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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3 01:58
일본 장인이 만든 일본도에 대해 대충 대충(조금 쓸때없이 기니 귀찮은분은 패스)
 글쓴이 : 헤이얀
조회 : 3,771  

임진왜란 이전 조선은 일본도에 관심이 없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 정규군이 조선을 침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구들로 인해 피해는 본다.
일본 왜구들이 정규군은 아니나 싸우는 방식이나 무기등에 대해 알 수는 있다. 게다가 왜구들 뒤에는 다이묘들이 있는건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그들이 가져간 물건과 사람들 팔아먹을 곳은 왜 뿐이니 말이다. 그럼 임진왜란 이전에 왜구들과 조선군의 싸움에 대해 상세하게 대충 알아보도록 하자.

왜구들의 전법은 간단하다. 적을 발견한다. 칼들고 돌격이다.
저렇게 칼들고 돌격 하는데 왜 조선군은 일본도에 관심이 없었을까?
일본도를 들고 달려들면서 "니~혼~도!!!! 이..따이!!!"하면서 활 맞아 죽는 왜구를 보며 조선군은 술렁인다. 니혼도 이따이? 무슨말이지 마지막 유언인가? 저주인가? 고민하면서도 달려드는 왜구들에게 활은 계속 쏜다. "야메때!~~ 조선군짱 바카"하면서 도망가는 왜구들에게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면서 퇴각하는 왜구에게 조선 창병들이 쫓아가서 죽이는 형식이다.
왜구들에게 활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그놈의 사거리가 너무 숏하다. 크기는 동북 삼국 중 어찌보면 가장 크지만 사거리는 가장 짧다. 덕분에 항상 난전을 펼치기전 조선군은 활로 인해 적의 사기를 꺽고 싸울 수 있을수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왜군 정규군과 교전이 일어나면서 조선군은 일본군에 대해 약간의 공포가 생긴다.
첫번째. 조총에 대한 공포.
두번째 근접에서 싸워보니 생각보다 일본도와 검술이 무섭다는거다.
일본군의 주력은 사실 조총도아니고 일본도로 무장한 사무라이도 사실 아니다. 창병이다 3미터에 가까운창이다. 하지만 늘 사거리서 우위를 점했던 조선군은 큰 총소리에 놀라고 보이도 않는데 총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동료의 죽음에 두려워한다. 게다가 늘 도망가던 왜구에게 창질하다가 미친듯이 성벽을 올라와서 "니~혼~도!!! 이쯔방 반자이!"하면서 칼을 휘두르는 왜병에게 기겁한다.(왜구가 말하고 싶었던 대사는 이따이가 아니라 이쯔방이였다는걸 여기서 밝혀진다.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물론 개뻥이지만.) 조선군은 장수급이나 궁병이나 기본적으로 활을 들고 다니고 보조무기로 환도를 들고 다닌다. 하지만 일본도(카타나)에 비해 환도는 주력 무기라고 보기 보단 보조무기에 가깝다.  활을 들고 돌아다니기 편하게 검이 짧다.
조선 전기의 환도 규격은 다음과 같다(영조척).
보병용 : 칼날 55.63cm / 자루 20cm / 합계 73.63cm
기병용 : 칼날 49.60cm / 자루 16cm / 합계 65.60cm
하지만 일본의 칼은 96cm가 넘는 카타나이다. 짧은칼과 긴칼이 싸우면 기본적으로 긴칼이 유리한건 당연하다.그리고 당시 일본군은 일본 통일전쟁 경험도 있고 사무라이들은 칼도 제법 잘 쓴다. 게다가 늘 치고 박고 싸우던 북방민족들의 칼에 비해 길고  날카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남부 지역 조선군은 왜구 쫓은 경험만 있지 정규전과 신무기(조총)에 대해 무지했다. 당시 조선군으로선 깜놀 할 수 뿐이 없었다. 늘 무시했던 왜에게 붙을때마다 조선군이 GG 치기 바쁘기 때문이다. 
[만일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이 대마도주가 준 조총을 양산하고 당시 각성마다 대포 정비 그리고 잘 훈련된 병사 양성 군선 정비등 신경 썼더래도 초기에 진압 가능했을것이다. 아니 하다 못 해 조총 소리에 놀라서 사기가 꺽기는 일은 없었을거니 말이다.]
어찌 됐던 조선군은 밀리면서도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 시작한다.
[1.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로 적의 보급로 차단
2.전쟁이 익숙해지면서 조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미지의 무기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조선군도 당시 항왜들(부산에서 일어난 전쟁에서 빠르게 조선군에 투항한 조총부대가 있다.)의 협력으로 조선군도 조총병을 육성한다. 항왜들에게서 일본도와 검술에 대해 조금은 이해를 한다(물론 약간의 환상도 가지게됀다)
3.그리고 의병들의 활동
여기에 관해선 다음에 시간이 나면 이거 저거 적다보니 너무 길어지는듯하니. 칼에 대해서만]

전쟁이 길어지고 초기에 밀리던 조선군도 차츰 적의 무기에 익숙해지고 게다가 일본도에 대항하기 위해 환도의 길이를 늘리기 시작한다. 어찌됐던 위에 관한 이유로 조선군은 왜란은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몇가지 역사기록.드라마.일본 에니 그리고 인터넷등 때문에  편견이 생긴다.
일단 검술등에 대해서는 크음.. 할 줄 아는건 총검술뿐이니  패스.
바로 일본 검술 장인이 한방 한방 망치로 두드려 만든 일본도는 존네 튼튼하고 강하다는 편견이다.
일본장인이 한방 한방 두드려 만든 일본의 접쇠 공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비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철 제품의 원료가 되는 철정 자체부터가 접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 이후 시기에 도검제작시 접쇠 공정이 사라진 것은 강철 생산 및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접쇠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자랑하는 방법은 당시 조선시대로서도 옛날 방법이다. 검의 강도로 따지자면 평균적으로 조선 환도가 훨씬 튼튼하다. 일본 최고의 장인이 한방 한방 최고로 두드려 만들어야 평범한 환도 기술자 수준의 강도이다. 임진왜란 도중에도 그냥 동네 박씨네 대장간서 제조한 낫에 부러지는 일본도도 있었다. 일본도가 한방 한방 만들고 했던건 철이 질이 나쁘기 때문이다. 물론 신경써서 만든건 좋을지도 모른다. 다만 처음부터 재료가 안 좋은거다보니 일본도 중 상급이 아닌 중급 혹은 하급은 오히려 조선의 일반 대장간서 만든 낫보다 강도가 안 좋은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환도가 튼튼하다는것이다.
자 그래도 일본도 전통 방식으로 최고의 장인이 만들면 튼튼할꺼야란 환상에 있다면 이걸 보면 된다.
 

