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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3 19:53
[기타] 존 무초(John J. Muccio) 전 미국 대사가 바라본 한국전쟁
 글쓴이 : 솔루나
조회 : 1,985  

출처

https://worldofwarships.asia/ko/news/gaudi-history/korean-war-muccio1/

 당시 내가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부분은 한국인 간의 갈등이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미 군정에 협력하고 있던 한국인 단체와 새로 수립된 한국 정부에서 임명한 또 다른 한국인 단체가 있었다. 미 군정 소속 한국인들은 자국민에게 통역 정부라는 다소 냉소적 이름으로 불렸다. 그들의 주 역할이 미군과 미 군정을 위한 통역 및 자문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한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소위 통역 정부의 한국인들을 철저히 무시했고 자체 인력과 방식으로 정부를 구성했다. 존재 가치를 부정당한 통역 정부 한국인들과 그들의 역할을 넘겨받아야 했던 이승만 정부 구성원 간에는 적지 않은 긴장 관계가 연출되었다. 이것이 한국에 파견된 내 눈앞에 보였던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내가 향후 진행될 미군의 단계적 철수 계획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설명했을 때 그의 반응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난 미국 정부에 보낸 보고서에 그가 모든 계획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적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어쨌든 미군의 마지막 전투 부대는 1949629일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한국군을 조직하고 교육하는 역할로 500명의 군사자문단(KMAG,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만 남았고 그들은 38선 인근의 전방 부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어떻게든 미군을 붙잡아두려 애썼다. 이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정부 구성이나 나라를 이끌 방법 그리고 국민에게 제시할 정책을 고민하는데 할애할 시간은 부족해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종종 공개 석상에서 한국 정부가 성공적으로 정권 이양을 받고 있으며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하곤 했다. 한 번은 미군은 이제 완전히 철수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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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로 이승만은 미래 정세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복잡한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높은 수준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할 때는 독립운동 지도자로서 살아온 게릴라 본능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건 생존 본능이었다. 국민의 생존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생존이 늘 최우선이었다.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일이 많아서 그런지 남을 과도하게 믿지 못하는 경향도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이승만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생각이나 업무를 잘 정리했고 무엇보다 영어에 능통했다. 더불어 그는 분명 독재자 같은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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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남한에 주둔한 초기, 한국인은 우리를 또 다른 일본군으로 여겼다. 당연히 협조도 없었고 별 반응도 없었다. 그저 '왔니?'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데도 그들을 먹여야 했고 보살펴 주어야 했다. 그 점이 미군 사령관인 하지(John Hodge) 장군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승만과 하지(John Hodge) 장군 사이에 불협화음이 상당했다. 이승만은 자신이 한국의 지도자가 되기 충분하다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지만 하지(John Hodge) 장군은 한국인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승만은 자신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하지(John Hodge) 장군을 워싱턴에 영향력을 행사해 미군 사령관에서 끌어내리려 했다. 실제 그런 목적으로 1947년에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자유 총선거를 맞게 되었다.


 1949, 남한은 대풍년이었다. 수십만 톤의 쌀을 일본에 수출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한국산 쌀에 열광했고 언제든 더 비싼 값을 주고도 수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식민시절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 쌀은 여전히 일본에서 인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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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 대략 9시쯤이었던 것 같다. 신성모 국방장관이 와서 대통령이 나를 다시 만나길 원한다고 전했다. 내가 경무대에 도착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방금 끝난 대책회의 결과를 말해주었다. 깜짝 놀랄 내용이었다. 한국정부는 서울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만약 대통령이 북한군에게 사로잡힌다면 모든 한국민에게 경악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한국군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서울을 버리고 후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군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지를 상기시키려 애썼다. 물론 한국군 중 일부는 압도적인 적의 화력에 전멸당하기도 했다. 나 역시 공산주의자들 손에 사로잡히는 것은 세상에서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문제는 철수의 타이밍이다. 남한의 대통령이라면 가능한 마지막 순간까지 수도 서울을 사수하면서 아군을 독려해야 한다는 게 당시 내 생각이었다.


