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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2-02 19:41
[질문] 근세 밀리터리 아시는분있나요? 질문좀하겠습니다
 글쓴이 : Marauder
조회 : 1,807  

소설을 써보고싶어서... 알아보려고하는데요.
혹시 대답이아니라 찾을수있는 싸이트라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위키류에서는 잘안나오더군요)
밑에서 나오는 조선은 전부 병자호란시점입니다.

1. 소설에서 나폴레옹시기 피라미드방진이 대기병방진으로 쓰였다는데 찾아보니까 피라미드방진으로 검색해도 안나오네요. 대충 삼각형으로 기병이 총검을 피해 안으로 들어오면 포위사격으로 죽이는? 방식인것같아요. (창병방진으론 비슷한게있다고 알고있는데 전열보병이 쓰는건 처음봤네요)
그리고 이 이외에도 다른 대기병 방진이 있을까요?(사각방진도 있다고본거같은데 자세힌모르겠네요)

2. 대기병 상대시 화승총에 총검 vs 장창 
예를들자면 만주기병을 상대했을 때 테르시오를 섞어서 싸우는게 나을지 아니면 순수 전열보병을 사용하는게 나을까요?(물론 창이 값싸고 만주기병은 특징상 기사를 쏠 수 있었을거같긴합니다만...)
테르시오의 단점이 포병으로알고있는데 후금이 대포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써볼만하지않나해서요.

3.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애깃살 사수가 어느정도 됬을까요? 

4. 탄중에서 아이언볼이라는게 있다고본거같은데 검색에는 안나오더군요.(구르는 탄인거같은데 아편전쟁때 사용한거같네요) 병자호란시점에서 아이언볼과 백린탄을 제작, 사용할 수 있나요? 백린은 화학적 지식과 도구가 없다면 못한다고 쳐도 아이언볼은 가능하지않을까요? 아니면 그정도 대형화포는 휴대가 불가능해서 공성용 이외에 야전으로는 사용 불가능할까요?

5. 비전문가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총의 최고사양이 어느정도가 될까요?
(인터넷 밀리고수정도가 조선시대 야금술로 만들수 있는 정도)

5-1 조선시대에 금속탄피제작은 어려울까요? 그렇다면 페이퍼카트리지도 힘들까요?
가능하다면 후장식 소총은 격실폐쇄? 때문에 힘들거같고 화승총에 사용하는건 별 의미가 없는거겠죠?

6. 기동전에 들어갔을때 대포를 끌고다니기 어렵다면 신기전을 대용으로 써도 크게 상관없을까요?

7. 소설에서보면 서양범선은 만드는경우는 없고 무조건 사오더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지식이 있더라도 만들기 어려워서일까요?

많은편이긴한데... 미리 감사드립니다. 몇가지 스토리 구상중인데 아무래도 잘모르는게있어서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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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스마트SM 16-12-02 19:51
   
화포 운용.  후금. 청나라에서 제법 사용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명말. 청초무렵.  서양 선교사 등을 통해.  공성전. 수성전에서  운용 가능할정도로.
     
Marauder 16-12-02 19:55
   
그런데 정작 산해관공략 초기 화포는 거의 동원안된걸로 알고있는데 아닌가요? 또한 공성전이 아니라 야전이라면 못쓰는 수준이 아닐까싶기도하구요...
나무와바람 16-12-02 20:10
   
소설을 구상중이시라면...인터넷으로 문의하시는 거보다 직접 대형서점을 방문하셔서 관련 서적들을
구입하든 그자리에서 살펴보시든 하시는게 여러모로 나으실 것 같네요...
     
Marauder 16-12-02 20:21
   
아무래도 제가 원하는 수준만 쏙쏙 꼽긴 힘들거같아서요. 심각하게 전문화된걸 원하는건아니라서요...
          