지금 휘두르는 일본도는 전통 방식 접쇄식으로 만든 카타나이다. 밑에 받치고 있는 그레이트 소드는 현대식 제법으로 만든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가까운 제철소가서 튼튼한 강철 좀 환도 모양으로 뽑아주세요라고 하고 집에서 칼날 세우면 날카로움은 일본 장인이 만든거보단 떨어질지 몰라도 강도면에선 저기 동영상처럼 되는거다.
고로 최근 퓨전 판타지 소설형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인공이 가까운 제철소서 칼하나 만들었는데 번개라도 맞고 과거 전국시대 일본으로 뚝 떨어져서 일본 사무라이와 대결하는걸 생각해보자.

일본 사무라이가 주인공을 향해 말한다. 
"어이 슈밤. 내 칼은 저기 큐슈 성주의 직속 무기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고 이 멋진 칼에 이름을 못 정해서 고민하다가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발톱을 한번에 베어서 작명한 스메끼리라고한다. 멋지지 푸헤헤헤헤 니 칼 이름은 뭐임? 쿠쿠쿠쿡..."
"시끄럽다. 슈발넘아!"라고 외치면서 주인공은 사무라이를 벤다. 칼과 함께 한번에 베어진 사무라이는 쓰러지면서 말한다."컥 명검 쓰메끼리를 ....대단한 검이구나 시끄럽다슈발넘아는" 다음날 부터 명검 시끄럽다슈발넘아의 명성이 전 일본 열도에 퍼진다는 감동이 넘치는 이야기가 생긴다.  
한마디로 장인이 백날 두드려봐야 제철소서 만든 강철에 비하면 거지같다는 거다 -_-; 여기서 끝!

ps 당시 일본도는 환도에 비해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전후 일본도는 하품이라고해도 날카로우니 위험한 무기라고 합니다. 다만 상품급 일본도빼고는 잘 부러져서 안 씁니다. 그냥 장식품으로 서로 선물해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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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돌이 11-11-13 02:07
   
다읽었습니다
주돌이 11-11-13 02:07
   
잘봤습니다
     
헤이얀 11-11-13 02:18
   
재미 없는 글 보시느라 고생 했습니다. ㅠ_-
기생이 11-11-13 02:33
   
ㅋㅋㅋ 현실적이네요
자기자신 11-11-13 02:45
   
재미네요ㅎㅎㅎㅎㅎㅎㅎ임진왜란때 상황을 정확히 알고계신것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
만류귀종 11-11-13 03:09
   
오호! 그렇지요. 내 이럴줄 알았습니다. 활은 조선 , 칼은 일본 이지랄 하는데 믿을 수가있어야지요.

관심도 없구..
이눔아 11-11-13 03:22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크게 웃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쿠르르 11-11-13 03:25
   
중국 무기는 더 허접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워낙 인구가 많아서 그럴까 중국애들은 주물검을 썼다죠..

일본도가 막 무기를 자르고 날카롭다는 편견은 중국때문인듯... 중국무기랑 부딪히면 중국무기가 족족 잘려나가니..
개떡 11-11-13 03:33
   
흠...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길이가 같다는 전제하에 칼의 무게를 보면 서양의 롱소드가 제일 무겁고 그 다음 환도이며 제일 가벼운게 카타나랍니다. 그도 그럴것이 서양의 칼이나 우리나라의 환도는 갑옷을 뚫기위해 만든것이고 일본의 카타나는 휘두르기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기사들이 입던 갑옷은 매우 단단하기로 유명하죠. 왠만한 화살은 다 튕겨낸다고도 하니까요. 그런 갑옷을 뚫으려면 날카로움 보다는 높은 강도가 필요한겁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의 갑옷은 서양의 판금갑옷보다는 못하지만 주로 미늘이나 사슬로 만들어졌으며 서양의 기사들 처럼 갑옷을 입고 말을타고 적진으로 무작정 돌격하는 중기병이나 역시 갑옷을 입고 방패로 화살을 막으며 선봉에 서서 적 보병과 직접적으로 교전하는 중장보병은 존재했습니다. 서양 갑옷만큼 완전한 방어를 하지는 못하므로 방패가 없으면 화살에는 취약했으나 그래도 왠만한 칼질로는 뚫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보다 쉽게 미늘갑옷을 뚫으려고 칼의 강도를 더 강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일본의 갑옷은 근대화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작해야 나무를 깎아서 만든 갑옷을 입는게 고작이었습니다. 나무 자체가 철보다 약하다보니 서양의 갑옷과 같은 무게의 일본 갑옷이라도 방어력이나 내구력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낮을 수밖에요.
이러다보니 칼의 강도를 높힐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겠죠. 대신에 효율적으로 쉽게 칼을 다루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느냐 등의 나름대로의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도(카타나)입니다.
일본도는 분명히 갑옷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력적입니다만 서양 판금갑옷을 입은 사람에게 일본도가 얼마나 잘들지는 모르겠군요.
     
무세띠 11-11-13 11:47
   
칼로 갑옷을 뚫는다는게 미신입니다 ;;
억조경해 11-11-13 03:38
   
칼이라...
일단 위 동영상은 어떤 비교대상을 택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겠습니다.
일본도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해 근거리에서 소총 탄을 사격했을 때 소총탄이 반으로 갈라지는 호기심 천국 같은 일본 방송도 있었습니다.

위에 언급하신 가까운 제철소에서 강철로 칼을 만들었다면 그 칼은 서 너번 사용하고 난 후에 더 이상 생명을 보존해 줄수 있는 무기가 아닐 지도 모릅니다.
절삭력과 강도는 우수하겠지만 제철소에서 일관 생산된 강철로 1m 짜리 검을 만들면 몇 번의 교전으로 부러질 수 있습니다.

