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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5 20:53
[잡담] 밑에. 구일본군 반자이 돌격술 관련해서 문득
 글쓴이 : G스마트SM
조회 : 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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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궁금증이 하나 생겼는데.


백병돌격.이란 전술은 이미 일본내에서도 보신전쟁이나. 세이난 전쟁을 통해.

도검창.총검등의 백병전은 상대방의 우세한 소총화력 앞에선 더이상 유용ㅇ하지 않다는걸 지켜봤을테고.

독일식 군사사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모습을 기본골격으로 모방. 육군을 육성하였다면.

포병대의 야포와 보병의 소총 화력 집중의. 화력주의 전술에서. 러일전쟁 당시.

보병의 백병전 중심으로 회귀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들이 작용되었는지가 궁금해져서 말이죠.


1.러시아군 역시 유럽 군사강국중 하나로서. 야포와 기관총으로 전선에 배치하였지만.

은근히 러시아군도. 백병전술을 완전히 떨쳐보내지 못한 시점이기에. 진흙탕 개싸움에서 어찌어찌해서 서로 백병전 상황으로 펼쳐졌다?


2.일본의 공업능력. 총.포탄의 생산자체를 일본 자체에서 생산 보급이 불가능한 지경이기에.독일이나 영국에

탄약 물량을 발주해야할 지경이기에.

러일전쟁이란 큰 규모의 전쟁상황속에서도 어디서나 만성적인. 부족에. 백병전술이 어쩔수 없는 대안책으로 올라가기 시작한것이다?

3.러시아군의. 요새등 주요 격전지의 야포.기관총 진지를 공략할.

일본군 포병대의 보병 지원능력이 매우 현저히 부족하였기에.포병의 포화가 러시아군 타격에 큰 효과를 주지도 못하고..점차

포병불신론에.차라리 보병백병론으로 전환 되었다?

몇몇 가상조건이 가능할법도 한데.

단순히. 일본군내 고위 군 지휘관의 군사사상 자체가 백병전 만세 였기에.

러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까지. 한결같은 닥돌전술이 유지된것인지...그냥저냥.

ㅇ궁금해서 말이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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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leaf 17-03-25 21:15
   
러일전쟁때 일본의 개돌은 당시 맥심기관총의 위력이 검증되기 전이라 나름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당시 소총들이 연사가 안되는 부분도 있고 일본의 압도적인 병력우위도 있었으니...

태평양전쟁때는 자포자기식의 돌격이라 봅니다. 과달카날 이후 보급이 원활하게 된 전장이 없으니까요. 항복은 못하니 뭐라도 해보자는 그런 느낌이죠.
바볼랏 17-03-25 21:40
   
초기 러일 전쟁때도 일본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전사자는 2배이상으로 효율이 좋은 전술은 아니었습니다.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 강제징병 인원이 23만명이상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무장항쟁의 이유로 일본에서도 징병을 꺼렸으나

전쟁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숫자를 늘렸었습니다.

무모한 돌격전술이 전쟁 마지막까지 자행된 데에는 강제징병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G스마트SM 17-03-25 21:55
   
음.
전투원 공백을..어찌어찌.병력보충이 가능하였기에. 백병전술을 고수하는것도 가능했졌을수 있겠군요.
바토 17-03-25 21:47
   
패색이 짖은 당신의선택은?
1.  할복
2.  자폭
3. 반자이어택
4.  아군에게 창검에 찔러서 죽기
5.  아군에게 목따이기

이중 당신의 선택은?
     
G스마트SM 17-03-25 21:53
   
우와...

어째서 모든 선택지가 전부 사망으로 귀결되는건가요?

6.항복. 전쟁포로는 없습니까?
          