나무와바람 16-12-02 20:26
   
아 그러시군요...나중에 작품이 완성되시면 한번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
               
Marauder 16-12-02 20:32
   
아무래도힘들것같지만...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sunnylee 16-12-02 20:12
   
1.화승총+ 창병 조합방진,기병상대 방진전술은.. 스웨덴의 북방전쟁, 폴타바 전쟁 참조 하시면 나오고.
 당시의  전투방진의  전열에 창병방진과 후위의 화승총 사수가  사각형의 부대별 간격의  포진
(나폴레옹 시대의 주 전투방시.. 19세기초 영국의 수단식민지 전투,
영화 four feathers(유튜브 에 전투장면,포진 나옴)
 중세이후 화승총 등장후 피라미드식 방진은  쇠퇴,변형되
 적의 포병후 기병,보병돌격을 막기위한 방진으로 주로 사각을 줄이는 방식으로
 주로 축성지 중심의 방어진으로 변형 됬었다고 하내요..
2, 테오데시를 언급 하시는데.. 일단
  그이전에 그런 전술조합을  시초로 볼수 있는 폴타바 전쟁 경과에서도 나오지만.
당시 화승총의 성능이 비교적 낮아 전열방어을 창병으로 짠다고 해도
지형상,전술적으로  어느쪽이 더 낮다고 할수는 없내요.
강력한 전열보병+ 창병 방진도 기병 돌격에서 격파되었다고  나오는데..
적의 보병 전지 간격을 시간차, 지형상의 이점으로 격파한 예도 나오네.
거기에 기마궁수의  기동간 우회공격이라도 ..
지형,화력, 병력의 차이가있지 않는 이상 무엇이 더강하다고  평가 할수가..
19세기초 수단식민지 전투에서 봐도 현대식 무장의 영군 레드코트부대도,
칼,창만으로 무장한 민변수준에 패한 기록은 많음
3, 패스.. 그시대  기록은..

4. 그시대 아이언볼 기록을 잘모르겠지만.
기존의 구형의 탄을 쇠사슬로 엮어 2개를 동시에 발사하는 형식의  살상력을
늘리는 방식의 형식은 다수 존재.
작은 구경의 구형탄알을 층층이 엮어서 쓰는 포도탄,
작은 마대자루에 쇠붙이 집어 넣어 발사 하는 산탄포형식은  미국 알라모 전투전투때 까지도 사용
     
Marauder 16-12-02 20:29
   
1번 소설에서 전장식 라이플인가 머스킷으로 피라미드식 방진을 펼치더라구요. 그렇다면 이건 그 작가가 잘못한걸까요?

2번 무장에서 어느쪽이 더강하냐가문제가아니라 일단은 최선의 대응이 뭐일까가 문제라서요... 특히 만주기병같은 경우 돌파력이 떨어지고 동아시아 전쟁 특성상 전열숫자가 엄청나서 랜서를 잘안썼다고 나오더라구요

답변은감사합니다.
          
쿠르웰 16-12-02 20:37
   
기마병들이 충격 목적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진형을 짜서 공격한 적은 많은데...
그 기마병들을 상대로 보병들이 피라미드 형태의 진형으로 방어했다는 기록은
처음 봅니다. --;;;

화승총을 처음 사용했던 16세기 테르시오도 사각형태의 방진이 기본이었고 이후 미국 식민지 시대나 나폴레옹 시대 때에도 사격형태가 베이스였습니다...
          
sunnylee 16-12-02 20:39
   
조금은 상상력만으로  작가분이 쓰신듯 하내요..
실제 전사에 소단위 부대 최후방어전에서 원형 방진 기록이나 일반적인
사각형방진  부대 간격 방진기억은 있어도..,

 피라미드 방진은 솔직히 고대식 창,검 전투시대떄.
기마대, 주로 전차의 격돌 공격을 막기위한 방폐병과의 조합에서  주로 쓰이는데
보병간의 전투에서  지형적 특성이 아닌 이상  적의 후위 공격에  절단되기 쉬워
잘 안쓰죠...
               
