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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3-27 09:26
[기타] 6.25전쟁 피란수기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711  

 
1회
 - 지금 마의 38선 상에서 민족 최대의 비극이 버러지고 잇는 줄 알바 없는 6월 25일은 매시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일요일 이었다. 워낙에 늦잠이 만흔 나는 일요일을 빙자하고 아츰 늦게야 잠을 깻다. 벌써  월여 전부터 홍역의 여파로 뇌막염이라는 듣기에도 무서운 불치의 병으로 말미암아 고개의 자유를 잃코, 에미 애비의 얼골을 뻔히 디려다 보면서도 웃음을 잊어버린  둘째 놈 재명이가 하도 불상하기에 제 어미 후회나 없도록 한약이래도 한첩 써볼가 하고 식어빠진 아츰상을 물닌 후 집을 나섯다. 초하의 제법 따끈한 해볕이 내려 쪼이는 걸  보니 아마 거의 점심 때가 갓가웟나보다 생각하면서 읍내에 들어가기 전에 000에 들녔다. 문 앞에 부락인 사오인이 모여  서서 무엇을 쑤군대고 있다. 무심코 옆을 지나려 하니, "38선이 터젓다." 의정부, 개성 하는 등등의 말이 단편적이나마  내 귀를 스친다. 좀 궁금하긴 했으나 대수롭지안케 여기고 그냥 사무실로 드러섯다.
"오날 뉴-쓰 들으셨슴닛까"
닷자곳자로 달여와서 묻는 000씨의 말에 순간 어리둥절햇스나 선듯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뉴ㅡ쓰는 무슨?"
"이북군이 오날 새벽을 기해서 38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시작햇답니다.  머ㅡ 참말이예요. 오날 정오 라듸오에서 들엇서요."  
아즉 흥분이 가라앉지 안은듯 그 직원의 얼골은 붉다.
"참말입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 기어코 올 것이 왔구나. 왜  이쪽에서 선수를 쓰지 못했나' 하고 슬그머니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설마 하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문득 앞섯다. 번번히 계획적으로 남침을 시도하는 무리들인지라 요번에도 그러한 수가 안일까?  아니  그리 했으면 하는 생각이 한편 간절해졌다.
 
2회
 
"요번에는 아조 전차를 가지고 공격해 온답니다. 그전과 같이 하다가 그만두는 게 안인 모양이예요. 아마 00으로 내려 밀 모양이지요?"
그 직원도 몹시 궁금한 듯 도리혀 나의게 질문을 한다.
"글세요. 그럿치만 이편에는 왜 그만한 준비가 없을나구요"
이렇게 간단히 대답을 하곤 그만 궁금증이 복밧처서 총총 거름으로 사무실로 달려갓다. 시내에 드러스니 엇전지 공기가 퍽으나  긴장된 듯하다. 경관들의 급한 거름거리. 이곳 저곳에서 모여선  쑤군대는 시민들의 떼.  막 경찰서 앞을 지나려니까  여간해 볼 수 없던 별표 붙은 군용자동차가 멈춰 잇고, 고급장교인 듯한 몃 사람의 장교가 막 찝차에서 하차하는  중이었다.
'사태가 몹시 긴박해진 모양이로구나'하는 생각에 몹시도 가슴이 설레어진다. 사무실에 드러스니 벌써 일요일일텐데도 불구하고 십여명이 모여 잇고, 읍장과 부읍장님도 모여 계신다. 들으니  뉴ㅡ쓰는 대동소이하고  직원들을 비상소집 하는 중이라고 한다. 급보를 듣고 달여오는 직원들의 발거름이 몹시도 당황한 듯 하다.  숙직실의 라듸오를 급작히 사무실로 옴기여 노코, 원형으로 에워싸고선 잡음 섞인 축성기 앞에 귀를 대고는 억측이 구구하다. 제각기 있는 대로의 군대지식을 털어 내놓고 갑론을박 미지수의 앞날을 판단하기에 머리를 갸웃거린다. 이윽고 비상숙직반이 조직되자 나는 당직으로 남게 되고 몃명의 직원은 돌아갔다. 밤에는 등화관제가 실시되고 맨몸둥이에 몽둥이를 들고 선 정문 앞에 교대 보초를 섯다.