좋은 칼은 절삭력과 강도가 우수해야 함은 물론 탄성과 연성을 포함하고 있어야 교전시 부러지지 않습니다.
탄성과 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교전시 칼날대 칼날로 방어하는게 아니라 강한 내려치기에의한 힘을 흘리기 위해서 칼날의 옆면으로 방어를 하게 되는데 이 때 나쁜 칼은 부러져 버리고 맙니다.

동네철공소에서 칼을 제작한다면 강철을 자르는 쇠톱을 사용해서 만드는데 강도가 뛰어난 미국산이나 일본산 톱을 사용합니다.(이전에는 국산이 없었으므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이걸로 만든 칼은 절삭력과 강도는 대단히 우수한데 1m길이의 칼이라면 탄성과 연성에서 문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철공소표 칼을 갖고 뿅하고 사무라이 시대로 넘어간다면 명검이 탄생되는게 아니라 털리고 맙니다.
     
헤이얀 11-11-13 03:47
   
글쎄요 저랑은 시각은 좀 다르군요 환도수준 짧은 칼이라고보면 왠만한 일본도 보단 튼튼할꺼라 생각합니다. 최근 제련법이면 물론 날카로움이야 따라 못 가겠지만 그리고 일본 방송 칼이야기는 지금 만드는 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海東孔子 11-11-13 12:49
   
같은 실험을 미국서 한걸 봤는데 거기선 일본도가 부러지더군요.
억조경해 11-11-13 03:46
   
실제적으로 일정 직급의 이상의 사무라이들이 휴대한 일본도는 절삭력과 강도, 탄성과 연성을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칼은 어느 광산에서 나온 철광이냐에 따라 칼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노천광에서 나온 철광석이 무기제조에 가장 우수했고, 노천광이 아닌 경우 무기제조에 적합하지 않았지요.
노천광에서 채취할 수 있는 철광석이 흔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담금질을 하는건데 모든 무기에 대해 원하는 강도와 성능을 얻는건 한계가 있었던 거지요.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재령에서 나는 쇠를 제일로 쳤습니다.
황해도 재령 일대의 노천광에 철광석을 채취 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헤이얀 11-11-13 03:52
   
실제적으로 지금 접쇄방식으로 만드는 카타나는 일본에서도 장식품 즉 정통을 지키기위해 그런식으로 만드는거뿐입니다.
억조경해 11-11-13 03:51
   
1900년대 초에 와서야 강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발견되었습니다.
1900년대 초 영국인 베세머라는 사람이 철광성을 녹인 용광로에 산소를 불어넣으면 쇳물의 높은 온도 때문에 불순물이 산소와 결합 고열을 내면서 타버리기 때문에 순도가 높은 강철을 얻는 방법을 발견한거지요.
미국인 카네기가 영국을 방문해서 이 방법을 보고 베세머로 부터 특허를 사들여 강철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됩니다.
남의 기술로 강철왕이 된 겁니다.
그 후 미국의 포드자동차가 1분에 한대씩 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도 카네기의 강철 덕이 있었던 거지요.
이걸 베세머 공법이라고 합니다.
억조경해 11-11-13 03:55
   
헤이얀님// 짧은 칼로서는 다마스커스 강철로 만든 칼이 가장 우수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강철을 제련했는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만...

조선에서 만든 환도가 모두 우수한 강철의 성능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도 중에 특별히 제작한 어떤 칼은 강도와 절삭력에서 우수한 칼도 있었겠습니다만 환도가 편제무기인 점을 고려한다면 일정 수준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정도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헤이얀 11-11-13 03:57
   
뭔가를 오해 하시는군요. -_-;; 단검 다마스커스 방법은 지금도 만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 제가 말하고자하는건 일본도가 튼튼하다는건 아니라는겁니다. 그렇다고해서 당시 환도가 일본도에 비해 강하다고하는거도 아닙니다.
          
헤이얀 11-11-13 04:00
   
제가 지금 왠만한 제철소에서 만든 환도라면 전국시대에 카타나에 비해 튼튼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본도 자체가 당시 환도에 비해 그렇게 뛰어날 정도로 튼튼한거도 아니고 오히려 더 잘 부러지는 하품도 있다는거뿐입니다. 왜냐면 제련법이 다르니깐요. 그렇다고해서 당시 조선환도가 유별라게 튼튼한거도 아니고요.
헤이얀 11-11-13 04:04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당시 조선시대 제련법이나 일본 제련법이나 강도면에선 비슷하다는겁니다. 근데 지금 인터넷이나 분위기를 보면 일본 제련법이면 지금 현대 제련법보다 더 뛰어나다 아니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식으로 말하는거때문에 올린 글뿐입니다.
     
bonobono 11-11-13 12:59
   
과학기술이 천지 차이 나는 시대에 하물며 제강 기술도 과거와 천지 차이인데 현대 제련법 보다 뛰어 날리가 없죠..
헤이얀 11-11-13 04:06
   
왜 일본 장인들이 현대기법으로 칼을 안 만드는지 아십니까?  그냥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억조경해 11-11-13 04:08
   
헤이얀님// 전국시대 제작된 일본도 중에는 확실히 다수의 명품이 존재합니다. 그들이 명도를 만들었던 비밀은 공개되었는데 원시적이고 노가다가 심해서 그렇지 현대에 와서도 인정하는 기술입니다.
제가 실험해 본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이 한국 지형에서도 적용될지 확신은 없습니다만 그들이 전통적으로 명도를 제작하기 위해 철을 얻은 방법은 타당한 방법입니다.

명도를 얻기 위해서는 광산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사용하지 않고 아래 방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여름이 되기를 기다려서 큰물이지고 나면 모래를 걸러내고 바닥에 가라 앉은 쇳가루를 채취합니다. 여러 차례 반복해서 원하는 양이 되면 이 쇳가루를 녹여서 칼의 형태를 만들고 담금질을 했다고 합니다.