Marauder 16-12-02 20:43
   
호루스의 반지라고 나폴레옹 환생소설인데 나름 잘쓴 소설이라서... 찾아보니 총병은 안쓰는거같긴하더라구요.
소설에선 아편전쟁 직후 러시아가 동진해와서 주인공이 싸우는데 병력을 잘게 쪼개서 기병돌격을 막았던것같은...
기억나는 씬에서는 지형이 후방공격을 못하는 곳에서 싸웠던거같긴하네요...
쿠르웰 16-12-02 20:17
   
나폴레옹 시기에 대 기마용 진형은 방진이 표준이었습니다.
워털루 전투와 관련된 매체나 그림 등을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기마는 공격이 아니라 정찰이나 보병들로 하여금 방진을 형성하여 진을 빼게 만드는 역할이 컸죠)

그리고 장창이랑 화승총 문제도 기마의 무장에 따라 달라지죠, 장창쓰던 시절에는 기사들이 긴 랜서를 들고 돌격을 하니 장창으로 맞대응한 게 맞는데 시대가 흐름에 따라 화약병기가 위력이 강해지니 랜서 같이 긴 무기가 필요없게 되고 자연스럽게 총검수준으로도 충분한 방어가 가능하게 됩니다.
(물론 가끔씩 긴 랜서를 사용해서 뒷통수 때리는 기마병들도 있죠. 울란이라고 해서 나폴레옹 시절에 사용한 창기병이 있습니다.)
     
Marauder 16-12-02 20:23
   
생각해보니 동아시아에서는 랜스자체를 거의 안쓴것으로알고있으니 가능하다면 굳이 장창병을 쓸 필요는 없겠군요.
          
구름위하늘 16-12-05 11:43
   
랜스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기마용 장창은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조선시대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전에는 장갑기마병과 경기마병이 둘 다 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원거리 투사무기가 기마속도를 압도하지 못한다면
경기병을 상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전열의 장창병은 필요할 것 같네요.
쿠르웰 16-12-02 20:20
   
그리고 5번에 금속탄피 문제는 다른게 아니라 뇌관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일반 머스킷 같은 경우에는 옆에 노출된 해머가 옆에 화약받이에 있는 화약을 점화시키거나 퍼커션 캡이라고 하는 뇌관을 때려서 안에 화약을 점화, 탄을 밀어내는 동작을 합니다.
그런데 금속탄피나 종이탄피는 탄 안에 뇌관이 들어있고 이걸 공이가 치면서 격발, 탄을 밀어내죠.
즉 화승총이나 이후 플린트락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기술입니다.
(격발 방식 자체가 완전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Marauder 16-12-02 20:33
   
그런문제가있군요 ㅜ 그에 맞는 다른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이쿠 16-12-02 20:51
   
3. 조선시대 시기별로 동원가능한 궁수 숫자가 다르겠죠
참고로 궁수는 매우 고급 병력으로 전신에 임시로 동원이 거의 불가능하죠
궁수는 무조건 상비군이라고 보면되고
전쟁에서 한번 소모되어 버리면 복구가 불가능하죠
그리고 궁수중에 애깃살 사수는 일부이겠죠
애깃살이 무적은 아니고 장점보다 단점이 많으니
특정목적에 사용하는 소수만 애깃살을 다룰줄 알면되죠

5 비전문가가 만들수있는 조선시대 총은 화승총이겠죠
플린트락 방식은 동아시아지역은 질좋은 부싯돌 조달이 불가능해서 어렵고
퍼커션캡 방식은 뇌홍을 만들 화학물질 제조가 불가능하죠

5-1 뇌관인 뇌홍을 제작할 화학기술이 없으니 불가능합니다

6 신기전은 생각만큼 살상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기전은 적에게 겁을줘 방진을 깨기위한 용도가 강하죠
실제 위력이 일반 화살에 비해 떨어진다해도
연기가 나는 불화살이 대량 발사되는 모습은 적에게 충분히 공포스럽죠
     
Marauder 16-12-02 20:57
   
3. 병자호란시점이요. 당시는 궁수가 사장되는시점이다보니... 그런데 비정규전이나 사거리싸움때문에 필요하지않을까싶어서요.
5. 나무위키보니까 나선정벌당시 노획한 총을 바탕으로 플린트락방식을 만들었다가 비용이 3배라서 포기했다고 써있더라구요.
6. 아무래도 당시 대포가 무겁다보니까 기동전을 요구할때는 대포보다는 신기전이 낫지않을까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포가 낫나요?
     