바람노래방 17-03-26 17:30
   
일제군에서 6을 선택하면 4,5가 먼저 옵니다.
6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촌팅이 17-03-26 08:20
   
가장 좋은건 삼십육계 줄행랑 아니겠는지요
바람꽃 17-03-25 21:57
   
이유는 간단합니다. 러일전쟁때까진 기관총이 비싸고 성능이 좀 모자라서 수량이 많이 배치 되지 못했습니다. 러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육군은 전술발전을 소극적으로 하고 연이은 중국과의 전쟁으로 승리감에 도취되어 똥인지 된장인지 모를때 미군과 싸움이 벌이고 기관총에 녹아내렷죠. 기관총 십자포화를 맨몸으로 총검돌격하다 전멸당해도 다음날 똑같이 했죠 ㅎㅎ
sunnylee 17-03-26 00:32
   
한마디로 지휘부 전술적교리가 전근대적인 탓이 큽니다.
러일전쟁 직전, 미국 독립전쟁을 각국무관들은  심도있게 연구 하죠.
참호와 철조망 (미 독립전쟁에 기원) ,토치카,기관총,대포 요세화된 기지 공략이 엄청난 사상자를 부르는
점차 인간대 기계의 전쟁의  변하는 전쟁의 시대적 흐름을  관가하고 못따라 간겁니다..
이점 에선 1차대전 초기 유럽각국도 나폴레옹 시대
전열보병과 보병기동우회, 포위전에서 못벗어난 사고방식은 마찬가지 이지만..

그외에도 일본내 개항파와 유신전쟁 사이에서도 전근대적인 무사시대가 막을 내림에도
무사도에 대한 막연한 동경,향수심리와 군상층부의
 신흥 귀족가문, 기존 계급신분의 고착화, 전근대성도 아직 남아 있던 시기임
조선출병 동학농민군 진압 ,청일전쟁중 자신보다  낡은 구시대 전력의  적을상대로 연승과
평양성전쟁에서 청군과 대치 보병에 의한 기동으로 유리한 사격위치 고지선점  집중포격
성을 박차고 나온 청군에 매복,보병 돌격 역습으로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경험이
보병 만능주의를 심리를 부축인듯..
그결과  러일전쟁초기 봉천전투 기동 포위전으로 대승을 거두는 까지도 좋았지만
당시 뤼순항 점령을 위해 막무가네 돌격으로 수비로 전환한  재정 러시아의 
토치카+철조망+맥심기관총 로 무장된 203고지에서  4개사단중 2만넘는 사상자를 냅니다.
아이러니 하게 본토에서 실어온 203mm 유탄포의 지원으로 
전진 포병술덕분에 고지를 점령하고 여순항을 포위하죠. 보병과 포병의
 긴밀한 제병합동이라는 전술을 배웠지만..
최후점령은 보병 영웅적 돌격이란  대규모 인명피해를 미화하는 일본군의
잘못된 학습이 된거죠..
(어차피 당시 시대상 고지전은 공격자 측면에서 돌격외엔  대안도 없지만)
이후 쉬운 상대인 중국과의 전쟁에서 더이상 발전 없이 주저 앉은거죠.....

청일전쟁 초기까지 해군전함은 영국,독일에서 제작 , 전쟁후  기술적,전술적경험을 축척
러일 전쟁 쓰시마해전에서  도고제독의 함대운영및 표적함 집중사격전법이 맞아들어지만
특히 자체개발한 포탄의 역활도 컸다고 전함간 포격전에 흔히 쓰이는 포탄대신
지금은 흔한 지연신관탄 개념이라 발틱함대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고 하내요
하지만 전체적인 기술적 개발도  2차 개전초까지 항공모함과 함상 전투기 개발을 
해군의 발전과 반대로 육군의 전술,장비개발은  2차대전 초기 이후 멈췄고
대전말기 중형전차,대전차포,보병화기를 개발하지만 이미 전황에 영향을 주기엔 역부족