지난한 하로 밤이 새자 정거장에는 국군을 만재한 군용열차가  연속 북상한다.  시시각각으로 전하여지는 뉴-쓰에는 아군의 불리한 고전이 전해진다. 그러나 한편 안전보장이사회의 한국 파병의 깃거운 소식과 미 육해군의 전투 참가라는 쾌보도 들리어 온다. 적이 강릉에 상륙했다는둥 의정부를 점령당했느니 문산에서 전투 중이라니 하는  등등의 복잡한 전선 뉴-쓰가  불규칙하게 사람의 입과 입을 통하여 들리어 온다. 시민들은 모여서면 쑤군대고 모두들 전쟁의 공포를 몸 갓가히 인식함인지 거리에서의 명랑한 기색은 어덴지 그 자최를 감추어 버리고 침울한 기색만이 사람들의 면면에 알알이 떠오른다. 이러한 숨 막힐 듯한 며칠이 지나자 느닷없이 피란민의 떼가 화물차 꼭대기에 만재되어 연속 남하하기 시작하고 점점 수가 늘은 고급 자동차들이 그야말로 줄을 잇달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무슨무슨용 차니  국회의원비상용 차니 하고 넷텔을 앞 유리에다 큼직하게 써 붓친 온갖 형태의 자동차가 홍수와 갓치 꼬리를 물고 잇단다. 언뜻 보아도 상당히 유족한 생활을 한 듯 몸차림이 말끔한 가족들을 갓득갓득 실고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깨소린 냄새와 뽀얀 먼지를 뿜고 다라나는 모-든 자동차들이 엇전지 우리들만 이곳에 팽개치고 도망하는 듯 싶어 한 업시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편 퍽으나 고독해진 듯  쓸쓸한 감정을 금치 못했다. 공중에는 잘 보지도 못한 대형의 비행기의 왕래가 빈번해 지고 도보로 내려오는 피란민의 수효도 늘어갔다. 그러나 그들 피란민들의 입을 통해서 들리는 말은 그다지 시원한 소식은 아니었다. 정부가 이동을 했다는둥. 서울을 점령당했다는둥. 혹은 한강철교를 폭파했다는 등등의 말이 비밀비밀 하면서도 연속 듣기여 온다. 군중들은 몹시도 불안스러운 모습으로 남하하는 자동차의 홍수를 바라다 보고 있다. 혹시나 무슨 반가운 뉴-쓰나 들을 수 없나 하고 자동차가 멈추기만 하면 우루루 몰려 들어 질문의 화살을 던져 보지만 고향을 버리고 쫒기어 가는 그들의 입에서 시원스러운 대답이 나올리 만무하다. 후유-- 땅이 꺼질듯 한숨이 새어 나오고 불안과 공포에 가슴을 조이는 시민들의 모습은 확실히 초라해졌다.
 "엇더케 되겠습닛까? 이곳까지 피란을 하게 될까요?"
만나는 사람마다 이러케들 물어본다. 물론 상대방의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할 줄은 너무나 빤-히 아는 노릇이지만 혼자만 꿍꿍 속을 썩이기가 하도 안타까워서 무의식중에 새어 나오는 안타까운 심정의 토로일 것이리라.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3회
  앞날의 자기 운명을 점치지 못하고 회색빛 안개 속을 헤메이는 듯, 다리의 맥들이 풀리어 타박타박 거리를 오고 하는 시민들의 무거운 발거름.  모두들 다만, 설마, 행여나 하는 요행심을 믿고, 만일 이곳까지 피란을 하게 되면 나라는 망하는게 아니냐, 우리에게도 국군이 있고 연합군의 후원이 있거늘 , 서울이야 워낙 거리가 갓가우닛가 할 수 없지만 이곳까지야 괜찮을테지 하고 자위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민들의 가냘픈 희망과 기대를 조소하는 듯 피란민의 수효는 나날이 늘어가고 각 지방으로부터 후퇴하는 국군과 경관들이 시내에 꽉 찼다. 읍사무소에도 시국대책위원회가 설치되고 군경의 식사를 보살피게 되었다. 밤 열한시였든 통행금지 시간은 아홉시로 단축되고 삼엄한 초비상경계가 실시되었다. 미공군부대가 벌서 전투에 참가한 증거로, 보매도 날세게 생긴 전투기들과 육중한 폭격기들이 읍내 상공을 날아간다. 정부가 대전으로 이동되어 정식으로 발표가 있었고, 서울은 부득이 철수한 것이 확인되었다. 참혹한 꼴을 한 피란민들이 거리거리에 넘쳐 흐르고 어느 창고 어느 빈터 할 것 없이 아모러케나 짐짝을 깔고서 쭈구려 앉은 창백한 얼골의 그들. 