이 방법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산소가 다량 함유된 쇳가루를 녹임으로서 좀 더 우수한 품질의 강철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방법은 조선에서 산소가 보다 많이 함유된 노천광을 채취하여 우수한 칼을 만들었던 방법과 동일하고 베세머 공법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습니다.
억조경해 11-11-13 04:09
   
일본인들이 모든 칼을 위와 같은 방법으로 얻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확실히 이런 방법들을 적용해서 만든 칼이 가문마다 여러 자루 존재했습니다.
헤이얀 11-11-13 04:12
   
다들 가끔 오해하는게 뭐냐면 다마스커스단검은 현대에 못 만든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서 나온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마스커스공법이 바로 카타나에 있습니다. -_-;;
     
억조경해 11-11-13 04:13
   
다마스커스 단검을 현대에 못 만든다는게 아니라 현대적인 강철 제조 방법이 아니라도 뛰어난 강철을 제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입니다.
          
헤이얀 11-11-13 04:17
   
생각이 다르시군요. 경해님은 일본 가문마다 뛰어난 명검을 만드는 방법이 있을거라 생각하시고 저는 평균적으로 당시 조선의 기법이 더 뛰어나다고 보는거고 글쎄요 전 아무리 과거에 명검이라고해도 현대 기법에 비하면 별로 쓸모없다고 봅니다.
               
억조경해 11-11-13 04:22
   
현대에 검을 만든 다는 목적으로 현대의 우수한 기술을 적용한다면 과거의 명검보다 우수한 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각종 계측을 통해 원하는 품질, 우수한 품질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걸 부정하는게 아니라 철공소에서 깍아서 날을 세워서는 부러지기 때문에 검으로써 우수하지 않다는 겁니다.
               
헤이얀 11-11-13 04:28
   
100% 작은 철공소에서 만든다면 경해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근데 철만 뽑아서 핸드매이드방식으로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억조경해 11-11-13 04:34
   
단순한 철만으로는 안 됩니다. 현대에 명검을 만들려면 합금을 해야 합니다. 합금의 비율을 연구해서 (어쩌면 연구결과가 있을 겁니다.) 최적의 합금비율을 산출해 낸 후 현대의 계측장비를 이용해서 만든다면 명검을 잘라버리는 검이 만들어지겠지요.
(예를 들어 철 몇%, 텅스텐 몇%, 기타 몇% 등)
                    
헤이얀 11-11-13 05:14
   
제가 그냥 철이라고 했던건 간편하게 이야기한겁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이후 제강술이크게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우연에 의존해야 했던 희귀원소가 포함된 강재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되면서 도검의 품질이 수직상승하고 경도편차도 크게 줄어듭니다. 통열처리에 스프링탄성을 지니면서도 경도는 상당히 올라갑니다.
                    
헤이얀 11-11-13 05:15
   
한마디로 상대적으로 뛰어난 기술이라는겁니다. -_-;;;
               
헤이얀 11-11-13 05:07
   
그걸 몰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
억조경해 11-11-13 04:20
   
일본인 들은 아마도 활을 제조하는 기술이 떨어져서 그런 방법으로 - 장검을 들고 돌격하는 - 근접전을 발전시켰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대개 전국시대 벌어진 전투 대부분이 수 천명이 참전하는 전투가 아니라 영주가 30명 내외의 사무라이를 데리고 참전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면들도 그들의 전투를 장검에 의한 근접전을 선호하게 되고 장검의 발전을 가져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좋은 쇠를 가지고 만들었던 나쁜 쇠를 가지고 만들었던 일본의 장검 주조법은 조총을 쉽게 생산할 수 있게 만들어 임진왜란 초기 우세를 달성했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일본은 조총을 생산할 때 장검주조법을 사용하여 원형으로 감아 총강을 만들었습니다.
     
헤이얀 11-11-13 04:33
   
음 님 말도 맞을지 모릅니다. 다만 제 시각은 당시 조선 기술이렴 조총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보고 게다가 만듭니다. 아 저건 못 만드는 신무기구나가 아니라 아 이렇게 만든거구나라는식이죠. 그리고 장검 돌격은 왜구들 이야기고 실제로 임란때 조선군이 가장 많이 당한건 일본의 창에 당합니다. 다만 창은 보이고 조총은 큰소리와 함께 가장 놀랐기때문에 조총에 관해 더 떠들썩하지 않았을까 생각할뿐입니다. 제가 임란 참전 용사도 아니고
          
헤이얀 11-11-13 04:35
   
정확한건 모릅니다. 다만 전국시대때 일본군 배치도를 보고 짐작할뿐이지
억조경해 11-11-13 04:31
   
당시 일본은 오랜 전국시대를 통해 좋은 검을 얻으려고 하는 요구와 수요가 있었고 이런 요구와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접쇠식 칼을 만드는 기술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이는 조총의 생산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겁니다.

임진왜란 이전 조선 조정에서도 조총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제작의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왜란전 승자총통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는 제조방법이 간단한 청동기 주물로 제작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었지요.
물론, 왜란 기간 대부분의 전투가 근접전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장에서 거의 쓸모가 없었습니다만...

그 후 조선은 임진왜란 중 접쇠식 방법으로 조총을 제작하게 됩니다.
헤이얀 11-11-13 04:40
   
글쎄요 조총이 접쇠식방법으로 만들었다는건 저도 오늘 첨 알았군요. 전 당시 일본 주조술이 조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을 안 해봐서 일본에서 대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고 공성용 조총을 만들정도로 조총매니아로 알아서
     
억조경해 11-11-13 04:50
   
일본 뿐만 아니라 조선, 명, 청 등 시대에 제작된 화포들은 모두 청동으로 만들었고 주물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청동의 합금비율이 조선이 가장 우수했으므로 사거리가 먼 화포를 만들 수 있었던 거고요.
근대에 들어와서 명치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근대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청과 조선보다 빨리 철을 생산하는 방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양국을 압도하게 됩니다.

조총은 철로 만들어야 하는데 주물로는 만들 수가 없습니다. 접이식으로 강도와 탄성을 지니게 한다음 얇고 가늘게 펴서 일정한 규격으로 동그랗게 말아서 기본형을 만든다음 다시 열을 가하여 쇠가 붙도록 하여 총강을 만들었습니다.
     
억조경해 11-11-13 04:53
   
왜란 초기 우리가 전투에서 밀린 것도 사실이고 어쩔 수 없는 과거사이고
그 후 왜란 이후 조선에서 만드는 조총은 성능이 대단히 우수했습니다. 러시아나 청국의 조총보다 뛰어났었습니다.
그러니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기 시작하면 최고로 잘 만들어 내는게 우리의 잠재력이고 전통입니다.
     
