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 해변 같은 경우는 당시 동부전선에서 러시아와 싸워 단련됐던 352보병 사단이 지키고 있었지염...게다 지나치게 미군이 독일군의 포격을 의식해서 멀리떨어진 곳에서 부터 상륙정과 수륙양용전차를 보내다 보니 상륙도중 피해가 극심했지요. 당시 해안가의 용치덕분에 상륙정은 사람 허벅지나 허리부근까지 물이 올라오는곳에서 병력을 하산시켜야됐고 병력기동에 상당한 저하가 생기지염. 특히 병력수송용이던 호긴스보트의 경우는 영화에서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치가 열리면 전방에서부터 병력이 쏟아져나오다 보니 앞에 적군이 기관총으로 지키고 있다면 말그대로 살육의 현장이였던 -ㅅ-, 당시 상륙정으로 수송하던 병력만 3만4천여명이였는데 상륙도중 전사한 숫자만 2천여명. 단 몇시간만에 수천명이 요단강 건너버림. 같이 상륙작전을 했던 D.D샤면전차의 경우는 40여대중 단 2대만 상륙됐고 ㅋ;
미해군함들이 지나치게 멀리서 함포사격으로 지원하다보니 거진 포탄들은 엉뚱한곳에 떨어짐.
그래도 독일군의 혀를 찌른 작전이긴 했죠. 당시 이곳을 지키던 군부들이 이곳에 적이 상륙할거란걸 예측하고 전력보강을 요청했지만 수뇌부에서는 이미 충분한 방어가 되어있고 그런곳에 적이 올리가 없다고 딱 잘라버렸죠. 동부전선과 아프리카전선에 눈이 팔려있었으니.
굳이 말하자면,. 제해권, 제공권은 연합군에게 완벽하게 넘어가 있었죠.
D-Day 당일에 독일공군, 독일해군이 그 근처에 얼쩡대지도 못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해군인 미국과 영국이 강력한 함대를 동원해 해안포격을 가했습니다.
다만, 잘맞지 않은건 사실이죠.
그래서 오마하해변의 경우엔 좌초위험을 무릅쓰고 해안에 근접해 포격을 가했던 구축함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위에도 나왔듯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사실 여러 겹의 기만 속에 펼쳐진 거대한 작전이었습니다.
본래 그 이전에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이탈리아 쪽에서 전선을 펼치고 있었고..
두각을 드러냈던 연합군의 맹장 패튼을 이 쪽 방면에 부임시켜서 남부프랑스쪽에 상륙하는 듯한 낌새를 주기도 했죠.
그러나, 연합국 입장에선 영국과 가장 가까운 북부 프랑스에 상륙하는게 가장 적절했는데..
최단거리가 도버해협 건너편의 칼레였습니다.
연합국은 이 칼레에 상륙하는 듯한 기만전술을 펼쳤고,
독일은 독일 나름대로 대서양 방벽이라 일컬어지는 엄청난 해안 방어를 만드는데..
이 때 독일군 지휘관 사이에서 연합군 상륙에 대비해 해안 근처에 기갑부대를 둘 것인가?
해안 멀리에 두고 기동예비대로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헀죠.
결국 기갑부대들은 해안에서 좀 멀찌감치 배치되었는데,
이 기갑부대의 사용권한이 히틀러가 쥐고 있어서 상륙에 대한 반격을 조기에 실행하지 못해
큰 패배요인이 되었습니다.
(영국군이 주로 상륙한 캉 지역에서 독일군 기갑사단에 부딪혀 영국군이 꽤나 고전했죠)
그리고, 해안 진지를 무조건 무력화시키는게 좋긴 하다만..
그 당시엔 후방에 기갑부대나 독일군 증원부대를 막기 위해, 다리와 도로, 시가지를 점령하고,
시간벌기를 하는 3개 공수사단이 낙하해 있었고..
이 상륙작전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과제는 이 공수부대와 상륙부대가 연결되고,
다시 후방에서 수많은 본진 부대가 이 교두보를 통해 프랑스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었죠..
대략 15만명 정도의 상륙부대와 공수부대가 이 혈전의 선봉이 되는 것이고..
그들이 구축한 교두보로 300만명이 넘는 연합군 본진이 상륙하는 것이었습니다..
연합군 수뇌부에선 작전에 투입된 부대가 몽땅 전멸하는 상황도 생각해뒀었는데..
솔까 거기에 비하면 피해규모가 생각외로 적었던 편입니다.
솔까, 독일군이 상륙부대와 교두보를 쓸어버리기 위해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는 상황인데..
다행히도 독일군의 저항과 반격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아, 교두보 확보에 성공한 것이죠..
그런데, 무조건 안전한 상륙을 위해 시간 끄는 것도 어려운 것이고..
당시 오마하 해변에는 안개가 끼어 정확한 포격이 어려웠고,
전함들이 아군 오폭을 우려해 너무 적 후방으로 날려서,
위로 슝슝 날아가 엉뚱한 데 날아갔던 것도 크게 작용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