수백리 길을 먹지도 못하고 다만 삶을 위하여 줄달음처 온 그 고통이야 오죽하랴마는 누구하나 따뜻하게 그들을 맞아주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이는 남편을 버리고 어떤 부인은 자식을 중도에 잃고 울며불며 거리를 헤메이는 난민도 있다. 생에의 애착은 늙어갈수록 더해 가는 듯 호호 백발노인이 살길을 찾아 문전에 밥을 비는가 하면, 부모를 잃은 아해들이 기절할 듯 울며불며 어머니를 부르는 애끌는 장면도 있다. 몇칠을 굶엇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길가에 쓰러져 있건만 누구 하나 눈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우리 고향의 인심이 이다지도 강팍할 리는 만무하건만 워낙이 자기 한 몸둥이 추스리기에 황황한 때이다. 몰인정하다고 책하기도 어려울 듯하다.갈기갈기 찌저진 치마폭, 헝크러진 머리털, 개나리 봇짐 우에 어린 아해를 안치고 건땀을 흘려가며 걸어가는 비참한 그들의 모습을 대할 적에 엇전지 남의 일 갓지 안는 생각이 작고만 들어간다.  아, 이 얼마나 비통한 현실이냐? 몇놈들 공산 수괴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에 이다지도 무고한 양민들이 고통을 받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뽀-얀 먼지를 온통 뒤지버 써 가며 비틀비틀 국도 한 구석을 거러가는 그네들의 앞길에 부디 행운이 있어다오. 나 역시 오날일지 내일일지 그대들과 같은 행로의 길을 떠나지 안는다고 어는 누가 단언하랴.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4회
   이와 갓치 피난민들의 수효가 늘어 갈수록 시민들의 모습은 작고만 우울해지고 개중에는 겁을 집어먹고 짐을 안전하다고 믿는 다른 촌으로 옮기기 시작하고, 무엇을 공작함인지 굳게 점포문을 걸어 닫는 상점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괴뢰군의 불법 남침을 분개하는 시민들의 의기는 충천한 바 있었다. 시민들 중에 봇따리를 싸는 놈은 빨갱이보다 더한 놈이니 단연 숙청하라고 웨치는 열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약 후퇴를 하게 되면 남어지 가산을 모조리 불살러 버려서 초토 전술을 쓰겠다고 기고만장하는 분들도 있다. 극동 미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전선 시찰이 있은 다음 며칠 안가서 UN의 결의에 의거한 미군 지상부대가 상륙 북상한다는 쾌보가 들어왔다. 몇 해를 두고 계획적으로 남침을 기도한 괴뢰군의 소련제 전차부대의 공격에 대하여, 우리의 용감한 국군들은 이를 악물고 육탄으로써 대항을 하며 중포와 대전차 무기의 결핍을 통탄해 한다고 한다. 새삼스러이 너무도  00적이고 평화통일에 치중한 정부의 시책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몇칠 안가서 벌서 낯익은 미 지상보병부대의 용자가 시민의 환호를 받어 가며 북상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연합군의 참전을 목격하자 조여든 가슴을 쓰다듬어 나리고 우방용사의 환영에 집중했다. 속속 북상하는 국군과 UN군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하야 애국부인회원들이 궐기했다. 철야를 해 가며 차수(찻물)을 접대하고 식사를 운반했다. 직원들도 매일갓치 총동원하여 군경의 급식과 사무의 연락에 분주했다. 사무실 엽헤는 커-다란 가마솥이 여러개 걸리고 부인들이 교대로 취사에 임하였다. 비록 한뭉치의 소금밥에 지나지 안치만 군경들은 퍽으나 반가워 하고 맛있게 먹어 주었다.
