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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24 13:00
미국의 파나마침공 1989.12.20
 글쓴이 : 던킨스타
조회 : 3,482  


(파나마침공)

 

1989년 12월 20일, 2만 6천명의 미군이 민주헌정을 회복시키고 국제 마약거래 혐의자인 노리에가 대통령을 미국법정에 세우겠다는 구실로 파나마를 전격 침공합니다. 작전명 ‘정당한 명분’(Operation Just Cause).

 


 (파나마 시티전경)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했던 1980년대는 미국의 힘에 의한 세계전략이 기승을 부리던 시기였습니다. 1979년 니카라과의 독재자 소모사가 산디니스타 혁명으로 쫓겨나자, 미국 정부는 비밀리에 사우디의 무기상인 ‘카쇼기’를 통해 이란에 무기를 팔고 그 판매대금을 니카라과 반군에게 지원합니다. 니카라과 반군의 또 다른 자금 출처는 마약거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Manuel Noriega. 1938~ )였죠.

1970년대 파나마 토리헤스 정권의 정보기관 책임자였던 노리에가는 당시 CIA 책임자였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밀착관계를 형성하고, 미국의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합니다. 노리에가는 CIA의 동업자이자 하수인이었던 셈입니다. 레이건 대통령 집권 직후인 1981년 토리헤스 대통령이 의문의 비행기 사고(CIA의 공작이었다는 설이 있슴)로 사망하자 파나마의 실권을 장악한 노리에가는 레이건 정권의 산디니스타 정권 전복계획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76~77년 CIA국장)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미국-노리에가 정부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냉전이 끝나가던 198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노리에가의 독재에 파나마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지고, 그가 마약밀매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 퍼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였죠. 미국은 친미적인 개혁세력을 내세워 파나마에 문민정부를 세우려는 공작을 시도하지만, 이를 눈치 챈 노리에가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죠. 결국 1989년 12월 15일, 미국에 대해 전쟁상태를 선포한 파나마군에 의해 미군 장교 1명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미군이 전격적으로 침공한 것입니다.

 



(파나마 방위군(코만단시아) 사령부를 공격하는 미군 레인저 대원들)

 20일 오전 1시, 제 75 레인저 연대의 1개 중대 병력이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오마르 토리조스 국제공항과 토큐먼 활주로를 장악했고, 같은 시간 레인저의 다른 병력은 리오하토 공항과 노리에가의 해변 관저를 급습하는 것으로 침공이 시작됩니다. 불과 2~3천명 수준의 파나마 방위군은 미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단 하루만에 27개의 공격목표를 성공적으로 접수한 미군은 파나마 주재 교황청 대사관으로 피신한 노리에가를 포위합니다. 미군의 심리전 부대는 대사관 건물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는 노리에가를 압박하기 위해 대형 확성기를 동원, 24시간 내내 시끄러운 록음악을 틀어대죠. 이러한 대치상황은 1990년 1월 3일, 노리에가가 투항함으로써 종결됩니다. F-117 스텔스 전투기 등 각종 최첨단 무기를 동원한 미군에 의해 공식적으로 459명(파나마 시민단체 주장은 3천 5백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1만 5천명의 파나마 시민이 집을 잃어야 했습니다.
 (노획한 파나마 국기를 펼쳐 보이는 미군)


 (노리에가가 피신한 교황청 대사관 앞을 지키는 미 육군 델타 대원들)

 

1992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인 ‘바바라 트렌트’ 감독의 ‘파나마 사기극’은 다른 측면에서 미국 침공의 이면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1977년 미국과 파나마 간에 맺어진 조약에 따라 파나마 운하는 2000년에 파나마로 반환되도록 되어있었죠. 미국의 입장에서 이런 반환의 결과는 다름 아닌 미군기지의 폐쇄였고, 이것은 곧 라틴 아메리카의 진보운동을 억압하는 주요 교두보의 상실을 의미했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파나마를 침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은 노리에가)

1989년 12월 노리에가를 수반으로 하는 파나마 군사정권은 전복되고 미국은 기예르모 엔데라 정부를 승인하였다. 미군의 공격을 피해 바티칸대사관으로 망명한 노리에가는 1990년 1월 미군에 투항, 미국으로 압송되어 미국 내 마약밀반입 등의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고, 1992년 7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라크엔 석유가 있었고 파나마엔 운하가 있었다.

 

출처: 곰PD의전쟁이야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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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trakoo 12-01-24 13:03
   
사진이 안나와요.

혹시 저만 안나오나요 ?
개솔개솔ㅋ 12-01-24 13:28
   
저도 마찬가지
던킨스타 12-01-24 13:49
   
엑박의 침공 ㅋㅋ
plum™ 12-01-24 15:39
   
읭 전 잘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