치하했다.


이에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변모에 대해 "미얀마가 이전에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집권 후 처음으로 미국을 찾은 수치 여사에게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에 대한 일반특혜관세제도(GSP) 재지정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GSP는 개발도상국에 상대적으로 낮은 특혜 관세를 적용하는 제도로, 미국은 미얀마의 옛 군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탄압한 다음 해인 1989년 미얀마를 GSP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백악관은 이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앞으로 미국과 미얀마가 양자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미얀마의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 사업에 미국 정부가 1천만 달러의 지급보증을 제공하는 등의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미얀마를 '버마'가 아닌 '미얀마 연방공화국'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에 가해진 경제제재를 전면 해제하지는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버마(미얀마)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가했던 (경제)제재를 해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지만, 언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곧" 해제될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 5월 미국 재무부는 미얀마 국영기업 7곳과 국영은행 3곳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고, 미얀마 금융기관과 자국 기업 또는 민간인의 금융거래도 일반제재 목록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재무부는 미얀마 군부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인 스티븐 로와 그가 운영하는 '아시아 월드'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6개 기업을 오히려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 추가했다.


미국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 개선과 관련된 조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수치 여사는 2012년 미국을 방문해 미국 의회가 개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 '의회 금메달'(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았고 오바마 대통령과도 비공개로 면담했다. 당시 수치 여사는 개인 자격으로 미국을 찾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수치 여사를 만난 것은 2012년이 처음이었다.


수치 여사는 이날 백악관 공식면담에서 "다양한 (미얀마 내의) 공동체를 포용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우리나라(미얀마)에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미얀마 민주화의 꽃, 첫 순방지로 중국 가는 까닭은?


 2016.08.15. 16:50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인 아웅산 수지가 17일 중국을 방문한다. 지난해 11월 총선과 지난 3월 민정 이양으로 국정을 잡게 된 이후로는 첫 중국 방문이다. 중국 외교부는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수지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은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초청으로 17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수지의 방중은 리 총리의 초청 형식으로 이뤄지지만 국가 정상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회담할 게 확실시된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수지 여사는 국가 의전서열상 대통령 다음 순서로 의전 관례와 양국간 협의에 따라 리 총리가 초청하게 됐다"면서 "수지 여사는 방중 기간 중 중국 지도자와 회담하고 지방 도시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수지의 방중이 9월 미국 방문에 한달 앞서 이뤄진다는 점도 관심의 대상이다. 수지가 미얀마의 민주화를 측면지원한 서방과의 관계 개선뿐 아니라 중국과도 우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를 희망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중국 난징대학의 지추펑 교수는 "수지의 방중은 그를 이데올로기보다는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실용적 정치인으로, 중국과 서방을 양측에 두고 신중한 균형외교를 펴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이 정권 이양 이후를 내다보고 수지에게 공을 들인 '선제 외교'의 결과이기도 하다. 수지는 정권교체 직전인 지난해 6월 처음 중국을 찾아 시 주석과 회담했다. 당시엔 제1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대표 자격이었다. 수지는 당시 "민주화 이후의 미얀마는 모든 나라와 관계를 중시할 것"이라고 말해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계속 유지해 갈 것이란 뜻을 밝혔다. 이는 수지가 오랫동안 자신을 탄압한 군사정권을 지원해 온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소극적일 것이란 외부 세계의 관측을 깨는 것이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당시 중국 외교 당국이 수지 초청에 난색을 표시했으나 시 주석이 직접 나서 수지의 첫 중국 방문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수지는 미얀마의 경제회복, 소수민족 반군과의 평화협상이라는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그는 1948년 독립 이후 60년째 계속되고 있는 소수민족 반군과의 분쟁 해결을 위한 '21세기 팡롱 회의'를 이달 말 개최할 예정이다. 지 교수는 "미얀마와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미얀마를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gngang.co.kr





수지의 방중이 9월 미국 방문에 한달 앞서 이뤄진다는 점도 관심의 대상이다


중국과 서방을 양측에 두고 신중한 균형외교를 펴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것"





  북한 방문 초청받은 아웅산 수치가 묵묵부답하는 까닭
 
 2016/07/29


즉각 거절한 사회주의국가 라오스 정상과는 '대조'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북한으로부터 공식 초청장을 받은 미얀마의 최고 실권자 아웅산 수치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얀마의 외무장관 겸 국가 자문역인 수치는 지난 25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으로부터 방북 요청을 받았다. 미얀마 외무부도 당시 교도통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방북 초청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미얀마 당국은 이를 수용할지 아니면 거절할지에 대한 의사표시를 아직 하지 않았다.


