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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1-13 22:48
서양의 대 갑주 장검의 특성과 전장에서의 역할.
 글쓴이 : 솔로윙픽시
조회 : 2,322  

중세 시대의 무기와 전술 전략이 발달한 과정에 대해 쓴 논문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기억을 더듬어 쓰는 것이니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지도 모르는 내용입니다.


무세띠님께서 밑의 글에서 서양의 검이 더 단단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만 낭설일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 만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중세 검사들이 거대한 2미터짜리 검을 휘둘러 적을 갑옷째로 일도양단해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실제로 야구 방망이라도 휘둘러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3킬로그램에 달하는 1,5미터짜리 검을 '휘두르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이며, 하물며 두꺼운 갑옷을 가르고 뼈를 베어내는 건 간단히 생각해 봐도 날이 뭉툭하고 무거운 검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무기라는 건 전장환경에 따라 변하는 법입니다.
제대로 된 철제 갑옷을 입지 않은 중세 일본의 사무라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단단한 검을 만들 필요는 애초부터 없었겠죠? 카타나면 충분합니다. 식칼로 푸딩을 가르듯이 잘만 베어넘겼을 겁니다.


그와는 반대로 유럽의 갑옷들은 13세기 후반에 들어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유럽 국가간의 분쟁뿐 아니라 십자군 원정에서도 얻어진 많은 실전 경험들이 반영된 결과겠지요.
그리하여 사슬갑옷은 점점 더 촘촘해져 가고 그 위를 두꺼운 가죽으로 덮기 시작합니다.
몸만을 지키는 플라텐록(Plattenrock, 獨) 대신 팔과 목, 다리를 지키는 갑옷들이 만들어지고 13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철제 판갑, 하니슈(Harnisch, 獨; Harness, 英)를 거쳐 우리가 오늘날 기사 하면 흔히 떠올리는 판갑주 (Plattenruestung, 獨 ; Plate mail, 英)로 전신을 보호한 검사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적들을 쓰러뜨리는 데에 종래의 검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었죠.
실제로 판갑으로 완전무장한 15세기 초의 기사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메이스, 모닝스타나 할버드같은 둔기였습니다. 그리고 검들도 이 새로운 트렌드에 알맞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죠.

그 결과물이 츠바이핸더, 비덴슈베아트, 플람베르그, 그레이트소드 등으로 불리는 양손검들이었습니다.
검신은 날카롭지 않고 뭉툭했으며 종류에 따라 검신 자체에 손잡이를 만들어 한 손은 칼자루에, 한 손은 검신을 잡고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전장 2미터에 달하고 3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무게를 가진 이 검들은 바로 저 기사들을 상대로 사용된 검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검들이 사용된 방식입니다.
아무리 양손으로 온 힘을 다해 찌른다고 해도 저 4mm에 달하는 두께의 갑주를 뚫는 것은 무리죠. 18세기까지도 널리 사용된 (특히 터키, 헝가리, 폴란드에서) 강한 사슬갑주나 가죽갑옷을 뚫을 수는 있었습니다만.
전장의 탱크, 엘리트 중의 엘리트인 빛나는 판갑의 기사들은 석궁이나 총알까지도 튕겨낼 정도였으니 더 말이 필요한가?

그리고 이런 대검을 휘둘러 갑옷을 때려 뼈를 부순다는 것도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했죠.
그 정도로 부서지라고 만든 갑옷이 아닐 뿐더러, 이 경우에도 칼이 먼저 상합니다. 그럴 바에야 망치나 다른 둔기가 나은 겁니다. 이 검들은 무식한 생김새와는 달리 갑옷의 관절부 안쪽의 보호되지 않는 부분에 밀어넣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아무리 이름이 판저브레혀(Panzerbrecher, armor breaker. 갑주파쇄자?) 라고 해도 대검으로 갑옷을 부술 수는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양의 검들 중 갑옷을 뚫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검들은 분명히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는 판갑은 이런 검으로도 뚫을 수 없었습니다. LAV나 APC는 뚫을 수 있어도 K2 전차의 전면장갑은 뚫을 수 없는 대전차 무기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반면 판갑이 아닌 링메일이나 체인메일들조차도 일본의 갑옷보다는 튼튼했고, 그 정도는 츠바이핸더로 박ㅋ살ㅋ을 내 버릴 수 있었으므로 일본의 카타나보다는 서양의 검들이 튼튼한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장검으로 무장한 검사의 상대는 완전무장한 기사가 아니라 할버드나 창을 든 창병들이었으며 이런 기사들은 둔기를 장비한 對기사 보병들이나 장창병 (Pikeniere 獨 ; Pikemen 英)과 싸우기 마련이었습니다.
중세의 전장에는 실제로 상성이라는 게 존재했으니까요.

