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 총통, 조총 등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조선시대 우수한 화포제조 기술이 있었음에도 왜란, 호란 때 광범위하게 쓰이지 못한 것은 화약의 생산 및 보관 문제 였습니다.
당시 생산된 화약은 흑색화약으로 습기에 취약했으므로 장마가 긴 계절적 특성상 보관이 쉽지 않았습니다.
보관이 나쁘면 불발이 나기 때문입니다.
생산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산업생산력으로 염초를 대량으로 얻어내기가 어려웠지요.
염초를 얻는 방법은 비가 들이치치 않는 공간에
퇴비 더미에 잿물을 뿌려서 놔두었다가 퇴비가 다 썩으면 그 바닥의 흙을 채취해 염초를 얻었습니다.
(잿물은 볏짚을 태운 재를 체에 담고 위에서 물을 부으면 물이 재를 통과하면서 재의 성분이 우러나와 미끄러운 물이 됩니다. 양잿물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집집마다 이 잿물을 받아 빨래를 했습니다.)
그런데 퇴비 더미에 잿물을 뿌리는 방법은 공이 많이 듭니다.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지붕도 얹어야 하고 퇴미더미에 오줌을 날라다 들이붓고 잿물까지 만들어서 부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좀 더 편하게 공짜로 얻는 방법을 찾아 냈는데
적당량의 비가 온날 오래된 초가집에 낙숫물 떨어지는 자리의 흙을 파서 모은 후
그걸 물과 섞어서 흙을 침전시킨 후 남은 물을 증발시키면 물이 마른 자리에 하얀 결정이 생깁니다.
이 하얀 결정이 바로 염초 곧 초석입니다.
이걸 유황과 버드나무태운 숯과 합치면 화약이 됩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온 날 채취하면 초석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장마에 씻겨 내려 가서 남는게 없습니다.)
조선의 초가집이 바로 염초의 생산공장이었고 조선화약 제조 비법이었던 겁니다.
낙숫물 자리의 흙을 파러 다니는 사람이 따로 있었던건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