구름위하늘 16-12-05 11:51
   
저는 대포에 비하여 신기전은 화약 낭비가 매우 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국가 화약 생산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신기전 사용은 효율적인 무기체계가 아닌 것 같음.

기동전의 형태도 산악기동에는 어차피 둘 다 어렵습니다.

화약을 낭비하더라도 기습의 효과가 있는 경우로 산정하면 될 듯.
대포와 신기전은 지속 공격력 vs 순간 공격력의 차이니까요.
          
Marauder 16-12-07 10:42
   
흠... 그 이후에 만주벌판에서 싸움이일어날때가 문제라서요...
rozenia 16-12-02 22:18
   
7.소설에서 동양 혹은 비서양국가가 문명화되면서 서양범선 혹은 군함을 사오는 시대는 거의 빨라야 1800-1900년대초정도 되겠군요.

쉽게말해 산업기술전반과 서양군대의 전술에 대한 이해도 모두가 부족해서, 스스로 만들어낼수 없기때문입니다. 아시겠지만 대체역사물이나 실제 일본의 역사를 본다면 처음 10-20여년은 구매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외국인 기술자를 초빙해서 조선소와 해군훈련원을 만들어서 조타, 조양, 등의 각분야의 운영에 관한 노하우와 군함건조기술을 라이센스 혹은 시대상 거의 훔쳐배우는 수준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다가

사건이나 특정계기로 돈이 좀들더라도 스스로 건조하기 시작하죠.

현대의 우리가 누리는 사업과 과학의 기초는 근대의 유럽에서 시작됩니다. 동양국가는 그게 뭔지도 왜 필요한지도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에요. 우리나라의 경우, 1860년대 유교국가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일본은 막부정치의 끝머리에 미국군함이 등장하고 청나라도 1840년에 영국과 아편전쟁이 벌어짐으로서 처음으로 서양의 군사적 실증적 과학기술이 우세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전까지 청나라대국이 짱이야 사상이 만연했구요.

심지어 1836년인가 영국사절단이 처음 청국을 방문했을때, 청나라는 머나먼 서쪽의 끝에서 스스로 신하가 되기 위해 찾아오다니 고생많았다며 상금도 내렸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서양의 존재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수백년간 역사속 동방의 역사속 서양은 아프리카인 마냥 천대받았습니다. 경계나 배움의 대상이 아니었죠.

그러다 거대하기만 하던 중국이 영국한테 한방에 깨지고 나서야 " 아 쟤네 싸움잘하네~ " 하고 무기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근데 일본도 중국도 비슷한시기 근대화를 시도하지만 애초에 중국은 무기만 수입한다는 취지였고 일본은 싸그리 다배워먹겠다라는 의도로서 중국의 근대화는 사실상 실패하죠.

요정도 시기가 일반적인 군함구매가 판을 치던 시기입니다. 1850-1920년대 사이정도. 당대 최강해군국가는 대영제국이고 미국은 1900년대가 되서야 영국해군 수준에 도달합니다. 미국이 최강국이 아니었죠. 물론 기술적으로 괜찮은 국가였습니다.

1840년대 중후반부터 범선에서 철갑선으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1860년대 후반에는 장갑함이니 모니터함이니 미국의 남북전쟁의 영향으로 연안에서 해안포대를 상대하는 함정까지 등장하죠. 이것이 1890년대 영국의 드레드노트급 전함(동일한 구경의 함포를 동일한 방향으로 일제사격이 가능한 구성)개념이 등장했고 이게 우리가 알고 있던 일본의 야마토니 하는 전함형태의 기초가 됩니다.

