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이전 조선은 일본도에 관심이 없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 정규군이 조선을 침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구들로 인해 피해는 본다.
일본 왜구들이 정규군은 아니나 싸우는 방식이나 무기등에 대해 알 수는 있다. 게다가 왜구들 뒤에는 다이묘들이 있는건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그들이 가져간 물건과 사람들 팔아먹을 곳은 왜 뿐이니 말이다. 그럼 임진왜란 이전에 왜구들과 조선군의 싸움에 대해 상세하게 대충 알아보도록 하자.
왜구들의 전법은 간단하다. 적을 발견한다. 칼들고 돌격이다.
저렇게 칼들고 돌격 하는데 왜 조선군은 일본도에 관심이 없었을까?
일본도를 들고 달려들면서 "니~혼~도!!!! 이..따이!!!"하면서 활 맞아 죽는 왜구를 보며 조선군은 술렁인다. 니혼도 이따이? 무슨말이지 마지막 유언인가? 저주인가? 고민하면서도 달려드는 왜구들에게 활은 계속 쏜다. "야메때!~~ 조선군짱 바카"하면서 도망가는 왜구들에게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퇴각하는 왜구에게 조선 창병들이 쫓아가서 죽이는 형식이다.
왜구들에게 활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그놈의 사거리가 너무 숏하다. 크기는 동북 삼국 중 어찌보면 가장 크지만 사거리는 가장 짧다. 덕분에 항상 난전을 펼치기전 조선군은 활로 인해 적의 사기를 꺽고 싸울 수 있을수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왜군 정규군과 교전이 일어나면서 조선군은 일본군에 대해 약간의 공포가 생긴다.
첫번째. 조총에 대한 공포.
두번째 근접에서 싸워보니 생각보다 일본도와 검술이 무섭다는거다.
일본군의 주력은 사실 조총도아니고 일본도로 무장한 사무라이도 사실 아니다. 창병이다 3미터에 가까운창이다. 하지만 늘 사거리서 우위를 점했던 조선군은 큰 총소리에 놀라고 보이도 않는데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동료의 죽음에 두려워한다. 게다가 늘 도망가던 왜구에게 창질하다가 미친듯이 성벽을 올라와서 "니~혼~도!!! 이쯔방 반자이!"하면서 칼을 휘두르는 왜병에게 기겁한다.(왜구가 말하고 싶었던 대사는 이따이가 아니라 이쯔방이였다는걸 여기서 밝혀진다.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물론 개뻥이지만.) 조선군은 장수급이나 궁병이나 기본적으로 활을 들고 다니고 보조무기로 환도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일본도(카타나)에 비해 환도는 주력 무기라고 보기 보단 보조무기에 가깝다. 활을 들고 돌아다니기 편하게 검이 짧다.
조선 전기의 환도 규격은 다음과 같다(영조척).
보병용 : 칼날 55.63cm / 자루 20cm / 합계 73.63cm
기병용 : 칼날 49.60cm / 자루 16cm / 합계 65.60cm
하지만 일본의 칼은 96cm가 넘는 카타나이다. 짧은칼과 긴칼이 싸우면 기본적으로 긴칼이 유리한건 당연하다.그리고 당시 일본군은 일본 통일전쟁 경험도 있고 사무라이들은 칼도 제법 잘 쓴다. 게다가 늘 치고 박고 싸우던 북방민족들의 칼에 비해 길고 날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남부 지역 조선군은 왜구 쫓은 경험만 있지 정규전과 신무기(조총)에 대해 무지했다. 당시 조선군으로선 깜놀 할 수 뿐이 없었다. 늘 무시했던 왜에게 붙을때마다 조선군이 GG 치기 바쁘기 때문이다.
[만일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이 대마도주가 준 조총을 양산하고 당시 각성마다 대포 정비 그리고 잘 훈련된 병사 양성 군선 정비등 신경 썼더래도 초기에 진압 가능했을것이다. 아니 하다 못 해 조총 소리에 놀라서 사기가 꺽기는 일은 없었을거니 말이다.]
어찌 됐던 조선군은 밀리면서도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 시작한다.