외무부 관리는 미얀마 타임스에 "아직 북한 방문 요청에 대해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면서 취임 초기 여러 국가에서 제안한 방문 요청을 검토하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프랑스와 독일도 그녀를 초청했지만, 아직 어느 나라를 먼저 방문할지 정하지 않았다. 중국과 미국 방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특별한 사정이 있다기보다는 일정 조정을 하느라고 북한 방문 여부를 정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현지 소식통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당초 수치는 북한 측과 면담 계획이 없었으나 리 외무상의 요청으로 잠시 만난 것 같다"며 "이에 대해 미얀마 정부에서도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수치의 이런 행보는 북한의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라오스와는 대조된다. ARF 기간에 리 외무상이 라오스 정상의 북한 방문을 요청하자 라오스 당국은 즉각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친(親) 서방 성향인 수치가 북한 외무상을 면담한 자리에서 방북 초청을 받고 즉석에서 거절하지 않은 데 대해 현지 언론도 큰 관심을 보인다.


일간 '더 데일리 세븐'은 수치가 북한 측 파트너를 만났지만, 양자 회담 내용을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얀마 현지 정치평론가 등은 민주화와 인권운동으로 명성을 쌓은 수치가 북한을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하원의원 출신의 정치평론가인 예 툰은 수치가 방북할 경우 한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것이며, 결국 이는 미얀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북한 방문에서 얻을 것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지도자가 그곳(북한)에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과거 미얀마 군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무기거래도 했다. 특히 미얀마 군부는 북한으로부터 핵무기 제조기술을 확보하려 했다는 관측도 있었다. 이 때문에 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경제 제재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됐다.


미얀마는 지난 2011년 테인 세인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개혁개방 조치를 통해 서방의 경제 제재 조치에서 차츰 벗어났고,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수치 주도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부가 출범하면서 서방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반면, 북한은 최근 잇따른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가장 강력한 유엔 제재를 받는 등 미얀마와는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는 지난 1월 북한의 핵실험 당시 성명을 통해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핵확산금지조약을 흔들고 있으며,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비난 성명을 내 주목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수치가 북한과 전통적인 유대 관계를 맺어온 자국 군부를 의식해 방북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하고 있다.



  김석철 후임 정호범 주미얀마 北대사, 석달만에 신임장 제정


2016.05.31. 09:45
 

(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한국과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올라 사실상 추방된 김석철 전 주미얀마 북한 대사의 후임자인 정호범 대사(52)가 주재국 임명동의 후 3개월여 만에 신임장을 제정했다.


31일 미얀마 관영 일간 '더 글로벌 뉴 라이트 오브 미얀마' 보도에 따르면 틴 초 대통령은 전날 정호범 주미얀마 북한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았다.


신임 정 대사는 한국과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르면서 북한으로 돌아간 김석철 전 대사 후임으로 지난 3월 부임했다.


정 대사는 테인 세인 대통령 재직 당시인 지난 2월 23일 주재국인 미얀마의 임명 동의(아그레망)를 받았다.


그러나 아그레망 이후 통상 한 달 이내에 이뤄지는 신임장 제정이 지연되면서, 아웅산 수치 주도로 지난달 출범한 미얀마 신정부의 대북 기조 변화와 국제사회 대북제재 강화 등이 이에 영향을 미친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왔다.


미얀마 외교부에 따르면 정 대사는 1989년 김일성대 철학부를 졸업하고 1992년 외무성에 들어왔으며, 대사 부임 직전에는 의전 업무를 담당했다.


북한은 지난 3월 16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정 대사 임명 사실을 발표했다.


한편, 정 대사의 전임자인 김석철은 지난 2007년 북한과 미얀마의 외교관계 복원 이후 계속 대사직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1월 현직 대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특별제재 대상에 지정되고 이어 올해 3월 우리 정부의 독자 금융제재를 받는 단체·개인 명단에 오른 뒤 귀국길에 올랐다.







한 달만에 신임장 제정받은 최강의 미국대사


             박 대통령, 21일 리퍼트 주한미대사 면담

 

 

2014-11-20 18:58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마크 리퍼트 신임 주한 미국대사와 처음으로 면담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리퍼트 대사 등 신임 주한 외국대사 3명으로부터 각각 신임장을 제정 받을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주한 외국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은 뒤에는 항상 개별 환담을 해왔다. 따라서 리퍼트 대사와도 대화를 나눌 것으로 보인다. 리퍼트 대사는 지난달 30일 한국에 공식 부임해 공식 활동을 시작했지만 박 대통령과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리퍼트 대사는 올해 41세로 주한 미국대사로는 역대 최연소이지만 그동안 미국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이다.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수석보좌관 겸 비서실장과 국방부 아·태 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지난해 4월에는 척 헤이글 국방장관 비서실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

 

