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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4-05 22:11
[밀리역사] 6.25 남한침공 선봉 팔로군 조선족부대 10만명의 정체와 역할
 글쓴이 : FreeTibet
조회 : 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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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
저자-독립운동가 일송(一松) 김동삼 선생의 손자 김중생 옹(翁) 
명지출판사| 200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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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중국에서 출생하여 '한국전쟁' 때 인민군 6사단에 복무했던 '김중생' 씨의 증언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는 한국국적을 취득해 한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김씨는,독립투사 '김동삼'선생의 손자로써 
6.25 남침 주력부대는 조선의용군이 주축이 된 6만5000명의 조선족이었다는 것은 밝힌 바 있습니다.

■ 조선 의용군의 정체

'조선의용군'의 뿌리는 '조선혁명당'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30년대 항일무장 투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조선혁명당'과 '조선혁명군'은 민족주의 인사와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가 뒤섞여 항일이라는 공동의 목표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양세봉 장군' 이후 '김원봉'이 '조선의용대'로 맥을 이었고, 그 중 공산계들이 이탈하여 '조선의용군'으로 '중국공산당' 아래로 들어간 것입니다.

'조선의용군'은 6.25 이전에 북한으로 들어가, 인민군 주력부대로 재편되어 남침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고, 의열단 단장이던 '김원봉'은 1938년 10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항일무장독립부대를 결성하게 되는데 중국국민당 지도부와 연계하여 '한중' 연합체 성격의 무장부대의 필요성에 의하여 탄생한 것으로 '조선혁명군'의 뒤를 잇는 '조선의용대'가 이것입니다.

'중국국민당 산하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조선족청년' 122명을 중심으로 출범하고 1942년 좌익계열 대원들이 의용대본부가 있던 '중경'을 떠나 '화북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국공산당' 영향권으로 들어가버리면서 '김원봉' 계열은 광복군으로 참여하고, 화북지역으로 떠난 좌익계는 '중국공산당'의 지원 하에 '조선의용군'으로 편제를 갖추어 '중국공산당'의 지휘계통을 따르게 됩니다.

이들은 일본패망 뒤에도 무장해제를 당하지 않았으며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을 준비하고 있던 '중국공산당'은 '조선의용군'을 만주로 이동시켜 현지 '조선족'을 입대시켜 규모를 확장하여 후에 '국공'내전에 참전하여 '국민당군'과 싸우게 됩니다.

이들은 6.25 이전에 북한으로 이동되어 인민군의 최전방에서 남침의 선봉대 역할을 맡았다. '김일성'은 6.25 이전에 1950년에 두번에 걸쳐서 모택동에게 밀사를 보내어 조선족 부대의 파병요청을 한 것이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
003 조선족 부대.png


■ 김중생씨의, 증언입니다
 
'조선의용군'(조선족) 은 3년 동안 모두 10만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고 증언합니다
또한,김중생씨는, 조선의용군의 밀입북과 6·25전쟁”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김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의용군'출신 퇴역군인 100여명을 수소문해 만났고, 중국과 국내에서 발표된 관련 논문과 저술을 통독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이 책을 쓰면서 일본 패망 이후 만주로 집결했던 조선의용군이 850명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그동안 학계에서 정설처럼 여겨져온 ‘400명’의 배가 넘는 규모다. 
김중생씨 작업의 결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6·25 전쟁에 참가했던 '조선의용군' 가운데 200여명의 명단을 최초로 정리해낸 것이었다.

그는 이들의 신상을
▷1945년과 46년 중국공산당의 지시로 두차례로 나눠 개별입북한 경우
▷1949년부터 2년간 부대를 인솔하고 입북한 경우
▷휴전후 중국으로 돌아온 경우
▷입북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있던 경우 등으로 구분해 정리.