헤이얀 11-11-13 04:58
   
전 화포는 잘 몰라서 잼난걸 알았네요
억조경해 11-11-13 04:45
   
왜란 초기 조선군이 패배한 원인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기체계의 열세에서 패배한 것 역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 입니다.
평양성 전투에서 명군이 왜군을 상대로 승리하자 명군이 전투에서 적용한 전술인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얻으려고 했으나 명군은 조선에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뇌물을 주고 몰래 빼다가 이를 조선군에게 익히게 했고 점차 대응전술을 개발하면서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반대로 조선 수군은 무기체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했으므로 유리했습니다. 조총은 해전에서는 지상전투 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왜군의 화포는 조선 수군이 보유한 화포에 비해 파괴력과 사거리 면에서 상대가 안 되었지요.
     
헤이얀 11-11-13 04:52
   
확실히 같은 전쟁인대도 보는 방법이 다르군요.  저는 무기체계의 열세에서 조선이 밀린게 아니라 신무기에 대한 공포와 훈련에서 밀렸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선 수군이 무기체계에 상대적으로 우세했던건 사실입니다. 다만 운영법이 경상도 수군형식이였음 그 뛰어난 무기체계를 운영도 못 하고 졌을꺼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왜군의 화포는 주력은 조총뿐으로 압니다. 나머지는 활 혹은 제빠르게 배에 붙어서 근접전하는 방법이 당시 왜군 수군 전법으로 압니다. 이순신 함대때문에 대포를 배치하긴 하나 전선에 한대 정도 메다는 수준으로 아는데 훔... 확실히 다르군요
          
억조경해 11-11-13 05:05
   
조총이라는 신무기에 대한 공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기체계의 열세 자체가 조총이라는 신무기에 대한 공포 입니다.

궁병은 양성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활을 쏘는 건 영화에서 나오는 것 처럼 아무나 마구잡이로 쏜게 아닙니다.
왜란 초기 활을 쏠 수 있었던 것은 무과급제자와 문관 일부 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상비군 중에 궁병이 편성되어 있었지만 숫자도 적고 실제 하나의 전력으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왜군도 조총병은 일부 밖에 없었지만 소수의 조총으로도 조선군을 원거리 공격으로 제압할 수 있었고,
왜란 초기 근접전에서는 조선군 전술로는 왜군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평양성 전투 이후 조선군은 기효신서를 따라 (지금말로 하면) 분대를 편성, 분대원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여 합동전투를 함으로써 일본군과의 근접전에서 이길 수 있게 된 겁니다.
          
억조경해 11-11-13 05:10
   
왜란 초기 조선군의 공포심은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병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당시 병사들은 왜군에 패한 조선패잔병들이 올라오면서 퍼진 소문 - 적이 작대기를 가지고 있는데 작대기를 겨누면 쓰러진다 - 에 크게 두려워 했습니다.)
작대기를 깍아서 병사들에게 보급 할 정도로 컸습니다.
(똑같이 작대기를 들고 있으므로 이길 수 있다. 당시 조선병사들은 조총이 무엇인지 자체를 몰랐습니다.)

평양성 전투 이후에야 조총이 두렵기는 하지만 별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헤이얀 11-11-13 05:20
   
활을 쏘기 어려운건 잘 알죠. 제가 국궁을 쏴봤으니요 . 게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에 대마도주가 조총의 무서움을 누구나 쉽게 금방 익힐 수 있다는거였으니 훔..
                    
헤이얀 11-11-13 05:24
   
글쎄요 조총하나로 전 무기체계가 열세라고 보진 않습니다.  화포류가 있어도 사용 할 수 없을정도로 정비 안 해둔 그 자체가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훈련 역시 안돼어있던 문제도 큽니다.
                         
억조경해 11-11-13 08:04
   
화포류를 정비를 안해서 사용을 못한게 아니라 당시 지방군에게까지 화포가 보급되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왜군이 상륙했을 때 화포를 쓸 수 없었지요.
                         
헤이얀 11-11-13 08:27
   
네 지방군까지 보급이 안됀거도 있지만 화포류의 대다수가 정비 안돼고 탄약이 모자란 경우도 많습니다.
억조경해 11-11-13 05:22
   
일본도가 어떻게 전투에서 사용되었는지를 고찰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왜란 초기 조선군과의 근접전에서 왜도를 들고 돌격하는 왜군 역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기록에 나와 있기를 왜병이 왜도를 들고 돌격하면 조선군은 다 흩어져 버린다고 개탄을 했습니다.
확실히 왜도를 상단세로 들고 10미터를 돌격해서 내리치는 공격방법은 막기 어려웠습니다.
훈련이 잘된 집단이라면 돌격시점을 파악하여 지휘자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창을 찌른다면 별게 아니었겠습니다만 왜란 초기 조선병사는 훈련이 전혀 안된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붙잡아다 전투에 참여시켰습니다.
그러니 막아 내는게 오히려 이상한거지요.

이는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왜구가 왜도를 치켜세우고 돌격을 하면 창을 들고 방어를 하던 중국병사들 역시 창으로는 적의 돌격을 막지 못하여 한 번에 흩어졌습니다.
이후 척계광이 속오법을 정하고 분대단위 협동전투를 함으로써 왜구를 물리치게 됩니다.

당시 돌격을 감행하던 왜병은 참전한 사무라이로써 지금으로 보자면 소대장 정도라고 하겠지요. 당시 무술이 뛰어나지 못했던 조선 병사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평양성 전투 이후에는 조선군들도 미리 활로 저격을 하거나 역시 속오법으로 분대합동전투를 하게 됨으로써 왜도를 들고 돌격하는 전술을 무력화 시켜 버렸습니다.
     
헤이얀 11-11-13 05:28
   
아.. 왜도 돌격 방법은 물론 쓰긴 합니다. 조총도 쓰죠. 그게 안 무서웠다는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너무 무서워서 기록에 많이 남아있는거죠. 근데 당시 일본군 편성상 한국 드라마 특히 불멸의 이순신처럼 일본군이 전부 왜도를 들고 돌격하고 조총을 빵빵 쏴대는 수준은 아니였다는겁니다. 일본군의 주력은 오히려 창이였다는겁니다. 창에 더 많이 당했는데도 왜 왜구들의 반자이 돌격과 조총만 공포에 남았을까? 그 많큼 무서웠다는 이야기것죠.
          