사상 최강급의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에 부임해서, 거의 한 달 만에 한국 대통령을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다른 나라 대사들과 무데기로.....뭐, 25분 환담한 것이 다른 대사들의 15분 보다는 길다며, 미국 대사라서 배려했다고 그런 얘기도 신문에 나오게 되었다. 과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미대사에 안호영 전 외교부 제 1차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후 처음으로 4강 대사들을 인선하면서 미국주재 대사에 안호영 전 외교부 제1차관을 내정했습니다. 김숙 유엔대표부 대사는 유임됐습니다

 

안호영 주미대사 내정자는 미국으로 부터 동의를 받는 아그레망 절차를 거친 뒤 정식 임명되는데 5월 상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 전에 워싱턴에 부임해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예상 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대사인선에서 대선 공신이자 친박계 핵심인사로 꼽히는 측근 인사들인 권영세 전의원을 중국대사에, 이병기 전 고문을 일본대사에 내정한 반면 미국, 유엔, 러시아대사 들엔 직업 외교관들을 기용했습니다

 

안호영 주미대사 내정자는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외시 11회 출신으로 외교부 다자 통상국장, 벨기에와 유럽연합대사, 통상교섭조정관 겸 G20 대사를 거쳐 지난달까지 외교통상부 제1차관을 역임한 직업외교관 출신으로 통상전문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최영진 현 대사가 외시 6회인데 비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0회, 안호영 대사 내정자는 외시 11회여서 주미대사가 외시 기수에서 크게 내려가게 됐습니다

 

북한의 전쟁위협(작년에 발령)으로 안보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통상전문가를 주미대사에 기용다소 의외의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교장관이나 국무총리, 중진 의원 등을 지낸 중량급 인사들이 주로 맡던 주미대사에 차관급 인사를 내정한 것도 의외로 받아들여 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동맹관계는 대사와는 상관없이 이미 굳건하게 안정돼 있다고 판단하고 통상 전문가인 안호영 전 차관을 주미대사에 기용함으로써 시행 1주년을 갓 넘긴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의 성공적 이행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외교가에서는 올해 한미동맹 60주년을 맞는 한미관계가 최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현재

의 관계를 잘유지하면서 양국간 경제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뜻이 담긴 인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http://wktvusa.com/%EC%A3%BC%EB%AF%B8%EB%8C%80%EC%82%AC%EC%97%90-%EC%95%88%ED%98%B8%EC%98%81-%EC%A0%84-%EC%99%B8%EA%B5%90%EB%B6%80-%EC%A0%9C-1%EC%B0%A8%EA%B4%80/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귀요미지훈 16-09-15 23:11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
참치 16-09-16 02:10
   
무너짐?? 뭐가 무너짐?? ㅎㅎ
낭만곰탱이 16-09-16 07:50
   
미얀마?
아시아 최악의 무계념 후진국 쌔1끼들이 잖아.... <북한 다음>

탈북자 아이들을 북송 시켜 버리는 18것들...
원래부터 인권도 없는 짱께+북한 똘마니들이지!
길잃은농부 16-09-16 08:09
   
글쓴분이 잘 모르는듯.. 미얀마는 원래 공산주의 국가였고.. 동남아는 첩첩이 국가들이 밀집해있는데 미얀마가 친중노선 탓다고 해서 미국 봉쇄라인이 무너졌다니 .. 영향이 전혀 없는건 아닙니다만 무너졋다는 표현은 그냥 헛소리 수준으로 밖에 안보이는데요..?
미국의 봉쇄와 중국의 확장이 무엇을 목적으로 진행돼는지 모르는체 남의 다리 긁는소리입니다..
중국에게 있어 수세형세에선 북한이 아주중요 요충지 일지 몰라도 공세 입장에선 지정학 상으론 대한민국이 중요 요충지 일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를 아신다면 이런글에 모순이 많다는걸 금방이해 하시겟죠..
모른다면 팔자로 넘기시거나 자신의 머리를 탓하는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공세라인이 고착화 장기화될수록 중국이 이어도를 침범하고 마찰을 일으킬확율이 그만큼 상승하는겁니다..
프리홈 16-09-17 03:55
   
미국이 역사적으로 뒤쫓아 달려드는 국가를 그대로 넘긴 적이 없읍니다.

자유진영인 일본도 그랬었는데....
하물며 공산진영인 중국이야... 몇년후 껀수생기면 아작나게 되어 있네요.

미얀마 정도로 포위망 어쩌구는 개발에 편자....
아비요 16-09-17 05:46
   
미얀마는 애초에 봉쇄선이 아니었으니 무너진다는 말도 성립이 안됩니다. 동남아쪽은 전체적으로 중국인에 약간의 반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에 크게 반하는 국가는 몇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