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전에 독일은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미국과 영국도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맨하튼 사업'을 비밀리에 진행했다.
그래도 이 분야에서는 독일이 한 발 앞서고 있었다.
1942년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은 곧장 버목 수력발전소로 향했다.
그곳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중수가 생산되고 있었다.
중수는 핵무기를 만드는데 아주 중요한 물질이었다.
독일은 곧장 고농축 시설을 확장하고 생산량을 열 배로 늘리기로 했다.
독일의 이러한 움직임에 영문을 몰랐던 노르웨이 노동자들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서 이들은 비밀리에 저항조직을 만들고 독일의 계획을 방해하기로 했다.
이들은 그 물질이 어떤 용도인지도 몰라도 아주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들은 영국의 정보부와 연락망을 갖추고 수시로 공장의 상황을 보고했다.
영국측은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이 전쟁은 그들의 승리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
미국과 영국의 '맨하튼 사업'도 이에 자극받아 규모도 커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어느 날, 노르웨이 공장에서 생산된 중수가 1차로 독일로 향한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영국 정보부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저항단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수송선에 폭탄을 장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수를 운반하는 수송선은 하이드로호였다.
하이드로호는 민간인을 싣고 호수를 정기적으로 운항하는 페리선이었다.
때문에 이들은 이 작전의 중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결국 저항단체는 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전문을 띄웠다.
"민간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답장이 왔다. "이것은 그 희생까지 고려한 작전이다"
저항단체는 그날 밤, 하이드로호의 배 밑바닥에 시한폭탄을 장착했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예정대로 하이드로호가 출항하였다.
독일이 그토록 중요시했던 물질의 수송인데도 경비는 그렇게 삼엄하지 않았다.
배가 떠난지 얼마 후 '쾅'하는 굉음과 함께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물 속으로 뛰어 들었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독일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수습을 하지 않았다.
연합군은 독일이 거의 핵무기를 완성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독일의 항복이 임박한 가운데, 연합군의 핵무기팀은 독일과 유럽을 온통 뒤지고 다녔다.
마침내 독일 남부의 가톨릭 성당 지하에서 독일의 원자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 수준은 '맨하튼 사업' 보다도 훨씬 뒤떨어졌다.
연합군은 그 초보적인 수준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이다.
결국 노르웨이 호수로 가라앉은 하이드로호는 의미없는 희생이 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렇게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무수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