   괴뢰군의 침략이 갓가워 옴인지 요즈음 와서는 점점 포성이 갓가워 온다. 더구나 밤이나 새벽 같은 때는 완연이 그 방면을 측도할 수 있으리만치 요란해지곤 한다.  우리들은 일반사무를 전폐해 버리고 오로지 시국사무에 뛰어다녔다.  사무실 한 모퉁이를 말끔히 치워버리고 헌병대 사령부가 사용하고 000을 개방하야 군경의 식당으로 제공했다. 큼직한 건물에는 군대들이 꽉꽉 차고 시내의 거리거리에는 UN군의 온갖 차량이 즐비하다.  괴뢰군의 탱크 공격에 대항할 무기가 없어 수류탄을 안고 육탄공격을 감행하는 용감한 국군들의 00을 너무나 잘 아는 시민들은 미군의 탱크부대를 보고는 쌍수를 들어 환호한다. 인제야 우리의게도 탱크가 있다하고들 좋아 한다. 그러나 연합군이 수원을 작전상 포기하고 천안으로 후퇴하야 대기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어 왔다.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5회
   충주 방면의 전황이 불리하여 오히려 북쪽보다도 더 위험하다는 등등의 소문이 파다해지자 또 다시 시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러 입을 통하야 들리는 소문도 소문이려니와 그들의 유일한 판단이란 국도를 내왕하는 자동차들의 동향이라,  군용차들이 남쪽으로 나려가면은 가슴을 조히고 걱정하다가 국군을 만재한 트럭이 북상하기 시작만 하면 좋아한다. 오날은 비행기가 몇 대나 올나가고 또 미군이 몇 차 올나가고 자동차들이 무엇을 실코 갔다는 둥,  모여 서면 전황에 대한 자기 예측을 느러 놓는다.   승리에의 목마른 욕구에서 새어나는 악의 없는 유언(비어)이라기는 할 터이지만 얼토당토 안은 어데서 듯고 와서는 좋아라고 날뛰는 경솔한 사람들도 있다. 인천에 흑인부대가 상륙을 했다는 등, 미군이 원자탄을 쓰랴고 일부러 후퇴한다는  등의 근거없는 이야기를 늘어 노흐며 혼자서 전쟁을 낙관시 하고 있는가 하면, 정감록의 비책이 엇더니 엇더니, 무슨 산 무슨 동리가 피난처이고 어느 달 어느 날에 해결이 된다고 하면서 얼골을 맞대고 쑤군대는어리석고도 비상식적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투는 확실히 기습을 당한 아군에게 불리했다. 읍내에 주둔했던 미기갑부대들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고, 천안 소정리 등지의  피난민도 점차로 그 수가 만허지자 직원들 사이에도 확실히 불안감이 더한 모양인지 가족이래도 좀 떠러진 촌 부락으로 옴기어  노와야겠다고 걱정하는 분이 나오기 시작하고, 쌀을 비롯한 온갓 필수품의 물가가 대폭등을 해버렸다.  시민들 중에도 약바른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슬금슬금 다 빠져 나가고 빈집의 수효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인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짐이래도 좀 촌으로 옴기어 노왔습닛까?" 하는 말이 상투적 인사가 되고 말았다. 나는 몹시 초조했다. 더구나 풍문에 들리는 침략지역의 소식은 너무도 참담하다. 군경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학살을 당한다 하고, 관공리들도 모조리 참혹한 수단으로 살해를 한다는 것이다.  잔인한 그 놈들에게는 있을 법도 한 일이리라. 내 생명의 안위도 안위이지만 무기 하나 몸에 지니지 못한 몸으로서 보복의 총 한 방을 쏘아보지 못하고 놈들의 손아귀에 쓰러지기는 너무도 분한 노릇이다. 그러타고 해서 소위 민중을 지도한다는 관공리의 처지로 남 먼저 당황해서 날뛰기도 실헜기 때문에 몇일간 좀더 전국(전쟁국면)의  추이를 살피기로 하고 여전이 출근을 계속했다. 비겁한 돌연한 기습으로 말미아마 전쟁을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빈약한 무기로서 고전하는 국군을 도와서 연합군의 지상군이 참전한 후부터는 괴뢰군의 침략 속도가 훨씬 완만해지긴 했으나, 물 밀듯 달려드는 적의 군세가 자못 왕성한 것 같다. 그러든 참에 또 하나 시민들의 가슴을 선뜻하게 만드러 노흔 사건이 발생하였스니 그것은 바로 칠월 육일 밤의 일이다. 숙직 비번으로 비교적 일즉히 집으로 도라올 수 있었던 나는 저녁밥을 마치자 이내 자리에 누웠다. 온갖 상상의 날개가 사뭇 피곤한 머리 속에서 떠러지질 안아 한 동안 애를 쓰다가 겨우 아렴프시 잠이 드르랴는 때이다. '팽'하고 총소래가 들려 왔다. 그러나 그런 총소리 쯤은 벌써 면역이 된지 오래인지라 그냥 누어있스랴니 뒤를 잇달아 '팽 팽' 연속해서 수십 방의 총소래가 들린다. 공포(탄)로선 좀 심한데 하고 신을 끄을고 밖을 나갔다. 시내 쪽에서 벌-거니 무엇이 타오르는듯 하면서도 총소래는 점점 더 치열해 진다. 마치 수백의 부대가 서로 교전을 하는듯 콩 볶듯 들리는 소총 소래에 정신이 펄적 낫다. 괴뢰군이 벌서 침공해 오기는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혹시나 적기의 내습인가 하고 귀를 기우려 보았스나 맑게 개인 하늘에는 은가루를 뿌린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일 뿐 폭음이라곤 전연 들을 수가 없다.  '이상하기도 하다. 무슨 일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펑-' 하는 일대 폭음과 더부러 시뻘건 불덩이가 불끈 하늘로 솟구친다. '이크, 무슨 일이 분명이 있나보다' 하고 발길을 옮기여노랴니까, 계속해서 '펑- 펑-' 서너 번이나 전과 같은 불덩어리가 정거장 부근에서 또 솟아 오른다.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6회   
 
그러자 이곳 저곳에서
"불을 꺼라"
"공습이다"
하고 웨치는 소래가 요란이 들리어 오고 갑작이 동내가 발끈 뒤집어 졌다. 이모퉁 저모퉁이에서 아해들을 부르는 소래, 어린애들이 우는 소래가 왁자지 하면서 벌써 날쌘 동민들은 짐보따리를 질머지곤 식구를 찾노라고 소래소래 지르며 뒷말랭이를 기어 올라 간다.
