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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3 17:31
[질문] 소련이 독립군을 와해시킨 이유가뭡니까? archwave님
 글쓴이 : 하시바
조회 : 1,970  

혐오 및 살상,테러,IS등의 관련된 모든 영상이나(단순 전투영상 포함) 이미지는 절대 금합니다.<br>
통보없이 삭제하며, 재발시 강제조치합니다.

러시아가 모택동과 북한 편 들어 우리 민족이 예수님처럼 죄없이 냉전의 대속자가 되어 억울한 65년을 보내고 있는데, 이것 말고도 그전에 독립군을 부숴놨다니 저들이 무슨짓을 한겁니까?

분한게 있다면 털고가야지요. 한말씀 해주시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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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평선 17-09-23 17:50
   
아직 가생이에 있나요? ㄷㄷㄷ
넷우익증오 17-09-23 17:51
   
일명 흑하사변(黑河事變). 1921년 6월 28일, 노령 자유시(알렉셰프스크)에서 3마일 떨어진 수라셰프카에 주둔 중인 한인 부대인 사할린 의용대를 러시아 적군 제29연대와 한인보병자유대대(이하 자유대대)가 무장해제시키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파쟁이 불러일으킨 한국 무장독립전사상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다.

사할린부대·이항(尼港)군대 라고도 불린 사할린 의용대는 이항(니콜라예프스크)에서 트라피친의 적색 빨치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한 한인부대로서, 이들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자유시로 들어왔을 때, 당시 자유시에는 자유대대 외에도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도독부군 등 간도지방에서 이동해온 한인무장 부대가 집결해 있었다. 사할린 의용대의 실력자 박이리아는 자유대대의 오하묵(吳夏默)·최고려(崔高麗) 등과 군통수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게 되었다. 자유대대는 원래 대한국민의회 휘하의 무장부대였다가 러시아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제2군단에 편입된 한인부대이며, 대한국민의회는 상해 임시정부와 이동휘의 상해파 고려공산당에 대해 비판적인 이르쿠츠크파계였다.

그러나 당시 극동공화국 한인부에는 상해파의 이동휘계 인물인 박애(朴愛)·장도정(張道政)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박이리아는 군통수권 장악을 위해 이르쿠츠크파와 반목하는 이들 상해파와 손을 잡고, 휘하부대와 간도에서 온 독립군부대를 자유시 근처 마사노프로 이동시켰다. 코민테른 동양비서부는 양 파의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고려혁명군정의회(高麗革命軍政議會)를 결성, 적군 빨치산 영웅 갈란다라시윌린을 의장 겸 총사령관에 임명하고 군통수권을 책임지도록 했다. 박이리아는 이에 불복했으나, 홍범도·안무(安武)의 부대가 마사노프에서 자유시로 빠져나오자 점차 고립되었다. 설득에 실패한 갈란다라시윌린은 29연대를 동원, 6월 28일 수라셰프카로 이동해 있던 사할린 의용대에 대해 무장해제를 단행했고 이때 자유대대도 29연대와 함께 행동했다.

당시 희생자수는 자료마다 서로 다른데, <재로고려혁명군대 연혁>에는 사망 36, 포로 864, 행방불명 59명으로, <간도지방 한국독립단의 성토문>에는 사망 272, 익사 31, 행방불명 250, 포로 917명으로 되어 있다. 당시 박이리아는 무사히 탈출했다. 고려군정의회는 포로심사를 거쳐 일부는 수감하고 나머지는 이르쿠츠크로 이동시켰으며, 다른 무장부대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적군 제5군단 산하 1개 여단으로 편성되었다. 자유시참변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또 각각의 입장에 따라 사건해석과 평가가 다르나, 상해·이르쿠츠크 양 파의 파쟁이 빚어낸 비극으로서 이후의 한국 공산주의운동에 악영향을 미쳤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유시참변 [自由市慘變]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 9. 10., 가람기획)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19921&cid=42958&categoryId=42958
https://namu.wiki/w/%EC%9E%90%EC%9C%A0%EC%8B%9C%20%EC%B0%B8%EB%B3%80
바토 17-09-23 18:00
   
러시아가 외해시킨게 아니라 우리끼리싸운거임 거기에 러시아가 지원한거고
     
archwave 17-09-23 20:27
   
우리라고 하면 마치 좌우대립이 일어났던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죠.

공산주의자들끼리 파벌지어서 싸운거죠. 그냥 내분이면 좋은데, 소련애들을 끌어들여서 반대파를 누르려고 해서 시작된 것.

외세를 끌어들여서 그것도 같은 공산주의자들을 누르려 한게 바로 웃기지도 않는 외세 배격 외치는 공산주의자들.
넷우익증오 17-09-23 18:13
   
https://namu.wiki/w/%EC%A0%81%EB%B0%B1%EB%82%B4%EC%A0%84?noredirect=1
7.1. 한국 독립운동에의 영향[편집]

또한 이 전쟁은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진영의 분열을 일으키는 데에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자유시 참변(...).

