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를 소개하면서 "백전불패" "천하무적" "상승" 등의 수식어를 많이 붙인다. 그런 표현이 약간 과장된 면이 많긴 하지만 자기 부대의 전통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지켜간다는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초중기까지는 각 보병연대 간에도 전투력의 차이가 많이 있었다. 일찍 창설되어 공비토벌의 경험이라도 있었던 부대와 전쟁중에 급히 신설된 부대 사이에는 훈련이나 사기 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많은 신설부대들이 경험을 쌓아가면서 강한 부대로 거듭남을 보여주었다.
18연대는 당시 국군의 30여개 보병연대 중에서 가장 강한 전투력을 가졌던 그룹에 속할 것이다. 현리 전투에서 비록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그 와중에 부대의 명예를 지켜가는 18연대원들 특히나 초급 지휘관이나 병사들의 모습을 그린 다른 부대 장병들의 기록을 보면 "역시 다르구나!"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오늘은 그런 이야기 몇편을 소개한다. 다 현리 철수에서 있었던 일이다.
중공군의 포위망은 대대적인 것 같았다. 종심 깊게 곳곳에 복병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봐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번 무너졌다하면 몇백리를 뛰게 마련입니다."라고 한 선임하사관 오중사의 말이 비로소 실감났다.
주위에 수선스런 인기척이 들렸다. "백골부대는 이쪽으로 모여라!"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그쪽으로 가 보았다. 덩치가 우람한 한명의 대위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집결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20여명의 병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야! 임마, 넌 왜 계급장이 없어? 철모는 어디다 벗어 던졌어? 응?" 대위는 병사 한명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정강이를 몇번 걷어차인 그 병사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 임마, 백골부대의 수치야! 너같은 놈은 즉결처분이야!" 대위는 쓰러진 병사의 덜미를 잡아 일으켜 주먹 따귀를 몇번 더 올려붙인 다음 권총을 겨누었다. 금방 쏴 죽여버릴 듯한 기세였다.
그 자리에 모인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숨을 죽였다. 1초 2초...... 모두 대위의 총구만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대위는 권총 잡은 손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그러면서 "임마, 정신 차려! 앞으로 한 시간 안으로 자신의 계급장을 만들어 달아! 그리고 철모도 구해 쓰란 말이야! 알겠나?"하고 고함을 질렀다. "예, 중대장님!" 사색이 되었던 병사는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주위에서는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가자! 지금부터 낙오하는 놈은 용서없어!" 대위는 이렇게 소리치며 선두에 나섰다. 나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이봐, 소위! 귀관은 뭐야?" 대위는 나를 쏘아 보았다. "예, 저는 00연대 하사관 교육대 구대장입니다." "귀관은 머저리구만." "예?" "따라오지 말구 귀관의 부하들을 수습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수습해야할 병사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철의 삼각지>김운기1989
뒤쳐졌던 나를 뒤에서 쫓아온 1개 소대의 군인들이 앞지르면서 전투태세로 산개하고는 우리더러 빨리 가라고 호통쳤다. 장교고 사병이고 모두 쥐구멍만 찾는 판국에 자신들의 반격에 동참하라는 것도 아니고 빨리 가라고 소리치다니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시도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너희들 같이 도망이나 다니는 패잔병들도 군인이냐는 투였다.
기관총이나 박격포 같은 공용화기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되었고 개인화기 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군인이 적지 않은 판에 그들은 개인장비는 물론 60미리 박격포까지 갖춘 완전한 전투부대였다. 마치 하늘에서 방금 공수된 특전사 병력 같은 모습으로, 모두가 도망가기 바쁜 상황에 추격해 오는 적군과 일전을 준비하는 그들이 내 눈에는 신기하기조차 했다.
당시 상황으로 짐작해 볼 때, 그들도 연대나 대대 같은 상급부대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거나 이미 작전체계가 무너진 상태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반격은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기 보다는 소대 자체의 자의에 따른 반격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내가 속했던 부대의 경우 신설부대여서 그랬겠지만 하사(지금의 상병)면 분대장, 중사(이등중사는 병장, 일중은 하사)면 선임하사급인데 견주어 그들은 중사가 분대장 급으로 나 같은 이등병은 눈을 씼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고 최하가 하사급이었다.
그들은 18연대라고 했다. 18연대면 사변 전 옹진전투에서부터 용명을 날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같은 한국군이라도 00연대는 아무리 공격해 보아야 고지점령은커녕 당하기만 한다고 해서 "00연대 공격 하나마나", XX연대의 경우 아무리 보급품을 주어 보아야 모두 적군의 손에 빼았긴다하여"XX연대 보급 주나마나"였는데 반해 18연대는 아무리 포위 당해도 모두 빠져나온다고 해서 "18연대 포위 당하나마나"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다분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해도 00연대나 XX연대에 견주어 18연대야말로 전투부대였다. 한국군에도 18연대와 같은 부대가 있었기에 낙동강 전선에서의 반격과 북진이 가능했을 것이다. <어이없는 참전기> 정양섭 2004
백골부대는 참 멋있는 진짜 군인들이었다. 철수중에 적이 바짝 따라오면 고참들이 호를 파고 적을 저지하며 대원들을 먼저 철수시켰다. 먼저 철수한 병력들은 조금 가다가 또 호를 파고 고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전장감각> 서경석
철수하다 보니까 18연대의 중상사(中上士)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적이 몰려오는데도 겁내지 않고 태연히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니까 나도 안심이 되었다. 그들은 상급지휘관들이 무능하다고 욕질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백골연대가 강하다 할지라도 상급지휘관이 제대로 써먹지 못하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들만 앞장서서 도망을 쳤다고 불평하는 말을 들었다. < 살아남은 자의 일기> 이종운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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