 '김중생'씨는.참전 '조선의용군'의 주요 지휘관들의 출생년도 등 개인 신상은 물론 의용군 시절 및 북한 입국 전후의 행적 등도 상세히 밝혀냈으며, 이처럼 꼼꼼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김씨는 “6·25 개전 초기 북한 인민군의 주력부대였던 21개 연대 가운데 47%가 만주에서 건너온 조선족으로 채워져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중생'씨는 6·25전쟁에 참여한 전체 조선족 규모를 10만명 안팎으로 추산하고, 이 가운데 개전 이전에 북한으로 건너간 경우가 '6만5,0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북한은 전쟁중이던 1950년 겨울부터 이듬해에 걸쳐 '인민군' 총참모본부 군사동원국 소속 장교들이 중국 현지로 건너가 '조선족들'을 상대로 모병(募兵)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중생'씨는 관련 당사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때 하얼빈·옌지(延吉)·무단장(牧丹江) 등에서 ‘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인민군에 입대한 조선족이 1만명 안팎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유엔군 참전으로 북한군이 수세에 몰리자 중공군이 개입하기에 이른다. 중공군은 한꺼번에 수십개 사단을 전선에 내보냈다가 병력 손실이 발생하면 새로운 부대로 교체하는 방법으로, '한국전쟁' 기간 동안 총 108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북한으로 보냈다.

이때 참전한 '중공군은' 조선족이 아닌 한족(漢族)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배치될 때 반드시 조선족 통역요원이 동행했다고 한다. 
1개 사단에 150명 정도의 통역이 배치된 것으로 추산하면 '중공군'을 따라 참전한 통역요원만도 2만5,000명이나 된다. 
때문에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중 북한에서 활동한 전체 조선족의 규모는 10만명에 달하리라는 것이 김중생씨의 분석이다.

관련자료와 퇴역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계해낸 이같은 자료를 종합하고 김중생씨가 내린 결론은 '조선의용군'이 밀입북하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은 아예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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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진실을 얘기 하는 조선족의 증언. 
(김정룡) 조선족 칼럼니스트
만주의 조선족 친일 단체들 -중국 조선족 이주사 
동북아 신문 

1950년 조선족 팔로군 남한 침공 진실해 지자 

연변 모아산의 정기를 받고 이땅에 태어난 우리 조선족들 좀 진실해지자. 
시사포카스라는 라디오 프로에 나와서 그리 거짖을 아뢰면 쓰겠는가. 

우선...언제 우리 조선족들의 선조가 일제로 부터 만주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단 말인가 
왜서 이런 거짖을 아뢰는가 

우리 조선족의 유래는 옛 조선에서 소작농이나 노비출신들이 일제가 만주개척의 이름으로 땅을 개척하고 둔전을 하면 농사를 지어 목고 살게 해주겠다고 하자 일제가 지정한 땅에 가서 둔전하면서 우리 조선족들의 력사가 개시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족 선조들의 자발적 이주이지,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이주가 아닌 것이다. 
왜서 언론에 나가서 거짖을 아뢰는가 

그리고, 우리 조선족들이 항일투사의 자손들이라고 거짖을 아뢰지 말자. 
조선족들은 옛날 중국의 군벌 장개석에 대항한 항장, 국민당 군대지,절대로 항일부대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되려 대다수의 조선족들은 당시에 일제 관동군에게 군량을 대느라,둔전에서 일제에 부역하던 이들이다. 
그리고, 비적이라 불리우던 항일 독립투사들을 감시하고 밀고하는 임무를 오가작통하야 철저히 수행하던 사람들이다. 

해란강과 일송정, 윤동주 등의 여러 독립관련 인사나 유적은 모두 1992년 중-한 수교 이후에 한국 사람들이 연변에 와서 퍼뜨리고 알려준 사실이다. 
그 전에는 중공에서는 그런 민족적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대륙에서 항일한 사람들은 일제의 패퇴와 함께,대부분 내 나라 땅으로 돌아갔다. 
동북삼성에 남은 이들은 내 나라에 돌아가면 집도 절도 없는 사람들이 주저앉은 것이다. 

게다가 우리 조선족은 조국에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바로 북조선의 김일성이가 남한을 침공하는데 
제일 선봉에 선 부대가 바로 팔로군 조선족 부대였다. 

중국대륙에서 중국 공산당이 반일, 반장, 반국민당 투쟁을 할 때 가장 열성적인 군대가 바로 팔로군에 조선족 군대였다. 

왜냐하면 공산당에 소속한 중국인들은 사상따위보다는 공산당에 속하면 나중에 평등세상이 온다 
그런 태평천국이나 백련교 같은 중국의 전통 사이비 사상의 하나로 공산당을 믿어서 그렇게 전투력이 세질 못했다. 