"뭘 하고 있어요. 어서 갑시다."
이 밤중에 어데를 가자는 것인지 잔뜩 질머진 짐 위에다 어린 아해를 올려 놋코서 쩔쩔매며 올라오는 허풍쟁이 모씨가 앞을 다투어 담모퉁이를 지나간다. 건너편 새터동리, 죽안동리 할 것 없이 그곳에서도 야단들이다. 어린애 우는 소래, 서로 가족을 부르는 소래, 이곳저곳에서 불빛이 번쩍거리고 어느새 끌어냈는지 삐그덕 삐그덕 우마차 소리도 섞여 들린다. 나도 이러한 정황에 휩쓸려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벌써 안해는 대충대충 몇가지 옷가지를 보퉁이에 분주히 싸고 있었다. 나는 네살 먹은 맏이 머슴애 아이놈을 뚜들겨 깨워 둘처 업고, 고개도 못돌리는 둘째 놈을 억지로 안해의게 업혔다. 그래서 먼저 딸 아해와 함께 꼭대기 삼촌들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일르고선 또다시 동향을 살필 양으로 밖엘 나갔다. 어느듯 총소래는 잠잠해지고 잇따금식 간헐적으로 들려올뿐 여전히 무엇이 타는 듯한 불꽃만이 훤- 하니 하날을 비추이고 있다. 이상하다 만약 적군이 침입했다고 하면은 좀더 연속적으로 교전이 있을 터인데 마치 약속이래도 한듯이 총소래는 잔잔해 지고 기적 소래만 여전 '빽- 빽-' 들려올 뿐이다. 이 보통 상식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괴현상에 망연히 섰노라니 동리 앞 읍내로 통하는 길을 분주히 달려 오는 사람의 떼가 있다. '올치, 장터에서 피난오는 사람들이로구나. 저이들한테 물어볼 수밖에'하고 다가섰다.
"저, 장터서 오십니까?"
"그렇소이다."
그 사람은 쉬지도 안코 걸어가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급히 좇아 가면서
"지금 총소래는 대체 무엇입닛가?"  
"놀랬을거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미군차에 불이 붙어서 그곳에 실었던 탄환이 튀는 소리였어요."
나는 순간 가슴을 쓰다듬어 내렸다. 그러나 밤중에 도망나오는 것이 의심스러워서
"그래, 댁은 왜 이 밤중에 빠져 나오십닛까?"
하고 물었다.
"나요? 우리도 처음엔 놀랬거든요. 그래 짐을  싸가지곤 뛰어 나와 보니 그런 일이어서 안심됐으나, 이왕 나온 길이고 해서 낮에 얻어 노흔 집으로 갈양으로 나왔어요."
그제서야 그 사람은 담모퉁이에 짐을 기대고선 땀을 씻고 있다. 앞에 가는 그의 부인인 듯한 젊은 여인은 어린애를 둘처 업고 마치 뒤에서 인민군이나 좇아 오는 것처럼 줄다름박질을 치면서 빨리 오지 안코 무엇하느냐고 자기 남편더러 야단을 친다. 나는 문득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폭발 소래가 생각나서
" 저, 아까 펑하고 소리난 건 또 뭡니까?"
그 사람은 벌서 저만치 걸어가면서
"도라무깡 터지는 소래지 뭐요. 휘발유말요, 휘발유."
휭- 하니 이러케 내던지곤 귀찮은 듯이 달아나 버린다.
'오-라, 그럴듯한 일이다.' 고연이 겁을 집어 먹고 날뛴 생각을 하니 속으로 우슴이 터져 나온다. 나는 소식을 동리 사람들의게 알릴 양으로 뒷말랭이 신작로로 올라갔다. 들판을 지나 산모퉁이로 통하는 저편에서 떠들석하니 지껄이는 소리가 들린다. 겨우 피난을 간답시고 고개 하나 넘어 웅성대고 있는 꼴이 마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 같아서 우스웠다. 나는 손을 모아 나팔을 만들어 가지곤
"보세요- 들 , 돌아오세요 괜찮아요."
