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7-04-27 07:34
[밀리역사] 구월산유격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463  

단군과 관련된 성소 중 황해도 구월산(九月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단군이 하늘에서 처음 내려온 곳은 묘향산이고, 조선을 세운 단군이 도읍지로 정한 곳은 평양이었다. 단군은 구월산 아래 당장경(唐藏京)으로 도읍지를 옮겼고, 그곳에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후 구월산에 들어가 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단군이 아사달로 불리던 이곳에서 9월9일 승천해 ‘구월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까마득하게 잊혔던 구월산이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인의 북한 억류 사건으로 기억에서 되살아나게 됐다. 북한은 그제 “미국 공민 메릴 에드워드 뉴먼이 6·25 때 구월산 일대에서 정탐·파괴 행위를 벌이던 간첩·테러분자와 그 족속들을 찾아내 남조선의 반공화국 모략단체인 구월산유격군전우회와 연계하려 하는 범죄를 감행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소식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가 적대행위자로 몰렸다. 북한은 심지어 그에게 “황해에 있는 후방 작전기지를 10번이나 교란했다”며 6·25 전과에 대해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구월산유격대는 1950년 12월7일 김종벽 대위가 주축이 돼 750여명으로 창설된 연풍유격대가 뿌리다. 이들은 1·4후퇴 때 남으로 이동하지 않고 구월산 일대에 남아 유격전을 벌였다. 후방 교란 임무를 수행하여 984명의 중공군을 사살하고 296명을 생포했다. 대원도 113명이 전사하고 88명이 부상했다. 51년 3월 구월부대로 개편한 유격대는 부대원이 2500여명에 달했고, 휴전 직후 해체될 때까지 800명 규모를 유지했다.

이북도민회 동화연구소장을 지낸 고 이경남씨도 유격대 출신이다. 평양사범 국문과 재학 중 인민군 소위로 참전했다가 휘하 병사들을 이끌고 집단 귀순한 그는 국군의 북진을 도왔다. 국군이 압록강 초산에 이르자 고향인 황해 안악으로 돌아간 그는 반공청년단장과 구월산유격대로 활약한다. 휴전협정을 맺으며 유엔군이 서해 5도를 제외한 초도·석도·웅도·철산도·대화도 등을 북한에 그냥 넘겨준 데 실망해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

군사 전략적으로 더없이 중요한 백령도가 우리 땅이 된 데에는 계급도 군번도 없이 싸웠던 구월산유격대를 비롯한 켈로부대, 동키부대 등 유격대원들의 공이 컸다.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유공자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구월산의 노병들. 그들의 헌신을 다시 살펴볼 때도 되지 않았나.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2/01/20131201002598.html?OutUrl=naver




육군본부 전장사례 연구의 구월산 유격대

http://blog.daum.net/hidkki55/1570167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아쒸 17-04-27 08:55
   
어릴적 봤던 드라마가 생각 나네요,,,
3840유격대,,, 그게 구월산 유격대를 배경을 한거 아닌가요???
전우,,, 도 재밌었고,,,
너무 오래되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