헤이얀 11-11-13 05:33
   
당시 일본군 부대 배치인원은  보통 작은 부대 단위로 기마병 20명정도 창병 40명  조총병 20명 활부대 20명 예비대 30명 정도입니다.
첫번째 11-11-13 05:42
   
재밌게보구갑니다.
억조경해 11-11-13 05:45
   
어찌 되었든 그들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돌격을 기본으로 하는 근접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짧은 칼로는 근접전에서의 우세를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보다 긴 칼이 소요되었고, 길면 무거워지고 무거우면 돌격의 효과가 반감되므로 폭을 좁게 만들어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폭이 좁아지면 칼이 약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좋은 쇠를 얻어 접이식 방법으로 절삭력이 우수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칼을 만들 수 있게 발전된거지요.

여기에 적용된 기술들은 후일 조총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조선이나 명 보다 쉽게 조총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토요토미히데요시로 하여금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이 조선군은 말할 것도 없고 명군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게 만든 겁니다.

조총이 아니라도 후일 무기연구가들의 연구에 의해 총을 제외한 무기 중에서 일본도가 가장 근접전투에 우수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연구결과 일본도의 살상반경은 3미터로써 어떤 무기보다 우수했습니다.
창으로 편제되었을 경우 휴대한 창의 길이만큼 전방으로 무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개인으로는 돌격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돌격을 막으려면 병력이 집중되어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대전의 가장 중요한 원리인 산병전술에 가장 가까워 적에게 유휴병력을 만들도록 강요하므로 근접전에서 아주 유리합니다.
헤이얀 11-11-13 05:53
   
글쎄요 전 일본 사무라이들에 검술에 대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을 안 해서  그 원인은 집단전에는 창이 최고이기때문입니다. 실제로 3미터 넘는창을 수천명이 앞으로 하고 밀고오면 막기 힘들고 게다가 일본군 편제상 약 보급병까지 합쳐서 한 다이묘에 3000명정도 있다고하면 실제로 도검 전문병인 일명 사무라이 카치 아시아루는 200명뿐이기때문입니다.
     
억조경해 11-11-13 06:09
   
일본 사무라이들의 검술이 대단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투에서는 기묘한 검술 수법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당시 조선군의 돌격기법은 장수가 말을 타고 돌격을 감행하여 돌파구를 열면 병사들이 장수를 따라 창을 들고 흩어지는 적을 제압하는 전술입니다.
양군이 대치된 상황에서 왜병의 돌격전술 역시 한 두명의 사무라이에 의해 돌격을 감행하면 나머지 병사들이 뒤를 받치면서 흩어지는 적을 창으로 격멸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왜란 초기 조선군은 이 돌격을 막을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지 못했던 거지요.

돌격시 가장 충격력이 큰건 역시 기마부대가 말을 타고 돌격하는게 충격력과 파괴력이 큽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밀집대형을 갖추고 장창을 앞세워 기마부대의 돌격을 저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무라이의 돌격을 막기위해서는 방패와 장창으로 부장한 부대가 밀집대형을 갖추어야 하는데 밀집될 경우 적의 조총사격으로 피해를 입기 때문에 밀집대형을 갖추지 못하고 소 집단으로 분리 되어 있었고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같은 숫자의 왜군 집단에게 돌격을 당해 병사들이 흩어진 겁니다.
그리고 사무라이 한 두명이 돌격했을 때 이를 저지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을 조선군병사는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헤이얀 11-11-13 06:23
   
저도 님과 비슷하게 봅니다. 다만 전문 사무라이의 갑옷과 움직임이 눈에 띠어서 그렇지 조선군을 압도적으로 죽인건 주력병인 창병으로 보는겁니다.
     
억조경해 11-11-13 06:17
   
위에 언급하신 집단전에서 당연히 3미터 넘는 창을 수천명이 앞으로 거창을 하고 막으면 돌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에게 조총이라는게 있으면 밀집대형은 지극히 불리하고 어리석은 전투대형이 됩니다.

왜군은 전국시대 초기 사무라이만 참전을 했습니다. 그러다 사무라이의 돌격을 막기 위해 그들도 밀집대형을 사용했고, 영주들이 조총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밀집대형은 단번에 격파되고 맙니다.

그로써 서로 경쟁적으로 조총으로 무장을 하기 시작을 했고, 조총을 많이 가진 영주가 통일을 할 수 있게 된거지요.
          
헤이얀 11-11-13 06:36
   
저는 적의 강점 중 일부를 너무 크게 보는게 아닌가라는 시각을 가지는겁니다. 전문 사무라이? 3000명당 200명정도 있고  약 130명의 부대원 중 20명정도의 조총병을 너무 두려워 하는게 아니였을까 생각 하는겁니다. 반대로 일본에서 본 조선군은 이렇더군요. 갑옷으로 완전 무장하고 방패와 도검으로 그리고 알수없는 화포를 쏴대면서 특히나 수노궁을 무서워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수노궁은 지금 현재 정말 이걸로 무기를 썼을까? 할정도로 화력이 약한 궁입니다. 서로 없는 부분을 너무 크게 보는게 아닐까하는겁니다. 게다가 실제로 일본군 편제상 창병이 제일 많으니요.
               
억조경해 11-11-13 07:58
   
조선군이 갑옷으로 완전무장했다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군관 또는 지휘관 급이라야 갑옷을 입었습니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말을 탄 지휘자들입니다.
일반 병사에게까지 갑옷을 지급하지도 않았고 지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말한 알수없는 화포란 총통 및 진천뢰를 말했을 겁니다.
또 조총이 없던 조선군은 총통 및 진천뢰, 활이 주요한 무기였습니다.