다만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기 전엔 이 러시아 내전으로 인해 독립군이 뜻 밖의 소득을 거두기도 했다. 위에 언급된 체코 병력은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선박으로 귀국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이 상당량의 군사 장비를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측에 매각한 것. 템뿌리기 이는 청산리 전투 등의 후에 벌어질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이 전쟁을 계기로 연해주 일대와 중국 일대에서 자기들의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때까지 일본의 뒤를 봐주던 미국의 반감을 사게 되어 1930년대에는 미일의 관계가 전쟁만 없을 뿐이지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상정하게 되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하시바 17-09-23 20:50
   
의아하네요.  초기 공산주의라면 김일성 숙청작업전이라 좀 순수한 마음이 있을 줄 알았는데 파벌이 다르다고 같은 공산당끼리 서로 죽였다니...

그럼 이때 신흥무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많이 사살되서 독립군들의 국내진입이 어렵게 된건가요?
archwave 17-09-23 21:26
   
https://namu.wiki/w/%EB%8B%88%EC%BD%9C%EB%9D%BC%EC%98%88%ED%94%84%EC%8A%A4%ED%81%AC%20%EC%82%AC%EA%B1%B4#rfn-1

니항 사건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에 대해 알아야 자유시 참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니항 사건은 간단히 말해서 공산주의 혁명에 순종하지 않은 모든 러시아인, 일본인, 조선인 모두를 대학살한 사건인데요.

발단은 이 혁명 와중에 탄생한 지역 군웅(?)인 뜨라비찐입니다. 여기에 박일리야란 인물이 합세한거죠.

니항에서 대학살을 자행한 다음 그 세력들이 자유시로 이동하고요. 이들이 사할린 의용대. 주의할 점은 이들중 독립군은 소수이고 대부분이 니항에서 학살을 하던 자들.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소속되든 주도권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음.

그리고 이들과 관련없는 비교적 괜찮은(?) 공산주의 독립군 세력은 그래도 러시아의 제대로 된 권력기관인 코민테른을 통해 임시 고려군정회로 인정받았죠. 이에 사할린 의용대가 반항을 한 것이 문제의 시작.

위에서 대학살 저지른 러시아인 출신들도 많이 있던 사할린 의용대가 고려군정회 휘하로 들어가는 것에 반발하는 것은 조금은 이해할 만도 한 일.

사할린 의용대가 반항할 때 박일리아란 인물과 조선인 출신들이 거기서 빠져나와서 고려군정회 휘하로 갔다면 독립군에겐 별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었죠. 그랬다면 자유시 참변은 그냥 러시아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것으로..

어쨌든 혁명을 완성해가고 있던 코민테른의 입장에서는 각지에 있는 군웅들을 정리해야 하니 당연히 사할린 의용대 무장해제에 돌입. 물론 여기에 고려군정회도 참여.

박일리아라는 인물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된 것은 영 떨떠름. 이건 암만 봐도 이 인물 때문에 독립군이 풍지박살난건데..
archwave 17-09-23 21:32
   
이렇게 일단 외세에 의존.. 사실 외세에 의존했다기도 좀 애매합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탈 국가주의 비슷한 것을 외쳤거든요. 그러니까 공산주의자이기만 하면 국가, 민족을 초월해서 다 평등하다. 이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독립할 필요도 없는 것이에요.

일본도 공산화되고 한반도도 공산화된다면 ? 국가가 달라도 민족이 달라도 평등이거든요. 독립이고 자시고 할게 없다는 얘기.

그러니까 러시아란 외세에 의존한게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외부 사상에 의존.

이념적으로 어쨌든간에 현실적으로는 이렇게 외세에 의존해서 동족을 진압하고 그 와중에 많은 힘을 소모하고, 러시아의 혁명군에 자의 반 타의 반 소속되어서 떠나는 결말로 가는겁니다. 그 뒤 행보는 글쎄 이게 독립군 맞는지..

위 과정을 피한 독립군 세력들도 있지만 숫적으로 대폭 감소.

애초에 자유시라는 곳에 독립군 각 파벌들이 다 모였던 것도 통합 조직 갖춰서 힘을 키워보자였거든요. 그런데 위와 같은 일 겪으니 통합 조직은 커녕 더 쪼그라든 잔챙이만 남은겁니다.

뭐 단순히 서로 합쳐보자고 조율하는 과정도 못 받아들여서 사건을 일으킬 정도니 애초에 통합 조직 결성 가능성이 없었겠지만..
archwave 17-09-23 21:53
   
러시아 혁명군 입장에서는 독립군은 자국 근처에서 알짱거리는 잠재적 적대 세력이나 다름없습니다. 언제 뜨라비찐 같은 자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고, 그런 자에게 독립군이 같이 참여할지 모를 일이죠. 어쩌면 독립군 자체가 불안 요소가 될 수도 있겠고요.

러시아 혁명군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싫어한다는 점 ?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고려군정회가 제대로 결성되고, 고려군정회가 소련 공산당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요.

이 점을 생각하면 사실 자유시에서 통합 조직을 이뤘다 할지라도 더 커진 독립군이 아니라, 러시아 공산당 휘하의 하부조직일뿐. 독립운동 측면에서 볼 때 더 나았을거라는 보장도 없는거죠.

어쨌든 대형 삽질을 해서 제대로 된 하부조직으로 거두는게 불가능해진 이상, 독립군 개개인을 개인 자격으로 러시아 군대에 편입시키든가 아니면 청소를 해야 하는 것. 물론 러시아 혁명군 입장에서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