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의 배수량 총톤수나 규모-장비 등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청나라해군이 일본해군과 비교해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문제는 이를 운용하는 인력의 자질 등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장교의 능력과 자질, 병사들의 훈련도와 기강, 전략전술이해도... 등의 측면에서
일본군(육군-해군을 막론하고)이 훨씬 우위에 있었던지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청일전쟁 발발하기 이전 몇 년간의 신식전함도입 등 군사비 지출부분에서
청나라는 주춤했던 반면에 상대적으로 일본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던 측면이 그대로 황해해전에
반영되었습니다.
중포의 비중은 청나라측이 일본측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당시의 최신무기였던 후장식 속사포의 비중은
일본이 청나라를 압도했던지라....
그리고 황해해전을 비롯하여 청일전쟁 내내 일본해군과 상대했던 청나라군의 전력은 북양대신 이홍장
휘하의 북양함대 위주였습니다. 북양함대보다 규모에서 뒤떨어지지만 엄연히 복건함대, 남양함대 등도
건재했지만... 북양함대를 지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습니다.
이는 군에서도 중앙집권화를 이룬 일본에 비해서 육군-해군을 막론하고 군벌화-지방분권화의 경향이
가속화되었던 청나라군의 당시 내부사정이 황해해전-청일전쟁 패전의 결정적인 부분으로 작용했습니다.
게다가 일본군과 맞상대했던 청나라군이 주로 북양함대, 직례육군 등 이홍장의 권력기반인지라
이홍장은 본인의 권력기반이 되는 북양함대-직례육군의 전쟁에서의 큰 전력손실을 우려하여
전쟁기간 내내 과감한 작전이나 전투는 회피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도리어 결과적으로 북양함대, 직례육군의 궤멸적인 타격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