일본의 경우, 1850-60년대 이미 막부말기에 서구형군함을 건조했으나 수백톤에 불과한 배수량이었고 본격적으로 건조기술을 축척한것은 1880-1920년대로 1차대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와서야 완전한 국산전함을 건조할 능력을 보유하게 됩니다.
     
Marauder 16-12-02 23:52
   
7. 서양범선은 굳이 1800년대까지 안가더라도 임진왜란정도만되도 그정도 되는거같네요. 장갑함 이후는 사오는게 이해가되는데 그이전 배자체는 설계도만있으면 만들수있는게 아닌가싶어서요(물론 없다면 사와야겠지만요) 그리고 배의 운용자체야 일일이 가르치려면 군사전문가 선박전문가 초빙하는게 당연하죠.
          
rozenia 16-12-03 01:41
   
너트하나도 왜 만들어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는 교육을 받아도 만들줄 모르고 만드는걸 배워도 재료를 가공하는법을 모르고 가공법을 배워도 원석채굴에 한계가 있고 더불어, 볼트를 왜 역학적으로 그부위에 고정하는지 모르는거죠.

과학자체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겁니다.  참고로 전열함의 층간 방포와 측면배열자체도 경험하기 전까지 청국은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그건마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나 비아프라같은 나라가 스스로 군함을 만들기 보다 구입하는이유입니다. 훨씬 줄어든 격차의 예지만 필리핀조차 우리나라 초계함다운버젼을 수입하죠.

단적인 부분으로 전함에 들어가는 철강제련공법도 동양은 전혀 모르던 부분이었죠. 반대로 말씀하시던 조선시대 중후기, 굳이 예를들자면 아편전쟁 정도시대가 되겠네요. 당시 영국이 파견한 군함 거의 모두가 목조로 된 전열함이었으니.

왜 설계가 이렇게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대장장이는 카피밖에 못하겠죠. 물론 그 카피도 제대로안될겁니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군함의 속도를 더 내거나 기동성을 확보하는 설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죠.

다른가게보고 이집처럼 인테리어하면 이쁘겠다 할수 있겠지만 새로운 디자인설계를 어떻게 할지는 모르는거죠. 물론 당시의 수준으로 볼때, 단순히 디자인설계부분만 노력해서 될일이 아니라 재료나 공구, 장비 모두 배우고 수입해야 했습니다.

서양의 범선구조는 동양과 많은 부분 의도가 다르니까요. 갑판의 고정방식과 지지대의 견착구조를 모르면서 도면을 뽑아내는게 불가능하단 뜻입니다.
               
Marauder 16-12-03 12:31
   
너트를 왜만들어야하는지 몰라도 너트 조이는거는 지식이없어도 꼬마라도 하잖습니까? 일단 이용하는거야 엄청난 지식을 요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배만들던 사람이 없는것도아니고 원리를 몰라도 만들수야있지 않나요?(물론 1600년대 만드는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그리고 현대는 결국 돈문제라서 외국에서 사오는게 싸게먹히는데 아무리 먼곳이라도 몇일밖에안되고 항해도문제없고 위 기본적으로 뱃길과 물류가 뚫려있어 위험도 적기 때문에 외국에서 사더라도 실재 물류비용은 없는샘이나 마찬가지지만 16세기 유럽에서 사오는건 경쟁도 엄청난 바가지에 몇달걸리는 거리에 해적에 나포될 위험(물론 바다에서야 그럴일이 적겠지만 해도가없으니 원양항해는 힘들고 무엇보다 보급을 안할순없겠죠) 대량구입이 힘들다는 문제(임진왜란만해도 판옥선 수백척을 사용했죠) 등등을 갖고있지않나요? 뭐 기술격차가 커질수록, 사오는 배의 성능이 소수만으로도 엄청난 위용을 자랑할 때야 다르겠지만 17세기 초에서 그정도일까 의문이들어서요.
               