왜란에서도 일반 병사를 이끈 지휘자는 사무라이 였습니다.(근대이후에도 신식군대를 창설하면서 사무라이들을 소정의 교육 후 소위로 임관시켜 병사들을 지휘하게 하였습니다.)
조총으로 원,근거리 사격을 하여 조선군이 밀집대형을 갖추지 못하도록 한 후 지휘자가(사무라이가) 앞에서서 칼을 들고 돌격을 하면 창병들이 뒤따라 돌격하며 흩어진 조선군을 소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돌파당한 조선군은 당연히 창병에게 사상당한 숫자가 많은 겁니다.
결국 조선군이 우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체계를 정비한 후 공성전을 함으로써 성벽의 방호력을 이용해 조총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 성벽의 방호를 이용해 적의 돌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왜군 역시 조명연합군의 공격에 대해 성에서 방어전을 수행함으로써 조명연합군이 병력을 집중 운용할 수 있게 만들어 조명연합군에게 밀리게 된 것입니다.
                    
헤이얀 11-11-13 15:40
   
네 님이 말한대로 일반 평민급이 갑옷을 둘둘 말고는 없었을겁니다. 다만 당시 왜군에 눈에 비친 조선군은 전부 갑옷으로 둘둘 말고 있는걸로 보였다는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말 상대방의 강점만 너무 크게 부각된거죠. 우리가 일본 왜도병을 무서워했듯이 그들 눈에는 갑옷으로 무장하고 조총 맞아도 견디고 움직일수 있을만큼 무장한 조선군이 더 무서웠던겁니다.그리고 장거리 무기로 상대에게 타격 기병으로 적진영 혼란 창등 근접무기로 적 제압은 당시 어디가나 기본 전략입니다.
헤이얀 11-11-13 06:07
   
그리고 접이식 방식은 전 구식이라고 봅니다. 거의 일본 빼고 검 제작하던 복합강재->단일강재로의 전환, 부분열처리->통열처리로의 전환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다들 접이식방식인 접쇠와 복합강재, 부분열처리를 왜 버렸겠습니까?
헤이얀 11-11-13 06:09
   
이건 제철 관련에서 일하시는분이 올린글 중 일부분입니다.
[중세 초기에는 저탄소강을 중심에, 고탄소강을 칼날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같은 열처리를 해도 칼날의 절삭력과 내구성을 한번에 얻고자 하였다.(일본도와 같은 원리) 강재의 품질이 균일화될수록 이러한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칼날 전체에 탄성을 주는 열처리를 통해 휘어도 부러지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신뢰성을 갖게 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도검의 품질이 좋아진다. 다만 그만큼 경도를 희생하게 되면서 중세-르네상스 서양 도검은 경도가 평균 HRC38정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복합강재->단일강재로의 전환, 부분열처리->통열처리로의 전환은 일본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테크트리였다.


일본은 끝끝내 접쇠와 복합강재, 부분열처리를 고수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놀랍고 대단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기술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의 제철 환경 자체가 매우 불리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모래 형태의 사철(沙鐵)을 채취하여 이것을 전통 용광로인 타다라에서 재련, 녹아내린 쇠를 회수하는데 이것이 타마하가네(玉鋼)이다. 당연히 불순물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접쇠를 통해 불순물을 제거하게 되며, 탄소량도 불균일하다. 이것을 망치로 깨서 깨지는 성질을 보아 고탄소강과 저탄소강을 분류해서 쓰는데, 거의 눈대중으로 분류하는 것이라 강재 선별도 명백하지 않았다. 이런 시점에서 조금이나마 나은 퍼포먼스를 얻기 위해 강재를 차등배치하고 부분열처리를 가해서 칼날의 경도와 칼등의 연함을 동시에 얻고자 한 것이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 쓰던 방식과 동일한데, 유럽은 강재의 품질이 올라가면서 그만둘 수 있었지만 일본은 끝까지 이 방식에서 정체되었다. 그렇다고 아주 튼튼한 것도 아니라서 전통일본도는 베다가 조금만 잘못해도 쉽게 휘고, 그 휘어진 것도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연했다.[4]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살상력이 낮은 것도 아니어서, 에스파냐/포르투갈 인들이 인디오를 학대하는 그림들을 보면 원주민의 팔다리를 뭉텅뭉텅 썰고, 아기를 거꾸로 매달아 일도양단을 함은 물론, 난징대학살에서 일본군 장교용 군도들은 대부분 전통일본도를 가져다 외장만 군도로 바꿔서 썼는데도 약하다는 묘사들이 무색하리만치 간편하게 목을 치는 사진들이 많이 존재한다. 오히려 현대 강재로 만든 도검들은 베는 느낌이 좀 미끄럽다는 평이 있고, 대장간에서 만든 조선낫이나 부엌칼 등이 훨씬 쩍쩍 달라붙으며 잘 잘린다는 증언들이 있는데, 오히려 불순물이나 불균일한 탄소량 등이 마이크로 써레이션과 같은 작용을 하여 그렇다고 한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산업 혁명 이후 제강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우연에 의존해야 했던 희귀원소가 포함된 강재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되면서 도검의 품질이 수직상승하고 경도편차도 크게 줄어든다. 통열처리에 스프링탄성을 지니면서도 경도는 HRC53정도까지 올릴 수 있었고, 단일강재라도 부분열처리를 통해 일본도나 중세 초기 서양도검이 구현하고자 했던 칼날은 경도가 높아 잘 자르지만 칼등이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상당히 주관적인 <베는 맛>을 제외하면, 절단 성능이나 칼날 유지력 등 모든 면에서 현대에 생산되는 도검들이 압도적이다. 일본도 면에서도 무라타도나 만철도, 95식 부사관도와 같은 현대 강재를 쓴 도검들은 튼튼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평가도 좋았다.]
     
헤이얀 11-11-13 06:12
   
정통방식인 접쇄식이 아니라 현대방식으로 만든 일본도가 더 튼튼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_=
          
억조경해 11-11-13 06:25
   
근 현대에 들어서는 산업 혁명 이후 제강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우연에 의존해야 했던 희귀원소가 포함된 강재들을 마음대로 만들어 쓸 수 있게 되면서 도검의 품질이 수직상승하고 경도편차도 크게 줄어든다.

-희귀원소가 포함된 강재 라는 말을 주목해 주십시오.
일본군에게 지급된 군도는 일본이 군국주의화 되어 일본군을 증강하면서 근대적인 공법에 의해 도검 제작용 강철을 따로 주조하여 이 강철로 군도를 제작 지급한 것 입니다.

