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말, 호치민의 혁명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프랑스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소련은 하노이 정부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하노이에 참관인 조차 보내지 않았다. 믿었던 프랑스 공산당 조차도 그를 돕지 않았다. 믿었던 프랑스공산당 당수 모리스 토레즈는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를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호치민의 정책적 선택은 프랑스와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1946년 3월의 호치민-생트니 협정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체결된 것이었다. 호-생트니 협정은 1946년 3월 6일에 베트남 민주공화국 대통령 호치민과 프랑스 특사 장 생트니가 체결한 협정이다. 협정은 베트남을 프랑스 연합 내부의 자유 국가로 인정했고, 프랑스가 1951년까지 북베트남에 군대를 주둔하는 것에 동의했다.
프랑스에 대한 호치민의 타협에 대해, 민족반역자라는 비판까지 제기되었다. 협정을 통해서 호치민은 프랑스가 중국군을 북베트남에서 몰아내 주기를 바랬다.
비판자들에 대해,호치민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당신들은 바보다! 중국의 잔류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인가? 우리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지난 번에 중국이 왔을때, 그들은 천년 동안 이 땅에 잔류했다.
하지만 프랑스인은 이방인들이다. 그들은 약하다. 식민주의는 사망 직전이다. 아시아에서 백인은 끝장났다.
하지만, 만약 현재 중국인들이 잔류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철군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서는, 평생 중국인의 똥을 먹는 것보다는 프랑스인의 똥냄새를 잠시 맡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진짜 국제적 감각은 타고 난 사람이네