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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2 23:00
[잡담] 서희는 '세 치 혀'로 거란군을 물리친 걸까
 글쓴이 : 토끼승우
조회 : 3,275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2759815

길어서 아직 못읽엇는뎨 죠은것같아서 들고왓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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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제국 17-10-02 23:13
   
초반에는 고려가 별로였지만

현종이후 요나라가 망할때까지 고려는 태평성대를 누립니다

기본 병력 30만에

별무반 17만

고려 황실 근위대 2군 6위 4만 5천
KCX2000 17-10-03 00:54
   
서희는 당시에 누구도 몰랐던 거란의 허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답을 정해놓고 회담에 응해서 소손녕을
물러가게 만든거죠.
세치혀라는 말은 서희를 낮게 평가한겁니다. 단순히 말빨이 좋아서 소손녕을 물러가게 한게 아니란 말이죠.
바람노래방 17-10-03 02:03
   
누구도 몰랐다가 아니라 누구라도 생각했어야 할 당연한 정보를 누구도 몰랐다는게 고려의 현실 감각의 부재를 보여주는거죠.
서희의 담판은 그때는 좋았을지 몰라도 결국 고려를 모국으로 생각했던 여진족을 적으로 돌려세워버린 계기가 됐고, 이후로 여진족에 의한 사전 정보 탐색 기능의 상실로 거란의 재침 경보 미비, 이후 몽골의 침략시까지 고려의 북방 정보력 부재의 요인이 됩니다.

고려 정부의 정보력이 워낙 부실했기 때문에 서희가 상대적으로 드러난 것이지, 사실은 상식적이였어야죠.
     
KCX2000 17-10-03 14:09
   
당시 여진족 부족은 수십개고 고려 국경 근처에 일부 여진만이 고려를 숭상했습니다.
당장 거란이라는 거대 적이 쳐들어오는데 시간을 번게 서희가 여진을 같이 치자고 한거고
이걸 계기로 거란이 차후에 처들어오는 길목을 정비할 시간을 번겁니다.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활약할수있는 계기가 된거죠

그리고 여진이 나중에 반고려로 돌아선것도 반고려,친고려파가 붙어서 친고려파가 깨진게
이유지 고려가 거란때문에 여진을 쳐들어간게 계기는 아닙니다
홍상어 17-10-03 03:47
   
들고가세요 ㅎ
archwave 17-10-03 09:19
   
[ 군사적 위력을 보인 후 협상을 벌인다는 점입니다.

앞서 소개했듯 서희의 담판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연주성, 안융진에서의 군사적 승리가 담보됐기 때문입니다. 서희는 평화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초 거란에서 항복을 요구했을 때 고려 조정은 “전쟁은 안 된다”며 『투항론』과 『할지론』이 대세였습니다. 거란에 항복을 하든가, 서경(평양) 이북 영토를 내어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극렬하게 반대한 것이 서희입니다. 서희는 “지금 요구를 들어주면 앞으로도 또 다른 요구를 해올 것”이라며 “적과 싸워 본 뒤에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킵니다.

훗날 조선 후기 실학자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이때 그 기세만 보고 놀래어 화친만 하려고 일삼았다면 화친이 이루어지기는커녕 적의 끝없는 요구를 채우느라 갖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니 이 일은 후세에 거울로 삼을 만 하다”고 남겼습니다.  ]

위 부분이 눈길을 끄네요.
깡통의전설 17-10-04 01:15
   
힘이 없다면 협상이 안되죠. 협상이란 Deal이라 주거니 받거니~
슬램덩크 17-10-04 12:45
   
당시 고려에서 국제 정세와 소손녕의 의도를 정확하게 봤던 사람이 서희 밖에 없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