도검제작용 특수강으로 만들지 않고 일반 강철로 만들 경우 절삭력과 강도는 얻을 수 있지만 전투 중에 부러질 위험이 있다는 것 입니다.
억조경해 11-11-13 06:26
   
지금은 나가봐야 하므로 이후에 다시 토론에 참여합니다.
     
헤이얀 11-11-13 06:42
   
음 저도 가봐야것네요 .중세 초기에는 저탄소강을 중심에, 고탄소강을 칼날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같은 열처리를 해도 칼날의 절삭력과 내구성을 한번에 얻고자 하였다.(일본도와 같은 원리) 강재의 품질이 균일화될수록 이러한 방식은 점차 사라지고 칼날 전체에 탄성을 주는 열처리를 통해 휘어도 부러지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신뢰성을 갖게 하는 방식을 채택하면서 도검의 품질이 좋아진다. 다만 그만큼 경도를 희생하게 되면서 중세-르네상스 서양 도검은 경도가 평균 HRC38정도를 유지했다. 이러한 복합강재->단일강재로의 전환, 부분열처리->통열처리로의 전환은 일본과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테크트리였다. 그 어디에도 일본 접쇄식보다 안 좋다는 말은 없습니다. 저도 이만 경해님도 고생하셨습니다. 경해님 덕분에 당시 조선군의 싸우는 방식에 대해 다른면을 보게 되는군요.
헤이얀 11-11-13 08:10
   
경해님 아침 먹고 왔는데 후암. 마지막으로 글을 남깁니다. 제가 현대식 강철이라고해서 100% 강철이라고 생각 안 하시길 빕니다. 당연히 합금이죠. 굳이 텅스텐이 몇% 등 글을 적어야합니까? 저도 그부분에 대해 자세히모를뿐더러 님도 리플로 인해근대적인 공법에 대해 의한 도검제작용 강철에 성분을 적지 않으시죠? 그냥 편하게 표현하는겁니다. 누가 카타나라고 하면 칼성분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는 없는겁니다. 그래서 다들 이해하기 쉽게 강철이라고 표현하는거구요. 님이 말한 일본에 명검 보다 현대 기술로 만든 검이 훨씬 튼튼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란 당시조선검도 일본검과 비슷한 강도를 지녔고 평균적으로는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당시 조선의 기술이 시대의 흐름을 일본보다 앞서면 앞서지 느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만 마지막으로 칼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합니다.
월하낭인 11-11-13 08:29
   
- 명검 스메끼리에 웃고 갑니다.
코리아 11-11-13 13:40
   
글 잘쓰시네여 ㅋㅋ잘보고가요!
곰보 11-11-13 13:49
   
억조경해//일본도는 날카로운 대신에 날이 너무 빨리 무디고 부러진다는건 일반 상식인데요..
디스커버리채널에도 나오던데요..
     
억조경해 11-11-13 15:01
   
그건 근대 이후에 근대적인 공법으로 만들어진 일본도를 말합니다.
일제강점시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농민조차도 왜낫은 잘들지만 쉽게 부러진다는 걸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땔감을 얻기위해 나무를 할 때는 절대 안부러지는 조선낫을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성묘가서 벌초를 할 때 왜낫을 사용하다 돌에 걸리면 쉽게 부러집니다.
          
헤이얀 11-11-13 19:59
   
자꾸 근데 공법이라고 하시는데 아.. 당시 명나라 기록에 일본도는 날카로우나 제질이 나빠서 잘 휘고 부러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도 마찮가지로 임진왜란 이후 초기에 일본도에 대한 환상에 일본도는 하품이라도 날카로우니 중히 다뤄야한다고합니다. 다만 실제로 써보니 칼이 잘 부러져서 무기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기록합니다. 물론 상급 일본도는 다르지만 그 어디 기록에도 일본도가 명.조선 도검보다 튼튼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헤이얀 11-11-13 20:04
   
그리고 저기 움짤도 사실 인조이 제펜시절 일본애들 낚시 동영상입니다. 저기 동영상보고 일본애들이 한말이 있죠. 일본 장인이 만든 카타나는 다르다. 근데 저 카타다 만든 사람이 일본도검장인협회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다시 일본애들은 말을 바꿉니다. 일본 최고의 장인이 전통적인 비법으로 만든 카타나는 다르다라고합니다. 그래서 뭐라고했는지 아십니까?
그럼 그 카타나로 현대 기법으로 만든 칼 부러트리는 동영상 한번 올리라고 합니다. 그럼 그뒤에 아무말도 없습니다. 왜냐면 현대 기법으로 만든 칼은 옛날 방법으로는 도저히 부러뜨리거나하는건 불가능하기때문입니다. 제 말이 거짓말 같으면 도검협회에 메일로 문의 해보시길 빕니다.
**** 11-11-13 16:50
   
그냥 철의 재질이 강도를 결정함...일본산 철들은 인, 황 등의 불순물이 너무 많아서 접쇠는 필연의 선택이었던 거고
그래봐야 스위덴의 질 좋은 철에 비하면 재료부터 그냥 쓰레기...그 흔한 탄소강이 일본도 보다 강하고 더 강한 걸 원한다면 텅스텐 섞은 고속도강으로 칼을 만들면 탄소강이고 일본도고 고속도강 앞에선 그냥 순두부며....궁극에는 텅스텐 그 자체로 만든 칼이 최고봉일 것이다....중국엔 텅스텐 칼로 유명한 제작 지역이 있음....무협지에 나오는 현철이 아마도 텅스텐으로 추정됨...8mm직경의 텅스텐 봉을 그라인더로 자르는데 20분 걸린다
때려잡자일… 11-11-13 22:25
   
우리나라 사람들 목자르는데 썼던게 일본도 아니냐 뭐 좋은거라고 환상들 쩌네
세라푸 11-11-14 09:26
   
헤이얀님의 글이 정설입니다. 일본은 철제련 기술이 떨어져 접철법으로 간 것이지요. 고탄소강인 다마스커스 철과 연철을 접철한 다마스커스검과 같은 점은 접철법을 쓴다는것 뿐이죠. 다마스커스검은 일본도처럼 10번이상을 꺽을수가 없었습니다. 접힐때마다 단조 수준으로 때려서 접철을 해야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