Marauder 16-12-03 12:33
   
아물론 아편전쟁 시기라면 무장상선 하나가 청나라 배 스무척을 침수시킬정도로 배의 성능격차도 어마어마하고 동인도 회사를 통한 무역이 활발해 항로가 충분히 개척된 상태니까 그당시라면 사오는게 이득이라는건 알고있습니다.
                    
현시창 16-12-03 14:27
   
임진왜란 시기만 해도 스페인 마닐라 갤리온 배수량이 2000톤이 넘어갈 적, 조선 판옥선의 규모는 가장 큰 것도 300톤규모였습니다. 주재료도 판옥선이 소나무인데, 서양범선의 경우 주로 오크나무를 사용하고, 남미 식민지를 거느린 스페인은 특이하게 마호가니 나무를 사용했습니다.(마호가니는 오크나무보다도 더욱 단단해서 지금도 고급가구에나 쓰이는 매우 비싼 목재이고,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비싸고 귀했습니다.)

간혹 러시아나 네덜란드가 소나무를 재료로 범선을 만들기도 했는데, 주재의 강성과 내구성 문제로 수명이 짧았고, 내구성도 떨어졌으며, 무엇보다 배의 규모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몇년 써먹고, 런던 템즈강으로 끌고와 분해해서 뗄감으로 팔곤 했습니다.(18세기쯤가면 영국도 숲이 말라서 뗄감값이 올라 그냥 싸구려 소나무를 뗄감운송용으로 배를 만들어 템즈강까지 끌고가 즉석으로 분해해 뗄감으로 팔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건조비를 줄이려 배의 뼈대를 오크목으로 하고, 외부판재를 소나무나 전나무등 상대적으로 싼 침엽수목재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몇년 써먹고, 판재를 떼다 뗄감으로 팔고, 다시금 판재를 두르면 되니까요.

그리고 이미 임진왜란 무렵이면 대포를 탑재한 서양범선의 위력은 놀랍도록 발전해서 몇척안되는 서양함대가 인도의 대규모 함대를 격파하는 등의 성과를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만약 수입할 수 있다면 수입하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이미 조선엔 그만한 범선을 건조할만한 고급목재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도 거대 건축물이 발달했던 삼국시대의 주된 사용목재가 참나무와 상수리나무아속이였는데, 이런 고급수종이 메말라가며 점차 주된 사용수종이 소나무로 바뀝니다. 상대적으로 내구성과 강도가 떨어지는 소나무로 바뀌며 건축물의 규모도 줄어들게 되죠. 소나무는 내구성이 떨어지고, 가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건축물의 규모 역시 제한받고, 유지비 역시도 비싸질 수 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의 규모는 몰라도 각 전각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청렴결백해서라기보단 구할 수 있는 건축재의 제한때문이라고 보는게 옳습니다. 따라서 만약 17세기 초잔에 서양범선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하여도 그 규모는 제한받았을 것이고, 서양보다도 더 비싼 건조비를 감당해야 했을 겁니다. 당연히 그 내구성도 더 떨어졌을 것이고.(일례로 절이나 사원등 느티나무나 참나무를 사용한 전각들은 예전의 들보를 그대로 쓰지만, 소나무 사용 전각들은 지금도 복원이나 보수공사를 받아왔고,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죽 받아야 합니다.)
                         
Marauder 16-12-03 20:49
   
아 나무문제가 있다는걸 깜박했군요. 감사합니다.
크레지온 16-12-02 22:59
   
3번의 경우 웬만한 고급병력은 애깃살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에서도 애깃살을 다룰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또한 병사들에게 편전사법을 훈련시킨 기록도 있으니 웬만한 정규군의 사수들은 애깃살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애깃살의 용도가 장거리에 있는 상대 진형을 때리는 것 외에도 상대가 되돌려 쏠 수 없게 짧은 화살을 사용하기도 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