적이 중기병을 내세우면 최대 3미터 길이의 창을 든 장창병이 방진을 이루어 막아내고, 그러면 이쪽은 반대로 검사를 내세워 창병을 무력화시키고.
그러니 검이라는 것은 오히려 대 판갑 무기로서 활약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분명 튼튼하고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상식적인 정도입니다.
달려오는 말을 일자로 베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검은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할 뿐더러, 그런 공격을 하는 사람의 뼈와 척추에 어떤 무리가 가해질지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쓰다 보니 이것저것 기억나는군요.
.. 기병들이 든 랜스를 이기기 위해 창의 길이를 늘리고, 그러면 또 랜스의 길이가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장창의 길이가 3미터를 넘어가서 더 이상 손으로 들고 싸우지 않고 땅에 박아 고정시켰던 얘기나, 창병의 전장에서의 높은 효율로 인해 중세 후기에는 거의 대부분 창만 들고 싸우게 된 것이나, 머스킷의 등장과 발달로 그 창병의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마침내 머스킷과 검만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루이 14세의 군대를 이루게 된 것이나... 어딘가에 글을 처박아놨을 텐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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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세띠 11-11-13 22:56
   
네 그렇죠 알고보면 상성놀이 ㅇㅇ....

실제론 전부 부자가 아니라서 갑옷입고 다니는것도 아니고

머스킷이 발달하기 전까진 통일된 군복을 갖추는것도 상당히 힘들었다고 하죠..

기병<창병<보병<기병 ㅡㅠㅡ;;;

궁병계열은 예외지만요 활쏘다가 적이 근접하면 부무장인 칼로 공격은 하는데
갑옷도없으니 그냥 발리는경우도있고 활쏘는데 경기병이 갑툭튀해서 몰살당하는경우도 있고요.ㅠㅠ
무세띠 11-11-13 22:59
   
머스킷과 창병의 상관관계는 제가알고있기로는

초기머스켓은 긴 장전시간으로인해 창병이 필수적이었습니다만

머스켓이 발달하며 장전시간도 짧아지고 중기병이 몰락하고 경기병이 판치는 세상에서

창병이 더더욱 필요시되다가 어느분이 "어 머스킷도 x나 긴데 날만달면 창인데!?" 라고 생각해서

총검이 나오고, 초기총검이 총알이 나가는 구멍에 짧은 칼을 밀어넣는 방식이여서 그나마

창병이 좀 활동하다가 지금형태의 총검이 나오면서 창병들은 대량실직 ㅠㅠ

이라고 알고있습니다. ^^
     
솔로윙픽시 11-11-13 23:02
   
네, 바로 그렇습니다. 초기엔 장전시간이 1분이나 걸렸었기 때문에 각 부대에서 창병과 머스킷병의 비율은 처음 8:2에서 점차 6:4, 3:7로 변하다가 마지막에는 모두들 머스킷으로 무장하게 됐지요. ㅎㅎ
          
무세띠 11-11-13 23:24
   
실업자가된 창병이 머스킷훈련받은뒤 우왕 재취직이요 ㅠㅠ

그래서 총검술은 사실 창술에서 따왔다는 비밀이 ;;;
     
양앵민이 11-11-14 17:54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에서 조선이 패한 이유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ㅋㅋ. 조총쏘고 장전할동안에 기병이 오면 살수가 막아서는 역할 이였는데. 조선군이 벙쪄서 살수가 제 역할 못하고 앞에서 조총병이 도륙당하면서 살수고 뭐고 다 ㅌㅌ 하면서 패망했죠. 그렇게 하나씩 오면서 각개격파당하면서 망 ㅋ
개떡 11-11-13 23:39
   