하고 힘껏 외쳤으나 아무 반응이 없다. '내버려 두어라. 하로 저녁 톡톡히 고생좀 하게'  나려오는 길에 삼촌댁에 들려 안해를 다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을 켜고 방안을 둘러보니 가관이다. 무슨 전쟁이나 치른 양 온 방안이 종이쪽, 헝겁쪽, 살림부스러기로 너저분하기 짝이 없다. 자리에 누으니 몇 백 리 길을 걸은 것처럼 몹시몹시 피곤하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는 시민의 마음이 더욱 초조해진 모양이다. 우리 동리에서 장터와의 거리가 도보로 약 20분 쯤밖에 되지 안치만 그래도 피난처이라고 읍내 사람들이 무수히 몰려 들어온다. 본 동리 사람은 다른 곳으로 뜨고, 읍내 사람들은 이 동리로 모여드니 흡사 주인이 바꿔지는 추세이다.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7회
이와 같이 정국은 긴박할 대로 긴박해진 이상 업무의 처치를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어, 그날 저녁 곰곰이 궁리해 보았으나 결국 이러타 할 묘안이 나올 리가 없다. 남부여대 다같이 길을 떠서 생사를 같이 한다면야 무엇이 걱정되랴마는 빈한한 백면서생으로선 도저히 바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타면 남어지 한 길, 즉 가족을 다른 곳으로 옴기여 노코 사불여의 하면 나 혼자 길을 뜨는 수밖에 없게 된다. 생각하면 내 벌써 안해를 맞이한 제 어언 11년, 그나마 6년이라는 방랑생활을 통하여 하고 많은 인생항로의 험로를 답파하고 동락동우(함께 즐기고 함께 근심함) 하야 온 불상한 안해와 골수 깊히 병들은 어린애를 떨쳐 버리고 나 혼자 생로를 찾아 피란을 간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을 어쩌랴. 앞일을 모르긴 하되 군경이 이동이 계속되고 시국사태가 정지되지 않는 한, 직분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남달리 애국심이 넘치는 바는 아니지마는 이국 만주에서 거지와도 같이 고향이라 찾어 왔을 적에 그리도 따뜻히 나를 포옹해  준 것도 이 직장이었고, 직우들의 돈독한 후의와 상사의 각별하신 후원을 받아 파격의 대우를 받은 것도 본시 이 직무임을 상기할 때, 엇지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야 중요한 직무를 헌신짝 같이 버릴 것이냐. '최후까지 직무를 계속해보자 그럼으로써 미력이나마 지극한 정성을 다하자' 이렇게 마음을 결정하니 무거운 짐을 나려 노흔 듯 좀 가쁜해지긴 하나, 그러면 어느 곳에다 가족을 맏길 것이냐 하는 문제에 부딪치니 본시 긴박한 마음 갈데를 잡을 수가 없다. 생각다 못해 그 이튼날 저녁 오리 남직한 처가댁엘 달려 갔다. 나이라도 많은 어른들한테라도 좀 상의해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전의 규모와 그 방식을 모르는 이 노인은 너무나 태연하다. 도시나 도로 옆이 아니면야 설마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극도로 발달된 근대전의 실상을 누누히 설명하여도 냉큼 이해할 줄을 모르는 이 노인은 처의 원 고향인 전동 엇떤 산골로라도 보내라는 것이다. 원래 식구를 맡김직한 친척이 별로 없는 처지이고 보니 그래도 그것이 제일 믿음직 하였다.  명절 같은 때 더러 찾아오면 무척 귀여워 하는 걸 보면 그다지 박대는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도 한 번 와서 다녀가라고 부탁하는 것을 결혼하던 해 처음으로 인사차 한 번 다녀오곤 이내 발길을 끊어버린 일에 좀 양심에 꺼리기는 하다. 하여튼 내일 처남 처제들과 장모가 같이 가 준다니 더욱 든든하다. 잇흔날은 7월 7일이다. 안 나가 볼 수도 없고 해서 아츰 일즉이 사무실엘 갔다가 아해들의 떠나는 모양이라도 보랴고 열시경 집으로 도라왔다. 그러나 막상 떠나랴고 하니 또한 난처한 일이 생겼다. 안해가 아픈 아해 때문에 떠나지 안겠다는 것이다. '맘대로 하오. 한 자식을 위해서 두 아해의 생명을 끊으랴거든 생각대로 하오' 하고 일러도 보고, '당신이 가지 않으면 나도 갓치 있으리다. 안해와 자식을 죽음의 마당에 버리여 놓고 내 엇지 홀로 발길이 내여 디뎌지릿까?' 하고 달래여도 보았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안해는 눈물을 거두고 부시시 일어났다. 