전투 중에 좀 불리하면 병사들이 다 도망가버렸다. 그래서 일본군들이 중국에서 그리 활개를 친것이다. 
남경학살건도 보라. 병사 수도 많고, 무기도 어느 면에서 일본군보다 더 우수한 중국군이 허무하게 맨손으로 앉아서 당하고 죽지 않는가. 

그러나, 조선인 팔로군들은 전선에서 이탈해도 의탁할 곳이 없다. 
그나마 팔로군에 속해 있으면, 죽이라도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영을 가정삼아 죽기살기로 투쟁하여 팔로군에서 가장 전투력이 센 부대가 되었다. 

북조선이 건국하자, 
중국 공산당은 조선인 팔로군들에게 북조선 군대로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아도 좋다고 했다. 
많은 수가 압록강을 건너거서 북조선 군대에 편입되었고, 또한 그 보다 많은 수가 중국에 남았다. 

중국서는 대미항조전쟁이라고 하는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조선군대가 파죽지세로 남하할 수 있었던 것은 대륙서 이미 반장, 반국민당 전쟁의 실전 경험이 풍부한 팔로군 출신 병사들과 로시아가 원조한 무기들 덕이다. 

전쟁이 수세에 몰리자, 중국이 북조선을 도우려고 수많은 병사를 전선에 투입하는데, 
당시에 투입된 병사들 중에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병사들도 모두 팔로군 출신 조선족 군인들 이였다. 

그러니 남한군과 유엔연합국 군대를 상대로 제대로 싸우면서 
타격을 준 것은 모두 중국의 조선족 병사들이였던 것이다. 

인해전술이라 부르는 것에 동원된 이들은 대부분이 구 만주왕국의 공무원들, 군인들, 포로들에게 참전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동원한 것이고, 특히 청나라가 망하면서 동북으로 가거나, 만주국 건국에 연루된 만주족들이 대거 투입되어 아무런 무기도 없이 몽둥이 들고 맨몸으로 총알 받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국을 배신하고 같은 동족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약탈한 공로로 
길림성 연변지역에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항미원조 전쟁 중인 1952년도에 성립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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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역사를 살펴보던 중, 제가 발견한 조선족 참전 기록 증언들의 일부입니다.

특히 조선족 칼럼니스트 김정룡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6.25 당시 조선족이 중국군의 일원으로 이 땅을 침략한 행위가 낱낱히 밝혀진 것을 보고
조선들의 과거행위를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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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시사 17-04-05 22:37
   
결론은 조선족이 (중공의 앞잡이로) 남북분단의 최선봉에 섰다는 증언이군요.

울나라 넷에선 중국에 알아서 기자고 침 튀기며 나불대는..(한국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FreeTibet 17-04-05 22:41
   
김중생씨는 종합적으로...조선의용군'이 밀입북하지 않았더라면, 6·25 전쟁은 아예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상당기간 뒤로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만일, 조선족들이 없었다면 6.25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더군요.
     
어딜만져 17-04-06 00:52
   
조선족들은  불체자들은 강제추방이 답입니다.
넷에서 선전선동 보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푼수지왕 17-04-05 22:43
   
지금도 북한하고 접하고 있는 중국의 군구..(선양군구던가?)와 북한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더군요. 매우 중요한 무기들도 공급하고 거의 혈맹과 다름없을 정도로 끈적하다던데...
     
FreeTibet 17-04-05 22:53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재제한 중국 훙샹그룸 같은 것도
민간회사지만, 사실상 중국군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런 짓을 할 수 없었겠죠.

작년 9월26일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사용할 수 있는 전략 물자를 수출한 중국 훙샹그룹의 자회사 단둥훙샹실업발전 여사장 마샤오훙(馬曉紅·45)이 쇼핑몰 직원에서그룸사장이 된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hermitovers.. 17-04-06 03:30
   
한국인으로 위장하는 조선족 중국인들이 친북적인 시각/생각/성향을 가지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

한국인으로 위장하는 조선족 중국인들이 북한에 대한 재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등에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아무리 한국인으로 위장해도 글의 논리와 결론은 친북적이고 친중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좆선족 짱깨의 정체를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쥬라기 17-04-06 12:54
   
연변  조족은  아직도  친북 반한  성향 임.  이동네도 이런자 들이 널렀음.  절대 동족이  아님.  국내  서식  하는 70만 종족들  하루 빨리 정리  하는게  훗날 후한을 없애는 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