신성 로마제국이 창병 말고도 다른 방법으로 프랑스 기사의 갑옷을 뚫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더랬죠. 그래서 만들어진 칼이 쯔바이한더 같은 양손검들이었고 튜턴 기사단도 주무기를 장검에서 철퇴로 교체했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장검을 고집하는 프랑스 기사에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더랬죠.
쯔바이한더는 글쓴님이 말하셨으니 생략하고 갑옷을 부수는 철퇴를 들고 프랑스 기사에 대항해도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던 이유가 뭐냐면.
철퇴는 갑옷을 부수는 것 이외에는 별 효용성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죠. 무거워서 장검보다도 휘두르기 어려워 빈틈이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백병전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했죠. 철퇴의 위력이 막강하다 하더라도 방패로 막으면 그만이고.... 게다가 무거워진 만큼 길이도 짧기 때문에 상대가 뒤를 보고있지 않은 이상에는 수세에 몰리기 쉬운 것도 그 이유중 하나죠. 아무래도 많은 중세 병사들이 갑옷을 부술수 있다는 이점하나 때문에 철퇴를 주무기로 하려는 병사는 극소수에 불과한 줄로 압니다만.
튜턴 기사단은 한마디로 '기사'였죠. 중기병말입니다. 중기병의 임무는 적 보병대에 돌격하여 대열을 흐트리는 것이 임무였습니다만 철퇴의 길이가 짧았기 때문에 장검을 사용하는 프랑스 기사에 비해 살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뭐 그렇다고 해서 튜턴 기사단도 랜스는 사용했기에 중기병 특유의 무시무시한 돌파력은 여전했습니다만...
개떡 11-11-13 23:48
   
영국의 경우는 프랑스 기사에 대항하기 위해 장궁병을 활용했습니다만 아무래도 궁병만으로 기사의 무지막지한 돌격을 버티는 것은 xx행위죠. 그렇다고 해서 창병을 전방에 세운다면 기사들이 말에서 내려서 방패로 화살을 막으며 백병전을 하려들테고.(말에서 내린 기사는 중기병에서 중보병으로 탈바꿈하게 되는거죠. 기사라고 꼭 말위에서만 싸운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안한 것이 창병 근처에 보병기사등의 중보병을 배치하여 기병이든 보병이든 적의 돌격을 원천 봉쇄하는 겁니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대항할때 사용하던 전술을 그대로 배낀거죠. 실제로 백년전쟁때 이런 전술을 구사해서 프랑스 기사들이 섣불리 다가지 못하고 장궁병에 그대로 쓰러지고 프랑스는 수세에 몰리게 됩니다. 이런 위기의 프랑스를 구한 것이 잔다르크인건 다 아는 사실이고.
     
솔로윙픽시 11-11-14 00:07
   
아이디에서 감히 예상치 못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그러고 보면 창병들에게도 근접전 스킬은 있었지요. Trample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3미터 정도에 달하는 길다란 창을 허리 높이에서 앞으로 향하고 전 부대가 돌격하는 전술이었습니다. 특히 고지를 점하고 있을 때 더욱 효과적이었다더군요.
          
개떡 11-11-14 00:24
   
이야기가 산으로간 느낌이 있습니다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무세띠 11-11-14 01:40
   
오오 좋은 정보들이 막들어오는군요 ㅎㅎ

이렇게 적고보면 기사를 무효화(?)시키는 수단이 많아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기사는 지금의 탱크 비슷한 개념이었던것 같습니다.

제가 읽어본 일화로 농민반란이 일어나서 기사5명이 말타고 출진했더니

농민 백여명이 맥아리없이 당했다는것과

무슨전투인지는 모르겠지만 성문이 뽀개져서 성문에서 기사한명이 해머와 도끼를 양손에 쥐시고

달려오는 보병을 혼자서 막았다는 일화도 본것 같습니다.ㅎㅎ
     
솔로윙픽시 11-11-14 01:55
   
무엇보다 소수의 귀족들만이 고가의 장비를 구할 수 있었으니 보통 병사들과의 격차는 더욱더 심각하게 벌어졌지요. 전략 시뮬레이션인 미디벌: 토탈 워를 해 보면 20명으로 구성된 기사들로 돌격과 후퇴만 반복해도 적 진형이 와해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기사를 전장의 꽃이라고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