옷이라곤 원래가 없는 터, 짐이라야 내 겨울 외투 하나에 지저귀를 싼 조고마한 보퉁이 하나,  살림 8년에 무엇 하나 아까울게 없다.  안해가 시집올 적에 가지고 온 고색창연한 장농이 하나 웃뚝 윗방 한 모퉁이에 놓였을 뿐 휘휘 방안을 둘러보아도 옮겨라도 놓고 싶은 물건이 없다.  차라리 두고 가도 아까울 살림이 없으니 그다지 마음이 꺼리키지 않는 것이 시원하기는 하나 그리도 살림이라고 시작한지 8년에 싼듯한 옷 한가지 해 입지 못하고 버젓하게 술 한 잔 마시어 보지  안했건만 이다지도 비참한 생활을 해왔든가 생각을 하니 한편 고소를 금치 못했다. 이럭저럭 출발은 12시가 훨씬 넘은 오후였다. 큰 계집애는 제 발로 걷고, 맏이 머시매놈은 처제가 업었다.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울지도 못하고 얼골만 찡그리는 아해를 송판을 대고 물건처럼 목에 걸어도 보고 업어도 보면서 길을 떠났다. 아해들은 뭣도 모르고 빙긋 거리는 꼴, 자칫하면 영원한 결별이 될 지도 모를 슬픈 이 마당에 있어서 너무도 천진난만한 아해들의 모습을 차마 마조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안해의 모습은 너무도 태연작약하다. 원래가 무심한 성격이기는 하나 생사를 초월하는 엇더한 종교지심에선지 또다시 해후할 수 있을 엇더한 신의 계시를 믿음인지 퍽으나 종용하였다 (차분하고 찬찬하였다).  아마도 철 모르는 두 아해, 병든 자식을 이끌고 미지수의 앞날을 맞이하고 거츠른 새파를 헤처나갈 일이 너무도 기막힌 데서 표현되는, 슬픔을 초월한 무감각의 경지이리라. 옹기종기 옷보따리를 이고 동리 어구를 빠져 나가는 그들 모습을 바라보니 울컥 뜨거운 그 무엇이 가슴을 치밀어 오른다. 부디 잘 가거라. 그리고 잘 있거라. 포연탄우의 전란 속에서 네 능히 활로를 찾어 후일의 상봉을 기약할 수  있겠으며, 잔인한 공비들의 총뿌리 앞에서 능히 생환하야 해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냐? 꼬불꼬불한 동리 길을 빠져 산모퉁이로 그 자최가 사라지랴고 할 즈음 나는 무의식중에 멈칫 몸을 앞으로 달리려다가 간신히 억제하고 말었다. 또 한 번 어린애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부탁이라도 할 것을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방으로 들어오니,  지저분하게 흐트러져 있는 방안이 주인을 잃은 듯이 한없이 처연하다. 마음의 한 구석이 비어 버린 듯 어수선한 고독감에 사로잡혀 다만 멍-하니 서 있을 따름이었다.  
 
 
 
6.25  피란수기     
                               지은이: 최원섭
8회   
 
짓구진 여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그날 밤 휑하니 비어버린 방 가운데 홀로 드러누웠다. 오늘 낮 아해들을 떠나 보낸 정경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친다. 닥쳐올 장래의 판국이 도대체 엇더한 양상으로 나의 앞에 부닥칠 것이냐?  옛 어른들을 통하여 난리 이야기는 곧장 들었다. 만세운동 이야기, 갑오년 이야기, 그러나 생각컨대 그것은 너무나 안일하지 아니하였는가?  창으로 찌르고 활로 쏘는 것, 총이 있었다손치더라도 과연 얼마나 위력이 있었는지 자못 의문이다. 그러나 보라. 근대전의 치열한 양상을! 포화를 뚫고 돌진하는 탱크, 공중을 제압하는 비행기, 조종사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곳에 거대한 불덩이가 불을 뿜고 포탄이 작열하고, 그야말로 산천이 변모하고 어제의 화려한 도시도 오늘은 이미 그 형체조차 더듬을 수 없는 페허로 화해 버리질 않는가?  더구나 주의(이념)가 같지 않다고 하여 동족을 증오하고 형제를 학살하는 피 비린내 나는 이 마당에 있어서 과연 사랑하는 처자의 안전을 바랄 수 있을 것이냐! 고삐를 잃은 양떼 모양 우왕좌왕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참혹한 죽음을 당할 지 모를 가족을 생각하니 상상의 날개는 한없이 꼬리를 물고 나의 뇌리를 파고 든다. 밖에선 역시 비가 그치지 않은 모양  이따금 우수수 뒷창문을 때리고,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포성은 영창문을 흔든다. 나는 이 온갖 괴로운 모든 생각을 잊으려고 홋이불을 뒤집어 썼으나 여전히 요지경 속을 드려다 보는 양 형형색색의 장면이 암흑을 뚫고 깜박거리는 것이다.