 우린 한 시간 이상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이 북한군의 포로가 되는 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에 몰려있는 게 아니라고 설득했다. 만약 대통령과 정부 수뇌부가 서울을 포기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누가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싸우겠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종용했다.


 장시간 토론에 지쳐 난 결국 이렇게 말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직설적으로 내 생각을 뱉어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또 대통령에게 찾아가서 온종일 설득했다. 그때 이미 대통령은 월요일 저녁에 타고 이동할 기차 2대를 준비해놓았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통보도 없이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버렸다.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략)

 남로당 게릴라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하리라 믿고 기다린 걸까? 아니면 남한 정부의 전쟁 수행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걸까? 북한 정권은 남한 정부가 너무 부패하고 무능해서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믿은 것 같다. 가만 내버려 두어도 어차피 조만간 함락될 지역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은 전선 후방에서 이동하는 많은 양의 전쟁물자에 어떠한 타격도 주려 하지 않았다. 전쟁 초기부터 한국군이 보여준 사기는 놀라웠다. 625일부터 7월 초까지 한국군은 전열이 정비될 때마다 전선으로 투입되었고 우리를 놀라게 할 만큼 용감하게 싸웠다.


 713일 이승만 대통령이 CBS와의 인터뷰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북한군이 38선을 먼저 무력화시켰으니 한국군 역시 절대 38선에서 멈추지 않고 북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발표는 미국 정부를 뒤집어놓았다. 미 대변인은 이승만 대통령의 인터뷰가 발표된 직후 성명을 발표하여 미군은 어떤 경우든 38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한국군 역시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는 상황을 이상하게 전개되도록 만들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위해 미 7함대를 동원할 정도로 적극적인 지원 계획을 수립해두고 있었지만,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누구도 38선을 넘어 북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발표했다. 더불어 대만의 장개석과 국민군 역시 이 기회를 이용해 중국 본토를 침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결과적으로 이 덕분에 중국 공산당은 대만의 반격을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마음 편히 대규모 병력을 한국전에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지자면 트루먼의 성명이 중국 공산당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자유를 제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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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은 출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은 존 무초(John J. Muccio) 전 미국 대사입니다. 그는 1948년부터 1949년까지 특사 자격으로 남한에 머물렀고 49년부터 52년까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습니다. 이 글에 수록된 기록들은 그가 한국전쟁에 관해 인터뷰한 70페이지가 넘는 원고에서 발췌한 것으로 트루먼 대통령 기념재단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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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펜 17-06-13 20:05
   
그 시대 정황을 알수있는 자료를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rozenia 17-06-13 22:34
   
ㅜㅡ 하지장군이 주한미군에서 좀더 맥아더급 권력을 갖고 있었다면 조금 다른전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Marauder 17-06-13 23:00
   
왠지 자꾸 쌀 부분이 눈에 띄는군요
승리만세 17-06-14 01:14
   
절대 확전을 시키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보이네요, 38선 회복하면 지원하지않겠다, 대만의 대륙 침공을 좌시하지않겠다.
미국은 그저 전쟁이전 현상복귀만 목적으로 제한전으로 제한 했지만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진하여 무분별하게 전선을 확대해버리니 울며겨자먹기로 참전했다 장진호에서 대패를 당하고 두번다시 북진하지않고 협상테이블에 앉았죠. 그동안 한국군은 처절한 고지전 양상이되고.. 당시 미국은 한국을 돕긴 도와야겠지만 정말 전쟁을 하기 싫어했다는걸 노골적으로 나타냈네요
팔복 17-06-15 01:27
   
장개석이 중국 본토 공격을 했으면  한반도 상황과 중국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 . 트루먼의 멍청함으로 현재 중국은 미국을 위협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