2차대전 초기 말레이,필리핀,싱가폴공략때는
오히려 전차,폭격기,함대상륙을통한 제병연합을 잘구사한것은 일본입니다.
미국,영국은 밀름에서 전차기동은 힘들다고 단정 , 너무 안이한 수비전과
일본에 비해 장비,인원 모든면에서 열세
(물론 진주만 공습이전까지 유럽에 비해, 2선 취급도 한몫)
오히려 2차대전 초기 말레이,싱가폴,필리핀 공략전에서
 영국,미국 강대국에 대한 승리하는 공략법이
 기동. 야습,우회, 접근전으로  적의 강력한 방어진 화력투사 능력을 봉쇄하는 방법이
구사되고 보병돌격으로 마무리 지는 전술교리가 먹힘
청일,러일, 중일전쟁부터 2차대전까지  60년간 전쟁에서
 연승과 그로 인한 군의 막연한 자신감이
군 전술, 장비 개발등  기타 문제점 개선할  시간과 노력을 잊은계기가 됨...
이후 대전 중기 콰나카달전투와 미드웨이해전에서  미군의 물량 전력우위와 정공식 공략법으로
태평양 전선에서 승리를 잡게되고 
그이후  전투에서는 아시는대로 보급,수송이 막힌 일본군이 선택한게 닥돌이죠...

참고로, 러시아 2차대전까지 닥돌형태는 그전까지 대외적 전투보단
적백내전을 통해 경험을 통해 이뤄진것 갔습니다.
대도시,마을이 적고 땅이 넓고 탁특인 평원 지형이 많은 관계로 거점 확보전 양상이 이었고
수송,기마병이 모자른 상황에 폭설,진흙탕등 기후적영향은
2치대전 초까지도  상대적으로 군사적전술,장비가 한단계 낮은 러시아 입장에선
별 대안없이 안원물량에 의한 제파  보병돌격이  흔히 구사되었고
물론 보병들의 반자동 소총개발 대량보급전이라 소총의 연사 화력이 보잘것 없는점도
 이유라면 이유 인듯.
거기에 스탈린집권후 숙청을 통한 군장성, 장교단들의 대량 공백을 매꾸기위한
군사적 지식,경험없는 인원으로  대거교체,전성상황 고려없는  중앙하달식 명령과
농로출신의  교육수준이 낮은 민간 징집병에
 복잡한 전술훈련할 시간부족으로 ..전투에선 단순한 공격형태로 선호 
그것도 2차대전 중반까지 이구 스탈린그라드,쿠르스크전투 이후에는  독일의 전격전을
습득, 제병연합의 소련식 종심타격 전술을 배우고 터득한거죠
관심병자 17-03-26 00:45
   
일본의 원래 군사교리는 독일식 이었습니다만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군의 우라돌격에 큰 피해를 보고난후
일본군은 그런식의 총검돌격을 채용했습니다.
소련은 2차대전까지도 독일군을 상대로 우라돌격을 해댔었죠.
그런식의 돌격전술이 시대에 뒤떨어진것 같아 보여도
아주 미개한 전술은 아닙니다.
한국전쟁때 참호전, 고지전, 베트남전쟁때도 백병전등 그런 전술을 사용했습니다.
단시간에 전투를 마무리짓는 어찌보면 효율적인 전술일수도 있습니다.
일본군의 문제는
처음부터 승패가 결정난 전투에 그런식으로 병사들을 희생시킨것이 문제
wjs76 17-03-26 11:08
   
일단, 쪽바리들은 포로가 된다는거 자체를 수치로 여겼고, 항복하는걸 반역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밑바닥에 깔린데다가 정신력 만능사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저런 병.신돌격이 가능했던거죠.

반자이 돌격도 나름 은밀하게 기습형태로 이뤄졌으면 화력이 열세일지라도 현대전에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전술입니다.

문제는 저놈들이 반자이 돌격전에 필수코스로 술멕이고, 광신도 집단처럼 집회를 연후에 돌격을 감행해서 미군 진지에서 항상 알고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었다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