   
    공비의 침공을 예보하는 포성이 훨씬 가까워 온 7월 9일, 날이 밝었다. 어쩐지 아츰부터 동리의 공기가 어수선하다. 삼촌댁에서 아츰을 먹고 일요일이긴 하지만 사무실엘 나가려고 동리 앞을 나서니 놀랬다. 떼를 지어 서면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 아츰부터 내려 쪼이는 6월 폭양에 모두들  있는 힘껏 짐을 질머지고 아해들의 손목을 끌고, 손수레의 뒤를 밀고, 그리곤 앞을 다투어 동리 앞 고개를 기어 올라 오는 시민들의 떼다.  '아, 기어코 올 일이 닥처오고야 말었구나' 선뜻 가슴이 내려앉긴 했으나 그다지 당황해지진 않는다. 나는 한동안 넋을 잃고 쏟아져 나오는 군중의 행렬을 바라다 보았다.  2주일 전만 하더라도 평화가 깃들인 아름다운 이 향토에 엇지 이와 같은 비참한 현실이 벌어질 줄 그 누가 뜻하였으리오. 나는 걸음을 빨리 하여 시가지로 들어갔다.   "무얼 하러 어델 가오? 오늘 아츰 전 읍민의 소개령이 나렸소. 짐이라도 챙겨 가지고 어서 피란을 하시오."  고개를 들고 보니 전부터 안면이 있는 읍내 김00씨다.  "사무실까지 좀 가는 길입니다. 어서 잘들 피란하시오. 전란이 끝난 후 또 웃으며 만납시다."  총총 걸음으로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헌병 몇분과 부읍장이 계실 뿐 사무실이 휑하다. 사유를 물으니 오늘 정오까지 피란을 하라는 것이라 한다. 전황은 벌써 적이 소정리 방면으로 우회했다는 불리한 소식이다. 오늘 식사 당번 직원 몇몇이 울안 식당에서 무엇을 웅성대고 있는 듯 하였으나, 우선 중요한 몇가지의 서류만을 서고 속에 집어 넣었다. 설마 엇떠랴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그리도 마음이 안도되더니, 막상 딱 당하고 보니 몹시 마음이 당황해진다. 금방 덜미에 '이놈 게 있거라.'하고 손을 내미는 것 같아서 대충대충 정리를 마치고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직원들은 하나씩 둘씩 어느 결에 빠져 나가고 읍장님도 무슨 볼 일로 외출하셨다고 한다. 창고에 마지막 자물쇠를 잠그고 부읍장께 인사를 고하려 하니 눈물이 콱 쏟아진다. 기어코 오늘은 이 사무실을 떠나야만 할 것인가. 3년이라는 세월을 통하여 매일 같이 얼굴을 맞대고 동고동락하던 정든 모습, 날마다 내 살결을 통하여 내 체온이 밴 의자와 책상들, 그리고 늘 음으로 양으로 아껴 주시고  격려해 주시던 부읍장님, 직우들의 면면, 내 오늘 이곳을 떠나면 어느 때 다시 해후를 기대할소냐?  "또들 만납시다. 부디들 몸 조심 하시오."  남은 직원 몇분과 훗날을 기약하고 현관을 나서니, 다만 한곳 의지할 곳을 잃은 고아 모양 쓸쓸하기 한이 없다. 집엘 간들 나를 맞아줄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우선 집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오니 미군의 전차군이 삼엄한 경계 가운데 동으로 서로 질주하고, 뒤떨어진 읍민들이 떼를 지어 거리거리로 흘러 나온다. 나는 급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동리는 잠깐 사이에 벌써 텅- 비어 버리고 노인들 몇분과, 촌락으로 소개를 시켜 놓고 동향을 엿보러 돌아온 몇사람 청년들이 오락가락할 뿐 적막하기 짝이 없다.

[출처] 아버지의 6.25 피란수기(상)|작성자 옆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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