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룡(鄭起龍, 1562년~1622년) 조선 시대의 장군. 자는 매헌
원래는 1586년에 무과에 합격하고 신립의 아래에 있었으나 임진왜란이 터지자 별장이 된다. 거창 싸움에서 왜군을 이기고 금산 전투에서 조경을 구출한 뒤 곤양의 수성장이 되어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또한 상주성을 얻는데 성공하고 계속하여 여러 공을 세우게 되어 '바다의 이순신과 육지의 정기룡' 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또한 제2차 조일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정유재란 때에 고령에서 적 장수를 생포하고 병마절도사가 된고 성주, 합천, 초계, 의령 등 여러 성을 탈환하는데에 성공한다.
1794년에 편찬된 홍량호(洪良浩)의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에 수록된「정기룡전」에 나타난 그의 용마에 관한 내용.
[상주 경천대 용소에 바로 정기룡장군의 용마에 얽힌 전설.
http://kid.knowledge.kr/kid/TraditionalCulture/tc03_02_01_v01.jsp?tbId=1&num=14]
“정기룡은 담력과 용력이 뛰어나고 두 눈이 횃불처럼 빛났다. 그가 적지에
뛰어들어 적을 무찌를 적에는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 같았으며, 왜적이 총들을
한쪽으로 모아 일제히 쏘아도 그를 명중시키지를 못했다. 그는 전투를 벌이다
가 목이 마르면 왜적의 배를 가르고 그 간을 씹었다. 용기가 북받쳐 오를 적에는 그가 탄 신마(神馬)가 여섯 길이나 되는 참호를 능히 뛰어 넘고, 가파른 절벽이나 위험한 언덕길도 매나 소리개처럼 날아올랐다.”
“정기룡은 일찍이 기병 8명과 함께 거창 객사에 머물러 있었다. 밤중에 왜적
이 대량으로 들이닥쳐 정기룡 일행을 포위하였다.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놀라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으나 정기룡만은 가만히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
다. 날이 밝은 뒤에 기병들을 이끌고서 말을 몰아 담장을 뛰어 넘어 적의 포위
를 돌파하였다.”
이순신은 바다에서 적선을 보이는 족족 깨부셔 왜군의 보급로를 완전 차단했고, 정기룡은 뭍에서 까부숴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치려던 왜군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7년간의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무리한 이듬해 추진된 전쟁 공신 명단에서 성웅 이순신과 행주산성에서 대승을 거둔 권율은 물론 패장 원균까지 '선무 1등 공신'에 추품됐으나, 정작 가장 화려한 전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60전 60승을 거둔 육군의 정기룡 장군은 1599년 공신도감에서 처음 추품한 전쟁 영웅 26명 명단에는 당당히 이름이 올랐으나, 공신도감이 최종적으로 내놓은 9단계 109명의 명단에는 빠져 있다.
1605년, 선조는 도승지 신흠을 내세워 정기룡 장군을 슬그머니 선무 1등 공신에 추품한다는 교지를 발표했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7년 만이다. 정기룡이 순국한 지 151년이 흐른 1773년엔 영조가 '충위공'이라는 시호까지 내렸다.
젊은 나이에 큰 공적을 세운 젊은 영웅 정기룡이 부담스러운 선조가 공적에서 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