[1.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로 적의 보급로 차단
2.전쟁이 익숙해지면서 조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미지의 무기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조선군도 당시 항왜들(부산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빠르게 조선군에 투항한 조총부대가 있다.)의 협력으로 조선군도 조총병을 육성한다. 항왜들에게서 일본도와 검술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한다(물론 약간의 환상도 가지게됀다)
3.그리고 의병들의 활동
여기에 관해선 다음에 시간이 나면 이거 저거 적다보니 너무 길어지는듯하니. 칼에 대해서만]
전쟁이 길어지고 초기에 밀리던 조선군도 차츰 적의 무기에 익숙해지고 게다가 일본도에 대항하기 위해 환도의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다. 어찌됐던 위에 관한 이유로 조선군은 왜란은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몇가지 역사기록.드라마.일본 에니 그리고 인터넷등 때문에 편견이 생긴다.
일단 검술등에 대해서는 크음.. 할 줄 아는건 총검술뿐이니 패스.
바로 일본 검술 장인이 한방 한방 망치로 두드려 만든 일본도는 존네 튼튼하고 강하다는 편견이다.
일본장인이 한방 한방 두드려 만든 일본의 접쇠 공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비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철 제품의 원료가 되는 철정 자체부터가 접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 이후 시기에 도검제작시 접쇠 공정이 사라진 것은 강철 생산 및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접쇠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자랑하는 방법은 당시 조선시대로서도 옛날 방법이다. 검의 강도로 따지자면 평균적으로 조선 환도가 훨씬 튼튼하다. 일본 최고의 장인이 한방 한방 최고로 두드려 만들어야 평범한 환도 기술자 수준의 강도이다. 임진왜란 도중에도 그냥 동네 박씨네 대장간서 제조한 낫에 부러지는 일본도도 있었다. 일본도가 한방 한방 만들고 했던건 철이 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써서 만든건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처음부터 재료가 안 좋은거다보니 일본도 중 상급이 아닌 중급 혹은 하급은 오히려 조선의 일반 대장간서 만든 낫보다 강도가 안 좋은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환도가 튼튼하다는것이다.
자 그래도 일본도 전통 방식으로 최고의 장인이 만들면 튼튼할꺼야란 환상에 있다면 이걸 보면 된다.
지금 휘두르는 일본도는 전통 방식 접쇄식으로 만든 카타나이다. 밑에 받치고 있는 그레이트 소드는 현대식 제법으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가까운 제철소가서 튼튼한 강철 좀 환도 모양으로 뽑아주세요라고 하고 집에서 칼날 세우면 날카로움은 일본 장인이 만든거보단 떨어질지 몰라도 강도면에선 저기 동영상처럼 되는거다.
고로 최근 퓨전 판타지 소설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이 가까운 제철소서 칼하나 만들었는데 번개라도 맞고 과거 전국시대 일본으로 뚝 떨어져서 일본 사무라이와 대결하는걸 생각해보자.
일본 사무라이가 주인공을 향해 말한다.
"어이 슈밤. 내 칼은 저기 큐슈 성주의 직속 무기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고 이 멋진 칼에 이름을 못 정해서 고민하다가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발톱을 한번에 베어서 작명한 스메끼리라고한다. 멋지지 푸헤헤헤헤 니 칼 이름은 뭐임? 쿠쿠쿠쿡..."
"시끄럽다. 슈발넘아!"라고 외치면서 주인공은 사무라이를 벤다. 칼과 함께 한번에 베어진 사무라이는 쓰러지면서 말한다."컥 명검 쓰메끼리를 ....대단한 검이구나 시끄럽다슈발넘아는" 다음날 부터 명검 시끄럽다슈발넘아의 명성이 전 일본 열도에 퍼진다는 감동이 넘치는 이야기가 생긴다.
한마디로 장인이 백날 두드려봐야 제철소서 만든 강철에 비하면 거지같다는 거다 -_-; 여기서 끝!
ps 당시 일본도는 환도에 비해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전후 일본도는 하품이라고해도 날카로우니 위험한 무기라고 합니다. 다만 상품급 일본도빼고는 잘 부러져서 안 씁니다. 그냥 장식품으로 서로 선물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